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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 추모의 밤 @ LA

강두형 |2009.06.01 14:52
조회 778 |추천 0

29일 한국에서는 이미 국민장으로 노무현 대통령님을 보낸 이후지만, 엘에이 교포들도 같은 날에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위한 추모의 밤 행사를 열고싶다는 여론에 따라 추모의 밤이 열렸다.

 

추모의 밤 행사는 처음부터 혼란이 많았다. 장소를 흥쾌히 무료로 제공해주겠다던 원불교의 사찰이 예상보다 훨씬 작아서 많은 인원을 포용할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서 부랴부랴 장소를 임마뉴엘 장로교회로 옮겼다. 그러나 이미 언론사 광고나 초기 보도뉴스에는 원불교 사찰로 알려진 이후였다.

 

이런 혼란속에서도 추모의 밤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임마뉴엘교회의 예배당에는 1층과 2층 합쳐서 400~5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날 언듯 보기에도 빈틈이 없었다.

 

(행사시작전 추모의 밤 준비에 바쁜 자원봉사자들)

 

교회 밖 입구에는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남기는 글을 적을 공간이 마련됐다. 분향소에 약 2천여명이 오면서 이미 많은 인사말을 남겼지만, 아직도 할말이 많이 남았는지 이날 추모의 밤에도 많은 추모의 글이 추가됐다. 

 

(추모의 밤 직전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는 한인들)

 

메모리얼데이 연휴기간에 추모의 밤 일정이 정해졌기에 많은 교회에 연락을 한것은 아니지만 엘에이 대부분의 교회가 자살을 한사람의 장례식을 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되려 백인교회였던 임마뉴엘 장로교회가 흥쾌히 자리를 제공해줬다. 거기다 이 교회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가는길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의례를 취하겠다는 기독교 외에 불교, 원불교, 천주교의 의례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한인교회보다 되려 미국인 교회가 한발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종교의 장례의식이 열렸던 추모의 밤. 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순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이중 원불교의 추모행사.)

 

(종교의례 마지막을 장식했던 개신교 목사님의 기도)

 

고인의 업적과 죽음을 애도하는 여러 사람들의 조사가 발표되면서 청중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한민족 평화 연구소의 김용현 회장과 내일을 여는 사람들(구 엘에이 노사모)의 제임스 오 대표일꾼 모두 진행도중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한사람의 눈물이 아니라 엘에이 교민들 모두가 함께 흘리는 공감의 눈물이었다.

 

(임마뉴엘교회의 예배당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

 

이날 추모행사에는 특이한 경험이 있었는데, 노 전대통령을 1년가량 직접 수행했던 정만호 전의전비서관이 참석해서 자신이 경험한 노 전대통령의 일화를 나눴다. 미국에서 연수중에 노 전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듣고 분향소에 찾아왔고, 오늘 경험을 나눌 기회가 제공됐다는 것이다. 그가 공개한 일화들은 대통령으로서는 예상 밖의 행보를 보여준 에 노 전대통령의 일화인지라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었다. 노 전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일상생활에서도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대통령이라고 한다. 정 전의전비서관은 자신이 경험한 노 전대통령은 재임기간동한 단 한번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 전대통령이 힘들었으리란 예상은 했지만 거의 24시간 옆에서 챙겨주는 비서에게조차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지 못한 노 전대통령의 5년 임기는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으리라. 난 이부분에서 너무나 놀라기도 했고, 고인의 인내에 슬픔이 복바쳐 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노 전대통령이 봉화마을에서 행한 행보들이 더욱 잘 이해되기도 했다.

 

(비서관으로서의 경험이나 일화를 나누던 정만호 전 노무현 대통령 의전 비서관)

 

이날 추모의 밤은 촛불의식으로 끝이났다. 자원봉사자들이 그동안 많은 추모객들이 남기고 간 편지나 시 등을 읽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상록수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함께 부르며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예상보다도 한시간 가량 더 늦게 끝났다. 노 전대통령에게 마지막 조문을 한다며 나갔던 방문객들이 다시 돌아와 줄을 섰기 때문이다.

 

(상록수,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으로 등을 앞에서 부렀던 자원봉사자들)

 

(촛불을 밝히고 고인을 애도했던 참가자들)

 

(행사 이후에도 돌아와서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수많은 조문객들)

 

(줄지어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많은 일을 한것은 아니지만 행사를 준비하는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행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 불편해야 마땅하지만, 난 되려 기쁘기까지 했다. 이것은 노 전대통령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지으며 고인을 애도하는 사람에게 행사가 늦어진다고 화를 낼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참고1:

엘에이에서 차로 약 한시간 정도 남동쪽에 위치한 플러턴 지역에도 같은날 추모의 밤 행사가 열렸다. 규모는 엘에이보다 조금 작았지만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고 들었다.

 

참고2:

이날 추모의 밤이 그저 한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슬픔표명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미주한인 사회에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보기를 기대해본다. 2012년부터는 미주한인들도 한국의 투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젠 한국의 한인들도 해외 한인들의 여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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