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前대통령
그의 사망-자살-타살-암살-미스터리…
이미 수원 연화장에서 한 줌의 재로 돌아간 양반...
김정일의 똥싸는 모습도 찾아낸다는 21세기 이 멋진 시대에
얼렁뚱땅... 자살자로 시원하게 마무리 되어
이 땅에서 스러져간 바보 노무현의 삶의 마지막 여정...
일반인이라도, 빅스타라도...
하물며 5년 동안 이 나라를 다스렸던 일국의 대통령이었는데...
* 최근의 몇 꼭지 글을 통해 못다한 그의 마지막 행적을 함 보시지요...
이제는 시간 순서로 정리한 사건예상경위를 읽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감을 잡게 될 겁니다.
1. 23일 05:38,
사저를 출발한 노통이 등산로입구에 있는 농부들과의 대화 이후에 목교~사명대사성상(오래된상)까지 간다.
2. 이경호관이 자연스레 노통의 입(비명소리)을 마비시키려고 독이든 담배(이경호관의 담배이야기 역추론 ) 노통에게 건넨다.
3. 몸(입)에 이상함을 느낀 노통이 이경호관에게 말을 하려고 하나 이미 말을 못한다.
4. 이경호관은 자연스레 경호차량을 정토원주차장으로 부르는 연락을 한다.
5. 노통이 이경호관의 무전송출(정토원주차장 첫 텃밭 차량준비) 내용을 듣고 암살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올라온 등산로 목교 쪽으로 도피한다.
--이때 정토원 보살이 노통의 뒷모습을 본다.---
6. 목교쪽으로 간 노통은 독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더 이상 하산길로 도피하지 못하고 어떤 장소에 숨거나 쓰러진다.
7. 경호차량으로 정토원주차장 텃밭 컨테이너창고 앞에 도착한 암살자는 이경호관으로부터 노통을 찾아 살해하라는 연락을 받고 도피한 노통을 찾아나선다.
--이때 "놓쳤다. 안보인다"는 경호관 무전기록--
8. 목교부근에서 노통(독이 온 몸에 퍼진 상태)을 발견한 암살자는 노통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노통의 늑골과 엉덩이를 타격할 때 노통이 팔로 저항하다 두 팔마저 골절되고 노통은 실신한다.
9. 툭! 탁! 소리
암살자는 마지막으로 범행장소에 피가 없도록 노통의 머리를 상의로 돌돌 감은 후에 노통의 머리를 타격한다.
--이때 나오는 타격소리가 마을주민들이 들은 2번, 3번의 소리---
10. 머리까지 타격한 암살자는 노통의 시신을 경호차량에 실은 후에, 알리바이(정토원 관계자 외출 통제 알리바이)를 위해 정토원 근처에 가 있는 이경호관을 태우고 정토원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이미 정토원으로 올라오는 차량통제, 정토원으로 간 이경호관의 알리바이로 정토원에서도 내려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원래 암살자는 노통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부엉이바위 옆 지름길(오솔길)로 부엉이바위밑에까지 가서, 비서관 등에게 투신사고로 위장하여 연락할 계획(06:40)이었다.
그러나 부엉이바위옆에서 농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노통의 시신을 정토원주차장길로 세영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11. 정토원찻길을 내려오면서 차량통제 경호원을 태운다.
12. 06:30(이씨의 아침 식사 시간)
노통의 시신을 경호차량에 실은 암살자는 정토원주차장을 출발하면서 2명의 경호원에게 안은 장면을 계속 연출하도록 지시한다.
---고추밭 농부이씨 귀가 할 때 안는 장면 목격시간은 이씨의 아침 식사 시간 06:30 이전---
13. 23일 06:56경(부엉이바위 주차장에 경호차량이 들어오는 장면 연출)
범행경호차량이 세영병원에 도착(07:00)할 무렵 암살자는 또 다른 경호동 흰색차량을 부엉이바위밑으로 보낸다.
----마늘밭농부 박씨가 흰색차량이 부엉이바위 주차장에 오더니 검은 양복입은 사람이 차에서 내려 "차돌려"라고 외쳤다고 진술------.
14. 안는 장면을 연출한 두 경호원은 농부들의 눈에 안 띄게 낮은 자세로 슬금 슬금 경사길을 기어 내려가서 이정표를 잡고 있다가 나무사이로 경호차량에 타서,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마늘밭에서 계속 일했다는 박씨는 주차장에서 차에 사람을 싣는 장면이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진술........
15. 23일 07:00(세영병원도착시간)
연출 경호차량의 부엉이바위 주차장 출발 시간(06:59)에 맞춰 07:00에 문사저비서실장에게 사고소식을 연락한 것으로 말을 맞춘다.
16. 23일 오전11이전
노통의 머리를 감쌌던 피묻은 상의는 범행 종료후에 현장보존시간(23일 오전11 이전)에 부엉이바위 투신예상장소에 갖다 놓는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99032
사건당일(23일오전 11시이전)에 피묻은 상의를 들고가서 채증하는 장면을 찍은 YTN 동영상(입력시간 23/11/09)이 암살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의 증거이다.
또 세영병원간호원이 피범벅이된 노통의 얼굴을 닦아냈다는 익명의 인터넷제보 글에 의해서도 머리 타격 전/후에 상의로 머리를 감싼 은폐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17. 6월1일
장례기간(현장통제기간)에 투신장소에 피가 없다는 비판 여론에 맞춰 코피 한 방울 흘린 정도의 피묻은 돌을 갖다놓는다.
이것이 조작으로 드러나자 현장재연일(6월1일) 전/후에 코피 두 방울 흘린 모양의 혈흔을 부엉이바위앞 이정표(안는장면 연출한 후에 낮은 자세로 기어 내려오면서 짚었던 위치)에 묻힌다.
---실제 사람을 업혀서, 오른 쪽 어깨에 메고 확인해 보니 잡을 수 없는, 낮은 위치에 혈흔이 있었음----
18. 6월5일
신문방송까지 장악한 경호처(이명박정권의 실세)는 부엉이바위(투신예상지점)와 노통이송 재연주차장(혈흔이정표)의 실제경사거리(48보=20m)를 멀리 떨어진 거리(경찰발표 66m)로 생각하도록 조작하여 공중파로 보낸다.
출처 : Tong - gil779님의 시 사통
장준하 사건과 왜 이렇게 닮은 꼴인지.......
김구 암살도 똑같고....단종의 죽음까지도.....
펌) 역사는 큰틀에서 보면 보입니다.
친일파의 역사를 보면 노무현의 죽음이 보입니다.
친일파를 앞에 놓고 이야기하면 모든 비정상적 비상식적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친일파, 그들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이 극도로 발달해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친일파임을 철저히 감추기 위해 과잉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끄떡하면 상대방을 빨갱이로 몰고, 좌경정부로 모는 그 이면에 바로 그들의 숨겨진 과거와 생존본능이 있습니다. 그들의 과잉행동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촛불든 평범하고 지극히 평화로운 시민도 모두 폭도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 어린 아이도 빨갱이가 되고 심지어는 유모차마저도 빨갱이 혁명의 도구가 되는 그들의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논리를 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해방 후에 끄떡하면 독립투사들을 빨갱이로 공격해 성공한 화려한 전력이 있습니다. 반공의 탈을 쓰고 상대방을 빨갱이로 매도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습성이 촛불시위에서도 용산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던 것입니다.
뉴라이트며, 라이트코리아며, 한나라당이며, 극우 단체들, HID며 고엽제 어쩌구하는 단체며, 한기총이며, 조중동 신문들이 틈만나면 빨갱이 운운하던 거 생각나시죠? 이제 그들이 보이십니까? 대통령 시신을 북한으로 보내자는 둥, 빨갱이한테 무슨 서거냐 국장이냐 시비거는 그들이 정녕 보이십니까?
그들 친일파 세력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죠.
첫 번째 위기는 당근 일제가 패망한 뒤였습니다. 그들은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로 이 위기를 탈출합니다. 이승만 정부가 정권을 잡기위해 친일파를 끌어안았던 것입니다. 이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1949년 6월 김구 선생을 암살해 버립니다. 그리고 1년 뒤 6.25 전쟁으로 그들 친일파는 권력의 탄탄대로에 들어섭니다.
자, 김구 선생의 죽음이 보이시죠?
그들에게 찾아온 두 번째 위기는 4.19 혁명입니다. 하지만 대표적 친일파 박정희를 중심으로한 쿠데타는 또다시 4.19혁명을 뒤집어 버리고 친일파 권력을 되찾습니다. 박정희가 18년의 장기집권을 하게 된 것은 사실 본인의 의지보다는 친일파의 권력 의지입니다.
박정희 정권도 한 때 위기를 맞습니다. 1970년대 김대중이라는 40대 야당 정치인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선거에 의한 실권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들 친일파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까요. 그것은 바로 유신헌법입니다. 아예 선거를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것이 김대중 납치사건과 장준하 암살 사건입니다.
3공화국에서는 누구보다 더 박정희와 대립각을 세웠고, 감옥도 여러번 가셨던 장준하, 박정희는 장준하 선생을 눈에 가시로 여겼다고 합니다. 어거지 수사로 옥중에 있으면서 출마하여 국내 최초로 옥중 당선된 이가 장준하 선생이셨고, 평생을 검은 양복 하나로 지내면서 겨울에도 연탄불을 피우지 아니하고 내복으로 지내셨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가난한 국민들을 생각해서랍니다. 독립군으로 내내 산을 타고 다녔던 장준하 선생이 어느날 등산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의문의 실족사로 처리되고 말았죠.
장준하는 당시 제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사람이며 모든 제야 세력을 모아 유신정권에 대항하려던 중이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도 보이시죠?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이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김영삼의 3당 합당으로 극복하고 6월 항쟁을 넘어 드디어 그들에게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오니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그들의 표현대로 한다면 ‘잃어버린 10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친일파들은 친일파 언론(조중동)을 무기로 끈질긴 공격을 퍼부어댑니다.
그들의 끈질긴 공격은 노무현을 임기 중에 탄핵하는 초유의 대사건을 저지르기도 하고,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제1당 자리를 빼앗기기도 합니다만, 그 이후에도 조중동 언론을 총동원하여 집요하게 노무현을 공격하여 그를 국민들의 놀림감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 때에도 입에 발린 얘기는 당연히 '좌파 정권'이라는 말입니다.
빨갱이보다는 순화시켰지만, 그게 그거죠. 그들 논리대로 한다면 우리는 10년동안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았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그 공산주의 치하에서 국가부도 위기를 3년 만에 훌륭히 극복하고, 굳건한 경제의 토대를 다졌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최고의 경제부흥기를 달렸다는 사실도......남북화해를 이뤄내고 국민통합을 추구했다는 사실도......
사실 노무현의 치명적 실수는 자신의 권력을 놓아버린데 있습니다. 국민은 일을 하라고 권력을 주었고, 노무현은 국정원, 검찰, 경찰 모든 권력을 자기 손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결국 탄핵을 당하는 초유의 일을 겪고 다시 국민이 촛불을 통해 권력을 찾아줬지만 또 포기했습니다. 차라리 조중동 친일 언론과 싸우기라도 했으면 진보진영의 결속을 지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진보 진영마저 뿔뿔이 흩어지게 만듭니다.
어쨌거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권력의 포기를 통해 엄청난 민주주의의 에너지를 키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친일파 진영이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국민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민주주의화 하고 있었다는 것, 따라서 이제는 과거와 같은 권위적 통치방식으로는 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점을 간과한 친일파 진영은 촛불시위 및 네티즌들의 조중동 공격에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동시에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친일파 정권의 공고를 위해 온갖 무리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그중에 하나가 소위 MB악법들입니다. 재벌방송법, 재벌은행법, 휴대폰도청법, 네티즌통제법, 안기부부활법, 마스크처벌법, 최저임금법, 공기업민영화법 등... 이 악법들은 이제 6월 국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우려는 법률들입니다. 노무현은 현직이 아니면서도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뭔가 보이지 않습니까?
잠시 대통령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중앙일보 기사 중 일부입니다.
"검찰 내 정보 담당 부서에서는 몇 주 전부터 노 전 대통령의 신상에 이상 기류가 있음을 감지했다. 특히 최근 들어 부쩍 노 전 대통령이 집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만 있으려 하고 측근들이나 비서관들과도 대화를 기피한다는 정보가 계속 올라왔다고 한다. 대검 범죄정보팀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 이상 징후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들이 최근 계속 올라왔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특히 밥을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않을 정도로 식욕을 잃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우울증세가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상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사흘 전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이재우(63) 진영농협조합장이 24일 오전 빈소에서 기자들에게 전한 이야기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조합장은 최근 들어 노 전 대통령이 많이 수척해지고 부쩍 힘든 표정이었으며, 서거 하루 전인 지난 22일 오후 토마토·참외·파프리카 등을 들고 사저를 찾았지만 노 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날 ‘경호원들에게 경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감시를 받고 있다. 가까운 사람들 너무 힘드니 오지 말라’고 말해, 발길을 돌렸다는 것.
검찰을 이용해 흠집내기 수사를 하고, 매일 언론에 생중계하고, 그것도 부족해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감시하여 언론에 흘렸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도로 자기들 마음대로 경호원을 교체했을 것이고 말이죠. 그러고보니 대통령은 귀양을 살고 있었거나 연금 상태였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자, 옛날로 돌아가 봅니다. 그 나어린 단종을 세조는 왜 죽여야 했을까요?
그보다 도덕적으로 열등감에 있든가, 추종자들 때문에 정권에 불안을 느끼든가, 정통성이 없든가 그런 이유였겠죠.
다음 글을 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볼 것 하나 없는 외딴 시골 마을에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까닭이다.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서둘러 달려왔다는 노부부, 어린 아이를 둘이나 업고 안고 찾아온 젊은 엄마, 벌써 세 번째 방문이라고 나직하게 이야기하던 40대 중반의 남자 그리고 아직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청소년에서 대학생들까지… [봉하마을]은 하루 수 천 명의 때 아닌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2008년 2월 귀향 이후 석 달 여 만에 노 전 대통령을 찾는 방문객수가 40만 명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으로 100만 명을 돌파할 기세다. 굳이 그 먼 곳까지 찾아가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를 외치며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대통령님 나와주세요!
촛불시위로 심각하게 훼손이 되어 있으나마나한 정권의 정통성, 촛불시위 이후에는 초등학생들까지도 쥐새끼라고 비웃는 대통령, 반면 노무현의 추종자들은 매일 수천 명씩 봉하 마을로 몰려들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너무나 깨끗하고 청렴한 그의 모습에, 도덕적으로 치명적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행위로 의심되는 촛불시위 때문에 쫒겨날 위기까지 느꼈던 현 정권이었습니다.
따져보니 단종보다 죽일 이유가 훨씬 많군요.
어쩐지 검찰 수사를 질질 끌면서 언론플레이할 때부터 이상했습니다. 자살하면 천만 다행이겠지만 아니면 책임 뒤집어 씌워 자살로 위장하기에 얼마나 좋습니까?
친일파들이 중요한 고비마다 정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해 나가는 모습은 공식입니다. 그 공식의 한 가운데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정녕 자살로 보이십니까?
출처 : Tong - gil779님의 시 사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