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30화> 배수진

바다의기억 |2006.08.21 23:55
조회 7,894 |추천 0

월요일입니다.

 

체력적으로 몹시 빡센 요즘이군요.

 

몸보신이라도 좀 해야 하나....

 

그래도 더위는 한결 수그러 들어서

 

밤엔 잘 잘 것 같습니다.

 

============================ 선풍기 내 사랑 ============================

 

 

입원 후 4일이 지났다.


이젠 얼굴에 붓기도 많이 빠졌고,


옆구리에서 나오던 피도 스실스실 줄어들어


이젠 크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요령이 붙어서 많이 편해진 상태였다.



민아 - 오른쪽 다 됐다, 이제 왼쪽~.


기억 - 으차....


민아 - 옳지~. 시원해?


기억 - 응.



일단 가장 크게 변한 건


나 혼자 몸을 틀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민아나 한나에겐 거의 중노동이나 가깝던 일이 사라진 만큼


내 마음도 홀가분했다.


이제 어지간한 일은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아 - 저....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이제... 이렇게 몸 닦고 하는 거...


한 사람만 도와줘도 될 것 같지?



이런 내 마음과 같았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그녀.


난 민아가 계속 한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라 짐작하고


혼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 응, 뭐 이제 몸에 힘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고..


조만간 일어나 앉을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민아

- 그럼.... 저기.... 공연 끝날 때까지...


오후엔 한나랑 있으면 안 될까?


연습 끝나면 바로 뛰어올 테니까...



하지만 민아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요는, 그녀는 한나에게 내 간병을 맡기고


연극부에 연습하러 가겠다는 건가?


아니지, 설마 그런 뜻이겠는가?


아무리 그녀가 내 심정을 모른다 한들....



기억 - 무슨 소리야? 그게...


민아

- 어제 연출오빠한테 연락이 왔는데...


새로운 역할 배정도 끝났고 대본도 다시 수정되었데.


이제 공연까지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도 다시 참가를.....



기억 - 잠깐만, 그러니까, 나를 남겨두고, 연극 연습을 가겠다고?


민아

- 아까 기억이도 이제 한 사람만 도와줘도


될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기억

- 그거야 네가 있을 줄 알고 그런 거지!


한나가 내 여자친구야?


왜 한나가 여길 지키고 있어?



민아

- 어제 한나하고도 이야기 해봤는데.....


한나가 그렇게 해준다고....



기억

- 됐어, 필요 없고,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쉬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민아 -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연극 준비 때문에....


기억

- 지난번에 말했잖아! 나 이렇게 만든 놈 안군이라고!


어차피 범인들만 잡히면


다 밝혀질 일이라 그냥 참고 있었더니


이젠 제 발로 그놈 입안으로 걸어 들어가겠...


켈록! 아악... 이런 염ㅂ.....



얼마나 화기가 치밀었는지 멈췄던 피가 왈칵 쏟아지면서


입에선 단 한번도 담아본 적 없는 욕설이 허리까지 튀어나왔다.


난 간신히 남은 욕을 속으로 삼키며 기분을 진정시켰지만,


이미 그녀의 눈은 화등잔만큼 커진 뒤였다.



기억

- 아무튼 절대 안 돼. 범인들 잡히고,


안군 그놈이랑 나란히 감방 간 뒤에는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고.



민아

- 난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야,


네 생각에도 안군오빠가 그런 것 같아?



다시 나에게 말대꾸를 하기가 겁이 났는지,


그녀는 구석에 얌전히 앉아있는 한나에게 질문을 돌렸다.



한나 - 저도.... 오빠 같은 상황이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민아 - 아니, 난 순수한 네 생각을 묻고....


기억 - 그만해! 나 분명히 가지 말라고 했어, 가면 그날로 끝이야.


민아 - ....뭐? 끝이라니?


기억 - .......



난 내심 속으로 철렁했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무릎을 꽉 움켜지고 날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민아 - ......



이내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버리는 그녀.


가슴 안쪽에서 아릿한 아픔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내가 너무 심한 걸까?


그녀가 병실 밖으로 나간 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나가 내게 다가왔다.



한나 - 괜찮겠어요?


기억 - 안 괜찮아도 어쩔 수 없잖아. 양보할 일이 따로 있지.


한나 - 정말로..... 안군 오빠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기억

- 그럼 누가 있는데?


지난 번 일도 그렇고 분명 계획적으로 누가 지시한 거야.


절대 자기들끼리 그런 게 아니라고.



한나 - .......


기억 - 그리고.... 미안하지만 통 좀 받쳐줄래? 아까부터 급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민아를 따라 나가고 싶었다.


좀 더 차분하게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으론 혼자 볼일도 못 봐서 한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왜 내가 이런 처지가 되어버린 걸까?


말할 것도 없이, 그게 다 안군 때문이다.



한나 - 정말 안 되겠어요? 언니한텐... 정말 중요한 일인데...


기억 - 아무리 그래도 안돼.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거길 보내?


한나 - 그럼.... 차근차근 부탁을 해봐요.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기억 - ........ 알았어.



하지만, 그날 그녀는 병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메모 한 장이 놓여있었을 뿐...


=미안해, 하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 애써온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

연습 끝나면 금방 달려올게.

언제나 기억이를 사랑하는 공주가=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그녀는 연극연습을 하러 가게 되리란 걸....


하지만 그게 이렇게 일방적인 방법이 될 줄은 몰랐다.


저녁 무렵, 병실을 찾아온 건 역시나 한나 혼자였다.



기억 - 민아는? 연습?


한나 - ...네.


기억 - ....... 등 좀 닦아 줄래?



혼자 나를 간호하는 내내 그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내가 무료하지 않을 정도만 말상대를 해주며


과일을 깎아주고, 땀에 전 팔다리를 닦아 줬을 뿐.



기억 - 민아는 네가 뭔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맡긴다니?


한나 - 잘못이야 했죠, 그 때 저만 없었어도....


기억 - 그런 이야기는 말자. 그전에 내가 네 이야기를 한 게 실수였어.


한나 - 아녜요, 제가 괜히 불꽃놀이 가자고 한 것 때문에...


기억

- 에휴, 그것도 내가 쓸데없는 부탁을 한 탓에 그런 거잖아.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 뭐....



한나 - 아뇨, 그 전에 제가....


기억

- 그만 그만 그만~.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야?


지금 이런 이야기 해봤자 바뀌는 것도 없고,


진짜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우리끼리 잘잘못 따질 이유가 없잖아.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은 난


잠시 동안 민아의 일에 대해 고민했다.


난 과연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프로세스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난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나?


어차피 연극과 나는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다른


am, fm 같은 관계일 수 있으니....


하지만 건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그녀를 막은 것도 아니고,


다 그녀의 안부가 걱정돼서 한 일인데,


내 말은 믿을 생각도 않고 늘 안군만 두둔하고 나선 데다


끝끝내 한나만 내 곁에 남겨둔 채 연습실로 가버리고.....


분명 문제를 제기해 마땅한 일이다.


분명 가면 끝이라고 까지 이야기 했는데....


그녀는 내 말을 우습게 생각한 걸까?



갑자기 서글픈 기분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왜 이럴까. 몸이 이렇게 되니 마음까지 약해진 걸까?



한나 - ...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기억 - 큼, 아, 아냐, 아무것도.. 지금 몇시지?


한나 - ..... 8시 40분이요. 조금 있으면 언니 오겠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를..... 난.... 대체.....



기억 - ..... 한나야.


한나 - 네.


기억 - 문...... 잠가버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나 - ..... 예?


기억 - 잠그라고!! 빨리!!



주춤주춤 행동을 망설이던 그녀는


내가 버럭 역정을 내자 마지못해 병실 문을 잠그고 돌아왔다.


이번 한 번만은..... 내 고집을 부릴 거다.


절대로 굽히지 않고 내 의견을 관철시킬 거다.


=철컥. 철컥 철컥.=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 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소리가 들렸다.



민아 - 어? 기억아~. 기억아, 안에 있어? 기억아~. 한나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찾는 그녀.


점점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압박감이 나를 괴롭혔지만,


문을 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나 - 오, 오빠.... 안 열어 줄 거예요?


기억 - 내버려 둬. 이번은 절대 양보 못해.


=쿵쿵쿵=


민아 - 기억아~ 기억아, 안에 없어?



안에서 아무 응답이 없자 민아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두드림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인지,


정말 진동 때문에 상처가 울리는 것인지 몰라도


옆구리에 난 상처가 욱신하게 아파왔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난 밖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억 - 그래! 있다!


민아 - ..... 어? 기억아, 무, 문이 잠겼어! 옆에 한나 없어?


기억 - 일부러 잠근 거야! 이제 올 필요 없으니까 오지 말라고!


민아 - 무, 무슨 소리야, 그게? 한나야! 너 옆에 있지! 빨리 문 안 열어?


기억 - 한나 없어! 내가 잠근 거야!


민아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한나 너 정말 이럴 거야? 빨리 문 열어!


기억

- 왜 말이 안 돼! 사람 반병신 되니까 그것도 못할 것 같았어?


이제 혼자 잘~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가서 연극 연습이나 실컷 해!!



민아 - 기.... 기억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어서 문 열어줘~.


기억 - 갑자기라니? 분명 이야기 했잖아! 가면 끝이라고!


민아 -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기억아, 이러지 마, 우리 다시 이야기를...


기억 - 됐으니까! 가!! 가라고!!! 가....아아아악...아악.... 쿨룩! 아악....



아무래도 무리를 한 것인지,


거친 기침과 함께 튜브 끝에서


피가 츄르륵-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난 몸을 웅크리며 통증을 참으려 했지만


극대값에서 f'(x)=0 으로 변해버린 통증곡선은 내려올 줄 몰랐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만 조금씩 그 통증을 덜어주는 듯 했다.



민아

- 기억아, 괜찮아? 빨리 문 열어봐~!


한나 너 옆에 있잖아! 문 열어!! 빨리 문 열어~!!



한나 - 오, 오빠 괜찮아요? 무.. 문 열어 줄게요....


기억 - 열지 마! 정말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으흐으윽....



수십 개의 송곳이 가슴 속에 박혀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발랑거릴 때마다 그 표면을 찔러서


핏방울을 맺히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은 굽힐 수 없었다. 이번만은 절대로....



민아 - 한나 너 정말 혼날래?! 너까지 이러기야!


한나 - 어, 언니 미안해! 그치만 오빠가...!!


민아 -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금방 열쇠 가져다가....


기억

- 이미 끝났다는 데 애꿎은 한나한테 왜 그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민아 - 흑...... 기억아.... 정말 왜 그래.... 왜.....!


기억 - .....너....너야말로.... 왜 그랬어....! 내가...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난 이불을 악물고 울음소리가 새는 걸 참았다.


이번 한 번만 독해지자.... 이번 한 번만.....!!



민아가 병실 앞을 떠난 건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 사이 병원관계자며 경비며


수많은 사람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난 그때마다 농성하는 철거민처럼


배수진을 치고 그들의 진입을 막았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한나 뿐.



기억 - 이제 들어가 봐.... 한나야.


한나 - .... 농담해요? 그 난리를 치고 어딜 들어가요? 언니한테 죽으라고요?


기억 - ........ 그... 그런가?


한나 - 어떻게 할 거예요! 책임져요!!



민아와 내가 싸우는 사이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된서리를 맞은 그녀는


우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빽 고함을 질렀다.



기억 - 사건 경위서라도 써줄까? 다 내가 시킨 거라고...


한나 - 지금 그런 게 통할 것 같아요?


기억 - 그럼....어쩌지?


한나 - 몰라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기억 - ....... 아..... 알았어.



끊임없이 불만을 툴툴거리며 내 침대 옆에 이부자리를 펴는 그녀.


이거 정말 그녀에겐 미안한 일을 시킨 것 같다.

추천수0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