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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의 수장 조선일보의 친일행각

김선명 |2009.05.30 21:27
조회 1,026 |추천 1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필요없이 딱 한장으로 친일 증거를 제시한다. 이 자료는 인터넷을 이리저리 타고 다니다가 발견하였는데... 아주 대놓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조선일보를 볼 수 있다.

  조선일보 로고 바로 왼편에 한자는 '천황폐하의 거룩한 위엄과 덕망'(天皇陛下의 御威德)'이라고 쓰여있으며, 일장기를 로고에 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도 더 지난 일을 들춰내서 뭐하냐고? 1936년 일제치하 였으니까 그럴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현재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민족지’ 운운하는 조선일보의 태생을 되짚어 보자.

  3ㆍ1운동의 위력을 실감한 일제는 조선 통치가 기존의 위압적 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른바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전환하여, 헌병경찰제를 보통경찰제로, 무관 총독제를 문무관 총독제로 전환한다.
   이후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총독 사이토는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을 내걸고 본격적인 문화통치를 실시하는데, 조선인 관리의 임용 범위를 넓히는 한편 “언론, 출판, 집회 등에 대하여서는 상당한 고려를 두어 민의 창달에 기할 것”을 천명한다.
  그 결과 총독부 정책을 홍보하던 기관지인 매일신보 등이 독점하던 신문시장에 민간지가 출현하게 된다. 곧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의 창간이다. ‘실업신문’을 표방한 조선일보는 친일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진태(사장) - 예종석(발행인) 체제로 출발했다

즉, 조선일보는 오로지 총독부의 시나리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밖에도 조선일보의 다른 친일 행각들을 살펴보면..

“천황폐하께 조선 출신 범인(犯人) 이봉창이 폭탄 던졌으나 무사히 환궁하시었다”
“광주학생운동은 조선의 불행”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과 동양의 평화 위해 체결한 조약”
“데라우찌 총독은 조선의 대근원 기초한 위대한 창업공신”
“일제의 30년 조선통치로 < 문화조선 건설 > 결실”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 > 잘 운용해야 항일운동 근절 가능"
“일본육군지원병제도는 조선통치사의 신기원이자 성스러운 일” 등이 있다.

  지금이라도 조선일보는 이름을 일본제국일보라고 바꿔라.

왜이제서야 노무현대통령이 조중동과 싸웠는지 백번 천번 만번 이해가간다.양심이 개 털끝만큼이라도 남아있으면 이제라도 신문사문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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