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 판타지 / 105분 / 감독: 미셸 공드리
(★★★★☆)
2006년 제19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예술공헌상
두 남녀의 머릿속에 퇴적된 사랑의 추억을, 지층을 감식하는 지질학자의 눈길로 검토한 영화 의 '미셸 공드리' 감독에게 인간의 머릿속은 '골짜기와 폭포', '사막과 숲'으로 이루어진 땅과 같아서 답사를 요한다. 기억에 이어 '공드리'가 발을 들인 오지는 인간의 꿈. 행여나 제목으로부터 잠의 원리나 불면증 퇴치법을 보여주는 영화를 기대하면 오산이다. 단짝 작가 '찰리 카우프만- -에게서 독립해 '미셸 공드리'가 혼자 힘으로 시나리오를 쓴 은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증세를 가진 남자의 동화다. 또한, 염세적이고 철없는 남자의 연애 방식을 자학적으로 드러내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달콤하고 광적이며 서글픔을 담고 있는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은 놀라운 조합물이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불행하고 '채플린'을 닮은 듯한 광인을 연기하는 이 장난기 가득한 낭만적 이야기에는, '공드리'가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 의 여운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모습을 볼라치면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들이 떠오른다. 이상한 옷들과 콜라주 경치, 얼기설기한 사물들의 애니메이션, 가짜 원근 착시 그리고 거친 상상의 지형도.
공상 속에 사는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자신이 라는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라고 상상하며 밤을 보낸다. 창고에 달걀판들을 붙여 만든 세트장. 카드보드로 만든 카메라를 보며 '스테판'은 음악도 연주하고 게스트들도 인터뷰하며 (주로 자기 엄마) 시청자에게 자신의 비전을 어떻게 “섞는지” 지켜보게 한다. 매일 밤마다 자신의 쇼에서 '스테판'은, '멕시코'에서 아버지와 살다가 '파리'에 있는 가족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 훌륭한 복귀의 세팅은 꿈의 스튜디오의 또 다른 버전이어서 '스테판'은 그저 소년 시절 물건들과 루브 골드버그식 장치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침대에서 자고 있다.
언짢은 성격의 마술사와 사는 '스테판'의 '엄마-미유 미유'는 아들을 인쇄소에서 일하게 해준다. 가게 주인은 '스테판'이 제안한, 각각의 달이 유명한 재난으로 구별되는 달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드리'의 지나친 공상가 주인공이 어디에서든 그렇듯이, 그 곳도 독특한 인물들과 상상거리 풍부한 물건들이 가득해 그의 쇼를 위한 환상에 사용된다. '스테판'의 일상은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가 앞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더 복잡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테판'이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가냘파서 세밀하고 앙상한데다 대단히 신경질적이다. 하지만 매력이 없다고 집착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스테판'과 '스테파니'는 이름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서로 다른 면에서 유치하고, 만들고 모으는 조그만 물건들이 있다. 깊은 의미에서 그들은 천생연분인데 '스테파니'는 '스테판'이 그녀가 따온 장난감 말을 만져서 움직이게 하자 그걸 뒤늦게 깨닫는다. '스테판'은 -'공드리'처럼- 집에서 사용되는 재료들을 사용하는 예술가다. 일단 둘이 공동작업을 시작해 만드는 광적 작품은 미쳐 날뛰게 된 유치원 미술 프로젝트 같다. 나머지는 '알랭 레네' 스타일의 이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와 중간쯤 되는 듯하다.
사물들도 그만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하루는 스테판이 발이 냉장고에 남겨진 채 깨어난다. 진정, 은 기본적으로 잡동사니 더미 같아서 이리저리 흩어진 익살스러운 대사들과 장식적인 '프로이트'식 개념들이 두서없이 뒤죽박죽 쌓여 있다. '공드리'의 제멋대로인 비주얼과 난해한 미장센은 주인공들의 외국인 악센트로 더 강조되어서 뱉어내는 각 단어들은 독특하게 들린다. '공드리'는 '얀 슈반크마이어'보다 훨씬 더 밝은 '초현실주의자'이지만 은 체코의 거장이 만든 처럼 요즘 나온 사물을 이용하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만들어진 세상이 주인공의 심란한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스테판의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재료들을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은 장난기 가득한 영화다. 분위기는 죽음의 전조에 가깝다. 그러나 주인공만큼이나 영화는 색다르기에는 너무 낯설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스테판은 성공을 꿈꾸고 보상받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한다. 그의 고독은 어디에서나 분명하다. 그는 서글프게 말한다. “아빠와 얘기하고 싶어.”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검비-의 점토 캐릭터-가 탈 듯한 말을 함께 타고 구겨진 셀로판의 바다를 건너는 마지막 환상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기보다 앓게 한다.
은 의 성공 와중에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감독의 경험을 다분히 반추한 이야기다.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알록달록한 어린이 이불을 덮고 자는 '스테판'은 덜 자란 남자의 표본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손이 소파만큼 커지고 당나귀 귀가 돋는가 하면 파리 시가지를 들었다 놓는 '스테판'의 다채로운 환상을 TV 어린이물 식의 수공적인 특수효과를 써서 연출했다. 배우들은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를 섞어 소통하며 CG가 아닌 셀로판지와 마분지로 만들어진 무대에서 천연덕스럽게 움직이는데 그것은 가끔 형이상학적 학예회처럼 보인다. 은 “정말 이제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건가?”라고 애처롭게 저항하는 감독의 자문 같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뇌의 일부를 움직이는 영화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