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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라도 외로워하지 마라.

윤형구 |2009.04.11 14:55
조회 52 |추천 0


그 남자♂


이 여자가 요즘
유난히 자주 쓸쓸해한다는 걸 남자는 압니다.
그리고 그 쓸쓸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남자는 압니다.
 
가끔 여자가 길게 한숨을 쉬면
남자의 가슴도 덩달아 휑해지지만
그래도 남자는 며칠 전 여자의 부탁대로
귀찮게 뭘 물어 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그것이
혈액형이나, 별자리
혹은 사상 체질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면 유난히 쓸쓸함을 즐기는
인간형이 있으려니...
 
오늘 오분 거리를 한 시간 동안 걸어왔다는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합니다.
오늘은 그냥 차를 타고 어디로든 가고 싶다고.
 
여자에게 옮아 덩달아 말수가 없어진 남자는
대답도 없이, 자동차 시동을 켭니다.
 
한참을 달려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강기슭에 차를 세운 남자.
 
어느새 잠이 든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 가만히 손등을 대어 봅니다.
"잠결에라도 외로워하지 마라."
 
여자가, 얼굴을 조금, 찡그립니다.

 
 
그 여자♀


잠든 척 눈을 감고 있던 여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립니다.
'내가 만지지 말랬지, 말도 걸지 말랬지!"
 
그러나 여자는 울컥 치솟는 말들을 용캐 삼켜냅니다.
그러곤 마치 주문처럼 속으로 되뇝니다.
'나는 벌받을 거야.
착한 이 사람을 버리면, 나는 벌받을 거야.'
 
허나 그 순간
남자의 손바닥이 다시 여자의 얼굴에 닿아
여자는 또 한번 얼굴을 찡그리게 됩니다.
 
'축축해. 눅눅해!
그래, 내가 벌받을 짓한게 어디 한두번인가?
난 어릴적 엄마 지갑에도 손을 댔는걸,
난 오늘도 무단 횡단을 했는걸.'
 
그때쯤 남자는
여자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킵니다.
남자의 그늘이 걷히자.
여자의 얼굴 위로 그대로 들이부어지는 화살 같은 햇살.
 
'그래, 이 사람 버리면, 나는
온몸에 꿀을 바른채 사막에 서 있는 것처럼
쓰리고 따가울 거야.'
 
남자가 몸을 움직입니다.
담배를 찾는 소리, 안전벨트 푸는 소리,
그녀가 깰세라 조심스레 차 문을 여는 소리.
 
남자가 내리자 여자는 그제야 눈을 뜹니다.
'정말 싫은건 닫는 것도 싫을 만큼 축축한 니 손이 아니야.
더 끔찍한 건 늘 새롭고, 보송보송하며,
달콤한 것만 원하는 내 변덕과 이기심이야.'
남자가 다시 차에 오르고 여자는 다시 눈을 꼭,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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