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진(#21)

창작 東 |2006.09.18 09:14
조회 605 |추천 0

  숙모님의 얼굴을 마주하고 병실에 있기가 죄송스러워 최 교수가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개그 프로그램이 하는지 휴게실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손뼉 치며 웃고 있었지만 최 교수는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로지 지금 최 교수의 머리에는 준혁의 생각뿐이었다. 분명 준혁이 출국하기 전날 모든 것을 깨끗이 잊었다고 했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 교수는 준 혁의 입에서 지은을 찾는 모습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우혁아! 여기서 뭐하니?" 어느 샌가 준혁 어머니가 최 교수 옆에 서 있었다.

 "예?" 최 교수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놀래?" 준혁 어머니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최 교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아…무…것도 아…넙니다. 준혁이 깨어났나요?" 최 교수가 말을 더듬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계속 누군가를 찾는데 난 도무지 누군지 모르겠구나. 담당 의사가 회진을 돌고 가더니 보호자를 찾는다고나. 병실에 가 있으렴." 준혁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복도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최 교수가 준혁 어머니가 걸어간 복도 반대 방향인 준혁의 병실로 향했다.

 

 

 

 

 

 지은이 늦잠을 자고 있었다. 오늘까지 학교 축제였기에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어제 출사에서 너무 행복했던지 꿈을 꾸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잠꼬대를 해대었다.

 

 

 

 

 

 

 현이 어제 출사를 다녀와서 피곤했었는지 점심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고향에 내려갈 준비를 했다.

 "어머님 다녀오겠습니다." 현이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조심히 다녀오고 내일은 올 거지?" 현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말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다. 당연히 다녀와야지. 그리고 이거 가져가거라." 현관에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뭔가요?" 현이 상자를 들며 물었다.

 "제사에 쓸 과일이다. 아침에 준비한다고 했는데 맞는지 모르겠구나."

 "어머니." 어느새 현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운전 조심하고. 늦겠구나. 얼른가거라."

 현의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 주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준혁아!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네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정말 미안하다.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아파할 줄은……." 최 교수가 침대 옆에 앉아 준혁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지으며 말했다.

 "으…….악" 준혁이 악몽을 꾸는 듯 소리를 질렀다.

 "준혁아! 준혁아! 괜찮니?" 최 교수가 다급한 듯 준 혁의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어……." 준혁이 눈을 깜박이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준혁아! 형이야. 보이니?" 최 교수가 허리를 구부려 준 혁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가져다 대며 물었다.

 "혀…….엉." 준혁이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깨어났구나. 고맙다." 최 교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준혁이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그냥 누워 있어. 무리하면 안 된다 말이야."

 "아악." 준혁이 머리가 아픈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괜찮니? 자리에 누워. 여기 병원이야" 최 교수가 준혁을 부축하며 침대에 다시 눕혔다. 

 "내가 왜 병원에......."

 "공항에서 일 생각 안나니?" 최 교수가 의자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 공항에서 치료 받은 뒤부터 생각이 안나."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으며 말했다.

 "며칠 의식이 없어서 수술을 했는데 결과가 좋대. 이제 마음만 다잡아 푹 쉬렴."

 "혀어엉." 준혁이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그래. 얘기 해 보렴."

 "형! 정말 미안해. 나 같은 놈 정말 싫어지지. 잊지 못하겠어. 안보면 잊히겠지 생각했는데……." 준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다. 내가 더 미안한걸. 잊지 못하겠지만 잊도록 해봐.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지은이 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잖아. 그냥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최 교수가 준혁의 마음을 보듬어주듯 천천히 말했다.

 "근데 형. 나 마지막으로 한번만 지은 씨 만나게 해주면 안 될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안되겠지?" 준 혁이 다시 눈을 감으며 체념하듯 말했다.

 "안 보는 게 나을 듯 해." 최 교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만." 준 혁이 감았던 눈을 뜨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알았다. 오늘까지 축제니까 낼 출근해서 얘기 해 보께." 최 교수가 준혁의 시선을 외면 한 채 병실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형! 나 그만 쉬어야 걷어." 준 혁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 푹 쉬어." 최 교수가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지은이 핸드폰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기 싫은 듯 눈을 감은 채 일어나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선 다시 침대에 누우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은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우리 지은이 아직 꿈나라인가보네."

 "앙. 벌써 일어났어?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현의 목소리가 울먹이는 듯 했다.

 "지은이 목소리가 더 이상한데." 현이 목을 가다듬는지 헛기침을 했다.

 "왜 이리 시끄러워?" 지은이 눈을 떠 책상이 알람시계를 보며 말했다.

 "나 지금 시골에 내려가. 오늘이 할머니 기일이거든. 지금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어. 거의 다 왔어." 

 "그럼 언제 오는 거야?" 지은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낼 오후에 학교로 바로 갈 거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봐."

 "앙. 잘 다녀오고. 낼 사무실로 와."  

 지은이 옷을 갈아입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세시를 넘기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챙겨먹고 어제 출사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했다.

 

 

 

 

 

 최 교수가 준 혁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준혁 어머니가 걸어오고 계셨다.

 "왜 나와 있니?" 준 혁 어머니가 병실 앞에 서 있는 최 교수를 보며 말했다.

 "준혁이 깨어났어요. 저하고 얘기하다 막 잠들었어요." 최 교수가 말하는 간간히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잘 되었구나. 수술 결과가 아주 좋아서 이삼일내로 퇴근해도 된다는 구나." 준혁 어머니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 되었네요." 최 교수가 반가운 듯 말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우혁이가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 여긴 내가 있을 테니 집에 가서 쉬렴. 며칠 동안 네가 고생했구나." 최 교수의 안색을 살피며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닙니다. 숙모님이 더 피곤하실 텐데, 여긴 제가 있을 테니 집에 잠시 다녀오세요."

 "아니다.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잖아. 들어가렴."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저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숙부님 숙모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최 교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슨 얘기야? 우혁이가 뭘 잘못했다고......." 의아한 듯 물었다.

 "저하고 잠깐 얘기 좀 하세요. 드릴말씀이 있습니다." 최 교수가 병실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알았다." 준혁 어머니가 조용히 최 교수를 따라갔다.

 

 

 

 

 

 지은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출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사진관에 맡겼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평상시 출사 때와 다름없이 찍은 사진들을 스캔해서 일일이 컴퓨터로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른 듯 생각 되었지만 가을 학교 축제에 쓸 사진을 열심히 고루고 있었다. 모두다 마음에 들었지만 제일 마지막에 현이랑 단 둘이 찍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을이 지는 불그스레한 하늘을 배경으로 조금은 어두워 얼굴이 흐리게 보였지만 오래된 추억의 흑백사진처럼 지은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무언가 생각난 듯 지은이 카메라 가방을 뒤졌다. 어제 현이 쓴 작은 노트가 생각난 것이었다.

 '제목 : 당신입니다.

          어릴 적 엄마의 품처럼
          따스한 사람이
          당신입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올려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아무 말 없이 바라봄으로도
          행복한 나날이 될 사람이
          당신입니다.

          내 말 한마디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인생길을
          나란히 손잡고 거닐 사람이
          당신입니다.

          지치고 슬플 때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지금 옆에서
          내 눈과 마주치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빛바랜 추억의 사진 속에
          다정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당신입니다.'

 

 

 

 

 

 최 교수가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숙모님이 계단 쪽으로 다가서자 최 교수가 무릎을 꿇었다.

 "숙모님 죄송합니다. 준혁이가 저렇게 된 게 모두 제 탓입니다." 최 교수가 울먹이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뭐가 어떻게 된 것이기에." 준 혁 어머니가 우혁의 양팔을 손으로 잡으며 일으켜 세우려했다.

 "지금 준혁이 찾는 사람이 몇 개월 전 제가 소개 시켜준 제자입니다. 쉽게 마음을 빼앗겨 저렇게 괴로워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니 숙부님 숙모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다. 우혁아 이러지 마라.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준혁이도 없었을 거야. 준혁 고1때 너 아니었다면 저 녀석 마음 못 잡았을 거야. 사실 준혁 아버지하고 나는 준혁을 위해서 해 준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우혁이 너에게 그동안 많이 미안해 하고 있었다. 넌 사촌이 아니라 친형제간 이상이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난 너를 믿는다. 네가 알아서 해다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렴." 준혁 어머니가 팔을 잡아 당겼다.

 최 교수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현이 큰집에 도착을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문은 잠겨 있었고 집안은 조용하였다. 현이 집안을 살피기 위해 담장가까이 다가서자 '컹컹'거리며 개가 짖기 시작했다.  분명 예전에 전역후 왔을때 없었던 풍경이었다.

 현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지금쯤이면 한창 제사 음식 장만하느라 바쁠 텐데 낯설게만 느껴지는 큰집이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