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며
오늘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원히 떠나 보낸다. 서울 경복궁 영결식과 서울시청앞 노제가 끝나면 노 전 대통령은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변해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한 야산의 품에 안긴다. 이미 400만명을 넘어선 추모객들이 고인의 서거를 애도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그를 추모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돌연한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시대적 비극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민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바보 노무현’의 부활이라 할 만한 사회 현상을 낳았다. 우리 모두가 고인을 사지로 내몬 데 대한 연민과 애통함, 분노로 시작된 추모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것은 소통 부재의 정권에 대한 항거이자, 피폐해진 삶에 대한 절규였다. 실종된 시대 정신과 가치에 대한 회한이기도 하다. 고인은 죽음으로써 ‘가난한 자들의 친구, 서민의 수호자’로 거듭 났다. 고인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고인은 갈등과 분열로 찢겨진 시대의 희생자였다. 사사건건 보·혁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시대는 고인을 변방으로 내몰았다. ‘공(功)’은 폄훼되고, ‘과(過)’는 부풀려지기 일쑤였다. 그가 추진하려 한 각종 개혁정책은 좌파라는 올가미를 쓴 채 겉돌았다. 상고 출신의 비주류 대통령에 대한 기득권층의 멸시는 또 다른 벽이었다.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열정은 승부사 기질로, 권력기관마저 놓아줬던 탈권위주의는 비주류의 한계로, 10·4 남북합의는 좌파 정책으로 매도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나 이라크 파병은 진보세력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고인은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만들겠다며 퇴임 후 봉하마을로 돌아갔으나 그조차 정치적 의도로 의심받았고, 표적 수사 논란을 부른 검찰의 칼날은 결국 고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런 맥락에서 역대 최대라는 애도 물결은 우리사회 모두의 통렬한 자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이제 저마다의 성찰이 필요한 때다. 10여년 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우리의 삶속에는 ‘우리’가 빠지고, ‘나’만이 존재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불구, 내용적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신자유주의의 덫에 걸린 탓이다. 내 자식만 성공할 수 있다면 다른 아이들의 퇴보는 안중에 없었다. 가진 자들은 더한 탐욕으로, 못 가진 자들은 허황된 성공 신화에 매달려 뒤나 옆을 쳐다보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내달렸다. 정치권력과 이른바 보수 언론들은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시장만능주의 논리를 펴는 데 주력했고, 개개인의 삶의 가치는 실종됐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언론의 책임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그들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저항했던 고인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듯 몰아세웠고, 고인은 검찰의 언론 플레이만으로 ‘640만달러짜리 서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경향신문도 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
고인을 보내는 지금, 현실은 어떤가.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오로지 ‘1%’를 위해 ‘우리’라는 가치를 송두리째 깨부수고 있다. 민주주의는 총체적 위기에 처했고, 서민들은 절망의 벼랑끝으로 내몰렸으며, 남북관계는 파국에 직면했다. 1년 내내 역주행한 결과다. 더구나 고인의 죽음에 대한 정권의 대응은 애도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할 정도다. 고인 추모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을 끝내 외면했고, 유족들이 원하는 추도사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정권안위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지역주의 타파, 권력기관의 탈 정치화, 남북간 평화와 번영 등 고인이 사회에 던진 과제들을 실현하기는 열악한 환경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나아갈 길로 정치적 화해와 사회적 통합을 거론한다. 현 정권은 물론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이나 진보, 보수 진영 사람들도 그러한 원칙에 반대할 리 없다. 우리 역시 화해와 통합이 지역이나 이념, 빈부격차 등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통합과 화해는 현 정권이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규명,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정기조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 당장 독선과 독주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화해·통합의 첫걸음이고, 고인의 안식을 비는 이들이 해야 할 도리다.
2009년 5월 29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