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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세상을 향해 던진 바보의 시구

박치우 |2009.05.30 00:33
조회 52 |추천 0
진주만 공격이 있은지 한 달이 조금 지난 1942년 1월 14일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인 케네소 랜디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베이스볼은 올 시즌 스케쥴을 짜고, 선수들과 계약해서 스프링 캠프에 가기 위한 엄청난 양의 편지를 쓸 시기입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어떻게 해주길 바라십니까? 만약 당신이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서 시즌을 중지하기를 원하신다면, 저희들은 즉시 그 의사에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전시 중에도 베이스볼이 계속되기를 원하신다면, 저희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   이틀 후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는 대통령의 답장을 받았다.   "나는 진심으로 베이스볼이 계속되는 것이 우리나라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이 나라에는 없고, 모든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장시간 동안에, 게다가 힘든 노동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전보다 더 레크리에이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이전보다 더 모든 국민이 힘든 노동 시간 속에서 휴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이스볼은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밖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금전적인 면에서도 얼마 들이지 않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또한 300팀이 5천명에서 6천명의 선수를 거느리고 있다면, 적어도 그들은 2천만명의 시민에게 레크리에이션을 제공하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그러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전시 중에도 메이저리그가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이 답장은 흔히들 '그린 라이트 레터'라고 불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계 대전이라는 미증유의 파국 속에서도 야구를 계속하게 한 것은 국민적인 오락인 야구를 통해서 통합과 함께 국민이 장기전에 대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결단으로 메이저리그의 시즌은 중단 없이 계속될 수 있었다. 그 결단 속에도 원칙과 소신은 지켜졌다. 120년 이상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의 역사 속에서 파업이 아닌 시즌이 중단된 경우는 지금까지 단 4번 있었다. 최근의 9.11 테러 이후, 1923년 8월 2일 워렌 하딩 대통령이 서거한 날,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한 날, 그리고 1945년 4월 14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서거한 날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결단으로 세계 대전 속에서도 베이스볼은 단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열렸는데, 거기에는 특혜가 아닌 원칙과 상식이 지켜졌다. 징병될 연령의 선수들은 한 사람의 빠짐없이 군대에 입대했다. 당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인 테드 윌리엄스, 밥 펠러, 행크 그린버그, 조 디마지오 등도 야구 배트와 글러브 대신에 총을 들었다. 스타 플레이어들이 전쟁터로 떠나면서, 메이저리그는 '동네 야구', 혹은 '경로당 야구'라는 비웃음을 받았지만, 그들은 경기를 통해서 미국민들에게 휴식과 격려, 그리고 일상의 회복이라는 강한 의욕을 주었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원칙과 상식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의 바보

'바보'라고 불린 한 사람이 있었다. '바보'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결코 좋은 말은 아니다. '바보'라고 불린 그는 성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이 별명을 가장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바보'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길을 놔두고 구태여 동네 들고양이들도 외면하는 낙선의 길을 연거푸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우직함을 사람들은 '바보'라고 부른 것이다. 하지만, 그 '바보'는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그의 바보스러운 우직함에는 원칙과 소신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와 기득권의 타파, 인권과 복지라는 새로운 가치의 추구, 그리고 남북 화해와 공존 등을 향해 그는 우직하게 앞만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누군가 샛길을 가르쳐줘도 누군가 차에 태워준다고 해도 그는 그 어떤 편안함도 거절하고 자신의 발로 느릿느릿 걸어나갔다.   그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함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은 하나 둘 그에게 동화되었다.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그 '바보'들이 2002년 12월에는 '바보'를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으로 만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이루어냈다.   그 '바보'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듭시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원칙과 소신은 계속해서 지켜질 것임을 천명했다.


  사람들이 '바보' 노무현에게 열광했고, 또한 그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원칙과 소신에 있을 것이다. 그의 원칙과 소신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향한 꾸준한 실천은 아닐까.

하지만, '바보'의 원칙과 소신은 부안을 시작으로 해서 훼손되기 시작해서, 이라크로 한미 FTA 등으로 날개 잃은 새처럼 끝없이 추락했다. 결국에는 모든 나쁜 일은 '바보' 때문이라는 야유와 비난의 대상을 넘어서 놀이로 희화화 되었다.

많은 부분에서 훼손되었고 훼손될 수밖에 없었던 그가 추구했던 원칙과 소신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닐지 싶다. 한국 사회는 좀 과장되게 말해서 일반의 상식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대선에서 나온 '주어가 있다 없다'로 왈가왈부하거나 '모든 것은 오해로 통한다'는 새로운 속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바보'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죽음으로써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지켰다.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충격적인 그의 서거 소식에 사람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지지한 사람은 물론이고, 비판하거나 비난에 앞장선 이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비탄에 빠져서 일주일 이상 술로 낮과 밤을 지새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서 '바보'가 사람들에게 전한 메세지는 이런 비탄과 공허는 아닐 것이다.

그는 죽음을 통해서 상당 부분 훼손된 원칙과 소신이 회복되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회복된 원칙과 소신이 자신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다시 퍼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향한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가 생명을 내던지면서까지 알린 메세지는 추모의 국화가 아닌 행동일 것이다. 부정과 기회주의를 타파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또한 일반의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향해 힘들고 먼 길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실천을. 그리고 이 행동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자신의 일상 속에서 행해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의 서거 이후 많은 야구인들은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한 인간에 대한 예의로써 야구인들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들은 야구계의 비상식에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일까. 비리인사가 한국 프로야구의 실무자로 오는 것에는 일언반구도 없는 것일까. 이것은 야구인뿐만이 아니다. 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야구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고 있는 데도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많은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김성근 감독만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현장의 의견과 전혀 상관없는 일방통행의 이유도 조금 이해는 간다. 룰을 어긴 탓에 수년전 한국야구위원회를 떠난 사람이 사무총장으로 복귀해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 조직이 바로 KBO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을 뿐이다.

김성근 감독의 이 원칙과 소신은 기고한 글에서 삭제되었고, 게다가 그 글에는 김성근 감독을 성토하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은커녕 발가락을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바보' 노무현의 원칙과 소신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바보' 노무현의 원칙과 소신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실천력 제로의.

비리인사가 다시 돌아올 정도로 한국 야구계에는 인물이 그렇게도 없는 것일까. 야구계가 아무리 복마전이라고 해도 원칙과 소신을 가진 인사는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의 원칙과 소신을 보지 않고, 발가락의 때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바보'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알린 가치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자체가 아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이 노력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실현되지 않는 것은 세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거창한 구호 속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상 속에서 관철되어야 한다.




2003년에 대전에서 열린 올스타전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되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써는 최초로 올스타전에서 행한 시구였다. 2009년 5월 23일 그는 또 한 번의 시구를 했다.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향한 길고 긴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펌] '야구라' 블로그 글을 퍼왔습니다. http://yagoo.tistory.com/2904   오늘 같은 날,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출처 : 싸이월드, 뉴스, 스포츠, 스포츠 토론장, 야구, 글쓴이 노란비행기 http://newscomm.cyworld.com/board/view?bbs_grp_gb=SPORTS&bbs_sq=0&ctgr_cd=&post_sq=2228751&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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