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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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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에 올려 졌던 글들

 

 

 

제목 : 조건은 있고 사람은 없다.


 얼마 전, 중고생들에게 신라시대 수로부인 설화에 대한 논술 시험을 치르게 했었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수로부인 설화 중 제일 인상적인 부분이라며 적어 놓은 글이 생각난다.
 '얼마나 미인이기에 용이 일부러 바다에서 땅으로 나와 납치까지 했을까? 여자는 얼굴이 예쁘면 다 해결되는 것 같다. 남자는 돈이 많아야 하고.' 
 

 나는 그것이 결코 좋은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만약 그렇게 단정지어야 한다면 인간 관계의 끈 안에는 조건만 있고 사람은 없는 셈이다.
 

성형 수술의 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요즘 흔히 하는 말이 '여자의 무기는 외모이고 남자의 무기는 경제력'이라는 말일 것이다. 남자들이 미인을 정복하기 위해선 그만큼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여자는 일단 예쁘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학부모들조차 아이들에게 성형 수술 시켜 줄 테니 걱정 말라는 식이기도 하다.

 결혼 정보 회사들에서조차 회원들을 A급, B급, C급으로 등급을 나누고 있다. 그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여자의 일 순위는 외모이고 남자의 일 순위는 경제력이다. 그리고 학벌, 재산 정도, 연봉이 대부분이다. 사람의 인격이나 올바른 가치관 같은 것은 꼴찌 등급으로 밀려난 지 오래인 것 같다.

 더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그러한 현상은 더욱 증가하고만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멋진 외제 차 뽑아 줄 테니 나랑 애인하자.', '나 돈 많으니까 나랑 결혼하자.'는 말을 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그러한 남자들의 유혹에 잘 넘어가는 여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도 된다. 또한 낮에는 커리어 우먼으로 밤에는 돈 많은 남자들이 드나드는 고급 주점의 호스티스로 사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한 얘기들을 접할 때마다 조건은 갖추어져 있지만 사람은 갖추어져 있는지 의심스럽다. 경제력과 외모를 중요시하며 등급을 나누는 이 사회에서 과연 사람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쾌락적인 성(性)을 돈으로도 사는 사회라지만, 어느 시대와 어느 세계를 막론하고 사람의 인격을 돈으로 살 순 없다. 인격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여자의 무기는 외모이고 남자의 무기는 경제력'인 세상도 정말 재미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격이란 것은 돈으로 살 수 없을뿐더러 한 사람의 이미지나 비전을 제시해 주는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인격이란 것이 점점 시궁창에 처박히듯 외면당하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과연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돈을 위해 낮에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밤에는 고급 주점에서 돈이란 물질에 자존심을 팔아 버리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일까?

 그러한 생각들을 하며 나는 요즘 어느 유명 작곡가가 쓴 노래 가사를 떠올린다.
 '너 너무 그러지 마라/ 그렇게 살지 좀 마라/ 별 남자 있는 줄 아냐 다 거기서 거기다/ 영어로 꼬시는 남자/ 명품을 건네는 남자/ 너 거기 혹하지 마라 마음만 다친다.'
이 노래 가사처럼 너무 조건만 따지다 보면 행복이나 사랑을 얻기보다 오히려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남는 것은 멋진 외제차도, 몇 백 만원을 넘나드는 명품도 아닌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그만큼 물질적인 환상에 기대어 자존심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잃어 갈 때 물질의 환상에 기대어 실수도 하는 법이다. 그것은 어쩌면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오는 도피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을 더욱 큰 외로움으로 몰아 가는 그늘진 도피일 수 있다.

 일단 그러한 것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지만, 더 우선 시 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 사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 사회는 결코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발전이란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사람을 우선시 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 어떤 외제차나 명품이라도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 있게 능력을 발휘 해 얻은 대가가 아니라면 다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며 살아  가는 정당한 자존심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남자의 무기는 경제력이고 여자의 무기는 외모'라는 말을 선뜻 꺼내며 이성을 유혹하는 사람을 다시 살펴보자. 그런 사람은 상대를 너무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조건 그 자체로만 보고 내게 사랑보다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 어떤 조건보다는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서로 존중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제목 : 대화가 싫으면 무인도로 가라


 며칠 전 어느 중학생이 ‘우리 아빠’란 주제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냈었다.

 ‘우리 아빠는 쓸데없는 얘기하는 걸 싫어하신다. 그래서 식구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나나 엄마한테 생전 전화 한 번 해 주실 줄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식구들이 아빠 비위를 맞추어 주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면서 식구들의 기분은 알아주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내 생일을 잊어버리고 지나쳐도 나는 꼭 아빠 생일을 챙겨야 한다. 그리고 내가 요즘 친구들끼리만 통하는 얘기를 하면 우리 아빠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신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고 화를 내신다. 너무 자기 고집이 강해서 아빠는 자기 고집 안에만 갇혀 사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자기 가족을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 생겨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자기한테 잘 해 줘야만 좋아하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희생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사실 나는 아빠가 가족들과 대화를 안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빠가 점점 멀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아빠는 그런 아빠의 고집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모르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점점 멀어진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이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루하루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 사람 하나하나 서로의 개성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혼자서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동료든 친구든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하게 된다.

 그 누구든 자신의 고집대로만 살려 하면 그 사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 옆에는 오래도록 남아 주는 친구가 없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갔을지언정 언젠가는 그 사람 곁에서 떠나간다.

 그러나 세대를 막론하고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재산으로 삼게 된다.
 대화하기 싫어하고 자기 고집에만 갇혀서 사람들이 자기만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만 더 커져갈 뿐이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그 사람 곁을 떠나게 된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장점을 사람들이 바라 봐 줄 수 없게 만드는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아이가 아빠에게 원하는 것은 대화이다. 아빠가 자신의 고집을 조금은 양보하고 마음을 열어 대화를 나누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자신의 생일도 챙겨 주길 바랄 것이다.

 어느 인기 가수의 노래 가사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오해 맘에 없는 말들로/ 서로 힘들게 해 (너를 너무 사랑해)/ 대화가 필요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물며 매일 얼굴 마주치고 사는 가족끼리 대화가 단절되면 서로의 마음이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 학생의 아버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가 배는 너무 고프다고 하면서도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지를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제가 뭘 먹고 싶어하는지 아시겠어요? 아마도 제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제가 뭘 먹고 싶어하는 건지 모를 거예요. 그런데 아버님께선 가족들이 자신의 고집대로만 맞추어 주고 아버님 기분을 알아주기만 바라십니까? 아버님이 말을 안 하시는데.’

 

 

 


제목 : 자신을 버리진 말자.

 

얼마 전 뉴스에서 부산의 어느 젊은 4년제 대학 졸업자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제는 일의 소중함과 보람을 느낀다며 땀을 닦아 내던 그 젊은이의 모습. 놀아 보니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값지게 느껴진다며 웃던 그 젊은이의 얼굴. 환경 미화원도

결코 하찮은 직업만은 아니란 것은 깨달은 듯 열심히 일하는 그 젊은이의 자세.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한 내가 왜 그런 하찮은 일을 해야 하냐며 투정 아닌 철없는 투정을 부리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젊은이의 모습에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자신감을 엿 볼 수 있었다. 자존심이란 게 별거냐

그 젊은이가 보여 주는 그 용기와 자신감이 진정한 자존심이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여가수가 노래한 가사에도 나와 있듯
"너무나 어두웠던 시간 매일 밤 방황했던 날들/ 이렇게 살 수 만은 없어 내게도 꿈은 있으니까/모두들 나를 무시했지만/ 결국엔 모두 부러워했어/ 이제는 당당하게 일어서/ 마음껏 소리질러/ 외쳐봐/ 야이야이야 이젠 끝났어/ 바이바이야 힘든 시간들/ 그렇게 원하던 나만의 꿈을 이룰꺼야/ 야이야이야 포기하지마/ 바이바이야 꿈이 있다면 안 될게 어딨어/ 한 목숨 걸고 부딪혀 봐?라는 말이 정말 필요한 것이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실직을 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실직자는 점점 늘어가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점점 궁핍해져 가는 경제력과 실직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직으로 우울증에 걸린 젊은이들의 5명 중 1명 꼴로 자살을 시도한단다. 그리고 그 중의 10%가 자살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반복적인 실패로 인해 자신감을 잃게 되면 삶의 의미도 잃어버리게 된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주변 환경에 대처 해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상실해 간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감이 결국 자신을 버리는 당연한 듯한 포기에서 온 인내심의 결여가 아닐까?
어려운 상황에 맞춰 자신의 자만심을 조금 낮춘 뒤 당분간만 한 발짝 후퇴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아무리 불황이라도 중소 기업이나 서비스 업계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아직도 많단다. 찾아보면 작은 일이라도 일 할 수 있는 자리 하나 쯤은 찾을 수 있다. 조금만 자존심을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면 그래도 그렇게 희망이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어둠으로 몰아 자살을 선택하느니 한 번 쯤은 기다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부모님 없이 10대라는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돌보고 살림까지 해 가며 꿋꿋이 살아가는 소년 소녀 가장들도 있다.

조금 높은 곳에서 사는 법을 배웠다면 낮은 곳에서도 사는 법을 배우는 거라 생각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젊음이라 생각된다.

미래가 없는 것보다는 그래도 미래가 있는 것이 젊음이기 때문이다.

 

 

 


제목 :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이제는 “나”라는 개인

 

 “바꿔 바꿔 바꿔/  내 모든걸 다 바꿔 바꿔 바꿔/ 사랑도 다 바꿔 바꿔 바꿔/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 세상을 다 바꿔”라고 외치던 작은 여가수의 강한 목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걸까.
 검찰 개혁에서부터 사회 전반적인 개혁의 바람이 계속 되는 듯 하다. 이제는 호주제가 폐지되는 현실까지 맞이하게 된 것이다.

 왜 이혼녀의 편의를 봐 줘야 하냐며 족보법을 더 강화하자던 유림회의 의견에서부터 시작해 말이 많던 호주제 폐지 문제가 결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호주제 폐지로 변화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자녀가 꼭 아빠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 더구나 아내나 딸이 가족의 대표가 되는 것이 가능해 진다. 또한 미혼모의 자녀는 자신을 대표로 하는 새로운 신분 등기가 가능해져 입학?취업?결혼할 때마다 좌절감을 느끼도록 해 왔던 차별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혼 가정의 자녀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대포로 한 가족부가 가능해 진다.

 물론 이것 외에도 호주제 폐지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호주제 폐지로 인해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나” 개인으로써의 신분과 사회적 책임감이 더해지는 면도 있는 것이다. 누구의 아빠나 누구의 엄마 그리고 누구의 남편이나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의 남편이나 나의 아내 또는 나의 엄마나 나의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이혼율이 더 많아 질 거라는 둥, 개인중심 기록으로 바뀌기 때문에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더욱 심해질 거라는 둥, 결혼 제도가 깨질 거라는 둥.
 그리고 유림회에서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주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통적인 족보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호주제 폐지로 인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무얼까?
 아마도 존중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제 “나”라는 개인으로 모든 것이 기록되고 인정받기에 “나 뿐”이 아닌 “나조차”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이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만이 아닌 “나도 할 수 있는”이 되면 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누어 안 맞으니까, 만 명이면 만 명의 사람들 모두 자란 환경이나 개성이 다르듯 결국 서로가 “나”라는 것으로만 통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린 다르다가 아니다.

 이제는 “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해체되고 나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나”이기 때문에 서로의 존중성을 인정해 주고 서로가 “나”로 통하여 “우리”라는 통로를 찾으면 된다.

 “몇 십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영화도 나는 멜로, 너는 액션/ 난 피자, 너는 순두부/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라는 노래 가사처럼.

 

 

 

 

제목 : 양성 체제를 즐기자.


 “나 죽는 꼴 보려고 그러니/ 내 속 그만 태우고 이젠 내게 돌아 와/ (중략) 나 살고 싶어(나도 살고 싶어)/ 나 살고 싶어(나도 살고 싶어)”란 노래 가사를 외치는 어느 혼성 듀엣 가수의 노래 가사만큼이나 요즘 살고 싶어 속앓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려워져 가는 경제와 늘어가는 실직으로 인해 헤어지는 연인들도 많아지고, 부부 싸움도 잦아지고, 아이들의 투정도 늘어간다. 더 심각하게는 자살까지도 감행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인지 살기 위한 생존 법칙이나 성공 법을 제시를 해 놓은 책들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만큼 누구에게나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살아 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이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 법칙으로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사회가 원하는 것은 바로 양성성이라고 한다. 즉, 소프트한 심성에 보살핌 같은 여성적 전략과 강하고 합리적인 남성적 전략을 동시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성별에 관계없이 양성성을 활용해 시대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이나 남성이라는 것 자체를 무시하고 N개의 성을 존중하자는 주장이다.
 N개의 성이란 다양한 남성상과 다양한 여성상을 설정하다 보면, 결국 인간에게는 다양한 유형의 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란 얘기도 된다.

 하나의 가정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결합하고 화합하여 하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듯, 이제는 개개인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결합시키고 화합 시켜서 하나의 복합적인 인격 체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 시대의 사회적 코드이다.

 그것은 어쩌면, 물과 기름을 나누듯 남성과 여성을 분리 시켜 정의하고 강요해 왔던 것을 하나의 복합 매체로 통합시키자는 뜻도 될 것이다.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는 저래야만 한다가 아니다. 남자이지만 나도 하나의 성이기 때문에 이럴 수 있고, 여자이지만 나도 독립된 하나의 성이기에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라와 나라와의 문제만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시대를 만들어 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도 단지 여성과 남성이라는 경계선으로만 구분하지 말고 성에서의 글로벌 스탠더드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의 변화 속에 살고 있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느냐?’, ‘피곤하지 않느냐?’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변해 가는 세상 속에 그 변화를 즐기며 ‘나’를 가꾸고 성장 시켜 나가는 것이 ‘나’를 살리기 위한 길인 것이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변화하는 사회를 막을 수는 없다. 변화하는 사람들의 기호나 문화의 체제를 막을 수는 없다.
 막을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즐기며 사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제목 : 2030 개혁 바람에 외로운 아줌마.


 요즘 TV 뉴스를 보며 한숨짓는 분들이 계시다.
 “또 학교 늦기 전에 밥 먹고 학교 가라/ 또 회사 늦기 전에 밥 먹고 회사 가라/ 돈 걱정하지말고 공부만 잘해다오/ 돈 없어 죽겠으니 돈 많이 벌어와라/ 우리 옆에 항상 이 험한 세상에 큰 다리가 있어/ 때론 지겹고 사랑스러운 단 한 사람”
 그 사람은 바로 아줌마이다.

 아줌마는 바로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다. 그런 어머니들이 호주제 폐지다 여성들의 대거 사회 진출 소식에 흔들리고 있다.

 “처녀 땐 죽자살자 결혼만 해 달라던 남편은 귀찮다며 술 취 해 자버리고/ 열 달을 뱃속에서 힘들게 키워왔던 자식은 이제 와서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며 소리치고/ 그렇게 나이만 먹어가고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나 아까운 청춘”의 대표적 케이스가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들 즉 아줌마들은, 특히 딸을 가진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차면 당연히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딸들이나 아들들의 세대는 다르다. 육아 문제로, 경제 문제로 희생해야 하고 부담을 안아야 하는 결혼 생활이 젊은이들에겐 당연하게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좀 더 즐기며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어머니들, 즉 아줌마들에게 희생이란 것은 가족을 위한 당연한 아름다움으로 교육 돼 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왔다.

 또 한편으로 아줌마들은 자기 딸만큼은, 자기 자식만큼은 자신처럼 살지 않길 바라시기도 한다.
내 자식을 위해서는,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되지 않기 위해 편하게 변해 가는 세상이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정작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중년을 넘어 서는 아줌마들은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져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며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살림 밖에 모르는 아줌마들을 대접해 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이 더욱 심화되어 가는 듯 하다는 게 문제이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남편은 변화하는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에게 눈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서 살림만 해 온 아내를 무식하게 보거나 귀찮아하기 일쑤다. 더구나 하나라도 더 주고 싶고, 하나라도 더 해 주며 키워 온 자식은 희생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나타내며 뜻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평생 살림만 해 오며 가족들 뒷바라지 해 온 아줌마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살림도 귀찮아 지고 하루 한 끼라도 대충 때우고 싶어진다. 그리고 사회에서나 가족한테서나 소외되어진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아줌마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정말 애석하게도 이런 아줌마들이 갈 곳이 거의 없다. 이젠 나이가 들어 직장을 구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적은 돈으로 여가를 즐기며  다시 한 번 삶의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돼 버린다.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점점 여자들의 사회 진출을 부추기고, 그런 여자들의 모습을 확대해 가고 있지만, 정작 아줌마들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흡수되지 못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아줌마들을 위한 사회의 노력도 미흡하다. 아줌마들의 그런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건전한 사회적 시설이 없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더욱 살아 보겠다고 자꾸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 자식들. 가정 안에서만은 해결 할 수 없는 아줌마들의 소외감과 외로움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줌마들이 사라지는 사회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그런 아줌마들이기 때문이다.

  “또 학교 늦기 전에 밥 먹고 학교 가라/ 또 회사 늦기 전에 밥 먹고 회사 가라/ 돈 걱정하지말고 공부만 잘해다오/ 돈 없어 죽겠으니 돈 많이 벌어와라/ 우리 옆에 항상 이 험한 세상에 큰 다리가 있어/ 때론 지겹고 사랑스러운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바로 아줌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줌마’라는 존재들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관심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제목 : 결혼 보다 자유로운 싱글을 꿈꾼다.


 성인이 된 사람들이라면 남녀를 막론하고 독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게 된다.

 언제나 가족들에게 보호받던 공간에서 성인으로서 홀로 서기를 꿈꾸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제껏 누려 보지 못한 자유의 통로를 독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혼 보다 자유로운 싱글이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지는 추세다. 그러한 변화는 결혼이란 틀 속에서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생각도 엿 볼 수 있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사회가 다가 왔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결혼이란 것이 아직도 여자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희생을 요구하는 곳이다. 또한 남자에게는 경제적인 책임과 구속의 시작이라는 게 결혼에 대한 이미지이다.

 어느 여론 조사에 따르면 결혼에 대한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 하겠다는 쪽은 거의 여자들이다. 2003년 현재, 여자들은 50% 이상이 결혼을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50% 이상의 남자들은 결혼을 늦게 라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의견의 차이는 무엇일까?

 흔히들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양쪽 어깨에 짐 하나씩 얹고, 양손에 아이 하나씩을 붙잡고, 등에는 또 다른 짐을 하나 더 들쳐 메는 것이라 말한다.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시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친정도 챙겨야 하며, 남편도 챙겨야 하고 자식들도 챙겨야 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많아진 2003년 현재에는 여자들의 경제력까지 추가되어진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결혼 한 여자들 대부분이 남편들을 평가하는 말들은 20세기나 21세기나 다를 게 없다. 여자들은 때때로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라도 넣어야 하지만, 남편들은 아내들이 잔소리를 해야지 겨우 친정에 안부 전화 한 번 해 줄 정도다. 더구나 아이들 문제도 그렇다. 남자들은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나 아파도 그저 약만 사 주고 걱정 해 주면 되지만, 여자들은 하나하나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며 챙겨야 한다.

 여자에게 있어 남자란 존재는 언제나 '한마디 단 한마디 전화해 축하한다는 말/ 내 생일은 너 하나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는데/ 잔다고 피곤해 잤다고 그 말 한마디에 난 죽었어/ (중략) / 차차 나아지길 바란 차차 좋아지길 바란 욕심이 너무나 컸나 봐/ 알면서도 말야/ 차차 나아지길 바란 차차 좋아지길 바란 내 욕심에 욕심을 더해서 널 차버릴 거야/ 미련한 믿음에 아파한 내 마음을 너는 모르지'란 노래 가사와도 같은 존재다.

 그러기에 이제는 여자도 남자들처럼 합리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며 자유로운 싱글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러나 싱글의 생활이 누구에게나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당당한 것만은 아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인 부담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싱글 생활을 해 나가는 여자들은 소수다. 다수가 독립하고픈 마음에 잘못된 동거의 유혹에 빠져 낙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만큼 결혼도 못 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독립도 누리지 못 한 채 상처받는 여자들도 많다.
 아니면 잘못된 사랑으로 인한 동거로 '작은 것 하나도 모르는 널 너를 내가 왜 미쳐 가도록 사랑 사랑했던 내가내가내가 불쌍해'로 끝낸 채 결국 여자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이혼율이 늘어가고 여자들의 결혼 율이 줄어들어 점점 아이 낳기를 권해야 하는 사회가 되어 간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혼 없이 가정을 지키는 부부에 대한 혜택도 해 주겠다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혼율을 줄이기 위해 결혼 전에 올바른 결혼 생활에 대한 상담도 해 주겠다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혜택도 좋지만, 한 쪽으로만 많은 희생을 부담하지 않는 사회. 서로 노력하며 서로를 배려 할 줄 아는 사회.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체험 해 보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이 이루어지는 사회 분위기가 더 시급하다.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모르기에 바보처럼 관대해지거나 뒤에서 욕을 하기 쉽듯,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체험 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가 조용한 목소리로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것이 결코 남자의 잘못만도 아니고 여자의 잘못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좀 더 이해해 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목 : 올바르게 돈독 오른 사람되자


 '머니가 많은 사람/ 머니가 없는 사람/ 머니가 어딜 가도/ 눈물의 씨앗이라 하겠어/ 그만 그만 그게 뭔데 자꾸 날 울려/ 난 머니말고 순수한 사랑을 원해 필요해/ 머니머니 해도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이란 가사가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10억 모으는 방법이란 주제의 사이트가 큰 인기 몰이를 하는 추세다.

 돈을 모으는 이유도 여러 가지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 40대 중반 이후의 삶을 평화롭게 즐기고 싶어서, 그냥 돈이 좋아서 등등. '머니로 뭐든 다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수도 있어/ 머니로 예뻐질 수도 있고 사랑도 쉽게 얻을 수 있어/ 그만 그만 그게 먼데 자꾸 날 울려'라는 말이 어떠한 법칙처럼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회적 불안정이 제일 큰 이유다.

 언제 또 경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는 현실에 대학 졸업생은 늘어가고, 일자리는 제자리인 만큼 개인 개인에게는 돈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가는 것이다. 반면 사회적으로는 물가가 오르는 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실질적인 소득이 줄어드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외환 위기로 경제적 불안정이 안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불투명하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졌다. 1998년 이후 정년을 보장해 주는 회사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기에 돈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더 커져만 가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그 불안이 어느 정도 덜어질 텐데. 돈만 있으면 그래도 나의 노후가 초라하진 않을 텐데. 돈만 있다면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편안한 생활을 누릴 텐데. 그러려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텐데.

 이제는 돈독 오른 사람을 흉하다고 욕할 수만은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히려 우리 함께 돈독 오르자, 돈독 오른 만큼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모을 수 있는지 재테크에 대한 정보를 나누려 한다.

 그러나 돈독 오르는 방법에도 문제는 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발 품 팔아 가며 자신의 능력껏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탈세나 불법을 밥먹듯 해서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열심히 돈 모아 주변의 어려운 사람이나 후배들을 챙길 줄도 알지만, 후자는 열심히 돈 모아 룸살롱이나 돌아다니며 악취를 풍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돈독 오를 것인지에 대한 방법도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젊은 부자들은 결코 몸값이 비싸지 않다. 발 품을 많이 파는 것이다.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얼굴을 내밀고 정보를 모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던 열심히 뛰어 드는 것이다. 여기저기 재빠르게 얼굴을 내밀어 인맥을 넓히고 그 인맥을 통해 자신이 뛰어 다닐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독 오르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미지에 투자하는 준비 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다양한 비전의 틈새를 많은 사람들에게 내 보일 수 있는 마케팅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든 책상 앞에 앉아서든 계획을 세우자.
 내가 얼마 동안의 준비 기간을 가질 것인지, 어떤 분야에서 나의 비전을 뻗어 나갈 것인지. 또한 쉼 없이 발 빠르게 정보를 검색하고 어떻게 하면 나를 마케팅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움직이는 일만 남는 것이다. 준비한 만큼 망설임 없이 뛰어 드는 일만 남은 것이다.

 앞으로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자만이 살아 남는다. 그만큼 올바르게 돈독 올라서 올바르게 재산을 모으고 싶다면 자신의 비전을 넓히는 철저한 준비 기간도 필요한 것이다.

 언제나 준비 된 자에게는 기회가 찾아 들기 마련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그러한 기회들이 자꾸 나에게 찾아들게끔 해야 한다. 확실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대한 추진력으로 일어나서 뛰어야 한다.

 즉, 어려워지는 경제와 사회적 분위기만을 탓하고 비관하며 앉아 있지 말자. 그렇게 앉아 있으면 자신에게 남아 있는 작은 비전조차도 사라져 버린다. 결국 아무런 기대도 해 볼 수 없는 시간의 낭비만 남을 뿐이다.

 확실하게 목표를 세우는 것이 올바르게 돈독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발 품을 팔아야 올바르게 돈독 오르는 사람들의 생활이 보장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제목 : 올바른 자존심.


 며칠 전, 자주 들르는 방배점 뜨레쥬르 카페에 갔을 때 내가 가르쳐 준 ‘케이크’란 표기법이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제자들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날 따라 유심히 케이크 진열대에 놓인 이름표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정확히 ‘케이크’가 아닌 ‘케익’이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카페 매니저에게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기업이 만든 카페인데 표기법을 이렇게 잘못 써도 되나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빵을 사려고 다시 들렸더니, 그 카페 매니저가 나에게 하는 말이 ‘어제 말씀해 주신 케이크 표기법을 본사에 건의했어요. 기업 이미지도 있고 하니 이름표를 수정해 달라고요. 본사에서 안 해 주면 저희가 자체적으로라도 하겠다고 했어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이다. 그리고는 다음주에 이름표들이 ‘케이크’라는 바른 표기법으로 수정 돼 있을 거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받아들일 줄도 아는 자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충고나 지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잘못된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수정할 줄도 아는 자세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철모르는 아이가 한 말이라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은 바로 올바른 자존심과 고집만 센 자존심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의 자세다. 즉, 올바른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스스로 몸을 낮추었지만 이미 마음은 높아져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고집만 센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몸을 높였지만 마음은 낮아져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몸을 낮추었지만 이미 마음은 높아져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에도 비교 못 할 자부심 있지/ 무엇보다 자랑스런 너희가 있지/ 멋진 우리 변치 말자/ 지금처럼만’이란 미래의 평가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몸을 높였지만 마음은 낮아져 있는 사람은 ‘꼴통같이 타협도 싫고 독종같이 고집만 세지/ 지켜보느라 불편했지?/ 평소에는 무심의 극치 눈치, 코치 길 잃은 천치’라는 미래의 평가가 더 많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올바른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그러나 고집만 센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소심함을 감추기 위한 자기 방어이다. 고집만 센 자존심은 곧 남들이 자신을 존경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스스로의 몸을 높였지만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은 낮아져서 남들 눈에는 독한 사람으로만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 카페의 매니저란 사람이 올바른 자존심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카페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기에 무심코 던진 충고조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충고를 해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로써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자신의 내적 이미지를 높인 것이다.

 그런 그 카페 매니저의 태도 덕분에 나는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스스로를 높이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것이 나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삶의 지혜임을 알았다. 나를 낮추어 상대를 존중하면서 나도 존중받을 수 있는 자세마저 새삼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인간관계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부부 사이나 연인 사이에 이러한 올바른 자존심의 지혜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조화로운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제목 : 교활한 문화 전략을 찾아라.


  플래시 몹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고 한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시작되어 샌프란시스코, 로마, 도쿄 같은 대도시로 전파되었다는 그 플래시 몹이 어느새 우리나라에도 상륙한 것이다.

 누가 모였는지, 왜 모였는지 서로 물어 볼 필요 없이 그냥 재미 삼아 어떤 행동 규칙을 여러 명이 따라서 하는 것이 바로 이 플래시 몹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플래시 몹 행사는 지난 8월 30일 저녁 6시 강남에서였다.
 6시에 모여 1분 동안 핸드폰 알람을 울리고, 4분 동안 ‘안녕히 가세요.’, ‘행복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행동 규칙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21세기 문화 전쟁 속에서 대중들은 문화이기 때문에 제공할 수 있고 제공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기괴함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지금의 대중들은 그만큼 고독하다.

 개인용 PC의 보급 화와 전반적인 사회의 맥도널드 화를 통한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현실 속에서, 문화만큼은 익명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실험을 원한다.

 그것은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게 해 주는 탈출구가 문화라는 것에서는 가능하다고 믿는 기대에서 출발하기도 하다. 즉, 문화라는 것만큼은 특이해도 된다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만큼은 조금 충격적이고 기괴한 형태를 제시하고 보여 주워도 된다 생각하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다.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굳이 나를 드러내거나 알리지 않아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게 상례이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은 점점 ‘다를 게 뭐가 있어/ 겉으로 들춰내면 똑같이 사는 얘기 그렇고 그런 얘기/ 무

너진 우릴 보며 웃고 있죠’지만, 문화만큼은 ‘진짜는 가짜처럼 가짜는 진짜처럼/ 어떤 게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허우적  대는 모습들/ 미쳐가고 있는 세상 그 속에 갇힌 슬픈 우리들/ 빠져나와 우릴 돌아봐/  화면 속에서 망가지지 마’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화 전쟁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대중 문화인들은 교활해 져야 한다.  '(디지털) 입 소문'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이용한 치밀한 전략으로 교활하게 파고들 줄 아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저 홍보 효과만을 꾀하는 튀는 행동보다 세대간의 대화나 그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침투 속에서 민첩한 하나의 문화 트랜드를 형성 시켜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대중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저 한 순간의 흥행을 위한 상품성이 아닌 진정한 트랜드 형성에 목말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대중들이다. 그것은 유행에만 민감한 따라하기 식의 획일성과는 또 다르다.
 많은 사람이 원하고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사람의 심리 속에는 결국 하나의 트랜드에 목말라하는 밑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한 더욱더 고독하고 개인화 되어 가는 세상이지만, 그 반대로 무엇인가를 함께 공감하며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살 수 없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미 맥도널드 화에 익숙해져 있는 대중들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전혀 예측 불가능한 문화의 대혁명은 원하지 않는다. 예측이 가능하면서도 새롭고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혼자가 아닌, 얼마든지 사람들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참여 문화를 원한다.

 

 그러기에 대중을 위해 문화를 이끌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투명성 있으면서도 교활하게 치밀한 문화 전략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 아는 사실이듯 실력 있는 전문 분야의 세분화된 인력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창작 표현의 다양한 코드를 인정하는 터전을 만들어 주며, 대중이 함께 소리 지르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라이브 무대를 전면 확장해야 한다.

 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계의 ‘스타 지식인’을 만드는 일이고, 늘리는 일이다.
 잦은 언론 매체와의 접촉을 피하고 진정한 문화 지식인으로서 문화 발전이 핵심이 될 수 있는 연구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터전들이 하루 빨리 조성되어야 한다. 언론이 아닌 대중들 속에 침투되어 대중들의 느낌을 함께 느끼며 대중을 위한 참여 문화를 만들어 내는 문화인으로서의 ‘스타 지식인’이 필요한 것이다.

 언론의 입 소문을 피하고 대중의 입소문과 대중의 흐름을 읽어 내는 문화 연구자로서의 ‘스타 지식인’이 이제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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