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6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마이클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1학년이던 1982년 NCAA 챔피언 결정전 조지타운전에서 결승 점프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63-62의 짜릿한 역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때 고등학교 농구부에서 잘리기도 했던 평범한 선수에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1984년, 조던은 올해의 대학 선수로 선정되었고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팀내 리딩스코어러(leading scorer)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예를 누렸다. 또한 NBA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3번픽으로 시카고 불스에 선택되었다.(로케츠가 하킴 올라주원을 전체 1번픽으로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샘 보위를 전체 2번픽으로 선택)

조던은 1984년, 나이키와 5년 2.5M의 계약을 맺었다. 이 파트너쉽(partnership)은 양측 모두에게 믿을수없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슈퍼스타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창조했고 나이키는 에어조던(Air Jordan) 농구화와 다른 조던 관련 상품으로 믿을수없는 매출을 올렸다.

조던은 1984-85시즌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불스를 전년 대비 11승 향상시키며(27승에서 38승) 신인왕을 수상했다. 하지만 시카고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밀워키에 패하고 말았다.

두번째 시즌 3게임만에 다리골절상을 입은 조던은 셀틱스를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야 코트에 돌아올수 있었다. 2차전, 조던은 플레이오프 역대 기록인 63득점을 올리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불스는 보스턴 가든(Boston Garden)에서 2차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135-131로 패했다. "신이 마이클 조던의 모습을 하고 강림했다" 래리 버드는 이 게임 이후 이렇게 말했다. 시카고는 셀틱스에 스윕을 당하며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조던이 도미니크 윌킨스와의 대접전 끝에 덩크왕에 오른 1988년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시카고에서 열린)는 역대 최고의 덩크 콘테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그해에, 조던은 그의 첫 MVP를 수상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클리브랜드를 누르며 그가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시카고를 2라운드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그와 불스는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배드 보이스 피스톤즈(Bad Boy Pistons)에 시종일관 고전하며 그 이상 오르는데는 실패했다.

불스는 1989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5차전 크레이크 엘로의 수비를 뛰어넘는 조던의 이 극적인 게임 위닝 버저비터로 클리브랜드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할수 있었다. 시카고는 2라운드에서도 뉴욕 닉스마저 격파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이번에도 그들을 가로막은건 디트로이트였다. 덕 콜린스 감독은 시즌 이후 해임되었고 그 유명한 필 잭슨이 지휘봉을 이어받게 된다.

1990-91시즌 감독 2년차인 필 잭슨, 전성기에 들어선 스카피 피펜 그리고 정규시즌ㆍ파이널 MVP를 한꺼번에 거머쥔 조던으로 구성된 불스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누르며 프랜차이즈 처음으로 챔피언쉽을 차지했다.

불스는 포틀랜드와의 파이널 1차전, 전반에만 6개의 3점슛, 35득점을 폭발시킨 조던의 활약으로 1991-92시즌 2연패에 성공한다.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그리고 다른 NBA 슈퍼스타들로 구성된 드림팀은 1992년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대 가장 위대한 팀으로 평가받는 이 팀은 게임당 평균 40득점차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냈고 NBA를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93년 7월, 불스가 3연패를 달성한지 약 한달후 조던의 아버지인 제임스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살해당했다. 2명의 18세 소년들이 살해범이었고 조던은 이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단지 뛰고 싶은 욕구가 없을 뿐입니다" 조던은 이런 성명을 남기고 1993년 10월 6일 그의 첫번째 은퇴를 발표했다. 조던은 여러가지 도박에 관련된 구설수에 시달리던 중이었고 그의 아버지 살해 사건 이후 곧바로 이런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1994년 2월 7일, 조던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조던은 그가 야구 선수로 성공했으면 바랐다는 죽은 아버지의 꿈을 채워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해 더블에이 버밍햄 배론스(Birmingham Barons)에서 우익수로 뛰며 31살의 조던은 127게임동안 타율 .202, 3홈런, 51타점, 30도루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조던이 은퇴한지 1년후, 불스는 그의 등번호 23번을 영구결번시켰고 유나이티드 센터(United Center) 밖에 그의 동상을 세우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I'm back." 조던은 1995년 3월 팩스를 통해 복귀를 선언했다. 등번호 45번을 단 조던은 3월 19일 그의 복귀전인 인디애나전에서 38분동안 뛰며 16득점(필드골 7-28)했고 불스는 연장전 끝에 패하고 말았다.

복귀 다섯번째 게임만에, 조던은 1995년 3월 28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 열린 닉스전에서 55득점을 폭발하며 부활을 알렸다. 조던은 또한 빌 웨닝턴의 결승점을 어시스트하며 시카고의 113-111 승리를 이끌었다.

조던의 컴백 시즌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올랜도에게 패하며 끝이 났다. 아마도 이 시리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불스가 1점차로 뒤지던 게임막판 닉 앤더슨에게 결정적인 스틸을 당한 조던의 실수일 것이다. 1990년 이후 조던이 이끌던 불스가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던의 복귀 첫 풀시즌, 불스는 역대 기록인 72승 10패를 기록하며 70승을 돌파한 역대 첫번째 팀이 되었다. 조던은 정규시즌, 올스타 그리고 파이널 MVP를 모두 휩쓸었다.

1997년 파이널 2승 2패, 독감으로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던 조던은 유타와의 5차전 38득점을 넣는 투혼을 발휘하며 시카고의 승리를 견인했다. 불스는 6차전마저 승리하며 통산 5번째 챔피언쉽을 차지했다.

불스 멤버로 그의 커리어 마지막 게임이었던 1998년 7월 14일, 그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을 남겼다. 유타와의 파이널 6차전, 그는 45득점과 함께 경기 막판 결정적인 스틸에 이은 결승 점프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불스는 통산 6번째 챔피언쉽과 함께 두번째 3연패를 이루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지쳤습니다" 조던은 1999년 1월 13일 그의 두번째 은퇴를 발표했다. 조던은 그의 두번째 은퇴가 마지막이 될 확률은 "99.9%"라고 말했다.

2000년 1월 19일, 조던은 위저즈의 지분을 10% 사들였고(20M에서 30M 사이) 팀의 구단주가 되었다. 하지만 보스로써 그의 행보는 200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픽으로 콰미 브라운을 선택하는 등 전체적으로 미숙했다.

38살의 조던은 2001년 9월 25일 위저즈와 2년 계약하며 그의 두번째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위저즈는 이전시즌 19승 63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내던 팀이었다.

2001년 10월 30일, 불스 유니폼을 입지 않은 그의 첫번째 NBA 게임(상대는 닉스)에서 그는 19득점을 올렸지만 팀은 뉴욕에 패하고 말았다. 위저즈는 37승 45패로 시즌을 마감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조던은 팀내 최고인 평균 22.9득점을 기록했지만 필드골 성공률은 겨우 41.9%에 불과했다.

워싱턴에서 그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은 첫시즌만도 못했다. 그는 평균 20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37승 45패로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3년 4월 16일 그의 NBA 마지막 게임인 필라델피아전에서 그는 15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은 107-87로 패했다.

NBA 프론트 오피스로 두번째 도전에 나선 조던은 2006년 6월 밥캐츠의 공동구단주 자리에 올랐다. 밥캐츠는 래리 브라운이 감독으로 부임한 첫해인 2008-09시즌 그들의 5년간의 역사 중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조던은 위저즈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구단주로써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MLBBADA A.Jones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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