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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시대에 맞이하는 ‘촛불 1주년’

배규상 |2009.05.02 12:50
조회 80 |추천 0

 

엄혹한 시대에 맞이하는 ‘촛불 1주년’

 

 

우리는 엄혹한 시절에 촛불집회 1주년을 맞는다. 1년 전 오늘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시민·학생 등 1만명 이상이 참가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들은 “미국 쇠고기 반대”를 외쳤다. 이날 행사는 이후 근 100일 동안 전국적으로 타오른 촛불집회의 도화선이었다. 검역주권 요구에서 출발한 촛불집회는 경쟁 위주 교육 및 의료 등 민영화 반대, 대운하 반대, 나아가 권위주의적 통치와 비정규직 문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의제를 넓혀 나갔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심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뜨거운 열기는 식어버리고 사회 제분야에서 반민주, 반개혁적 역주행 현상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보 양측의 ‘촛불 1주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보수 진영은 촛불이 나라를 온통 혼란으로 몰아넣어 사회경제적 비용이 수조원에 이른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족벌신문들은 지난해 4월29일 방영된 MBC 광우병 편이 사실을 왜곡 날조함으로써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촛불집회를 초래했다며 선동 혐의를 씌우고 있다.

진보 진영의 평가는 이와 정반대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재확인시켜 준 사건으로 규정한다. 사회학자 김종엽 교수(한신대)는 촛불집회를 참여 인원과 기간으로 볼 때 남한에서 벌어진 최대의 반정부 시위였다고 말했다. 1987년 6월항쟁에 비견되는 사회운동사, 정치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은 자유롭고 유쾌한 한바탕 난장이었다. 집회 기간 내내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였다. 촛불집회에 나온 대중들은 시민사회단체 연합체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주도적 역할마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촛불의 한계이기도 했다. 석달 넘게 타오른 촛불은 대안과 구심점 부재를 드러냈다. 87년과는 달리 촛불에는 그 에너지를 결집할 정치적 중심세력이 없었다는 게 결정적 문제였다. 항구적 대중운동으로 진화하는 데 실패한 촛불은 시민들의 피로 누적과 이명박 정권의 폭력적 탄압 앞에서 동력을 잃어갔다. 6월항쟁은 민주화라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촛불은 이렇다 할 결실을 못 얻은 것처럼 보인다.

촛불의 동력 상실에는 이런 내재적 딜레마 못지않게 정권의 표리부동한 이중성도 큰 몫을 했다. 촛불집회는 이 정권의 반개혁, 반민주성을 낱낱이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 속내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거나 “촛불 배후는 주사파 친북 세력”이라는 발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수 신문들의 시각도 똑같다. 이 신문들은 처음부터 “반미, 반 이명박으로 몰고가는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라고 시민들을 비난했다. 정권과 보수 신문들은 촛불집회가 좌파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이 철 지난 색깔론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며칠 전 광우병 편 1주년 방송에 대해서도 어떤 신문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이런 극우 상업주의적 사고와 소통하기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년 동안 목격한 과거로의 역주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래 전 졸업한 것으로 여겨졌던 독재와 민주의 대립구도가 재연되고 있다. 서동진 교수(계원예술조형대)는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란 책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상상해왔던 정치를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촛불집회가 갖는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그것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진보의 약화를 틈타 진보 고유의 가치까지 넘보는 사이비 보수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진보적 가치들이며 되살려야 할 것은 촛불의 동력이다. 진보세력의 과제는 촛불 1년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그것은 촛불을 진화시켜 진보적 시민운동으로 조직화하고 정치세력화하는 일이다. 반민주, 반개혁이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반동적 기류 속에서 이는 지난한 작업일 것이다. 당장 검찰은 지난달 말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용산참사 추모 집회, 노동절 집회, 촛불시위 1주년 집회에서 불법 행위자 구속 수사 등 엄단 원칙을 세웠고, 이에 따라 경찰은 집회들을 원천봉쇄하고 나선 상태다.

우리는 이런 행동 역시 반민주적 공권력 남용의 본보기라고 규정하며 그럴수록 촛불의 정신과 동력을 되살려야 할 당위성은 커진다고 본다.

 

 

 

2009년 5월 2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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