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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사수] 5·18 되돌아보게 하는 한 5월단체의 망동

김주형 |2009.05.11 17:26
조회 108 |추천 0
5·18구속부상자회의 '강제해산작전'…계엄군인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광주에서 일어났다. 5·18구속부상자회가 한때 함께 농성하며 원형보존을 주장했던 다른 5월단체에 강제해산을 시도해 지역사회의 비난을 싸고 있다.



           구속부상자회가 10일 언론에 보낸 보도자료


10일 5·18구속부상자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옛 전남도청에서 농성중인 5·18유족회, 5·18부상자회에 대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강제해산을 시도하겠다고 나섰다가 경찰의 저지로 계획이 무산되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볼 때 엄청난 군사작전을 시도하는 듯 보여 80년 5·18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5·18구속부상자회가 농성장 진입을 위해 경찰저지선을 돌파하려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당시 농성장에는 유족회와 부상자회를 합쳐 모두 50여명이 되지 못했다. 다행히 구속부상자회가 전회원 비상소집, 용역동원, 동구주민동원 등의 정보를 경찰쪽에 흘린 때문에 광주전남진보연대와 민주노동당 광주광역시당, 민주노총 광주본부, 광주전남청년단체협의회,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 광주전남아고라, 그외 일부 지역 대학생 및 시민 등 200여명이 이 비상식적인 사태에 분노해 도청 농성장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뒤였다. 전남 광양에서까지도 온 경우가 있었다.

경찰병력이 돌파되었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농성자들을 힘으로 강제해산하려면 그 앞을 막아나설 작정이었다. 우발적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힘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연좌한 상태로 저지할 작정이었다. 같이 힘을 사용할 경우 지원나와서 오히려 해를 입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끔 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완장에 장갑까지 단단히 낀 채 "대화하러 왔다"고 길을 비키라고 요구하는 구속부상자회. '진행 5·18국가유공자'라고 새겨진 완장.

이날 도청 농성자들은 긴급회의를 통해 몇 가지 방침을 마련했다. 비폭력, 도청 안으로 철수, 물리력을 사용할 경우 저항하지 말 것 등을 대비책으로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침은 휴일을 반납하고 달려온 각 사회단체소속 모두에게도 내려진 일이었다. 5월단체 사이의 무력충돌은 도청 강제철거에 혈안이 된 문광부와 추진단에게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었다. 여론의 도마에 올려 끊임없이 자극하려는 구속부상자회의 속셈에 미리 읽고 차단하려는 방책이었다.

또한 오후 2시 충돌을 예상하며 취재를 요청하는 발빠른 행동을 했다. 2시 해산이 물건너 가자 농성자들은 기자들과의 긴급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언론에 잘못 알려진 내용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기자들은 그동안 궁금해했던 부분에 대하여 질문하고 의문을 해소했다.


오후 2시로 예정되었던 구속부상자회의 기습이 무산된 뒤 유족회, 부상자회가 긴급하게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오후 8시쯤 도청을 향해 100여명이 몰려들었다. 마치 철거를 예정해둔 도청에 대한 철거반처럼 들이닥친 것이었다. 도청 옥상에서는 횃불이 밝혀졌다. 마치 봉화가 오르듯 시민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미리 경찰병력이 저지선을 확보해둔 상태였고, 그들은 도청 농성자들을 강제해산하겠다며 경찰과 여러 차례의 몸싸움을 벌이는 등 볼썽사나운 추태를 보였다. 경찰 저지선 안팎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비디오카메라와 사진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광경을 기록했다.

구속부상자회는 "공권력이 투입되어 천막농성을 강제 해산하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한 광주시민이 갖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공권력이나 할 일을 일개 5월단체에 불과한 구속부상자회가 나서서 하려는 것은 광주시민에게서 아예 5·18을 앗아가겠다는 소리였다. 한때 보존을 요구하며 농성했다는 자들이 어찌 같이 농성했던 다른 농성자들을 힘으로 끌어내겠다는 발상을 한단 말인가?


도청 옥상에서는 마치 봉화가 오르듯 횃불이 밝혀졌다.

5월광주의 시대정신을 시궁창으로 처박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5·18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자들과 똑같은 생각이 저들의 머리속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저런 추태를 보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도청으로 몰려와 "도청을 시민에게!"를 외쳤다. 그런데 그들의 입과는 달리 하고 있는 짓은 철거용역이었다. 아니 80년 5월의 계엄군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5월단체인지, 광주시민인지 부끄러운 일이다.

한창 경찰병력과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그들이 한쪽을 향해 몰려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여성이 그들을 향해 "부끄럽지도 않느냐. 창피한 줄 알라!"며 그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한 명에 대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이 막아나섰다. 위해를 가할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였다.

항간에 나돈 이면합의 따위는 입에 올릴 필요도 없다. 박주선 민주당 국회의원의 중재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과 한 합의는 그들이 8개월간의 농성을 한 뒤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데 채 3개월도 못돼 같은 5월단체를 향해 폭력을 써서 해산하려고 하는 일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상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구속부상자회는 부끄러움도 모르는듯 "도청을 시민에게!"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80년 당시 계엄군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30여분 가량 경찰 저지선을 돌파하려는 몸싸움을 벌이며 "도청을 시민에게!"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치했다. 그런 뒤 10시에 다시 오겠다며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시간에도 도청 농성장은 긴장상태에 빠져 있었고, 상식 이하의 구속부상자회의 강제해산 시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10시쯤 경찰의 무전을 통해서 "구속부상자회가 식사와 술을 마신 뒤 해산했다"는 교신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농성장 3층에서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참여단체별로 인사소개를 하는 한편 대학생들의 율동을 보며 쵸코파이와 두유로 늦은 허기를 달랬다. 오후 10시 다시 오겠다던 구속부상자회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시간을 좀더 도청에 머물면서 200여 시민들과 일부 농성자들은 잠깐이나마 도청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까지 와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밤 11시를 넘겨 시민사회단체쪽도 철수했다.


구속부상자회가가 철수한 뒤에도 한동안 상황을 지켜보면서 도청을 지키러 온 사회단체와 시민들이 의지를 다졌다.

한편 구속부상자회에서는 지난 8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강제해산을 안건으로 올려 표결을 진행했다. 당시 찬성 17, 반대 2, 기권 3으로 강제해산할 것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날 이런 강제해산 결정을 20여명이 농성장으로 찾아와 농성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다시 10일 오전 구속부상자회는 농성중인 두 5월단체에 대해 농성을 풀지 않으면 '강제해산'하겠다며 통보해 도청농성장은 대책논의를 하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처음에는 오후 2시에 강제해산을 하겠다고 통보했다가 넘어갔고 다시 오후 8시로 전달되었다. 경찰쪽에선 인원이 소집되지 않았다는 전언이었다. 유족회와 부상자회에서는 이런 내용에 대해 "사실확인과 함께 경고를 하기 위해 양희승 구속부상자회 회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라"고 전했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와야 했을까? 기자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공법단체 구성에 있어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공법단체 구성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대정부협상에서 부수적인 실속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방향에서는 "도청 원형보존에 광주전남진보연대 등 사회단체들이 가세하면서 구속부상자회에 대한 비판여론이 우세해지자 그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여기에 더해 "유족회, 부상자회와 사회단체 사이의 연대를 차단해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10일 일어난 이 기막힌 장면은 광주시민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생채기를 더했다. '몸에 난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가슴 속에 난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는다'고 했던가. 80년 5·18광주민중항쟁으로 생겨난 상처를 덧낸 구속부상자회의 행태에 대해서는 130만 광주시민과 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전남도민들에게까지 백배사죄해야 할 일이다. 기막힌 만행을 사죄하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라!


문재학 열사의 아버님. 유족회는 대부분 70대이상의 고령, 부상자회는 몸이 불편한데 구속부상자회에서 몰려온 100여명은 대부분 건장한 체격을 지닌 40~50대에 불과했다. 이 농성자들이 어찌 힘으로 상대하겠는가!

아시아문화전당 공사와 별개로 도청의 보존과 철거에 대한 논란이 지역사회의 건강한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활발하게 토론회가 조직되고 지역사회가 호응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생산적 토론에 대한 기대와 함께 도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상상도 하지 못한 5·18단체가 또다른 5월단체에 대해 농성을 강제해산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그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분명 이런 발상까지 나온 것은 그 내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5·18의 역사적 상징을 5·18로 엮인 단체가 허무는데 일조하는 것까지는 합의했다는 명목이 있어서 그렇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함께 해왔던 다른 단체에 대해서까지 공권력조차 외면하는 일을 앞장서서 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 이제 광주시민들과 지역사회는 이 충격적인 일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을 내릴 것인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2~3일 내에 다시 오겠다"는 허황된 망언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와 협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완장을 차고 모두 장갑을 끼고 100여명이 한꺼번에 달려와서 하는 말이 "대화하자", "협상하자"라면 그걸 누가 믿을 것인가. 작정을 하고 나온 마당에 왜 경찰 앞에서는 딴 소리인가. 저 보도자료는 왜 언론사에 흘린 것인가. 29주년 기념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행위를 한 저의가 무엇인지는 반드시 스스로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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