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촌 한복판에서
술에 취한 늙은 두 취객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주보기 힘든 광경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목소리로 무언가를 성토하면서
혼자만 이해되는 격한 감정 속에 자신을 몰아넣있었다.
나는 언제 주먹이 날아갈 지 몰라 아슬아슬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옆에 서있던 민은 담담했다.
그는 이런 광경에 나보다 더 익숙했기도 했고,
그러기에 이런 상황의 저번에 흐르고 있는 감정이 어떠한지
더 미세하게 느끼고 분석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긴장해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걱정마.
누군가 저 사람들을 말려주면 절대 주먹다짐을 하지는 않을 거야."
그애는 어떠한 감정적 동요없이 너무도 담담하게 얘기를 했다.
나는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저리 위태로운데. 말릴 수나 있겠어?"
나는 몸을 움츠렸다. 반면,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길봐. 서로 금방이라도 달려들것처럼 소리를 지르지만
옷을 벗고 있잖아. 그것도 천천히.
두려운 거야.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옷을 벗는 동안 누군가 말려주길.
지금 어떤 이유로 자존심이 상했다 생각하고,
그 꺽인 자존심을 보상받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 그저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하면
저 나이에 데미지가 너무 큰거지
나이를 많이 먹어서 힘도 없고, 술도 취해 비틀거리는데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때리면 둘다 손해야.
누군가 잡고 말려주면 마지못해 안싸울거고,
심리적 물리적 데미지도 없을텐데.
말리는 사람이 없지?
말리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데미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니까.
서글픈일이야."
그 날을 듣고 보니,
그 두 취객의 모습에서 '분노'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의 그림자가 언듯언듯 비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을 옷을 벗으면서
자신에게 닥칠 일을 고민하며 기다려야 하는 거였다.
나는 왜 술에 취한 어른들이 주먹다짐을 하기 전에
뜸을 들이는 가를 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존심이 상하기 싫기도 했지만,
누군가가 말려주길 기다리기도 하는 거였다.
싸우기전 옷을 벗는 두 취객들의 모습은,
갑옷을 입으며 전투를 준비하는 먼 옛날 장군들의 모습과는
다른 종류의 비장함을 담고 있는 거였다.
불행히도 몸을 사리지 않고 그들을 말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힐끗할끗 바라보며 그냥 지나치지도
뛰어들어가 말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민과 함께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민의 말과 취객들의 눈빛에 서린
분노와 불안의 팽팽한 긴장감은
쉽게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던 것 같다.
무턱대고 달려가기에는 데미지가 너무 크기에
천천히 옷을 벗으며 덤빌듯이 말하지만
누군가가 강하게 말려주기를 기다리는 우리의 아버지들.
그들의 삶이 처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