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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전두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우영 |2009.07.09 03:54
조회 537 |추천 14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 '부마항쟁'을 기억하십니까?

김재규의 총탄에 박정희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광주 민주화 운동과 똑같은 전개가 되었을 것이라고들 하죠.

 

박정희는 그 당시 핵 개발 추진으로 미국으로부터 견제를 당했고, 긴 독재 때문에 국민들의 원성이 표출되기 시작한 무렵이었습니다. 유신 헌법의 부당함이 제소되고 대학가에만 불었던 민주화의 열망이 사회에 번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부산과 마산의 극렬한 시위(대학생이 주축이 아닌 일반인의 시위)에 대놓고 한마디를 했습니다.

"우리가 총을 쏘지 않겠다고 믿는다면 그건 오산이다."

 

일본군, 공산당, 쿠데타, 하극상까지 배신의 인생을 걸어왔던 박정희의 성격으로보면 충분히 발포도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광주 학살의 두 주역인 전두환과 노태우의 원성이 당시 부산과 마산 학살의 박정희로 역사에 쓰여질 수 있었다는 가정이 성립합니다.

 

1979 (부마항쟁) vs 1980 (광주항쟁)

박정희 vs 전두환

해병대 투입 vs 특전사 투입

작전명 "행복한 휴가" vs 작전명 "화려한 휴가"

 

너무나도 닮아 있는 두 민주화 항쟁이었고, 또 진압하려는 방식도 너무도 똑같습니다.

이랬던 박정희가 국민의 영웅으로 일부 시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실로 역겹습니다.

본인도 경상북도 경주 태생으로 이곳 어르신들은 박정희 향수가 심하고 저 역시 그대로 배워왔습니다만,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 볼때 과연 그가 전두환보다 나은게 많은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전두환 시절은 삼저(실업률, 물가, 환율) 호황이 발생하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이것은 전두환 경제팀의 성과라기보다는 개발 약진국의 전형적 모습이고 세계 자본주의 부흥기와도 맞물리는 시점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면 전두환의 이러한 어부지리적 업적도 인정받는게 맞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전두환의 어부지리식 경제 성과와 마찬가지로 박정희의 경제 성장도 상당수 거품이 많다는 것이 있죠.

첫째, 18년의 독재 기간입니다. 정권이 교체되고 과도기라는 단점 없이 지속적으로 철권 통치를 했다는 것이 과연 경제적 성과인가? 글쎄요. 

둘째, 한자문화권 개발도상국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대만과 홍콩, 싱가폴, 한국, 그리고 일본은 상당히 닮아 있었습니다. 박정희라고 특별할게 없었죠.

셋째, 베트남 전쟁과 독일 간호사, 광부 파견으로 얻은 자금이 과연 경제적 성취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것도 상당히 의문입니다.

 

박정희가 경제에서 잘한건 딱 두 가지 정도입니다.

반대를 무릎쓰고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 그러나 이것도 지역 불균형과 차별 감정을 가져왔고, 이전 내각에서 이미 계획했던 것이라는 증거도 나았죠.

또 하나는 보호 무역주의 일환으로 포항제철 같은 기간 산업을 다져놓은 것인데, 공교롭게도 이건 박정희의 업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형태로 보면 필연적이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와 전두환 두 시대 모두 경제적 성과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성장과 부작용을 감안하면 결코 두 인물이 썩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은 우스운 일이죠. 특히 광주항쟁과 부마항쟁의 진압방식이 거의 흡사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과연 친일파 출신의 박정희가 전두환보다 나은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추천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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