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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바로크 음악

신문섭 |2009.07.09 09:14
조회 1,696 |추천 2

 

♬♪   바로크 음악 (Baroque Music)  ♪♬

 

 

음악의 기원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헬레니즘 문화와 헤브라이즘 문화가 각각 철학과 종교에 접목되면서 항상 인간이 경외시하는 초자연적, 즉 신에 대한 찬송의 형태에서부터 현대까지 내려오는 음악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헤브라이즘 영향으로 종교음악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근대음악의 시초를 그레고리오 성가로 보는 것이 통상적인 견해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크리스트교, 로마 가톨릭의 전례음악이다. 6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교회에서 거행되던 음악을 수집하고 편찬하였다는 전설에 의해 그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단성(Monophony)으로 구성되어 종교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찬송과 복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은 단선율이라는 점과 라틴어 가사로 기도나 시편 등으로 구성, 박자가 없이 라틴어 운율에 의한 리듬으로 연주, 무반주(아카펠라: 교회풍이라는 뜻)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 이후의 고딕시대 음악과 르네상스 시기의 음악은 음악사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일반인이 접하기는 어렵다. 조화가 잡힌 조용한 예술로 일컬어지는 르네상스시대 음악의 뒤를 이어 16세기 말에서18세기 전반에 걸친 바로크(Baroque)시대로 접어든다.

 

♬ 바로크 음악
바로크 음악이란 16세기의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친 유럽음악을 대표하는 시대개념을 이른다. 바로크(Barock, Baroque)란 말은 주로 미술사에서 사용되어 온 시대 양식의 개념으로 웅대한 구도,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색채, 과장되고 열띤 극적인 표현, 힘찬 감동 등이 바로크 예술의 특징이다. 1600~1750년대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 전개된 바로크음악은 포르투갈어 "찌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한다. 이 말을 처음으로 음악에 적용한 사람은 18세기 프랑스의 음악비평가 N.A. 프뤼슈인데, 그는 1746년에 파리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프랑스의 에 비해, 이탈리아의 협주곡을 기발하고 소란스러운 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한 형용사로서 사용된 를 예술의 양식개념으로 높인 것은 19세기의 미술사가 J.부르크하르트였다. 그의《미술 안내(1855)》는 미켈란젤로 이후의 시대를 융성기(隆盛期)르네상스의 쇠퇴기로 규정하고, 그러한 양식을 이라고 불렀다. 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제거하고, 와 대등한 가치를 지닌 예술양식으로 평가한 것은 H.뵐블린의《르네상스와 바로크(1888)》이다. 그는《미술사의 기초개념(1915)》에서 두 양식의 특징을 다섯 쌍의 대립개념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을 음악에 적용하고《바로크음악(1919)》에서 신어(新語)를 제창한 사람은 C.작스이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16세기 말엽부터 18세기 전반의 유럽 음악을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1550년경부터 17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와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한 바로크 음악은 음악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음악가들이 보다 발전된 양식으로 시각을 넓혀 점차 "장식적"이라는 의미로 정의 되었다. 오늘날 바로크 양식은 음악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퍼져 나간 미술과 건축물 등 유럽의 문화 양식 전체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오페라의 탄생에서 몬테베르디, 쉬츠, 코렐리의 활동을 거쳐 쿠프랭, 비발디, 바흐, 헨델의 시대까지라고 구분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은 모노디양식과 협주(콘체르토)양식에 있다. 전자는 초기 오페라의 양식으로서 후에 레시터티브와 아리아로 분화하는데, 독창과 이를 뒷받침하는 통주저음(通奏低音)과의 사이의 긴장관계에 의해 성립되는 이원적 내지 양극적인 구조의 양식이다.

 

♬  바로크란?
바로크라는 어원은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 "다듬어지지 않은 진주", "타원형의 진주"라는 뜻에서 생긴 말인데 그 당시에는 기괴하고 퇴폐적인 "거친 음악"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시각예술, 특히 건축에서 이 시대를 위하여 쓰인 용어이다. 어딘지 모르게 괴상하고 요란하며 지나치게 장식적인 즉, 겉만 요란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특징은 색채적 효과를 중요시하고 반음계적 화성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으로 이러한 음색의 대비는 협주양식을 탄생시키게 된다.

 

♬ 바로크 음악의 특징
(1) 장음계와 단음계가 대부분의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이것은 이미 그 전 시대인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바로크 후기까지도 완전한 체계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2) 한 성부보다는 여러 성부가 운동감 있게 진행하는 다성 음악과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기본적인 틀을 곡이 끝날 때까지 반복, 모방하여 통일성을 주는 대위법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바로크 시대의 악곡에 있어서의 감정 표현은 매우 세밀하면서도 강인한 면을 갖고 있다.
(3) 기악곡에 있어서는 파이프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바이올린 곡이 발전하였고,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나타나고 협주곡이 화려하게 연주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4) 장음계와 단음계가 완성되어 음악 전반에 쓰였다.
(5) 오페라 출현-단선율의 노래에 화성적 반주를 붙인 모노디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등이 생겨났다.
(6) 기악음악에 발전-바리올린 족의 악기들이 완성되었고 기악음악이 부흥 발전되면서 협주곡, 소나타 등의 형식이 만들어 졌다.
(7) 다성음악의 절정-주제가 반복, 모방되어 곡을 만들어가는 대위법의 절정기 이었다.
(8) 통주 저음의 사용-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다서음악에서 자연스러운 화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튼튼한 기초를 만드는 음을 말한다. 저음 악기와 건반 악기로 연주되며 바로크 시대 모든 음악들은 이 통주 저음을 사용하였다.
(9) 건반악기 주자가 주어진 저음 위의 숫자에 의해 화음을 보충하여 나가는 숫자 붙은 베이스 혹은 밧소 콘티누오의 기법이다.
(10) 중세 교회선법으로부터 장조와 단조의 조성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11) 예술형식은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형식으로 바꿔졌다.
(12) 형식이라는 말이 라면, 바로크는 이다.
(13) 처음에는 건축에서 출발하여 음악의 세계에서도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오페라"가 등장하였다.
(14) 음악 역사상 제일 처음 상연된 오페라는 [다프네]이다.

 

♬  바로크시대의 중요한 악곡 형식
(1) 오라토리오 : 종교적인 제재에 의한 서사적인 악곡으로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형태이다.
(2) 칸타타 : 기악 반주가 있는 대규모의 성악곡으로 세속적인 내용의 "실내 칸타타" 와 종교적인 내용의 "교회칸타타"가 있다.
(3) 합주협주곡 : 2명이나 4명의 주자로 된 독주 부분인 "콘체르티노" 와 리피 에노라 불리 우는 "총주(tutti)의 두 개의 대조되는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주고받는 듯한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4) 신포니아 :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짧은 곡으로 처음에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의 개박, 본막, 아리아 등의 서주 등의 도입적인 역할을 하는데 불과하였으나 바로크시기가 끝날 무렵에는 큰 규모로 발전하였다.
(5) 푸가 : 2성 또는 그 이상의 성부로 이루어진 성악이나 기악을 위한 다성적인 악곡의 동기를 대위법적으로 발전시키는 바로크의 가장 화려한 형식이다.

 

참으로 바로크기는 근대음악의 성장시대였다. 오늘날 널리 씌어지고 있는 곡 중, 특히 기악음악의 그것은 이 시대에 탄생하고, 이 시대에 발달한 것이었으며, 근대 음악의 갖가지 원리, 이디옴도 이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명확한 것으로 된 것이다. 이러한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나 그 시대의 모든 경향을 종합하여 최후의 대성으로 이끈 것이 헨델과 바흐이다. 이 두 사람에 의해 바로크 음악은 완성되었으며, 이 둘은 바로크 음악 최호의 그리고 최대의 음악가이다. 이러한 기악음악 발전과 더불어 중세기 이래의 갖가지 기악이 개량되기도 하고, 신종을 낳기도 하였다. 또 그 주법도 비약적으로 발달하였다. 예스런 비올라대신 바이올린이 등장, 이 시대에 제작된 아마티(Amati)일가, 과르네리(Guarneri)일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일가의 바이올린은 오늘날까지 존중되고 있다. 관악기의 진보도 눈부시어, 그 작품도 많이 작곡되었다. 오르간도 음전이 늘어나고 페달주법도 진보하여 색채적 효과가 추구되고, 또 쳄발로(클라브생), 클라비코드 등의 건반악기도 중용되었다. 피아노도 18세기 초두에 발명되었지만 일반화 된 것은 이 시대가 끝나고부터이다.

 

(1) 역사적 배경
'찌그러진 보석'이란 뜻으로서 르네상스의 명쾌한 균형미로부터 떠나 번잡하고 까다로운 세부 기구의 과잉을 표현한 것이다. 나라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그 공통되는 특성은 전형미에 사로잡히지 않고 형식과 균형을 깨뜨리고 강력한 표현을 중요시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범위를 좁혀 말한다면 바로크 음악은 17세기경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말하는데 '근대의 화성적인 원칙과 중세의 대위법적 방법이 결합한 양식' 이라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 초엽의 르네상스의 본고장은 이탈리아인데 신진 음악가들이 르네상스 정신에 자극되어 새 양식인 화성적인 반주를 지닌 이른바 단음악(Monodia)을 기용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기획하는 것이다. 음악상으로는 르네상스의 작품에서부터 로코코(Rococo)양식으로 옮아가는 중간의 것으로서, 숫자 저음(Generalbass 數字低音)이라는 화성의 진행을 저음에 붙인 숫자로 약기(略記)하는 방법의 시대인 것이다. 바로크 음악의 사회적인 기초는 절대주의인 왕권의 제도와 귀족 제도이며 주로 극음악과 기악 음악의 부류인데 이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베니스 나폴리파에서 주력을 두었는데 교회 음악, 오페라, 기악 부문이 모두 발전하여 유럽 전역에 그 힘이 미치게 되었다. 베니스의 성 마르코 교회에서는 59성부의 미사가 연주되었으며 오페라의 근원의 본고장도 이탈리아였다. 오케스트라 내지는 심포니도 그 본 거점은 이탈리아의 바로크 시대라고 하겠다. 바로크 음악의 거장 몬테베르디C.Monteverdi 1567-1643)가 1612년에 베네치아로 이주한 것은 오페라에 의한 본격적인 바로크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2) 오페라의 탄생
오페라(Opera)는 바로크 음악시대인 16세기 말에 생겼다. 16세기 말경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음악 애호가 바르디(G. Bardi 1534-1612)의 집에 신진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여 새로운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집단을 카메라타(Camerata)라 불렀다. 그들은 르네상스의 정선에 따라 음악도 고대 그리스의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대위법을 버리고 단순한 선율에 간소한 화성의 반주를 붙이는 양식을 고안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단음악(Monodia)이며 여기에서 바로크 음악은 시작한다. 이것을 만든 것은 카메라타의 여러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가곡으로 쓴 최초의 사람은 갈릴레이(V.Galilei 1520-1591)과 캇치니(G.Caccini 1545경-1618)였다. 1597년에 시인 리눗치니(O. Rinuccini 1563-1621)의 대본에 페리(J.Peri 1561-1633)가 오페라 다프네(Dafne)를 작곡하였다. 이것이 상연된 이래 카메라타의 역사는 오페라의 역사를 출발시키게 된다. 두 번째의 작품도 리눗치니의 시에 페리와 캇치니가 작곡한 에우리디체(Euridice)를 1600년에 상연했는데 이 작품을 기점으로 오페라의 확립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페라 사상 결정적인 것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우(La Favola d'Orfeo)'를 1607년에 상연한 때부터이다. 그는 기악의 서주로 오페라를 시작했으며 댄스 음악이 있고 심포니아라고 하는 기악곡이 사이에 포함되었다. 이로 인해 오페라는 큰 길이 개척되었다. 그리고 A.스카를라티(A Scarlatti 1660~1725)를 중심으로 한 나폴리 악파가 생겼으며 프랑스는 륄리(J. Baptiste Lully 1632∼1686)를 중심으로 프랑스 오페라가 생겼으며 영국과 독일에서도 오페라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3)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1600년대인 바로크 시대에 오라토리오(聖譚曲)가 로마에 등장하였다. 이것은 성서에 의한 소재에 몇 사람의 독창과 합창,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서술적인 규모가 큰 가곡이다. 곡은 극적인 구성을 가진 연기나 무대장치도 없이 연주한다. 따라서 교회 칸타타와 수난곡(Passion music)과의 한계가 애매함을 볼 수 있다. 오라토리오는 중세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상연했던 전례극(典禮劇), 신비극(Mystery) 등에서 생겼는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성행하게 되었다. 뛰어난 작곡가로는 17세기 이탈리아의 카릿시미(G. Carissimi 1605∼1674), 17세기 독일의 쉬쯔(H. Schutz 1585∼1672), 그리고 18세기 헨델 (Handel 1685∼1759), 하이든(Haydn F. J. 1732∼1809) 등을 들 수 있다. 칸타타는 17세기 초엽에 단음악의 또 하나의 형식으로 생겨났다. 이는 본래 성악곡을 말했는데 17세기에는 기악 반주가 있는 대규모의 성악곡으로 되었다. 그 내용으로 보아 세속적인 실내 칸타타 혹은 세속 칸타타와 종교적인 내용 또는 전례용으로 된 교회 칸타타가 있다.

 

(4) 악기의 발달
지금까지 합창 만능에서 벗어나 독창 또는 독주적인 음악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건반 악기로서 먼저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클라비코드(Klavichord)인데 이는 셈여림이 가능한 것으로서 피아노의 전신이다. 그리고 줄을 튀겨서 소리를 내는 하아프시코드(Harpsichord)가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쳄발로, 프랑스에서는 클라브생(Clavecin)이라 부르며 이 시기에 사용된 악기였다.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는 기악이 성악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악기는 성악의 편곡을 연주하거나 또는 중창과 합창에 있어서 목소리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것이 이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기악의 독립화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불세출의 제작가들이 출현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바이올린족의 완성은 크레모나(the cremona school 1550~1760경)파의 위대한 제작자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크레모나는 알프스 산맥의 남쪽에 있으며 포 강에 임한 시가로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가가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아마티(Amati) 가문과 구아르네리(Andrea Guarneri 1626∼1698) 가문에서 훌륭한 명기를 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아마티의 제자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의 제품은 300년을 지난 오늘에도 그 성능이 대단하여 아주 귀한 명기로 인정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1700∼1725년대의 그의 작품이 독자적인데 음색이 투명하고 소리가 큰 것으로서는 이를 따를 만한 것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는 1500개가량의 여러 종류의 현악기를 제작했는데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는 바이올린이 약 540대, 비올라 12대, 첼로가 약 50대 정도이다. 그리고 지우젭페 안토니오(Giuseppe Antonio 1687∼1745)의 작품도 우수한데 파가니니가 쓰던 마술의 바이올린(Wundergeige)도 지우젭페의 작품이다.

 

(5) 기악곡
이 시기에는 또 콘체르토(Concerto 協奏曲)라는 것이 생겼는데 이 말이 16세기 전반에 이탈리아에서 음악용어로 쓸 때는 성악과 기악의 앙상블(Ensemble)로서 중창 또는 중주라는 뜻으로 통하였다. 17세기 후반부터는 반주가 있는 독주를 의미하는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 合奏協奏曲)이 생겼다. 이것은 관현악이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연주하는데 극소수의 인원으로 된 독주부인 콘체르티노(Concert-ino)와 관현악의 집단으로 구분한다. 이 둘이 대화풍으로 서로 응답하면서 연주해 나가는 형식의 음악인 것이다. 소나타(Sonata)는 17세기 말경에 생겼는데 기악 독주, 2중주, 3중주 등에 의해서 연주된다. 처음에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푸가 양식의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와 실내 소나타 (Sonata da Camera)로 구분 하였으나 17세기에 이 둘이 하나로 합치게 되었다. 협주곡이나 소나타는 2, 또는 3악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합주 협주곡은 고전파 시대에 협주곡으로 변화하였다. 모음곡(Suite 組曲)은 몇 개의 곡을 묶어 모은 기악곡이다. 이것 역시 17세기의 산물로서 몇 개의 악곡을 같이 모은다는 것은 소나타나 교향곡과 같지만 모음곡은 소나타와 교향곡처럼 상호간의 내면적인 연결이 없고 단지 성격이 다른 곡을 대조시킨 것이다. 관현악(Orchestra)곡으로는 신포니아(Sinfonia)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페라의 발달과 함께 생겨났으며 처음에는 반주에 끝 역할을 하는 정도였으나 바로크 말기, 나아가서는 고전파 시대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여 교향곡 시대를 이루었다. 오르간 곡으로 17세기에 주목할 만한 것은 푸가(Fuga)이다. 이 형식이 점차 완성되어 바흐 시대에 이르러서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런데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독일은 같은 시대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비하면 별로 특색이 없었다. 오페라도 육성되지 못했으며 기악에 있어서도 대위법적인 폴리포니(Polyphony)의 양식으로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대위법과 폴리포니 음악은 9세기경부터 네덜란드에서 비롯되어, 이것이 로마교회의 의식과 결부되어 약 7백년간이나 발전했으므로 그 발달은 이미 귀로 듣기만 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크 말기에 바흐와 결정적인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대위법적인 음악의 깊이까지 그 진가를 완성함과 동시에 이탈리아의 바로크와의 융합을 이룬 금자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두 거인은 생활에 있어서나 창작 면에서나 다른 점이 많았다. 작품 면에서 볼 때 헨델은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에 중점을 두었으며 기악적인 작품에 있어서도 성악적인 요소가 강했다. 그러나 바흐는 그와는 달리 성악 작품에 이르기까지 기악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그들은 바로크 음악의 최후요 최고의 대가라고 하겠다. 당시 사회적인 배경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십자군의 실패와 상업 자본이 대두하여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 개혁의 결과 봉건 세력과 법왕의 권한이 쇠퇴하고 절대 왕권에 의한 사회가 확립된 시대였다. 한편 가톨릭에 항거하여 종교 개혁과 절대 왕권의 궁정 문화 등을 배경으로 웅대하고 화려한 바로크 형식에 의한 여러 예술이 유럽 여러 나라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음악의 특징으로서는 대위법적인 다성(多聲)양식의 완성과 화성 양식이 대두되었으며 숫자 저음에 의한 기보법의 보급을 들 수 있다. 한편 왕후와 귀족 사회에 있어서 세속 음악의 발전과 호화롭고 대규모적인 작품이 나타났다. 따라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인근 여러 나라의 음악이 발달되었고 조성 개념이 명확해졌으며 화성 이론이 현저하게 되었다. 작품에 있어서는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에 의한 푸가, 코랄 전주곡, 변주곡, 모음곡, 소나타 등과 실내악에[솔로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 주로 바이올린 협주곡인 [솔로 콘체르토], [콘체르토 그르소] 서곡과 관현악 모음곡, 서곡의 일종인 신포니아 등이 있다. 극음악으로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다성적인 가곡과 숫자 저음의 반주가 붙은 가곡이 있었다. 악곡의 형식에 있어서는 아리아나 무곡 등으로 된 A-B-A, 변주곡형식(변주곡, 파르티타, 샤콘, 팟사칼리아)과 푸가, 옛 스타일의 론도 A-B-A-C-A-D-A 등. 작곡가로는 몬테베르디, 륄리, 코렐리, 퍼어셀, 쿠프랭, 비발디, 텔레만, 라모, J. S. 바흐, 헨델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 1685.2.23-1759.4.14)
독일의 할레에서 출생하여 하노버가의 궁정악장으로 일하다가 영국에 귀화하였다. 그는 40여 곡의 오페라를 쓰는 등 오페라 운동을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메시아를 비롯하여 20여곡의 오라토리오를 작곡 하였으며, 수상음악 등 많은 기악곡을 남겼다. 헨델은 당시에 사용되던 모든 양식의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그 속에는 장대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으며 특히 종교 음악의 대가로서 공헌한 업적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3.21-1750.7.28)
독일의 아제나흐에서 음악 가문에 태어나 18세에 바이마르 궁정의 바이올린 주자가 되었다. 여러 교회의 오르간 주자와 교회 성가대장을 겸하면서 일하던 중 23세 부터는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음악을 통하여 신에게 봉사하는데 자신의 모두를 바쳤다. 평온함과 행복을 표현하고, 신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그의 음악은 부드러운 온정으로 감싸여 있으면서도 숭고하며 시적인 표현과 극적 의미에 있어서는 극치를 이룬다. 그는 5곡의 미사, 3곡의 오라토리오, 300여곡의 칸타타, 5곡의 수난곡 등 수많은 종교 음악을 남겼고, 평균율 피아노곡집, 푸가의 기법, 인벤션 등을 작곡 하였다. 특히 푸가의 완성, 평균율 적용, 신교 교회 음악의 발달 등에 있어 음악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 외에도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몬테베르디, 이탈리아의 코렐리(1653~1713), 비발디(1678~1741), 스카를라티(1685~1757)등과 영국의 퍼셀(1659?~1695), 프랑스의 쿠프랭(1668~1733), 라모(1683~1764) 등과 독일의 텔레만(1681~1767), 슈타미츠(1717~1757)등이 있다.

 

카치니 (Caccini, Giulio, 1550년경 로마-1618.12.10 피렌체) 
비탈리 (VITALI, Giovanni Battista, 1632.2.18-1692.10.12) 
파헬벨 (PACHELBEL, Johann, 1653.9.1-1706.3.9) 
마르첼로(알렉산드로) (MARCELLO, Alessandro, 1669.8.24-1747.6.19) 
알비노니 (ALBINONI, Tomaso, 1671.6.8-1750.1.17) 
비발디 (VIVALDI, Antonio Lucio, 1678.3.4-1741.7.28) 
마르첼로(베네데토) (MARCELLO, Benedetto, 1686.7.24-1739.7.25)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BACH, Wilhelm Friedemann, 1710-84) 
고섹(GOSSEC, Francois-Joseph, 1734.1.17-1829.2.16)
 
모든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음악을 사용하여 이념과 감정을 표현 또는 재현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특정 감정 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의 무지카 레세르바타 (Musica reservata)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인다. 또한 음악은 '분명한 이념'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17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던 데카르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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