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희-
내가 지성희씨를 처음 만난 것은 이 시설에 처음 출근하던 날이었다.
유난희 흰 살결에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등은 가슴 쪽으로 약간 굽은 데다 항상 연노란 쪼기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엷은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깃털같은 여자였다.
내가 근무하는 이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지적장애가 유난히 심한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직업재활시설이었다.
근로자들 대부분이 지적장애 1급, 2급으로 손가락 열개를 펴놓고 열까지 세어보라고 하면 열가지를 세지 못하는 사람이 반수 이상이 되는 실정이었다.
지성희씨는 말이 없었다. 가까이 가서 굳이 말을 걸면 싱긋이 웃으며 몇마디 말을 하는데 목소리는 또렸했지만 가늘고 힘이 없었다.
머리에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작업장 안에서나 작업장 밖에서나 그녀는 모자를 벗지 않았다.
내가 그 이유를 안 것은 한참을 지나서였다. 어느 날인가 구민운동장에서 장애인의 날 행사가 있었는데 그날 내 옆에 앉아있던 지성희씨 어머니가 하소연 처럼 중얼거렸다
"성희는 뇌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 또 머리 속에 혹이 자라고 있데요"
지성희씨 어머니는 지친 얼굴로 멀리 떨어져 앉아 있는 지성희씨를 바라보며 한숨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근로자들은 점심식사 때만 되면 선생님들과 한판 신경전을 벌린다. 근로자들은 왕성한 식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식사를 더 달라고 식판을 내민다.
이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급식을 제공하는 사람들과 싸움을 한다. 식사를 절대로 더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 근로자들은 스스로 식욕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달라는데로 식사를 주면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년에 한 번씩 근로자들이 보건소에 가서 신체검사를 하면 거의 모든 근로자들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각종 질환으로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성희씨만은 예외였다, 오히려 지성희씨는 음식을 통 먹지않았다. 다른 근로자들이 주어진 식사를 게눈감추듯 끝마칠 시간에 지성희씨는 몇 숫갈도 안되는 밥을 앞에 놓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아니 밥알을 세고 있다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로는 어느 때는 일주일 가까이 식사를 전혀 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그와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당장 걸음조차 걷지 못할 지경인데 지성희씨 만큼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 지성희씨가 어느 날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작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는 길에 황단보도를 건너는데 피자집에서 피자를 배달하는 사람이 오토바이로 지성희씨를 부디처 지성희씨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아 병원에 입원한지 2개월만에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웬 일인지 지성희씨는 그후로 자주 쓸어지곤 했다. 집에서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쓸어지고 방에서 나오다가 넘어지고....
어머니는 이러한 지성희씨를 안타갑게 바라보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 속에 자라는 혹을 당장이라도 수술하고싶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성희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월요일 아침 출근 후 였다.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켜려는데 선생님이 다가와 지성희씨가 동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는 지난 토요일 오후 집안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첬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정신이 말짱해서 어머니와 같이 걸어서 동네 병원에 갔다는 것이다.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각종 검사를 하고 난 후 의사는 급하게 지성희씨을 중환자실에 입원시키라는 것이었다. 검사결과가 좋지 않으니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성희씨 어머니는 지성희씨를 입원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얼마가 지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낳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의 완강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지성희씨 어머니는 지성희씨를 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했다. 어머니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지성희씨를 병원에 남겨두고 그날 밤을 지나고 다음날 아침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지성희씨는 의식이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미친 듯 지성희씨를 흔들어보았지만 이미 지성희씨는 반응이 없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만쉬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찾아갔을 때 지성희씨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체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와 같이 걸어서 이 병원을 들어 온 애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예요"
지성희씨 어머니는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지성희씨의 상태가 몇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틀 후 지성희씨는 하늘나라로 갔다.
"성희야 미안해, 내가 좀 더 잘해주지 못해 너무너무 미안해"
내가 작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들과 같이 영안실을 찾았을 때 지성희씨의 어머니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평소 지성희씨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나보다 성희가 세상을 먼저 떠나야 내가 마음놓고 눈을 감을 수 있을텐데 라는 말을 했다. 몸이 불편한 지성희씨 온자서 살아가기에 이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지성희씨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몸부림쳤다.먼저 죽으라는 말이 너무도 모질게 느껴져서..평소 좀 더 잘해주지못한 것이 미안해서...
"세상에 이럴 수가....."
지성희씨가 하늘나라로 간 후 어머니는 지성희씨가 쓰던 방에를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지성희씨가 "엄마" 하고 나올 것만 같아서....
"인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가슴에 깊은 상처만을 남기고 떠나버린 지성희씨를 생각하면 지성희씨의 어머니는 부모와 자식간에 주어진 모진 인연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성희씨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딸을 가졌다는 이유로 항상 외롭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지난 날이 너무도 서럽고 억울했다.
지성희씨 어머니는 지성희씨가 다니던 작업장을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근로자들을 보면 지성희씨가 생각나서 도저히 작업장을 들릴 수가 없었다.
지성희씨와 함께 일하던 근로자들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성희씨의 어머니는 마음을 잡지 못해 여기 저기를 떠돌며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지성희-
38세의 나이에 이세상에 태어나 장애인이란 아픈 이름 때문에 그 흔한 사랑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나비같이 하늘나라로 훨훨 떠나버린 슬픈 영혼....
지성희씨는 지금 이순간에도 하늘나라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애인도 차별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