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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의 언니들

이영주 |2009.04.01 18:34
조회 180 |추천 0

 

평촌의 언니들 Pyeong-chon's sisters

임춘민 (Chun min Lim) / 2008 / DV / Color / 113min

 

 

 

언니들, 고맙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09 홈페이지에 가서 시간표도 출력해 사무실 벽에 붙여놓고 보고 싶은 영화에 형광팬으로 별표, 동그라미를 그려놓긴 했지만, 올해 영화제는 한 편이라도 보면 다행이다 싶었다. 보고 싶은 영화로 꼽았던 8편 중 한 편이라도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억지로 억지로 시간을 내어 지난 주 금요일 삼일로 창고극장을 찾았다.

작년까지는 필름포럼에서 했고, 장애인인권영화제도 인디스페이스에서만 했었고, 내게 삼일로 창고극장은 처음이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이름 그대로 영화상영용 극장이라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연극을 공연하기에 알맞은 소극장이었다. 그래서 음향이나 스크린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인디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라지만, 그렇다고 영화제 상영조건까지 이렇게 궁상을 떨어야 하는 건가 싶어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은 보고 싶은 영화로 꼽았던 8편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이랜드 비정규직 계산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보는' 혹은 '도와주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2년 전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또렷했기에, 영화로라도 그때 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그들과 섞이고 싶었다. 여성노동, 여성비정규직이 중요하다고 맨날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은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었던 거지. 영화로라도 그 경계를 허물고, 혹은 뛰어넘고, 혹은 넘나들고 싶었다.

물론 이랜드 파업이 2007년 투쟁이니 작년에도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냥그런 투쟁스케치 영상이 아니라 그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내 바람에 와닿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한창 투쟁하던 시기로부터 2년을 삭히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은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할 만큼 생생하게 그녀들의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물론 긴박한 파업투쟁 과정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기에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 때도 많고 카메라가 흔들릴 때도 꽤 있어서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파업투쟁. 이 네 글자는 지금껏 남성육체노동자의 전유물인 양 이미지화 되었던 공간이다. 물론 70년대 동일방직, YH 등 여성노동자투쟁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파업투쟁은 남성의 영역이었다. 다분히 남성적인 언사들이 당연히 오가는 그 공간에 평촌의 언니들이 주인공으로 서 있는데, 그 언니들도 나도 무척 낯설었다.

평촌의 언니들에게서, 앞에 나서서 멋지게 호령하며 진두지휘하거나 파업투쟁과 어울릴 법한 늠름한 전사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언니들은 철야투쟁 하나 참가하는 것을 결정하는 데도 "한다" "못한다" 갈팡질팡 논쟁을 벌이곤 했다. 아니, 논쟁이란 표현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옥신각신 서로 감정 상해가며 다툼 아닌 다툼을 벌이는 데 있어서 논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가족을 떠나 외박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언니들에게 파업투쟁은, 공권력의 폭력적인 침탈이 있든 없든 순간순간이 전쟁이었다. 멋지게 결의하는 남성노동자들의 모습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참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하찮은' 모습이었다.

그 언니들이 그렇게 감정을 다쳐가며 눈물을 흘려가며 밤샘을 하네 마네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동안 뒤에 앉은 몇 안 되는 남성노동자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텐데, 남성노동자들에게 밤샘투쟁은 그다지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아니었던 것이고, 격한 투쟁을 앞두고 긴장이나 풀어주면 되었던 것이지. 똑같은 투쟁이었지만 함께 투쟁하고 있었지만 이 파업투쟁은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겠구나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참 얄궂은 건, 그 끝도 안 보이는 이랜드 파업투쟁에 결국 끝까지 남은 이들은 그렇게 매 순간 겁쟁이처럼 "나 못해"를 연발하던, 그러나 같이 투쟁을 시작한 언니, 동생, 동료들 얼굴을 봐서 절대 그 대오를 떠날 수는 없었던, 바로 그 비정규직 계산원 언니들이었다는 거지.

비록 영상을 통해서지만 평촌의 언니들을 만나고 보니, 기존 남성의 시각으로는 절대 이랜드 파업을 해석하지도 평가하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이랜드뿐이겠어? 모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니들은 결국 별다른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몇몇은 다니던 킴스클럽에 재고용 형식으로 되돌아갔고, 또 몇몇은 홈플러스 비정규직으로 이직을 했고, 또 몇몇은 아예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건 또 관찰자였던 나만의 생각이었다. 언니들이 그러더라. 우리가 그렇게 죽자사자 싸웠으니 롯데마트도 이마트도 함부로 비정규직 계산원들 못 자른 거라고. 당장의 혜택이 나에게 돌아오진 않았지만 당신들이 싸워서 결국은 좋아질 거라고.

아, 눈물이 나더라. 도대체 희망이 있긴 한 건가, 승리의 낙관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지레 낙담하고 있던 나를 다독이는 건 바로 밤샘투쟁 한번 하려 해도 대번에 "난 못해"를 연발하던 그 겁쟁이 언니들의 다독임이었다. 언니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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