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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도심 정글 속 ‘빈집’을 아시나요?-‘무정형’의 생태 공동체…‘빈말’이 ‘현

최세창 |2009.07.16 12:26
조회 381 |추천 0

 

도심 정글 속 ‘빈집’을 아시나요?

‘무정형’의 생태 공동체…‘빈말’이 ‘현실’로 되는 집도심 속 정글 한복판에 모두가 주인인 도발적인(?) 집이 있다.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를 의미하는 빈(賓)집으로 손님들이 주인이 돼 계속 새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지난해 2월 남산 자락 해방촌에 둥지를 튼 빈집은 최소한의 공간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공동으로 머물며 대안적 삶을 창조해 나가는 곳이다. 공간분담금은 하루 6시간 이하 1000원, 초과하는 경우 2000원, 장기투숙자도 30일로 계산해 6만원과 식대 2만~3만원을 추가로 내면 된다. 이는 ‘하한선’으로 경제적 여력이 있는 경우 자율적으로 더 많은 분담금을 내기도 한다.

처음 세 명으로 시작한 빈집은 ‘입소문’을 타고 분담금만으로도 ‘흑자’를 유지해 30여 명의 사람이 머무는 ‘4곳’의 빈집으로 늘어났다. 이곳의 살림살이는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며, 빈집의 운영을 통해 따로 돈을 버는 주체는 없다.

빈집에는 싼 하숙집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이, 환경 등의 세미나에 놀러왔다가 눌러앉은 이,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가진 이, 반자본주의 혁명을 꿈꾸는 이 등 다양한 ‘꿈’이 공존한다.

그 꿈들은 여성, 평화, 환경, 생태, 대안적 삶 등의 키워드로 ‘느슨하게’ 연결된다. 소유와 투기의 대상으로 무섭게 치솟는 서울의 집값을 비웃기라도 하듯 빈집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 가난하자는 빈(貧)집이기도 한 이곳은 자본주의로 인해 집 밖으로 밀려난 일들을 다시 불러와 ‘즐거운 놀이’를 통해 필요한 물품을 자급자족한다. 공동 농장과 텃밭 가꾸기를 시작으로 직접 술과 장을 빚고, 동네에 버려진 소파 등을 ‘노획’해 재활용하며, 설거지물을 모아 변기에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생산 활동을 벌인다. 또 그 외 침 뜸, 옷 수선, 목공예, 컴퓨터 수리, 악기 연주 등 제 각각 사람들이 지닌 재능을 서로 교환하며 가능한 한 모든 생산과 소비가 빈집 안에서 순환토록 했다.

빈집에서는 누군가 불쑥 떠오른 얘기를 던지면, 여기에 다른 이들의 상상이 더해져 빈말이 되고, 빈말이 여러 사람의 입을 돌면 어느 새 힘이 모아져 ‘현실’이 된다. 이 같은 빈집의 실험은 ‘집’과 ‘사람’이 맺는 ‘새로운’ 관계로도 확장됐다. 빈집 가족들은 ‘혈연’대신 ‘유대감’으로 맺은 대안 가족이 되었다가, ‘경쟁’대신 서로 ‘상호 보완’해주는 공동체 일원이 되고, 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 집단이 되기도 한다. 빈집 식구들은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원하는 ‘별명’으로 이름을 대신하며 서로 존댓말을 쓴다. 또 모두에게 열린 빈집의 특징은 홈페이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빈집의 대문은 여느 홈페이지와 달리 누구나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툴을 사용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타지에서 난생 처음 만난 여행자들이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해 베푸는 우정과 환대만 있으면 돼요.”
처음 빈집을 창안한 ‘지음’씨가 귀띔한 공동체 생활의 유일한 ‘조건’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짝궁’과 둘이 살던 지음씨는 문득 수면 시간 외 거의 비어있는 집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세계 여행을 다니며 각국의 여행자들과 했던 다양한 공동생활을 토대로 ‘함께 사는 독립된 공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빈집이 태어났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열띤 호응으로 빈집이 급작스레 확대되면서 고민도 생겼다. 자연스레 식구가 늘다보니 즐거운 놀이가 노동이 되고, 노동이 일부 사람에게 집중되는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저마다 다른 생활방식 등이 부딪쳐 소소한 갈등을 낳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부대껴요. 처음엔 불편해도 상대를 신뢰하고 기다리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인지상정으로 자율적으로 균형이 맞춰져요.”   
지음씨와 함께 빈집을 시작한 짝궁 아규씨가 전하는 문제 해결 비법이다. 덕분에 현재까지 빈집에서 누군가가 강제로 ‘방출’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 아규씨는 “과거 직장생활이나 가족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먼저 회피하고 관계 맺기를 포기했었다”며 “빈집에서는 서로 잘 몰라 이해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더 친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성숙해진다”고 자랑했다.    
우연히 빈집의 싼 방 값을 전해 듣고 찾아와 장기 투숙을 하게 됐다는 ‘공룡’씨는 빈집을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우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같은 현답을 남겼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매일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가 발생해요. 어떤 분이 무슨 상상을 하고 찾아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저에게 빈집을 소개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숙제예요.” 1033호 [사회] (2009-05-29)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frame4@womennews.co.kr)

 

 

 

 

 

 

[빈집이야기1] 독립하기와 함께 살기 기사인쇄 지음누구나 독립을 원한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온전히 자유로운 독립적인 공간에 대한 열망, 그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간절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말 그대로 대단히 독립적인 것이어서 가족이나 가장 가까운 친구나 연인과도 공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들의 접근을 배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부모의 공간과는 분리되는 자기의 방을 갖는 것에서부터, 가출이든 대학생활이든 직장생활이든지 간에 어떤 이유로 가족이 있는 집에서 나와 자취방, 하숙방, 고시원, 원룸 등의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독립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인구통계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20%를 넘어 계속 증가추세에 있으며, 서구의 국가들에서는 40%를 넘기도 한다. 독립을 향한 원심력은 대가족을 핵가족으로 분해한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인으로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은 쉽지 않다. 집을 나가는 마당에 부자 부모가 있어 손을 벌릴 요량이 아니라면 집을 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로 얻는 것도 요원한 일일 뿐이다. 월세 보증금이라도 모아두지 않았다면 선택은 지극히 한정된다. 집 월세와 집에 필요한 가구며 가전이며 생활용품들을 갖추는 것, 먹을 것과 용돈을 벌고 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위해 쓸 돈이며 이 모든 것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기대지 않고, 말 그대로 독립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에 얼마나 있으며, 그것을 갖게 될 때쯤이면 이미 나이는 서른을 넘고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터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독립을 했다 치자. 그들은 과연 독립하고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얻었을까? 독립을 위한 유지비용을 버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독립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자신이 얼마나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집안 청소며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이며 빨래하고 집을 가꾸는 모든 일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또 자신은 이 모든 일에 대단히 서툴다는 것을 발견한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필요한 가사 노동을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버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자신만의 공간은 있으나, 그 공간 밖에서든 안에서든 자유로운 삶은 없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경우 자유를 위한 열망에서 시작한 독립은 단지 자신만의 주거공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귀착되고 만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도 거기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점점 더 넓고 안락한 공간을 열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쯤이면 자유에 대한 열망은 소유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고 마는데, 실상 소유에 대한 열망은 그것이 얼마나 채워지던지 간에 자유와는 무관한 것이다.

독립을 홀로 살아가는 것으로 등치시키는 순간, 다른 사람과의 복잡한 관계를 배제하고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것은 사실상 자본이 엮어주는 관계만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주면서도 돈 이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쿨한 관계를 만드는 데 자본 관계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자본의 입장에서 핵가족 또는 1인 가족은 지극히 유리하다. 홀로 살면서도 모든 살림살이를 구매해야 하고, 1~2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버리는 음식이 절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식과 인스턴트식품을 기본으로 살아야 하며, 가족이 하던 모든 노동과 서비스를 자본을 통해 구매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또 자본을 위해 기꺼이 노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만큼 자본이 원하는 것은 없다. 결국 사람으로부터의 독립은 자본으로의 종속으로 귀결되고 만다.

가족으로 돌아가라거나, 독립과 자유의 공간을 포기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억압적인 인간관계는 해체되어야 하며 가능한 한 빨리 그곳에서 독립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본으로부터 역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것은 함께 살면서 생기는 모든 복잡한 문제를 단지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여기가 우리 고민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독립을 홀로 살기가 아닌 함께 살기와 함께 엮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도시 어느 동네 어떤 집에서 누구누구와 함께 어떻게 같이 살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자율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아직 우리는 이렇다 할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수많은 오답들과 불완전하고 부분적일지라도 작은 해법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일단 같이 살면서 삶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살아가는 능력을 키울 것이며, 그리하여 갈수록 더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일단 비워놓고 시작하기로 했다. 해방촌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 빈집. (홈페이지 주소 http://house.jinbo.net) 빈집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진보복덕방에 연재를 시작하는 이 글도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 일단 함께 먹고 자고 놀면서 생각해보자.
지음 님은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장기투숙객입니다

 

 

 

 

[빈집이야기2]나는 빈집에 산다 기사인쇄 아규 |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장기투숙자빈집에는 손님들이 오고가며 손님들이 살아간다.

나는 빈집에 장기투숙을 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지금 백수이고 생활의 대부분을 빈집에서 하고 있다.

빈집 집들이 하던 날

그날 집 안에는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요리기구와 그릇들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 공간의 이름조차 정하지 않았던 때라 그저 '빈집에서 집들이해요' 라고 알렸고, 모여든 사람들도 '진짜 빈집이네...' 하고 들어섰다. 그리고 그날 이 곳은 '빈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처음엔 차갑게 느껴져 쏙 맘에 드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 그때 나는 '다락'이라는 이름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 지금은 빈집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사를 오다

빈집 집들이 나흘 후 난 이사를 했다. 이 공간에 내가 가진 살림살이들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가 커다란 고민이었고, 이날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과 '여기 놨다 저기 놨다'를 반복하며 겨우 자리를 잡았다. 부엌살림살이는 오가는 이들이 유용하게 쓰기 가장 좋은 것들이었지만, 장롱이나 테이블 같은 것들은 오히려 자리만 차지하게 되는 것 같아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두 사람 세간만으로도 여러 명이 같이 살고 열댓명의 손님들이 충분히 먹고 놀고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노획이라 부르다

노획의 시작은 빈집 집들이 하던 날 소파부터였다. 길에 놓여있던 버려진 소파는 우리에게 주워오는 것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고, 우리는 길을 걷다가 골목구석을 살피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뒤로 우리가 남이 버린 물건을 수거해 온 목록을 보자면 좌식책상, 티테이블, 의자, 이불, 스티로폴 박스, 플라스틱 박스, 거울, 유리, 서랍장, 유리병, 책장, 옷장 등 헤아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튼 많다. 누군가 외출 후 돌아오면서 주워오는 물건들에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고, 드디어 이 행위를 '노획'이라 부르게 되었다.

텃밭을 일구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노획한 스티로폴 박스가 충분해지면서 옥상에 씨앗을 뿌렸다. 농사 경험이 전무한 장기투숙자들이지만, 과감하게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다. 맛있는 먹거리로 잘 자라게 하려고 소변을 모으고, 동네 참기름집에서 깻묵도 얻어와 발효시키고, 지렁이도 분양받았다. 빈집에 텃밭이 생긴 걸 알고 씨앗이나 허브모종을 보내주는 손님들도 있다. 날마다 옥상에 올라가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보고 물도 주고, 가끔은 말도 걸어본다. 조금씩 자라는 초록을 보는 기분은 참 좋은데, 그것들을 맛있게 먹을 때도 참 좋다.

바쁘게 놀다

일주일에 3가지의 놀이를 한다. 알로에 세미나, 목공 교실, 밴드 다락 연습. 알로에 세미나는 빈집에서 살기 전부터 하던 것인데, 세미나 장소를 빈집으로 바꾸어 하고 있고, 목공교실과 밴드 다락 연습은 빈집에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 만든 놀거리다.(목공교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작업실에서 진행된다) 대학 생활 이후 일주일에 3가지 일을 해 본적은 없다. 기본적 생활 외에 사람들과 같이 하는 놀이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바쁘고 일주일이 후딱 지나간다. 가끔은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돈이 될까?

빈집에 살면서 다른 일로 돈을 벌며 사는 것 말고, 빈집에서 무엇이든 생산하거나 돈을 벌수 있는게 무엇이 있나 고민한다. 물론 재미없는 일이 아닌 즐겁고 신나는 일로. 매주 금요일 빈집에서는 술을 빚는다. 처음엔 장기투숙자들이 저녁에 즐기는 술이 상당히 많고, 우리들의 주머니가 가벼워 시작되었다. 근처의 매화나무의 꽃과 산청 나들이 때 구해온 진달래꽃에다 담금주용 소주를 부어 두 달만 기다리자는 생각이었는데, 막걸리를 빚어 먹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역시 경험없이 덤벼보는 술빚기 워크샵이 만들어졌다. 항아리 속에서 술 익는 소리는 우리를 들뜨게 했고, 그 술맛 역시 행복하다. 어느새 술항아리에는 네 번째 막걸리가 익고 있다. 그런데 이 막걸리는 돈도 될까? 하하하...

살림하다

빈집의 장기투숙객들은 부지런하다. 함께 먹을 밥을 준비하고, 설거지도 하고, 거실을 함께 청소하고, 마실 물은 약수터에 가서 떠온다. 가끔씩 옥상에 자라는 것들을 돌보고, 경동시장에 함께 가서 잔뜩 장을 봐 온다. 각자 할 일들이 있으니 시간이 많은 건 아니지만 할 수 있을 때 즐겁게 함께 한다. 이곳에서 살기 전에도 부지런했는지, 즐겁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빈집에서는 밥 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들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남자 셋 여자 하나

빈집에 장기투숙자는 남자가 3명, 여자가 1명이다. - 장기투숙자의 수는 늘 바뀌지만 이번 달을 보면 이렇다 - 남자 3명이 한방을 쓰고 여자 1명이 한방을 쓴다. 여자 장기투숙객이 아직 한명 뿐이라서 여자 방은 공동주거의 흔적이 별로 없지만, 남자방은 수납장이나 옷장을 보면 어느새 공동주거의 티가 난다. 다른 사람과 방을 함께 쓰는 느낌을 쓰고 싶은데 어서 여자 장기투숙객이 늘었으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

빈집 이야기는 빈집 손님들이 함께 쓰기로 했는데, 다음 이야기는 누가 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일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다음 이야기는 빈집의 물리적 공간을 소개하고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큼의 돈이 드는지를 얘기하면 좋겠다.




2008년05월10일 18:09:26

 

 

[빈집이야기3]에 산다 기사인쇄 데반 | 장기투숙객아침 7시.
'Z~Z~Z~'
'띳 띠디디띳, 띠디디띳’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기상! 일어나. 출근해야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미처 다 뜨지도 못한, 반쯤 감긴 눈을 해가지고 화장실로 향한다. 눈꼽 떼고 까치집만 수습한 채, 깔깔한 목구멍에 밥숟가락 몇 번 쑤셔 넣고, 일터로 향한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상사와 동료에게까지 시달리다, 무거운 몸과 쓰라린 속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 사람들의 일상이 보통 이럴 것이다.

서울의 35평 아파트에 살며 중형차를 몰고 다니고 단란한 가정을 이뤄 토끼 같은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또한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몇 안 되는 숫자를 기다리며, 프로패셔널이나 전문가라고 명명되며 행해지는 각각의 노동착취에도 묵묵히 참고 살아간다.

이들은 사회구성체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공동체를 실현하고, 자본주의를 재생산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훌륭한 일꾼 일수 있다.

아침 7시.
‘쿠~우, 쿠~우’
9시 정도...
‘부스럭, 부스럭’
‘으~아~~, 누가 벌써... 일어났지...’
잠시 후...
“밥 먹자~~”

방에서 하나둘씩 기여 나와 누군가 미리 준비한 식사를 함께 한다. 빈집의 하루는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 물 뜨러 가야하는데...”
“그럼,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물 뜨고, 날씨도 좋은데 산책도 좀 하고... 배드민턴도 좀 칠까?”

미리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일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빈집의 일정은 이렇게 잡힌다. 아직은 장기투숙객이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빈집에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정책들을 최소화 하는데 함께 한다. 워낙 정형화된 그 무엇을 다들 싫어하는 족속들이라... 식사하고 나면, 설거지 지원자가 나서지 않을 경우, 가위 바위 보로 정한다.(보통 1등과 꼴등은 제외하고 3등이나 4등으로 정한다) 설거지가 정해지면, 다른 사람들은 새벽까지 시끄러웠던 흔적들을 정리 한다.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거나,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의 한 건물 4층을 임대한 공동주거에 살며, 좀 더 좋은 자전거를 타고 싶은 소박한 꿈을 위해,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고 힘들거나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려 하며 ‘딩굴딩굴’ 살아간다.

사회공동체의 고리를 끊고, 자본주의 재생산을 거부하는 우리는 반동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행복’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고, 삶 속에서 ‘순간’으로 다가 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현대인이 꿈꾸는 행복은 사실상 행복해 질 수 없는 조건이 아닐까. 일단 개체화된 콘크리트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 현대인이 꿈꾸는 물리적 조건이 충족된다 한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과 만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라는 대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소전제가 충족된다 하더라도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침 7에 일어나 출근하고 8시, 9시에 퇴근하는 삶을 사는 주위의 친구들이나 여타의 사람들을 보면 가끔은 신기하다. 물론 나도 현재는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목구멍에 돈줄기를 조금이라도 부어줘야 할 것 같아, 작은 단체에서 상근을 시작했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때로는 너무나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때로는 정해진 일과와 일정한 수입 등이 허락하는 그 누구도 어디에서도 보장해주지 않는 안정적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또한 부모님 모시고 평범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동화된 시스템의 한 부품처럼 살아가다 가끔 기름칠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삶보다는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삶의 지향이다. 사회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적 삶이 아니라 자연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삶을 살고 싶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기 위한 일탈을 자행하는 삶.

빈집은 나름대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지만 아직은 물리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살아가려고 하는 공간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온전하게 충족될 수 없고 충족된다 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또한 행복의 다양한 상대적 조건에 대해 그 누가 일반화시켜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콘크리트 속에 매몰돼 버거운 하루하루를 살아내려는 것 보다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다른 삶의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한다.

난... 난... 그래서... 일단 빈집에서 산다.

2008년06월15일 20:44:01

 

 

 

[빈집이야기4]20년 후 기사인쇄 지각생 | 장기투숙객“놀러와 어서와 놀러와 어서와
못말리는 장기투숙객들
지렁이도 밥 같이 먹는
빈집이에요
2호 3호 남산터널
자전거를 타고 오세요
빈집이에요
다녀와 어서와 빈집이에요
다녀와 어서와 주막 마루로도 변신
-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2008년 봄에 처음으로 생긴 "빈집1호-남산집"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지금이야 한국에만 수천채의 빈집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집계도 안된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모습이지만, 초창기에 빈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이런 곳이 있다니, 게다가 서울에!" 이러며 신기해했다고 전해진다. 띄엄띄엄 전해지는 민담과 기록에 의해 재구성해본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만큼 어색하고 귀엽다. 도대체 이런 것을 그땐 왜 그렇게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을까? 하지만 사실 언제나 뭐든 처음에는 그렇게 느끼는게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빈집네트워크가 연결되어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3년전 주류 언론들은 "빈집 한류"라 그 이름을 붙이며 선정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20년 전만해도 한국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서로가 단절되어 있고,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과 서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굳게 문을 잠그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불과 20년 동안 "빈집 열풍"이 불어 이제는 너도 나도 자신들의 집을 "비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갈 수 있도록 하게끔 되었다.

20년이 지나고, 그때 어린아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그 동안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는 이런 환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겨, 가끔 사람들끼리 벽을 굳게 세우고 문을 걸어잠근채 교류 없이 살아가는 저 괴팍한 몇몇 동네 이야기를 들으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잠시 머물곳을 찾지 못해 너무나 먼 길을 가야하고, 비싼 돈을 지불해야 잠시 지친 몸을 쉴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글쓴이도 지금도 기분은 그닥 좋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열중 일고여덟은 필시 말하는 사람이 짖궂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여기고 가볍게 넘기고, 한 두명 정도는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아이는 무서운 얘기를 들은 것처럼 서로를 꼭 부둥켜 잡는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가 없고 외로운 삶을 사람들이 견뎌낼 수 있었나요?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할 수 있었을까. 옛날 영화와 드라마들이 그토록 죄다 공포스러웠던 이유를 지금의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 당시 사람들의 각박한, 끊임 없이 국가와 자본에 눌리고 빼앗기는 여유 없는 삶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빈집 최장기투숙객인 "윤택"에게 처음 빈집을 열때의 심정을 물었다.
"ㅎㅎ 처음에요? 아.. 그땐 모든게 서툴고 어려웠지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싶은 것을 실제로 해나가는게 분명 큰 즐거움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지후원해주긴 했는데, 역시 그런 공간을 오랫동안 꾸려가고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냥 훌쩍 집을 비우고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5년이 지난 후에는 실제로 6달동안 다시 전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돌아오기도 했죠. 그렇게 언제든 떠나고 싶을때 떠나고, 다시 돌아왔을때 반갑게 맞아 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게 좋았어요."
또 다른 초장기투숙객 "정균"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 기사에 내지 않는 조건으로 얘기를 시작했으나 결국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돌아섰다.
"흠흠.. 사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다른 건 다 좋은데~, 사실 이.. 이 먹는 문제가 좀 그랬어. 거... 내가 고기를 좀 많이 좋아하거든 큼큼. 아 물론 채식 식단에 만족해. 하지만 왜 그런 말 있잖아 '사람은 채소만으로 살 수 없다'" "그건 빵 아닌가요?" "어? 그랬나. 우리 동네는 좀 달랐는데.. 여튼, 이제는 고기 생각도 안나. 그때 조금 그랬다는 거지"

"남산 빈집"에 대해서는 사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화제가 됐던 것이라 자세한 얘기는 할 필요조차 없을 거라고 본다. 여기서는 본 기자가 단독 입수한 당시 문건을 하나 싣는 것으로 이번 호 연재를 마치려 한다. 이 글은 "지각생"이라는 초기 장기투숙객이 쓴 글로 보이는데 지각생은 그 후 별명을 바꾸고 살았다고 한다. 대체 누가 지각생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그가 지금도 한국의 어느 빈집에서 장기투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시아 어느 곳에 있는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세계의 빈집을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알려진바가 없다.


꾸욱, 꾹. 이제는 버튼이 잘 눌러지지도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이 버튼을 눌렀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이 자물쇠를 치워버릴 수 있을까. 한참을 꾹꾹 눌러 결국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잡이를 잡고 당기며 오늘은 눈앞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잠깐 상상해본다. 오늘도 늦게 퇴근하는 길, 다른 집들은 거의 불이 꺼진 시간이지만 빈집은 이맘때까지도 항상 밝게 불이 켜져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신발들. 이 시간때면 보통 모기 때문에 안쪽 현관문을 닫아 놓기 때문에, 신발들이 "늦게 온" 손님들을 맞는다. 이제 왔니 어서 너도 들어와~ 하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내 신발을 벗어놓을 공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신발이 있다. 눈에 익은 신발도 있고, 처음 보는 신발도 있다. 그런 신발들이 마구 뒤섞여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오늘도 적어도 일곱이군. 훗. 현관문을 열며 오늘은 또 누가 와 있나 시선을 마루로 던진다. 그리고 인사한다 "다녀왔어". 빈집의 공식 인사말. 처음 왔던 자주와 살던, 다시 오던 언제 올지 모르던 간에 모든 사람은 "다녀올께"-"다녀와", "다녀왔어"-"어서와"로 인사한다.

오늘도 역시 익숙한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재밌게 놀고 있다. 윤택, 정균, 짱난, 그리고 우리 냐옹이 "러니"가 날 반갑게 맞는다. 오늘도 이미 한잔씩 걸쳐 불그스레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벌써 며칠짼가. 생각해보니 장기투숙객끼리만 밤을 보낸, "처음 온 손님"이 없는 날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달쯤 됐던가? 아니 좀 더 된 것도 같고. 매일 다른 손님들을 맞느라 매일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 술마시고 밤늦게까지 노는 건 쉬운 일은 아냐. 노는 것도 지친다. ㅋ 요즘엔 계속 일이 많아서 피곤하다. 사람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오늘도 슬쩍 남방으로 들어가 몇가지 일을 마무리하고 먼저 자야겠다. 씻고, 양말 빨아 널고, 슬쩍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술 한잔 마신다. 하루의 긴장이 풀린다. 오늘은 어느 동호회 사람들이 밤새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는 차가 끊겨 쉴 곳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어제는 어느 단체에서 열명이 엠티를 오고. 그제는 그냥 소문 듣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놀러 왔다. 같은 공간, 같은 가재 도구들이지만 여기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빈집도 언제나 날마다 새롭다. 사실 같은 사람이라해도 어제와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과 있고,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언제나 달라지긴 하지만, 아예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계속 만나는 것만큼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을터다. 그것이 무척 즐겁지만 사실 때로는 피곤하다.

빈집에 처음 들어왔을때는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문을 열때마다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집이랄까. 마치 판타지 소설에 나올만한 이야기가 현실에 있다. 올 봄 무척 힘들고 외로웠던 탓에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런 외로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차츰 그런 것도 익숙해지는 걸까. 문을 열때의 설레임과 기대는 여전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곤함도 쌓여 간다. 그들은 잠시 스쳤다 가지만, 장기투숙객들은 이곳에 남아 이 공간을 가꿔나가야 한다. 한 두 사람이 사는 살림이 아닌데다 여럿이 거쳐가는 공간인 탓에 사실 해야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 공간 속에서 실험하고자 했던 많은 일들은 일부는 시도가 돼지만, 그렇지 못한 것도 많다. 피로가 쌓이고, 익숙해지고, 못하는게 많아지면서 조금씩 스스로 지쳐가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나는 이런 말할 처지가 아닐지 모른다. 요즘 계속 바빠서 집안일도 거의 못하고, 집에 있을때도 귀찮고 몸이 안 움직이고 마냥 쉬고 싶거나, 아직 못 끝낸 일을 마저 해놓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른 장기투숙객들에게 짐을 많이 떠넘기고 있으니. 설사라도 그치면 몸이라도 가벼워지려나. 그래도 다들 힘들텐데 불평 안하고 최대한 이해해주며 짐을 덜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고맙고, 미안하다.

잠깐 같이 섞여 술 한잔 하고 슬쩍 빠져 나와 남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늦게까지 손님들과 재밌게 놀고 싶지만 이제 슬슬 다음날의 압박이 커진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억지로 일어나서 출근하고 나면 오전 내내 멍할때도 있다. 요즘 같이 더울때 점심 먹고 들어와 몇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졸음이 살살 오기도 한다. 이럴때 한잠 자면 좋을텐데 그러긴 쉽지 않다. "어제 밤에 안자고 뭐했어!" "손님들이 와서 놀았어요" "그 전날은? 또 그 전날은? 맨날 손님 와서 늦게까지 노니?" "네.." "... 개기냐 -_-" 사람들에게 "서울 한복판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얘기하면 어떤이는 신기해하며 가보고 싶어하지만 어떤이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주: 앞에서 얘기했듯 이때는 이런 문화가 생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꾹 참고 와서 못다한 일을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인데... 바깥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내 맘을 흔들고 내 귀를 당기며 내 엉덩이를 들었다 놓는다. 까르르 와하하 ㅋㅋㅋ ... 아 미치겠다. 안돼 안돼 오늘은... 흠... 마음을 다잡지만 사실 그 웃음소리 한방에 이미 무너져 있다. 다시 와핫핫 히히히.. 결국 잠깐의 투쟁으로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만들어주고 슬그머니 방을 나간다. 화장실 가고 싶네. 물이나 한잔 마시자. 물을 마시고 컵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 슬그머니 마루로 가서 엉덩이를 붙인다. 바로 그 컵은 맥주가 채워진다. 그래, 인생 뭐 있냐. 이렇게 사는 거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언젠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여유를 다시 찾고 대안적인 삶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겠지. 이 집이 있고, 내가 여기에 살고, 언제나 정다운 사람들이 있는 한 모든게 잘 될 거야.

2008. 7. 10 지각생
2008년07월15일 16:28:14

 

 

 

[빈집이야기5]빈집에게 발신 기사인쇄 공룡 | 20세기는 지나고
21세기 밀레니엄 새천년을 맞으며 터뜨렸던 [1미터 반경 내 접근금지] 분수 폭죽도 이미 썩어 우주 먼지로 날아갔을 만큼. 새 시대도 오래다. 회를 거듭할수록 ‘잘나가는 단행본 6개월 이상에 발간하기’ 권법으로 간장을 끊어 놓던 20세기 소년도 끝나갔고, 간장이 끊어진 관계로 이미 털 썩 상태였던 본인에게 다가온 21세기 소년의 상 하권 친절한 뒷풀이는 끊어진 간장에 딱지조차 앉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행려병자처럼 도시의 햇살 속에서 중얼거렸다. ‘태양을 피하고 싶다…’
나는 살아갈 힘을 잃어갔다. 세상이 나를 등졌다. 애인도 나를 떠난다. 아 세상 살기 힘들구나. 불현듯
등이 시리더니 배가 고프다. 아뿔싸 돈도 없다.
발길이 무료급식센터 앞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눈길은 그들의 밥그릇과 씹어 삼키는 입에 매달려 떨어지질 못했다. 나는 나의 번뇌와 떨어지지 못했다. 아니, 간혹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한 방울의 영롱한 고농축 침.
마음상태도 가닥을 잡지 못하는데, 주머니 사정은 자꾸만 바닥을 향해갔다. 그런 시국에 어찌 외모를 돌볼 수 있으랴. 내가 그렇게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닐 무렵, 저 멀리서 누군가 말했고 신기하게도 내 귀가 무언가 캐치했다. “ …집…. 6시간에 1000원…”
천 원짜리로는 친구 둘이 오붓이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먹지 못하는 시대다.
뭐가, 도대체 어떤 집이? 6시간에 뭐가 천원 이라는 거지?
자네, 어서 말을 해보라구! 응?

2
나는 일단 엿보기로 하였다
처음 간 날, 지음이라는 집사와 아규라는 마님이 나를 맞았다. (나의 상상속의 첫인상이었다.) 어느 날 불쑥 아주 불친절하게 다가온 나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 아주 친절하게도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음. 그래요. 음. 그렇단 말이죠. 아하.

그런데 이거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이 건물이 4층 이래서가 아니고, 나
뭔가 약간 땅과 사이를 두고 떠오른 거 같지 않아? 이거, 그 정체만은 비밀에 부쳐진 채 이상의 시간
을 누비는 하울의 성 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나가고 나면 문 위에 달린 추가 변하고 다른 세계의 손
님을 맞을지도 모른다.

뭔가, 나. 나이스 캐치 한 게 아닐까.

3
나는 일단 탐험해 보기로 했다.

지구, 빈 집에는, ‘즐거운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이 무한제공 된다는 것이 단연 으뜸 장점이다. 빈 집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수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고 알아가는 맛이 있는 곳이다. 또한 그들, 서로와 스스로를 게스트라 칭하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빈 집 이야기에 동참하며 끊임없이 즐거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 사람 수에 정비례하는 그들의 마음만큼 언제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단순히 그것이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빈 집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종류의 워크샵, 그리고 친 환경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게스트들의 행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변화의 한 부분이 된다. 그렇다! 빈 집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가? 그렇지 않다. 당신도 가능하다. 난 그렇게 거창한 건 못하겠어! 라고 생각하나?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이미 당신은, 빈 집에서 변화의 작은 시발점이라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 이건 순전히 게스트 중 하나인 나의 입장일 뿐, 빈 집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다. )

하지만
그 때문에, 처음에는 개개인들과의 관계와, 빈 집 자체의 목적성에 대한 긴장감이 생겨 집이란 곳에 와서도 자신의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즐거운 긴장감이었다. 또한 두려움이었다. 게스트들의 집합소. 매일 무언가의 일이 벌어지는데, 나는 장기투숙게스트 인지라 매번 그 일이 벌어지는 곳에 있었고, 그 일에 대해 때마다 yes or no 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자체가 버거웠다. 투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아무런 이해도 없던 때에, 뭔가 또 다른 것을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또한 나는 장기투숙게스트와 게스트와 빈 집사람의 차이점을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이야기는 날마다 생겨났다. 나는 밖에서의 생기는 일들 중 마무리를 짓지 못한 과제들을 안고 집에 돌아온다. 밖에서의 역할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집에 오면 집에서의 역할이 다시 재생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긴 집이 아니라, ‘빈 집’이야. 조금 벅차기 시작했다. 내 것도 그렇다고 남 것도 아닌 무거운 짐을 빌려 쓰고 있는 거 같아 버거웠다.
아쁄싸, 내가 너무 얕보았구나. 내가 너무 몰랐구나.

허지만 어찌하리, 어느 정도 예상하고 내 스스로 이런 경험하고자 왔으니, 문제라면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특히나 나같이 굼뜬 사람이라면 더 그렇겠지만 말이다. 내가 손톱만큼 불편하다 느끼면, 다른 게스트들은 나로 인해 손바닥만큼 불편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내게 물어본다. 내게 필요한 건 빈 집에서의 나의 역할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의 장점과 한계까지도. 역할의 경계는 들쑥날쑥 해서 간혹 혼란이 생기므로 그것에 유연히 대처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경험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룰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논의토록 하자. 그리하여 할 수 없는 일에서 오는 거대한 미안함을 떨쳐 버리자 ! ! ! 고 결론짓고, 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 할 수 있는 일
고양이 러니 똥 치우기, 밥주고 물주기, 활동 반경 최소한의 정리, 한 달에 최소 한 번 화장실 청소, 담배꽁초 정리, 가능한 음식 만들어 보기, 빈집과 할 수 있는 즐거운 일 추진, 빈집에 오는 사람 모두 반갑게 맞기, 빈집 매상 올리기, 빈 집에 + 될 만한 아이디어 생각해보기

★ 할 수 없는 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아침밥 만들기, 라면 안먹기, 양말 세탁통에 넣기 (ㅠㅜ노력중)…등등

리스트가 빈약하다. 사실 글이 길어져 지금 좀 지쳐있다. 양해바란다.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니, 할 수 없는 일이라기 보다 하지 않고 있는 일이 많이 떠올랐다. 이런 리스트 작업을 주기적으로 해보는 것도 장투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들쑥날쑥 제대로 하고 있는 일들이 빈약한데, 빈 집이 변화하는 만큼 나도 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살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 나가야 한다!
빈 집에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활의 발견이 많은데, 장투생활 말단의 입장으로써 느끼는 점을 우선적으로 적어보았다. 아마도 내가 몇 가지 느끼는 것보다도 지금 빈 집에는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겠지….. 두둥..

2008년11월19일 18:05:07

 

 

[빈집이야기6]내 삶의 과정에서 빈집은... 기사인쇄 진난만 | 일단 나라는 인간에 관해서 살짝 설명을 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일부러 피해다녔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잠시 쉬기위해 1년동안 핸드폰을 정지시키기도 했고, 혼자사는 일에 대해 엄청난 예찬론을 펼치던 사람이다.

그러던 나에게 용인 수지라는 처음 본 동네에 홀로 버려진 기분의 자취가 시작되었고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실제 홀로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다르다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며 주말마다 혹은 외로울 때마다 빈집을 드나들다, 1년간의 자취생활 후 결국 이곳에 장투객(장기투숙객)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은 나에게 있어 정말 큰 도전이었다. 하루하루 삶에 무척 감사하기도 하고, 혹은 지나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감정의 기복은 사실 어떤 큰 사건이나 계기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 유치한 일들이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듯 했다.

나는 청소를 좋아한다. 불과 몇년전엔 결벽증적인 증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생활하는 이 공간안에서 내 생활 패턴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고통을 줄만 했다. 고민을 하다가 나는 내 규칙적인 생활패턴에 중 일과의 한 부분을 청소시간으로 정하고 그 시간 이외에는 청소를 하지 않았다.나는 나름에 안정감을 찾았고 이곳 생활에도 만족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향상 가끔은 장기간 여행을 떠나야 하고, 주기적으로 머무는 장소를 바꿔줘야하는 나로써는 그 안정적 패턴이 같이 사는 이들에게 적응되기도 전에 항상 가출을 반복하는 장투객의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서의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사실 서두에 두런두런 곱씹었던 부분들은 나 스스로에 대한 자책같은 부분이었다. 저런 부분에 있어 내가 조금 더 다는 성향을 가지고 있덨더라면 더 즐거운 생활을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 이랄까?

실제로 빈집은 내 삶에 과정에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일에 즐거움을 알게해 주었고, 나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던 막을 스스로 벗어던지도록 하게 된 계기이다. 이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기에 같이지내는 이들이나 또는 내 주변의 지인들은 아직도 그대로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지금도 막을 조금씩 벗어나가고 있다. 그것이 눈에 띄일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느리게 말이다.

어느 날 아짐 잠에서 깨었들 때 마루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복돌이는 쇼파에서 자고 있었고 러니는 밥을 먹고 있었다. 나에게는 고양이, 강아지도 내가 원한다면 언제나 기댈수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삶이 참 즐겁다고, 나는 참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이유모를 미소가 얼굴 가득 번졌다. 사실 처음에는 잘 모르는 여러 사람들과의 삶은 생각지 못한 큰 사건이나 일들로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확실히 '아니야'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더 즐겁다고 느끼는 것은 사소한 일상에서 이다. 가끔은 먼저나가는 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해 줄 수 있다는 것, 무엇인가 맛있게 만들어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어지르고 치우지 않았다고 속상해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속에서 나는 살아있다고 그렇기에 살아갈수 있다고 느끼게 된다.

사람들의 향기가 나는 공간, 동물과 식물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지만 좌절하기도 미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할 수 있는 공간,,, 빈집 나에게는 혹은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 모르는 사이에 큰 의미가 되었고, 이것은 앞으로 인간의 주거사에도 큰 의미로 남을 것이다.

술기운에 글 쓰는 일을 미루다 미루다 겨우 몇자적어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든 난 이 공간을 사랑한다. 2008년11월19일 18:19:27

 

 

 

[빈집이야기7]난, 다르게 살고 싶었을뿐이고~~ 기사인쇄 지각생 | 빈집 장기투숙객발단

학교 다닐때, 자취하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었다. 비록 "잘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아도, 집을 나와 자신이 책임지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뭔가 있어보였다. 하지만 자취를 결행할 수는 없었는데, 돈과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학교가 아주 가까운 건 아니래도, 한 시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실제로 꽤 많이 걸어다녔다) 또 하나의 살림을 유지할 만한 돈을 무리해서 만들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내가 "생활"의 중요성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보고, 일단 벌이고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지르는" 성격이 50%를 살짝 밑돌았기 때문에 결국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의 가사 노동에 나를 맡겨 놓고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를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기에 늘 나가고 싶은 마음만 갖고 살았다.

집에 있어야 한다면, 최대한 가사 노동에 참여하며 "의탁한다"는 느낌을 덜 받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래도 다른 식구들보다는 어머니의 일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역시 어머니가 하는 일을 옆에서 보조만 할뿐, 그를 쉬게 하고 내가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익히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됨으로써 내게도 그런 역할과 책임이 부과될 수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한게 아닐까? 또 흔히 "남자가 할 일"이라고 말해지는, 무거운 걸 옮기고, 한번 크게 뒤엎고, 기계를 손본다던가 하는 것을 조금 더 열심히 한 정도였지, 특히 부엌의 일이라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진 않았다. 수제비를 만든다고 하면 밀가루 반죽은 잘 했고, 만두 만들때는 두부를 짜고, 마늘 빻아야 할때는 아주 물처럼 될때까지 빻았지만, 수제비와 만두 등을 만드는 전 과정을 세심히 관찰하고 배우진 않았다. 오직 내가 일의 전과정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라면정도? 그래 라면은 내가 제일 맛있게 끓였던것 같다.

돈 없고, 명분 없으며 생활력 부족하고, 늘 추상적인 고민을 하는 내게 "독립"이란 먼 나중의 일이었다. 어쩌면 나도 돈을 많이 벌게 되거나, 결혼이라도 한다던가 하면 어떻게 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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