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와 인터넷
김 동 곤
크게 변화하는 시대에 서 있는 우리에게 지금 감성의 혼돈이 질풍처럼 밀려오고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들의 심사에 위정자들은 더욱 혼돈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람마음이 세상의 빠른 변화처럼 그렇게 따라 변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쉽게 제자리에 돌아오는 걸까.
우리는 일주간의 노대통령 국민장을 슬픔 속에 보냈다. 상대평가 개념의 정서와 그 뒤 분노가 불안해보일 정도로 엄습해왔다. 최고조의 경계수위는 아마도 장례식장을 빠져나온 운구행렬이 시청앞(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구슬픈 갖가지 노랫가락으로 연출된 삼 십여만 시민들의 흐느끼는 소리였다.
월드컵이후 칠 년 만에, 고된 국민들의 마음과 눈물샘에 고인 눈물은 '스스로 낮추며 소외된 이들을 보듬어 주었던 대통령'이 먼 길을 떠나는 날 다 내다버렸다.
앞으로는 어느 누구도 정치하기는 힘이 들 거라는 어떤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현대사회가 수치로 나타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지는 관계의존의 일상에서 이기적 행복욕구만을 느낄 수 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감동수준이상의 자기만족을 바라며 누구하나 희생은 없고 조건반사적 이득만을 취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지는 않았는가싶다.
힘들여 결정해놓고, '잘못 됐다 쉽게 나무라고' 다시 또 슬퍼 괴로워하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얇아 보인다. 몽골속담에 '뱀은 겉으로 보이는 색깔로 구분하여 알 수 있으나 사람은 그러하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농경사회 때부터 야행성인 부엉이는 비교적 사람 사는 지척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특이한 노래를 불러대곤 했는데, 서양에서는 한밤중에 부엉이 우는소리가 들리면 그 마을에서 한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속설이 있으며, 그리고 다음날에는 '부엉이가 그의 이름을 불렀어' 라고 믿는다.
그 애닲은 울음소리는 혼자 살거나 외로운 사람들에게 교감을 주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문명의 이기를 체험 할 수 없었을 때는 더욱 밤이 길어 밤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하소연도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산업공해로 인해 멀어져간 자연환경속의 시간들이, 또 다른 시공인 인터넷에 빼앗긴 것은 아닌지, 하지만 말로 하는 지시나 악성댓글은 생각으로 일으키는데 반해 이번 전직대통령의 서거에는 측은지심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으로 표현하여 모두가 초상집 상주처럼 울었다.
더 나아가 이모든 상황은 인터넷세대의 자연스러운 혁명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집단과 눈만 뜨면 컴퓨터와 함께 일과를 시작하는 세대 간 문명충돌 인 것을 일부만 아는 냥 웃어 버린다. 다시 말해 한 개의 사안을 해결하고자 열 개 방패로 막는다 치자, 천 개의 눈과 이 천 가지 정보를 공유하는 네티즌들의 계산을 잘못 따라 잡는 것이다.
더 쉽게 얘기 한다면 과거 백 만 명중 전문가 한사람이 하던 연출을, 지금세대는 백 만 명의 무명작가들이 매일 웹사이트에서 창조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안을 두고 오프라인에서 논의 되고 토론까지 끝나서 향후 전문가대책까지 있는데도 그러한 문제들을 수렴하기는커녕 생각을 구속하려한다.
'백성들이 촛불을 들고 나올 때는 칼집에서 칼을 뽑지 말며,
국민이 흐느낄 때 비웃지 말고 함께 눈물을 닦아 주세요'
이른 새벽 광화문지하도 서울역광장, 지하도를 걸어 가 보세요. 피난 나온 사람들처럼 가엾은 이들은 자꾸 늘어 가는데, 그런 생활을 해도 어느 위정자 한사람 대책을 얘기 하는 자 없으니 그러고도 어찌 선진국 얘기만 하시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정권에서 가난하고 약한 이들 입장에서만 배려했다며, 색깔을 뒤집어씌우는 일은 없애야 한다. 더 큰 오해의 진실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 옛날 부엉이가 외로운 사람에게 밤에만 교감을 주었다면 지금 인터넷세상은 24시간 내내 별의별 사안들이 소통대고 이루어져 태풍처럼 들불처럼 번져 가는 걸 알기나 하는지 모르는지.
지금 정부에서는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소통담당'직을 만들어 놓았다.
'대화의 첫째원칙은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듣는 것'이라는 겉을 알았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본다.
쉽게 말한다면 '소통' 이 머리로 할 수 있는 강제성 이였다면, 예를 들어 마음에서 느낌으로 적어내린, 떠나간 망자에게 오히려 '지켜드리지 못하여 죄스럽다'한 네티즌들의 답변들은 망자의 살아 생전 진실하고 서민적이며 배려할 줄 알고, 눈물까지 마다않으며 감동을 준 역사의 한 인물 이였기에 그 이상의 표현까지도 백성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함께 살아줘서 고맙단다.
지난해 어린자식과 촛불집회 때 유모차를 몰고 왔던 엄마들 중에는 이제 초등학생을 데리고 교육시킨다며 덕수궁 앞 임시 빈소에 와서 함께 절을 한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많다.
어떻게 살아야 사후에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하는가. 언제나 변함없는 올곧은
정신을 어디서 가르쳐 주는가? 하는 많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냥 사심 없이 사랑하면 되는 걸까 ...
그런데 왜 그의 고향뒷산에는 부엉이 바위가 있었을까, 어려서부터 그 바위와 함께 살아 왔겠지..
지금은 부엉이도 부엉이 울음소리도 들을 수 없다.
한줌의 재가 되어 '부엉이바위'앞에 돌아온 넋에, 진도사람들은 씻김굿으로 저승길을 열어주었다
길지도 않은 정치인생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감동을 주고 떠났다.
다시 살아나지 않을 듯 싶었던 우리들의 말라버린 가슴속을 눈물로 적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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