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내게 보인 뜻밖의 사적인 관심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관례적 방식을 빌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기름진 경작지와도 같은 당신의 황금빛 몸
물방울처럼 눈부시게 튕겨오르는 당신의 젊은 사유
그리고
서늘한 눈빛을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런데 ..
사랑이라니 !
와디를 아시는지요.
사막의 강
우기 때 물이 흐른 흔적만 남아있는 메마른 강
난
그런 와디나 다름없어요.
누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인색하고 협량한 마음의 와디.
당신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내 협량한 마음의 와디를 가득 채우고 흐르길 오랫동안 꿈꾸었지요.
나는
당신의 강물로 내 죽은 뿌리를 적시고
마침내 잎과 꽃을 피워내고 열매 맺기를 꿈꾸었지요.
아 아
하지만 나는
그걸 흔쾌히 수납할 수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과실을 깨물어
그 넘치는 과즙의 열락을 맛보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예요.
몇 날 며칠의 괴로운 숙고 끝에
나는
당신의 사랑을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부디
내 거절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낡은 시대의 사람이고
그러니 당신이 몰고오는
저 야생의 수목이 뿜어내는 신선한 산소를 듬뿍 머금은 공기에 놀라
내 폐가 형편없이 쪼글아들지도 모르죠.
그러니
나를 가만 놔두세요.
더 정직하게 말하죠.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잠들고
혼자 잠깨고
혼자 술마시는
저 일인분의 고독에 내 피가 길들여졌다는 것이죠.
나는 오로지 어둠 속에서
일인분의 비밀과 일인분의 침묵으로 내 사유를 살찌워 왔어요.
내게
고갈과 메마름은 이미 생의 충분조건이죠.
난 사막의 모래에 묻혀
일체의 수분을 빼앗긴 채 말라가는 죽은 전갈이죠.
내 물병자리의 생은
이제 일인분의 고독과 일인분의 평화
그리고
일인분의 자유를 나의 자연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밤하늘에 쏟아져내리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 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 장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