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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장-과연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

이민석 |2009.05.11 10:48
조회 3,573 |추천 0

그 이름이 당신입니까?

당신은 정말 누구입니까?

 

경북 문경 산골의 정토수련원은 최고의 선원인 봉암사를 품에 안은 희왕산과 마주하고 있다. '깨달음의 장'의 진행을 맡은 안내자가 빙 둘러앉은 참가자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는 한 명 한 명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 참가자가 답변을 해도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고장 난 레코드처럼 같은 물음만 반복했다. 참가자들은 '내가 나지,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라며, 터져 나오려는 반발심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첫날부터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행에 참가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깨장('깨달음의 장'의 준말)에 다녀온 사람들은 깨장의 내용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아주 재미있으니 부담 없이 다녀오라"고만 할 뿐이어서 별다른 생각이나 각오 없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경북 문경의 산골을 돌고 돌아 도착해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안내자의 진행을 옆에서 '돕는 이'가 큰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칫솔과 세면도구 같은 필수품을 제외하고 전부 이 바구니에 넣으세요."

"친구와 연락할 일이 있는데요. 휴대폰만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까?"

"안 됩니다. 휴대폰과 필기도구, 담배 같은 것은 모두 꺼내놓으세요."

약이나 세면도구를 제외하곤 모두 깨장이 끝날 때까지 바구니에 담으라는 안내자의 말에서 벌써 참가자들은 깨장이 자신들의 생각처럼 만만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듯 긴장했다. 밤의 적막이 산을 감싸 안을 때쯤 안내자의 엄명에 따라 오두막 안에 둘러앉았다.

"전과 같은 자리에는 다시 앉지 마세요."

당혹의 연속이었다. 낯선 곳에서 이제 막 자신의 자리와 옆 사람에게 익숙해지려는데, 같은 장소에도 연이어 앉아선 안 되고, 나란히 앉았던 참가자와 계속 앉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의 편치 않은 마음엔 아랑곳 없다는 듯 안내자는 다시 같은 질문을 시작했다.

"박은영 씨!"

"예."

"당신은 누구입니까?"

"박은영입니다."

"박은영이라는 글자가 당신입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몸입니다."

"어렸을 때의 몸과 지금의 몸과 수십 년 후의 몸이 모두 다른데, 어느 것이 진짜 당신입니까?"

"......."

"당신은 누구입니까?"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만약 두 아이만 있었다면, 당신이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제의 마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

"박은영 씨!"

"......."

"박은영 씨!"

"......"

안재자의 부름에도 그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계속 해대느냐는 듯 짜증스런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의 고민을 해결해보려고, 또는 마음이나 좀 편해지자고 이곳을 찾았는데 오히려 속을 더 헤집어놓는 안내자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러나 안내자의 물음은 중단되지 않았다. 마치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처럼 그는 다음 사람에게 다시 질문을 계속 했다.

"노수진 씨!"

"예."

"당신은 누구입니까?"

"노수진입니다."

"그 이름이 당신입니까?"

"그렇습니다."

"노수진이라는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면 당신이 아닙니까?"

"......"

"당신은 누구입니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깨달음의 장'에 참석하기 위해 여기에 온 사람입니다."

"노수진 씨!"

"예."

"당신은 누구입니까?"

"....."

"로스앤젤레스에 살지 않고, 여기 오지 않았으면 당신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편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없었다면 당신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당신은 정말 누구입니까?"

"....."

물음은 계속되고, 밤은 깊어갔다. 문답이 자주 끊기면서 침묵이 길어졌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답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답으로도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 반감만 들끓던 마음속에서 "정말 나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안내자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답을 했던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나는 누구일까?"

수백 수천 가지 답이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나'인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나라고 믿어왔던 어느 것도 진짜 '나'가 아니란 말인가. 그때부터 참가자들의 답변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광선 ㅆ, 당신은 누구입니까?"

"제 업입니다."

"그 업이 없다면, 당신이 아닙니까?"

"......"

"당신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인연 맺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분들과 인연을 맺고 있으면 당신이 아닙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당신은 누구입니까?"

"......"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를 찾으려고 고통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엇을 '나'라고 우길 수 있을 것인가. 이름도, 직위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학력도, 성도, 지역도, 국가도 '내'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느낌에 아파했다. 지금까지 '나'라고 믿었던 것 외에는 무조건 거부하며 털끝만큼도 받아들이지 않고 철통같이 닫아두었던 '아성(我城)'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음을 조금씩 자각할 무렵 겨우 깨장의 첫 장이 막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세상 그 어떤 것도 진정한 '나'일 수 없다는 깨달음의 충격 속에서 잠을 청했다. 오두막의 방을 절반으로 나눠 한쪽에는 여자들, 반대쪽엔 남자들이 누웠다. 즉각 불이 꺼졌다. '나'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신념이 부서져 나가는 경험을 한 이들은 의지하던 불빛마저 꺼지자 깊은 산중 암흑 속에서 '무'의 세계를 유영했다. 다음 날도 당혹스런 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방을 모두 자기 앞에 갖다놓아 보세요."

안내자의 말에 따라 참가자들 앞에 배낭과 가방이 놓였다.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안내자의 물음이 다시 시작되지, 참가자들은 '또 이 무슨 황당한 질문이란 말인가?" 하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재윤 씨,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제 것입니다."

"이 가방은 정말로 누구의 것입니까?"

"......"

안내자가 "정말로 누구의 것이냐?"며 '정말'을 강조하자, 다시 그는 주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참가자들은 '정말은, 진실은 무엇일까?" 탐구하기보다는 억지로 답을 찾아내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가방은 내 것이지, 이게 누구 것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참가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질문을 중단할 안내자가 아니었다. 그는 더욱 단호한 어조로 추궁하듯 질문을 이어갔다.

"정재윤 씨,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제 가방입니다."

"왜 당신의 가방입니까?"

"제가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제 것입니다."

"돈을 주고 사면 모두 자기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해와 달도 사면, 제 것이 됩니까?"

"......"

참가자들이 자기 가방이 아니라고 하면, 안내자는 가방을 앞에 내놓으라고 했다. 따라서 자기 것이 아니라고 시인하는 순간 정말 가방을 압수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터라 정재윤 씨는 '자기 것'이란 주장을 꺾지 않았다. 안내자가 다시 물었다.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제가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 것입니다."

"제가 당신 것을 이용하면, 제 것이 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제 가방입니다."

"왜 당신의 가방입니까?"

"제가 지금 갖고 있으니, 제 것입니다."

"이 가방들을 모두 내놓도록 해서, 제가 당분간 보관하고 있으면 제 것이 됩니까?"

"......."

이상했다. 부정할 수 없이 확고한 '내 것'이라고 믿었던 가방에 대해 '정말로 내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소유물에 대한 참가자들의 부리 깊은 애착이 드러났다. 어떤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의 깊은 집착에 대해 "사람이 저렇게 답답할까"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도 소유물에 강하게 집착했던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 다른 사람의 집착을 보며 한심해하고 있었다. 역시 제 눈 속의 티보다는 다른 이의 티가 선명히 보이는 듯 했다.

그런 점에서 혼자 화두를 잡고 몰두하는 참선과 달리, 집단 화두문답은 엄청난 상승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안내자와 다른 참가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다른 이들의 집착과 업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집착을 되돌아보았다.

"남소영 씨!"

"예."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다."

"왜 당신의 것입니까?"

"아빠가 돈 주고 사줬으니, 제 것입니다."

"길에서 주워서 쓰고 있으면, 당신 것이 아닙니까?"

"........"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제가 '제 것'이라고 생각하니, 제 것입니다."

"이 가방을 '제 것'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제 것'이 됩니까? 이 산도 '제 것'이라고 생각하면, '제 것'이 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

"이 가방은 누구의 것입니까?"

더 이상 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지만, 남소영 씨는 가방에 대한 애착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아끼던 가방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했다.

"이 가방이 제 것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이 가방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남소영 씨가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내놓았다. '과연 소유란 무엇인가', '소유라는 게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눈을 떠가고 있었지만, 가슴은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왕방울만한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계속되는 안내자의 물음에 그는 마침내 "이 가방은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가방뿐 아니라 해와 달도, 산도, 물도, 다른 물건들도 결코 영원한 소유자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쓰일 뿐이었다.

다음엔 또 어떤 장이 기다리고 있을까? 참가자들은 다가올 장득ㄹ이 두렵기만 했다. 그들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장을 강행하는 안내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았다. 안내자와 씨름하던 이들은 어느 정도 큰 고개를 넘었다 싶으면 갑자기 심한 허기를 느끼곤 했다. 이곳에선 하루 식사시간이 두 번빡에 없는데다, 먹는 절차가 간단치 않은 바루 공양식이기에 급히 먹는 식습관에 젖어 있는 참가자들에겐 먹는 것부터가 인내의 시험대가 되었다.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밥과 반찬을 큰 접시에 담은 뒤 밥알 하나 남기지 않아야 했다. 정토수련원 식구들이 직접 가꾼 무공해 채소와 반찬은 참가자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배가 고파서 밥과 반찬을 욕심껏 접시에 담았던 한 참가자는 늘 전부 먹느라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그 식탐을 어쩌지 못했다. 식사시간엔 대화가 금지됐다. 식사시간뿐 아니라 안내자와의 문답 외엔 일체 침묵해야 한다. 침묵 속에서 밥을 먹으면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숟가락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곤 했다.

"한 방울의 물 속에도 8만 4천 생명이 꿈틀대므로, 수행을 위한 약으로만 끼니를 이을 뿐 맛을 탐해서도, 한 톨의 곡식이나 물을 허비해서도 안됩니다."

밥과 반찬을 모두 먹은 뒤엔 숭늉을 접시에 부어 흰 김치로 접시를 깨끗이 닦은 뒤 김치를 먹고, 마지막엔 남은 숭늉도 마셨다. 눈꼽만큼의 찌꺼기나 물기가 남아 있어도 안 되었다. 집이나 식당에서 식사할 때 밥과 국을 남기기 예사였던 이들이 찌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식사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식사 뒤엔 조를 나눠 방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조마다 일을 하기 전에 빙 둘러앉아서 어떻게 당번을 나눌 것인지 의논했다.

"이 정도의 일을 하면서 의논은 무슨 의논입니까. 힘든 일은 내가 할 테니, 다른 사람들은 조금만 도와주세요."

성질 급한 한 주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통 앞에 서곤 했다. 그러나 안내자가 이를 제지했다. 모두 함께 의논해서 일을 분담하고, 일이 끝나면 일하면서 느꼈던 마음을 서로 얘기하라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일을 한다는 것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도, 마음을 나눈다는 것도 이들에겐 도무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단지 일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서로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며, 일 가운데서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음 날에도 독특한 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사람이나 동물, 사물에 대해 선입견으로만 판단하며 미워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하는 장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동물을 직접 만져보고, 사람의 선입견과 편견이 실제와 얼마나 거리가 있으며, 얼마나 왜곡돼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한 장에선 파트너를 정해 마주앉았다. 가까이 앉아 상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조차 껄끄러워했던 참가자들은 파트너의 눈동자를 바라보라고 하자 쑥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더구나 남녀가 파트너가 된 이들은 더욱더 어색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안내자의 엄격한 모습에 웃지도 못한 채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안내자는 되도록 눈을 깜박이지 말고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라고 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침묵보다 더한 고요가 밀려왔다. 그 안엔 내가 있었다. 상대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쳤던 것이다. 네 안에 내가 있었고, 내 안에 네가 있었다. 가슴속에서 뭔가 뭉클한 게 밀려왔다. 너는 나였고, 나는 너였다.

이런 감격을 안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파트너의 손이 되어 식사를 해야했다. 밥과 반찬과 국을 떠서 파트너에게 먹여주고, 상대방의 손을 자기 손처럼 이용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식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입가에 밥풀이나 반찬이 묻어도 직접 닦을 수 없었다. 밥품을 떼어달라고 파트너에게 부탁해 그의 손을 이용해야 했다. 참가자들은 힘들게 파터너의 손을 빌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밥을 넘겼다. 반찬과 국도 그렇게 먹었다. 도저히 손발이 맞지 않던 사람들도 서서히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남의 몸처럼 편하게 쓰이지 못했고, 남을 자신처럼 쓰지 못했는지 깨달으며 아파했다. 그리고 차츰 자신의 남의 수족이 되고, 남을 자신의 수족처럼 편하게 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깨달아갔다.

다시 새로운 장이 시작됐다. 안내자가 밖으로 나가 나무와 풀과 산새들을 느껴보라고 했다. 자신과는 별개라고만 생각했던 만물이 자신과 한 몸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이들은 자연을 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았다.

"새소리, 바람 소리도 엄마의 숨결처럼 느껴져요.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난 외롭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으로 가슴 밑바닥에 외로움이 적지 않았을 듯한 대학생 유리 씨가 마음이 열린 듯 활짝 웃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햬기했다. 모든 분쟁과 갈등과 고통이 한 몸임을 망각한 채 나와 내 가족, 내 지역, 내 나라, 내 편만 옳다고 하는 나의 망상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깨달아갔다. 처음 장을 시작할 때만 해도 화난 사람 같던 이들의 얼굴은 어느새 놀랄만큼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서로 반가운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안내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열려버린 이들은 마치 수십 년 지기 친구처럼 재잘댔다.

참가자들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하자 저승사자 같던 안내자도 보살 같은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밤, 조별 촌극에서 그동안 숨겨진 끼들이 발휘됐고 참가자들은 방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며 웃고 즐겼다. 잠자는 시간까지 수행으로 삼는 이곳의 철저한 규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마음의 족쇄는 이미 뚝 끊어져버린 듯 했다.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한 번 달리 생각해보고, '있는 그대로' 본다면 어 디상 괴로움도 속박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깨장은 이처럼 선불교의 대표적인 화두인 '이 뭐꼬'(당신은 누구입니까) 등의 물음을 통해 불교의 핵심 진리인 무아, 무상, 무소유, 무아집을 깨닫는 과정이다. 집중적인 화두 문답을 통해 경험과 문화, 지식, 학력, 종교, 국가, 지역, 직업, 재산, 학력, 성별, 나이 등으로 형성된 관념과 편견을 부수고 본성을 되찾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한다.

깨장을 끝내고 돌아온 뒤 참가자들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평소엔 말이 없이 침울해 있다가도, 가끔씩 기회를 주면 처녀 때의 끼를 발휘하곤 했던 박은영 씨도 변화된 모습을 전했다.

"시어머님과 세 딸까지 모두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약 지으랴, 저녁 준비하랴 쉬 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이나 어머님이 내게 뭐라고 하셔도 하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게 이상합니다."

마지막 날 밤 촌극에서 사람들의 배꼽을 쥐게 만들었던 유리 씨. 그 노랑머리 여대생이 보내온 글은 한편의 시처럼 내 가슴을 적셨다.

"돌아오자마자 팔공산에 가서 밤새 회의에 참석하느라 쉴 틈이 없었어요. 전 운동권이거들랑요. 그치만 예전과는 다르답니다. 예전에 운동한 것은 분노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이젠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할 겁니다. 제 눈엔 조바심이나 분노가 아닌 여유와 아름다움, 생명이 보인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 : http://www.jungto.org

출처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31가지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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