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편안하게 저녁을 정리할 수 있는
고궁에서의 가족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고궁 가족 음악회>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이 혼자 주최하는 행사가 아니라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와 하이서울페스티벌 두개의 축제가 같이 만나 주최하는
행사입니다.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축제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만나서 그런지
한층 권위있고 잘 짜여진 한편의 클래식 동화를 만난 것 같은 음악회였습니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이 들어도 "어? 어디서 들어봤는데?"싶은 대중적인 곡들과
국내외 최정상급 클래식 연주자들이 총출동한 이런 음악회가 정녕코 '무료'라니...
역시 축제가 좋긴 좋네요.
6시 반에 시작인 축제, 5시부터 벌써 이렇게나 긴 줄이.
준비된 좌석은 400석뿐이라 뒷 줄 사람들은 방석에 앉아야 한다는 자원봉사자들의 말에도
방석이라도 준다니 다행이라는 반응들.
오래 기다린 사람들은 봄볕 더위에 지친 모습들이었지만
다들 음악회의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리허설 중. 아직 입장이 시작되지 않아서 의자가 비어있지만 중화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앉아있었습니다.
입장이 시작되고 의자가 다 차고, 간이방석도 모자랄 정도로 빈공간 없이 중화문 앞이 가득 찼습니다.
다들 리허설시간까지 기본 한시간 이상은 기다렸는데도 지친 기색 없이 비라도 올까 조마조마.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이 오히려 관중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 같았습니다.
리허설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클래식 선율이 궁을 가득 채우는데 본공연은 얼마나 더 대단할지...
오늘 공연 프로그램입니다.
곡 제목을 들으면 "??" 할 수도 있지만 듣다보면 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익숙하고
유명한 곡들이었습니다. 조영창, 강동석, 애나리 등 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이죠.
정말 촌스럽게도, 이렇게 좋은 곡을, 이렇게 대단한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이 프로그램을 돈 주고 들으려고 했다면 얼마였을까 하는 생각이...ㅋ
첫 곡은 프라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만의 연주로 시작됐습니다.
사회는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 부부 아나운서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벌써 몇년 째 이 '고궁가족음악회' 사회를 보고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모두 약속이나 한듯 작년에 이어 이 자리에서 또 만나니 반갑다' 는 멘트와
손범수 아나운서의 재치있는 유머, 진양혜 아나운서의 무안해 하면서 또 그 유머를 받아주는 식의
진행이 굉장히 매끄러웠습니다. 딱히 대본은 준비 되지 않았지만 부부이고 또 몇년 째 이 음악회를
진행해서 그런지 손발이 잘 맞는다는 느낌.
너무 오래 기다려서인지 초반에는 약간 경직되어 있던 관객석 분위기가 손범수 아나운서의 유머 덕분에
부드럽게 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회이지만 분명 저렇게 재미있는 사회도 필요하겠죠?
어린이 날이면 더 스펙터클하고 재밌는데에 가고 싶어할법도 한데,
오후의 클래식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는 어린이들의 모습.
손범수 아나운서도 놀라서 "아니, 도대체 어린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시끄럽게도 하지 않고 공연을 보죠?"
제 자식도 아닌데 괜히 으쓱해지더군요..ㅋ
첼로의 에드워드 아론. <엘리지> 작품 24를 연주했습니다. 엘리지라는 제목과 맞게
굉장히 서정적인 연주였습니다.
불편하게 앉아 있는 사람도, 서 있는 사람도, 간이 방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도.
모두 진지하게 음악을 듣고,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이날이라 어린이들도 많았는데, 어린이들조차 클래식 공연 중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음악을 즐기더군요. 시청에서 다른 하이서울페스티벌을 즐기고 왔는지 간혹 조는 아이는 있었지만.ㅋ
고궁 건너편 건물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발견!! 저 건물에서 일을 하다 음악을 들으러 옥상으로 나오신 분들도 있고
전체 영상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올라가신 기자분도 계시겠죠.
어쨌든 옥상에서 음악을 듣는 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고도 왠지 재미있어서 찍어봤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서로 카메라를 겨누고 있었네요.
가장 큰 박수를 받았던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바르젠' 을 연주한 애나 리.
만 13세, 가까이서 봐도 무척 작은 소녀였습니다. 김연아보다도 어리고 앳디네요.
그런데 사라사테의 곡 자체가 워낙 열정적인 곡이고 빠른 곡이라
어리고 작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만큼 파워풀한 연주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박수소리도 무척 컸고, 다들 감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빠르고 현란한 연주 솜씨도 놀라웠지만 정말 음악을 즐기듯 연주하는 표정이 인상깊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작은 소녀의 손길에서 이렇게 큰 감동이 느껴지는구나.
덕수궁 무대와 클래식, 풀샷으로 봐도 너무 멋진 앙상블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정열적인 연주를 보여준 '강동석'의 무대.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 작품 26중 3악장 알레그로 에네르기코.
강동석씨를 찍은 사진은 전부 멈춰있는 샷이 없을 정도로 춤을 추는 듯한 연주였습니다.
저녁이 되고 어두워지자 더 멋진 풍경이.
클래식과 조명과 궁. 너무 잘 어울렸습니다.
초반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져서 비가 오면 공연이 중지된다는 안타까운
안내 멘트 때문에 관객도, 무대도 모두 조마조마 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하늘은 좀 어두웠지만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면 어쩔 뻔 했을까요.
이렇게나 멋진 연주를 놓칠 뻔 했으니.
비단 1~2시간의 줄서서 기다림 뿐만 아니라, 저녁내린 고궁의 하늘에
울려퍼지는 클래식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음악을 듣는
시민들의 모습, 그 안에서 우리 그 자체가 한 편의 그림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고궁, 오후, 봄날, 야외 연주회.
이제 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뜁니다.
분명, 멋질꺼야. 라고 생각하고 간 공연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멋진 야외 음악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