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 집사님께서 이곳 과테말라에서 운영하시는 '한인일보'라는 신문이 있습니다.
이 신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신앙 칼럼을 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 세분과 교수님 한분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페이지 분량이지만 정성스럽게 쓰 보겠습니다. 저는 매주 화요일 신문에 글리 기제되는데, 여기에도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글 쓰는 재주는 없지만, 기독교 색체를 너무 내지 않고, 그렇지만 긍적적인 마인더를 가질 수 있도록 글을 쓸 생각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돌 목사 이야기 - 하나
코리 텐 붐 여사를 아시는지요?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전세계에 큰 신앙의 감동과 영향을 남긴 분이십니다. 그분의 간증 속에 실린 감동적인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코리 텐 붐은 그의 가족 모두가 유태인들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독일에서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라벤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수용소에서 가족들은 모두 죽고, 독일의 패전으로 코리 텐 붐만이 기적적으로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이 여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자기를 핍박하고 가족들을 잔혹하게 죽인 독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여 독일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간증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집회로 인하여 죄책감 가운데 사로 잡혔던 수없이 많은 독일 사람들이 죄에서 자유를 얻었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코리 텐 붐이 독일의 시골 도시에서 말씀과 간증을 모두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들 중에 어떤 한 사람이 그녀의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감옥에서 자기 언니 벳시가 죽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죄수들을 못살게 괴롭혔던 라벤스브룩의 수용소 간수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 간수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주님께 속으로 몇 번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 돼요.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할 수 없어요. 저 사람만은 안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정할 때마다 계속해서 ‘사랑하라. 그것은 명령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을 깨달아 ‘하나님, 저는 그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할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해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느새 그 사람이 자기 눈앞에 다가오자, 그녀는 사랑의 감정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감정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간수를 솔직히 사랑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순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느 종교든 사랑을 외치고 용서를 외치고 자비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움을 외치는 종교를 가진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 가는데, 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악해져만 가는 것일까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적 외침은 늘어 가는데, 종교적 지식은 늘어 가는데, 그것에 걸맞는 실천적 삶은 오히려 약해져만 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구의 한 모퉁이 이곳 과테말라에 까지 와서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의 작은 수고와 섬김과 희생이 코리 텐 붐 여사의 삶처럼 되어서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다운 사랑과 용서의 사회를 만들어 봄이 어떨까요?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한국인들을 이렇게 평가했던 것을 보았습니다.“역전의 용사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전의 용사들 아닙니까? 한번 해 봅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좀 더 아름다운 환경을 물려주며,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부모였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여러분이 가정과 하시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기원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