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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이냐 신사참배냐

기웅서 |2009.04.14 22:34
조회 44 |추천 0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 전체는

두 가지의 행위에 대해, 그것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하나는 자기의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천황 앞에 절하라는 것이었다.

 

두 행위 모두 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자기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며

누군지도 모르는 천황에게 절하는 것 또한 대수로울 것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름을 바꿈은 조상 대대로 이어 받은 뿌리를 포기함이었고

천황을 숭배함은 정복국가의 신적 존재에 대한 굴종이었다.

 

일제는 이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지니는 행위를 조선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교활하고 악랄한 술책인가!

 

허나 결과적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현실의 삶,

당장 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자식들의 미래와

앞으로 태어나게 될 자식들의 안전한 삶

(이 안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앎에도 불구하고)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신상 앞에 절했다.

 

이를 거절한 이들의 모습은 비참했다. 매 맞으며 굶주리고

능욕당하며 손가락질 받았다.

왜 그 쉬운 것을 하지 못하냐는 동족의 비난은 이러한 것들보다

그들을 분개케 하고 서럽게 했을 것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에 동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소수의 애국자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

 

그 시대를 겪은 어르신들의 증언과 빛 바랜 문헌으로밖에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그 때 그 사람들의 고통과 울분은

우리의 상상으로는 알 수 없다. 느낄래야 느낄 수도 없다.

 

독도와 고구려의 역사를 두고 실갱이를 벌이는 현 상황이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아는 이들에게는 천부당 만부당하겠지만

그 시대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눈 앞의 취업이나 결혼이나

내집 마련이나 자녀들의 진학문제의 심각함에는 감히

미치지 못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녕 이러한 일들이 눈 앞의 것에 비해 대수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취업이나 결혼이나 내집 마련이나 진학을 하는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해 이 나라가 존재하며 이 나라가 지켜져왔는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끝까지 이름을 지키고 신상 앞에서 꼿꼿하게 서 있던 사람들,

그들의 굽히지 않는 차마 말로 표현 못할 그 무엇에 의함 아닌가?

혹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이 이 나라를 지켜냈다며

조선의 무능력을 조롱할지 모르겠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계속 두 다리를 딛고 있다면

조용히, 그러나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권하겠다.

 

다니엘.

나라를 잃고 개명과 우상숭배를 강요당했음에도

끝까지 '다니엘'이라는 이름과

하나님의 백성된 신분을 잃지 않았던 절개의 고매함을 느낀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홀로 우뚝 선 한 소년.

우리에게 속한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 분명하다면,

일제 강점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이름과

신앙을 지키며 고통당하고 죽임당했던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정녕 풀무불과 사자굴에 던져지면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라고 단호하게 외친 다니엘의 외침을 동일하게 외쳤을 줄로 믿는다.

그리고 오늘날 나에게 동일한 외침이 있기를 원한다.

 

어찌되었든간에 하나님의 백성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시며 그들을 무릎꿇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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