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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분의 고독

김선정 |2009.03.29 20:27
조회 80 |추천 0


 

당신이 내게 보인 뜻밖의 사적인 관심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관례적 방식을 빌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기름진 경작지와도 같은 당신의 황금빛 몸

물방울처럼 눈부시게 튕겨오르는 당신의 젊은 사유

 

그리고

서늘한 눈빛을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런데 ..

사랑이라니 !

 

와디를 아시는지요.

 

 

사막의 강

우기 때 물이 흐른 흔적만 남아있는 메마른 강

 

그런 와디나 다름없어요.

 

 

누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인색하고 협량한 마음의 와디.

 

 

당신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내 협량한 마음의 와디를 가득 채우고 흐르길 오랫동안 꿈꾸었지요.

 

나는

당신의 강물로 내 죽은 뿌리를 적시고

마침내 잎과 꽃을 피워내고 열매 맺기를 꿈꾸었지요.

 

 

아 아

 

하지만 나는

그걸 흔쾌히 수납할 수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과실을 깨물어

그 넘치는 과즙의 열락을 맛보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예요.

 

몇 날 며칠의 괴로운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오는

저 야생의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듬뿍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글아들지도 모르죠.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죠.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마시는

저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나는 오로지 어둠 속에서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 왔어요.

 

내게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조건이죠.

 

난 사막의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을 빼앗긴 채 말라가는 죽은 전갈이죠.

 

 

내 물병자리의 생은

이제 일인분의 고독과 일인분의 평화

 

그리고

일인분의 자유를 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밤하늘에 쏟아져내리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 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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