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1 : 24 ~ 25
결핍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눈앞에
어려운 현실을 만나면 가치보다는 현상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한다.
결핍 사고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볼 수 없게 한다.
늘 일차원적으로 생각하고 일차원적으로 행동한다.
그래서 결국 일차원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을 경험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것이라.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을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제약하려고 하는 통제된 결핍을
깨뜨리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서 바울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분이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품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녀들이 충분히 누리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적 풍요를 위하여 무엇을 구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지 않게된다.
믿음으로 우리의 전토를 하나님께 드린 후에는
백배의 복을 기대해도 좋다.
드리기는 드리는데 통제된 결핍 사고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드리는 것은 백배의 복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드린 후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않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다.
우리가 포기함으로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드렸다면
그 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야 한다.
제한된 결핍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경제법칙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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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에 대한 태도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무슨 핑계를 대서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못하게 하는 모든 유혹을 넘어서라.
헌금 기피를 정당화시키려는 모든 그럴듯한 이유를
뛰어넘어 믿음의 산에 올라 의무를 이행하길 바란다.
우리가 헌금 내는 것을 아까워하면
하나님도 주시는걸 아까워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리면 더 많은 것을
받게 되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주기를 즐겨하신다.
아니라고 그것은 옛날 사고방식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현대의 가치관이 아무리 멋지고 그럴 듯해 보여도
그것이 이미 오래 전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 엎을 수는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 후서 9 : 6 - 7
하나님은 헌금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계신다.
그 기준은 단순하다.
내는자가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면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경제 법칙가운데 하나이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
누구든지 심는대로 거두게 되는데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이 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목적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재물을 드림으로써 복을 받는다.
그러나 복은 헌금의 결과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헌금의 목적은 감사의 표현이지 복의 추구가 아니다.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이든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한
감사이든 목적은 오직 감사이다.
만약에 이 목적이 무시되고 뒤집어진다면
무당에게 바치는 재물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바알 제사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우상 제물이 아니며
무당에게주는 복채가 아니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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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청년_ 조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