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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글 모음

구헌서 |2009.06.09 21:42
조회 1,521 |추천 0

                                    

 

[  자살글 모음  ]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겔 16:6)

 

 

 

 

 

 

 

1. 자살을 뒤집으면

 

예수 믿기 전 20세 때 폐결핵 3기였던 나는 자살을 몇 차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농약을 먹고 죽으려다 농약이 목으로 넘어갈 때의 고통을

상상하고 두려워서 그만두었다. 목을 매 죽으려다가는 숨이 막힐 것 같아 두려워서

 그만두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으려다가 바위에 두개골이 산산히 부서질 때 얼마나

 아프겠는가를 상상하고 그만두었다. 동맥을 칼로 끊으려다가 피흘리는 고통이

끔찍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내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예수님이 자살을 ‘살자’로 뒤집어준 것이다.

나는 예수 믿은 후에는 폐결핵 3기보다 더한 암말기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예수로 인해 전혀 새로운 인생 2라운드가 열리고 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고훈목사(안산제일교회)

 

 

 

2.비극의 유전성

 

미국의 한 소년이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타내기 위해 꾀를 냈다.

"돈이 필요해요.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자살할 겁니다." 아버지는 자살한다는 말에 크게 놀라

 아들에게 돈을 주었다.재미를 붙인 소년은 그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자살하겠다고

 협박했다.아버지도 아들이 `자살'이란 말을 할 때마다 돈을 주었다.

그 소년이 장성해 한 여성과 결혼했다.그런데 출산 과정에서 아내가 죽고 말았다.젊은 남편은 그 충격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도 없었다.결국 그는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고 말았다.

`자살'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의 삶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부모없이 자란 아이의 성격도 점점 흉폭하고 비관적으로 변해갔다.청년이 된

그를 거들떠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어느날 청년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는 윌리암 맥킨리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게했다.그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얼마후 사형을 당했다.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현실로 옮겨진다.비극도 유전성이 있다.우리가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자살

 

많은 사람이 카드빚 사업파탄 가정불화 생활고 질병 억울함 학업성적 등 저마다 말 못할 고민과 애절한 사연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짐을 남은 자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했으면’이라는 말로

이해를 하면서도 ‘꼭 그랬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자살은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 등과 함께 인간의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5.5명으로 높은 편이다. 자살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뇌신경생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나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자살은 숨겨진 분노나 고통의 충동적 표현이면서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애처로운 마지막 몸부림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은밀하게 추진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관심있게 살피면 자살의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일단 자살이 의심되면 응급환자로 여겨야 한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불어넣었던 사단은 결국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까지 개입했다.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이상룡(우석대한의대학장)

 

 

4.자살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누리고 지킬 권리를 우리에게 주셨으며 신이 아닌 그 누구도 우리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 생명권이 주어진 생명을 지켜내는 권리라면 생명결정권은 마치 인간에게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오도하는 권리개념이다. 생명권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인간 생명이 계속 그 생명을 누리도록 권리가 기능을 하는 반면 생명결정권은 생명의 시작과 생명의 마지막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을 만들어 내거나 주어진 생명을 마감할 권리를 인간이 가진다는 뜻이다.

생명결정권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할 때 자기 멋대로 인간 생명을 해치거나 죽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자살은

 이 두 가지 권리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을 자기 의도대로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가 의도한 대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마지막도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5. 아들의 자살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에 있었던 실화이다. 내가 어느

 잡지에서 읽은 것이다. 미국 샌디에고 외곽 지역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한국전쟁에 왔다가 돌아간 청년이 자기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빨리 집에 오지 왜 전화는 하는 거냐?" "아뇨, 제가 호텔에 있는데요,

이제 갈 거예요.어머니, 그런데 만나기 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제게 아주 절친한 친구가 하나있는데 부모가 다 없습니다.

일선에 저와 같이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장님도 됐구요. 두 손이 다 없습니다. 이걸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데리고 가서 나와 함께 우선 한 일년이라도 같이 살려고 합니다.

어머니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는

 "뭐, 괜찮지" 하고 소극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며칠 있으면 지겨울 거다.

 

네가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피곤하게 되고 괴로워질 것다.

얘야, 그러지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오렴."

아들은 "잘 알았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날, 해군 본부로부터 그 어머니한테

 전보 한 장이 날아들었다.

'당신의 아들이 호텔 12층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달려가 보니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눈 멀고

두 팔이 없는 것은 바로 자기의 아들이었다

/곽선희 목사

 

 

 

 

6. 태종대

 

부산 태종대에 가면 모자상이 있습니다. 제가 87년도에 갔었는데 그 때 모자상을 세워놨습디다. 왜 그 모자상을

 세웠냐하면 하도 사람들이 와서 자살을 하니까? 그곳은 높은 낭떠러지 입니다. 한 100m가 넘는 높이이며

아래에는 절벽과 시퍼란 바닷물입니다. 그곳에와서 투신자살을 많이 하니까? 모자상, 엄마가 아이들을 부등껴

 않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살하러 왔다가 그 모습을 보면 어머니 생각에 자살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는데, 그런데 제가 그 낭간에 재미있는 말이 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써있었는고하니 "어서 죽어라 쌀갑내리게" (김홍진)

 

 

 

 

 

 

 

 

7.여인의 보람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하여 어떤 도시에서 간증을 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나오는데 여자 교우 한 분이

테레사 수녀를 붙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자살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고 테레사 수녀는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매여, 자살하기 전에 내가 자매에게 한 가지만 요청하고 싶어요. 내가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와 같이 한 달만 일하고 난 후에 자살을 하세요.”

이 여자 교우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테레사 수녀를 따라서 인도의 캘커타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아와 질병으로 까맣게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그들을

 붙들고 부지런히 간호하고 치료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살고 싶어졌습니다.

'내게도 살 만한 보람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여자 교우는 자살의 유혹을 극복하고 테레사 수녀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8. 그대는 참으로 귀한 존재입니다.

 

지난달에 인터넷 나의 칼럼란에 “자살 사이트”라는 글을 올렸더니, 20여 일 만에 8백수십 명이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간곡하게 타이르는 어른들의 글도 있고, 자신이 그 처지를 경험하지 못한 입장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가볍게 판단하지 말라는 십대가 있는가 하면, 자기도 한때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 위기를 잘 극복하여 지금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리플을 달아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이 정보를 올린 한 십대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서 11월 5일 함께 자살하기로 약속했던 두 사람은 지금까지 글을

 나누고 있고, 이제는 그들이 세 사람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자살은 죽이고 싶은 타인 대신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라고 자살 심리학자들은 말한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하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대는 참으로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여운학 / 사랑의편지 발행인 -

 

 

 

 

 

 

 

9. 헛소문(험담)

 

성경: 잠11:12-13"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 하느니라"

1983년 영국 이스트본에서 열세 살 소년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크레이븐. 소년은

 모범생이었으며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소년이 왜 자살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악마의 저주를 받아 가족들이 일찍 죽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죽음이 두렵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어머니 곁에서 죽는 편이 낫다." 소년을 죽인 범인은 '악의에 찬 헛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문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정에 적개심을 품은 한 노인이 퍼뜨린 유언비어였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나 험담은 세 사람을 죽입니다. 험담을 퍼뜨린 자신과 함담의 주인공과 험담을 들은 사람이 모두 피해를

 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어리석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격을 모독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신중하게 처신하며 말조심을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살펴보고, 남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줍니다.

* 묵상: 당신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10. 이슬람 자살특공대

 

이슬람권의 자살특공대는 1987년 12월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이스라엘을 겨냥한 민중무장봉기) 이후 형성돼

2000년 12월 2차 인티파다를 거쳐 무장세력들이 자폭을 ‘순교행위’로 채택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자살특공대의 종교적 기반은 코란에 명시돼 있는 지하드(성전)입니다. 지하드는 자기 정화와 깨달음,자기

계발을 위한 스스로와의 싸움이 우선이고 두번째가 이슬람의 가치를 훼손당했을 때 적과 상대해 싸우는 외부

세계를 향한 전쟁입니다. 자살특공대를 조직하는 급진세력은 두번째만을 강조하면서 “지하드 도중 죽으면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살특공대원들은 아버지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희생돼 고아로 자라면서 이스라엘과 서방국가에 뿌리깊은

 복수심을 갖고 있는 10대 후반이나 20대가 많습니다. 이슬람권 곳곳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십시오.

 자살특공대 지원자는 차고 넘치는데 영혼구원을 위해 나서는 성도들은 적습니다.

/장자옥 목사(간석성결교회)

 

 

 

 

 

 

 

11. 자살을 생각함

 

얼마 전 한 엄마와 세 아이가 생활고에 못 이겨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투신 자살해 온 국민을 경악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사회적 우려와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자살을

 결정했을까요? 목숨을 내던져버릴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웠나요? 그런 문제의 요인을 생각하기보다 그 영혼이

 그 육체 가운데서 빠져나가기 직전의 그 아찔한 느낌은 어떠했을까요. 자살을 결정하고 실행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힘으로 바텨냈을까요.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무서운 일을 저지르는지 그 힘이 더 궁금합니다. 단순히

 “죽어버리면 돼!”라는 도발적인 자살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무언가의 이끌림으로 인해 치밀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미묘합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도 아닙니다.

 

자살은 남은 자들에게 무서운 부담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살이나 살인을 유도하는 악령의 문화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당하고 끌려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악한 영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생명을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악령은 목숨을 끊는 것을 마치 ‘진정한 용기’인 것처럼 부추깁니다.

엄연한 살인인데도 말입니다. 나 자신을 무인지경에 던져버리게 하는 놀이문화, 너무 잔인하고 순간적인 컴퓨터

게임, 생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오늘의 세상 풍조가 바로 자살을 조장하는 공범입니다. 진정한 용기는

자살이 아니라 성실한 생존임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창조한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어떻게 할

 권리가 없음을 왜 가르치지 못했을까요. 교회가 오늘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살의 충동을

이겨내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도 시험산에서 유혹하지 않았습니까.

 

 자살은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겠습니까. 이제 생명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훈련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당신 곁에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나요. 그들을 실망시키지 마십시오. /송명희(시인)

 

 

12. 청소년 자살, 미리 막을 수는 없는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살하나?

근래 조사된 바에 의하면 우리 나라 청소년들간에 자살에 대한 충동이 상당히 넓게경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전체 조사대상자 중 19.7%가 자살 충동을 느꼈으며, 이들 중 8.9%는

 실제 자살시도의 경험이 있는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15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과 젊은 사람에 있어서

자살은 청소년사망의 30%를 점유하고 두 번째 사인으로 되어 있다.

 

1983년에 우리나라 전체 자살율은 10만명 당 19.98명에 비하여 청소년 자살율은 28.62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국에 비하여 매우 높은 것으로서 미국 청소년 자살율은같은 연령군에서 10만명당 13.1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통계가 믿을 만한 것이라면 매우높은 자살율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과 자살시도율을 조사했는데자살에 대한 생각이 7.2%나

 되며 주로 여학생들에게 많았고 학년이 높을수록 비율이높아짐을 알 수 있었다. 자살시도율은 4.4%로서

고학년이 저학년보다 많았으며 남녀비율은 여학생이 약간 높든가 비슷하였다.

 

이상과 같이 자살에 대한 생각은 매우 흔하다고 볼 수가 있고 자살 시도율도 상당히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자살

시도와 성공적인 자살비율은 10대 1 내지 50대 1로 보고되고있다. 성공적인 자살은 정신과적으로 심한

우울증이나 술, 약물남용, 정신분열증 등과밀접히 관련이 있는 반면에 자살시도는 여러 가지 정신과적인 문제들

 특히 성격장애나 행동문제 환경적인 요소들과 관련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자살시도는 꼭 죽겠다는 의도보다는 ① 도움을 청하거나 ② 문제해결의 방법③ 다른 사람을 조정하는 방법

④ 심한 고통으로부터의 도피 ⑤ 보복의 수단 ⑥ 죽은 부모와의 결합목적으로 시도되는 수가 있다. 자살시도자들

 중에 10-20%는 자살시도를 되풀이 할 수가 있으며 이들 중 1- 2%가 궁극적으로 자살에 성공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3.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살인을 위한 교본」이라는 책은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작가는 이 책머리 부분에서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운명을 좌우하신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읽지 마시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궁극적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을 지배하고 있을까요? 우리 몸의 권리증서를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민27:16)

범죄한 인간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것은 자살이 아니라 회개입니다.(계3:19)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시31:15)

 

14. 헤밍웨이의 자살

 

1954년 노인과 바다로 인하여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문호 헤밍웨이가 자살을 하였다. 온 세계의 추앙을

 받는 대작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그는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요, 패자였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자양고등학교 교사)

 

15. 헤밍웨이처럼 살지 마라

 

헤밍웨이는 참 좋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세기적인 부흥사였던 무디 선생과 아주

가까웠고 그의 아버지는 의사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일생 동안 버리지 못한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엄격한 신앙인으로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헤밍웨이는 주일학교 때 성가대 가운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그는 점점 신앙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가 위대한 문학가로서는 세상 역사에 그 이름이 남을지 모르지만 하늘나라

역사에는 아무 것도 남길 만한 것이 없을 만큼 타락했다. 어머니가 자주 타이르고 경고를 했으나 듣지 않으니까

한 번은 생일 케이크를 보내면서 거기에 헤밍웨이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권총을 같이 넣어서 보냈다.

 

신앙생활을 그런 식으로 하느니 죽는 것만 못하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어머니가 너무

화를 내니까 헤밍웨이가 이런 편지를 했다.

“어머니, 나는 예수도 믿고 하나님도 믿어요. 그러니 남부끄럽게 이 편지 누구한테도 보이지 말아요.”

헤밍웨이의 경우에는 이미 블레셋 나라로 들어간 탈선생활이다.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쓴 글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을래야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운

 공허 가운데서 살고 있다.”

결국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지 아니하면 사는 의미조차 발견할 수

없는 잿더미 위의 인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암송할 구절]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겔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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