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내가 사랑한 여자와 나를 사랑한 여자 - 3 -

소판기 |2006.09.21 08:50
조회 563 |추천 0

지연이는 아버님에 눈을 피해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무조건 만나게 되었고 전화 통화는 새벽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지연이는 시간약속을 하면 한번도 재대로 나오는 날이 없었다.

7시에 만나기로 하면 8시가 되어서 오고 8시에 만나기로 하면 9시까지 나오고 그렇게 꼭 적게는 30분씩 많게는 1시간씩 늦게 나왔다.

그런 게 불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는 것 만으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늦게 나오는 지연이에게 방금 왔다고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정하고는 아예 안 나오는 날도 한 번씩 있곤 했다.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는데 학교 마치고 아버님이 학교 앞에 와서 학원까지 태워주고 마칠 때 데리러 가면 나올 수 가 없었다.

그런 날은 집에 가서도 통화가 곤란해서 그냥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2,3일이 지나면 꼭 전화가 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런 날이 아니면 약속 장소에서 한 두 시간 정도 기다리고 집에 오면 은희가 전화가 와서 못 나가서 미안하다고 대신 전화를 해 주곤 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다.

수진이가 나랑 지연이의 메신저 역활을 해주다가 어느 날인가 지연이랑은 이번 주에 못 본다고 통화를 했는데 내일 볼 수 있으니까 나오라고 하는 거 였다.

나는 못 만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만날 수 있게 돼서 기쁜 마음에 항상 만나는 그린코아로 나갔다.

근데 약속 장소에 기다리고 있는 건 지연이가 아니라 은희였다.

은희랑은 지연이 일 때문에 전화통화도 자주하고 몇 번 셋이서 같이 보기도 해서 전 보다는 마니 친해진 상태였다.

“니가 왠일인데..? 지연이는 같이 안 왔나.?”

“가시나 가 갑자기 못 나온다고 니 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내보고 좀 나가달라고 해서 나왔다. 왜 내 혼자 나오니까 싫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지연이는 안 나오나 일부러 이렇게 나올 거 까지는 없었는데. 이왕 나온 거 밥이라도 먹자.”

우리는 항상 가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제 지연이랑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나.?”

“응, 덕분에.. 니가 고생이 많체.? 중간에서 이것 저것 전해준다고. 내가 니 밥 한번 사야지 하고 있었는데 잘 됐네 오늘 밥 값은 내가 낼게.”

“아니다. 밥은 무슨 밥. 그냥 내가 소개 시켜줬으니까 끝까지 책임을 지는 거지.”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고 은희가 소화가 안 된다고 해서 근처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 쪽으로 걸으면서 좀 더 얘기를 했다.

놀이터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은희가 이상한걸 물었다.

“니 지연이랑은 어디까지 갔는데.?”

우리는 만나는 날도 많지가 않고 만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만 있어서 별 다른 스킨십이 없는 상태였다.

“그냥 손 잡는 거까지..”

“아직도 손 밖에 못 잡았나.? 나는 너희들 키스 정도는 한 줄 알았다.”

솔직히 우리 또래 친구들 중에 그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리고 내가 노는 친구들은 이미 총각딱지 마저 뗀 친구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나는 부끄러움도 많고 그럴 만한 기회가 없어서 아직 뽀뽀 한번 한적이 없었다.

“그럼 니 혹시 아직 여자랑 뽀뽀도 한번 못해봤나.?”

“응..”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랬구나. 지연이는 아무 말 안 하길래 나는 당연히 키스 정도는 했을 꺼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은희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도 궁금해지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 얘기를 해서 그런지 눈이 자꾸 은희 입술 쪽으로 갔다.

내가 알고 있기론 은희는 남자 경험이 좀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남자랑 잠을 잔 것 까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좀 논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정말 뽀뽀 한번 안 해봤으면 내랑 뽀뽀 한번 해볼래.?”

은희 입에서 나온 소리는 나를 너무 당황스럽게 했다. 은희는 지연이에 친구였다.

우리는 만나게 해준 사람인데 난데없이 뽀뽀를 하자니…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하는데.?”

나는 우선은 은희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궁금했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돌려서 얘기 하는 거 싫어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 하께. 니 처음 봤을 때 나도 느낌이 좋았고 그래서 지연이랑 만나게 해준 건데 니랑 통화하고 한번씩 보면서 나도 니가 좋아 졌는가 보다. 내가 이런 얘기한다고 이상한 여자로 보지말고, 그냥 나도 니가 맘에 드니까 이렇게 얘기 하는거다. 니랑 사귀고 싶다거나 그런건 아니고 우선은 니는 지금 지연이 애인이니까. 그렇다고 그냥 충동적으로 니랑 뽀뽀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얘기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현실에 충실하고 싶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은희는 날 좋아하고 있고 지금 뽀뽀를 하자는 건데 나는 아직 한 번도 경험이 없고 만약 뽀뽀를 한다면 지연이랑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은희랑 뽀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있었다.

“왜 싫나.?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지연이가 걸리는 거가.? 어차피 니랑 내랑 뽀뽀 한다고 해도 우리 둘만 말 안 하면 얘기할 사람이 없는데..”

“아니. 싫은건 아닌데 그냥 좀 걸리기도 하고..”

나도 은희랑 뽀뽀를 하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연이가 알게 된다면 지연이를 놓쳐 버릴 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은희에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 입술을 덮쳐왔다.

그렇게 우리는 키스를 했고, 아주 긴 시간 동안 키스를 한 거 같다.

이건 분명 뽀뽀가 아니었고, 키스였다. 내 첫 키스를 은희랑 하게 된 거다.

내 입술에서 은희에 입술이 떨어지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는거 처럼 귓가에 종소리가 들린다거나 레몬 맛이 나진 않았다.

키스를 하기 직전에 둘 다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은희 입에선 담배 냄새가 났고, 내 입에서도 담배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는 첫 키스였는데, 암튼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니 정말 처음 맞나.? 처음 치고는 너무 잘 하는 거 아니 가.?”

솔직히 나는 첫 키스였다. 하지만 친구들이 키스를 했다는 얘기나 여자랑 잤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혼자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한 상태여서 그런지 처음 치고는 잘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처음이다. 내 첫 키스를 니랑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얘기 하고는 이번엔 내가 먼저 은희 쪽으로 다가가서 은희에 입술을 훔쳤다.

그런데 이번엔 키스를 하고있는데 은희가 내 손을 잡고 자기에 가슴쪽으로 가져갔다.

친구들이 키스를 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막상 가슴에 속을 가져가니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내 내 손은 은희에 손에 이끌려 가슴으로 갔고 은희에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참 부드러웠다. 어렸을 때 엄마 가슴을 만지던 기억이 전혀 나질 않으니 여자에 가슴을 만지는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느낌이 더 좋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앉아서 키스를 하고 좀 더 대범하게 가슴을 만지고 서로를 만지고 있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해..?”

눈을 떠 보니 아파트 경비 인듯한 사람이 후레쉬를 우리 쪽으로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황급히 하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 듯 거기를 벗어났다. 우리는 손을 잡고 도망을 치면서 웃고 있었다.

한참을 달려서 우리는 놀이터에 와서 걸음을 멈추고 그네에 앉아서 서로를 보면 한바탕 더 웃고는 호흡을 정리했다.

“좋았나.? 나는 니가 처음이라고 해서 좀 가르쳐 줄려고 한거였는데 니가 너무 잘 해서 나는 좋았는데.”

나는 처음 하는 키스여서 최선을 다 했고 내가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 수 없으니 은희가 잘 한다고 하면 그냥 잘 했는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끝까지 가볼래.?”

나는 또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주변에 친구들 중에 총각이 아닌 녀석들이 많이 있었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회가 생기질 않아서 못하고 있었는데 은희가 먼저 그런 제인을 하니까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끝까지 가자는 말은 나하고 자겠다는 말이가.”

“그래. 어차피 니랑 내랑 둘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고, 나는 니랑 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번엔 지연이 때문에 정말 못하겠나.?”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다. 이대로 총각딱지를 떼 버린다면 지연이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은희랑 사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연이랑 은희는 나 때문에 사이가 멀어질꺼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서 은희 손을 잡고 가서 자버릴까 머리 속이 복잡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노.? 그냥 지금 자고 싶으면 자는거고, 못 자겠으면 않자면 되지.”

나는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저렇게 간단하게 얘기하는 은희가 너무 얄미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은희를 봤는데 반바지 뒤 쪽에 피 같은게 보였다.

“은희야 니 바지에 뭐 뭍은 거 같은데.”

“어,? 어디.. 에이 아직 날짜가 남았는데. 생리 시작한 거 같네. “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 하늘이 안건지 고민을 한 방에 해결 해 주었다.

“오늘은 않되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가자. 오늘 할 줄 몰랐는데 얼른 가자 갑자기 찝찝해 졌다.”

“그래. 오늘은 집에 가자. 그리고 오늘 일은 지연이 한테 꼭 비밀이다.”

나는 한번 더 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까 동생이 왜 이제 오냐며 하루종일 전화 왔었다고 하며 짜증을 냈다.

“지연이가 누군데 10분에 한번씩 전화 오더라. 집에 오면 전화하라고 전해준다고 했는데도 계속 전화 오더라.”

나는 지연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이 지연이가 전화기 옆에 있었는지 벨이 한 두번 울리니까 전화를 받았다.

“전화 했었다며..”

“응. 니 어디 갔었는데.. 혹시 은희 만났나.?”

“아니 안 만났는데. 왜 은희가 내 만난다 그러더나.?”

나는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지연이가 내일 학교에 가면 알게 되는데 거짓말을 해 버렸다.

“그냥 은희도 집에 없길래 혹시나 해서 물어 본거다. 그럼 니는 어디 갔다왔는데.?”

“승만이 집에 있다가 왔지. 무슨 일있나.?”

“내가 무슨 일 있어야 전화하나.? 니 오늘 이상한데.. 냄새가 나..?”

“냄새는 무슨.. 그냥 승만이 집에서 놀다 왔는데. “

나는 계속 해서 거짓말을 했다. 승만이 집에서 뭘 하고 놀았다는 둥, 저녁은 뭘 먹었는지 계속 해서 꾸며 나갔다.

“요즘 못 만나는게 미안해서 전화 통화라도 할려고 했는데 이제 어른들 올 시간 데서 이만 끊어야겠다. 이번주에는 꼭 시간 내서 보자. 보고 싶어. “

“그래 나도 니 보고 싶어. 그럼 잘 자고 예쁜 꿈 꾸고 잘자. 연락하고..”

나는 전화를 끊자 마자 은희한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은희도 집에 있었다.

“은희야 미안한데 내일 지연이가 오늘 우리 만났었냐고 물으면 않만났다고 얘기 좀 해주면 않되나.? “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은희한테 횡설 수설 을 했다.

“왜 지연이 전화 왔드나.? 그래. 우리 오늘 만난 거 알면 지연이가 이상하게 생각 할 수 있으니까 안 만났다고 얘기 하게. 근데 니 갑자기 전화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가.? 잘 들어갔나. 뭐하고 있었는데 가를 물어보는게 먼저 아니가.? 그냥 내가 니 좋아 해서 그런거지만 좀 그렇네. 확 불어버릴까 보다.”

“미안하다. 내가 정신이 너무 없어서. 그래 잘 들었갔나.?”

“됐네요. 그냥 한번 해본 소리다. 내일 학교가서 말 잘 해줄 테니까 신경쓰지말고 자라. 그럼 또 연락해.”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더라면 오늘 같은 일은 생기지 안 았을텐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리고 이 일이 지연이가 처음으로 헤어지게 뻔 하게 되는 큰 일이 될꺼라는 건 나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사고는 다음 날 바로 터졌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있는데 삐삐가 왔다. 찍힌 전화번호는 지연이 집 전화번호 뒷자리 였다.

나는 쉬는 시간까지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가나고 거짓말을 하고 서무실로 내려가서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니 뭔데.? 왜 내한테 거짓말 하는데.. 니 어제 은희 만났다며, 만나서 무슨 일 있었는데. 왜 내한테 거짓말 하는데. 나는 니가 거짓말 않한다고 해서 나는 니 믿었는데 어떻게 내 친구랑 그럴수가 있는데 정말 니 제수 없다.”

굉장히 흥분 된 목소리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변명에 여지가 없었다. 어제 은희를 만났고 만나서 키스를 했으니 그 사실을 은희가 털어 놨다면 나는 더 이상 지연이에게 할 수 있는 변명 거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연인 삐삐가 없으니 이대로 집에 가서 전화를 안 받아 버리면 이대로 끝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학교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길로 담임 선생님한테 내려 가서 조퇴를 할려고 뿌리는 물 파스를 눈에 뿌리고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세수를 하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눈이 왜 그러노.?”

“모르겠어요. 눈병인지 아침까지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이러네요. 저 병원에 좀 가보겠습니다.”

“그래 눈을 보니까 눈병인거 같은데 얼른 병원에 가봐라. 병원비는 있나.?”

거짓말을 하는 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른 방법이 떠 오르질 않았다.

조퇴를 하고 학교를 나와서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효성여중으로 갔다.

학교 앞에 도착하니 아직 수업이 끝나려면 3시간은 더 남은 것 같았다.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정문 앞에 있는데 운동장에 한 아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지연이 였다.

“지연아..”

“어.. 니가 여기 어떻게 왔는데 학교는.. 눈은 왜 이러는데..?”

다행이었다. 화가 많이 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 눈이 아파 보이는걸 안다는 건 내 얼굴을 보고 있다는 거니까 안심이 되었다.

“니한테 올려고 눈에 파스 뿌려서 조퇴했다. 근데 니는 어떻게 나오는건데. ?”

“나는 교실에서 은희 얼굴 보고 앉아 있을려니까 화가 나서 아프다고 하고 조퇴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커피숍이라도 가자.”

“됐다. 할 말 없으니까 가라.”

그렇게 대답하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을 하고 지연이를 따라 걸었다.

지연인 내 얼굴 조차 안 보려고 했고 계속 땅만 보면서 걷고 있었다. 옆에서 말을 붙여 보았지만 대답도 없이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지연이를 뒤에서 안아 버렸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 내가 어제 미쳤었나 보다.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 정말 어제는 내가 미쳤었나보다 정말 미안 다시는 안 그럴께. 한번만 용서 해주면 않되나.?”

여전히 지연인 대답이 없었다.

근데 지연이를 안고 있는 내 손등 위로 물 방울이 떨어졌다.

그제서야 나는 지연이가 울고 있는 걸 알고 돌여 새웠다.

“우나.? 지연아 내가 잘 못 했다니깐.. 내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겠노..? 어떻게 해주꼬.?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그럼 화가 풀리겠나.?”

“니가 지금 여기서 무릎을 꿇는다고 어제 있었던 일이 없어지나.? 내가 들었던 얘기가 거짓말이 되나.? 왜 그랬는데.. 왜..? 왜 하필이면 은희랑.. 은희랑 그러냐고…..”

지연인 울부짖으며 길에 서서 그냥 울기만 했다.

나는 그저 울고 있는 지연이를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 참을 울던 지연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따라 오지 마라. 지금은 니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지연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봤고 저 만큼 화가 나있는 줄 몰랐다.

가만히 서서 지연이에 뒷 모습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지연이가 돌아서서 소리 쳤다.

“안 따라오고 뭐 하는데.? 진짜 안 올 거가.? 나쁜 놈..”

분명히 화가 나있긴 했는데 지연이가 날 부르고 있었다. 따라오지 않는 날 부르며 화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나는 지연이에게 달려가 그대로 지연이를 안아 버렸다.

“왜 이러는데 놔라. 사람들이 보잖아. 미쳤나 이거 놔라. 이러지마.”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몸은 내 품에 안겨있었다.

“미안 다시는 안 그럴께. 니 눈에 눈물 흘리는 일 없도록 하께 미안..”

“치 또 그래봐라 그땐 정말 다시는 않 만나줄꺼다. 다시는..”

그렇게 얘기하며 지연인 눈을 흘기며 날 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울고 뭐라도 먹자. 내 아직 점심도 않먹었다.”

“왜.? 하기사 어제 그런 일을 저지르고 밥을 먹었으면 니가 사람이 아니지..”

“미안하다니깐 그냥 어제 일은 이제 얘기 하지말자. 응..?”

“됐다. 두고두고 써 먹을 꺼다.”

지연인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얼굴이 재미 있는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울다가 웃으면 몸이 변해요..”

나는 지연이 손을 잡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안 된 시간이라 그런지 레스토랑엔 우리 테이블 말고는 텅 비어있었다.

가게 사장도 졸다가 일어 났는지 우리가 들어오자 입가에 묻은 침을 닦으며 우리를 맞았다.

우리는 간단한 음식을 시키고는 마주보고 앉지 않고 같은 곳에 앉아서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제 일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에 사랑을 확인 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했다.

지연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내 속에 지연이가 얼마나 크게 존재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확인하는 방법이 어리석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눈은 괜찮나.? 아무리 급해도 그렇치. 파스를 눈에 뿌리는 사람이 어딨노.? 안 아프나.?”

“괜찮다. 근데 니는 정말 몸이 아파서 조퇴한 거 아니가.? 어디가 아픈데.?”

“여자들은 그냥 그 날 이라고 하고 아파서 못 앉아 있겠다고 하면 가라고 한다.”

“그 날..?”

생리를 말하는 듯 했다. 여자들은 참 편리하구나 우리는 조퇴 한번 하려면 아침부터 엎드려서 온갖 엄살을 다 부려도 양호실 행이나 운이 좋으면 조퇴를 하는데, 여자들은 한달에 한번 정도는 그냥 조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밥이 나올때까지 서로에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가 만졌다가 하면서 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밥이 나오고 나는 점심부터 굶었던 터라 정신 없이 한 그릇을 뚝딱하고 비웠다.

밥을 다 먹고 담배를 피고 있는데 지연이가 어제 일을 다시 꺼냈다.

“근데 혁수야 어제.. 왜 그랬어..? 은희가 내 친구라는 거 알면서 왜 그랬어.? 은희는 니가 먼저 한번도 해 본 적 없다고 하자고 했다던데 그렇게 해보고 싶었으면 차라리 내한테 얘기를 하지 왜 그랬어.?”

말 하고 있는 지연이에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은 촉촉히 젖어있었다.

은희가 내가 먼저 하자고 했다고 얘기를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은희가 하자고 했다고 은희가 먼저 내 입술을 덮친 거라고 얘기 하면 둘 사이가 더 나빠 질 테고 그냥 내가 나쁜 놈 되고 말 자는 생각에 나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먼저 하자고 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내가 은희를 좋아해서 그랬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이 너한테는 다 변명으로 들릴 테고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어젠 그냥 키스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냥 갑자기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분명히 니 한테 죄 짓는다는 거 알았는데 그냥 충동적으로 그랬던 거다. 미안 니가 화 난다는 건 아는데 정말 두 번 다시 그런 일 없도록 할 테니까 한번만 이해해 주면 안되나.?”

“그게 다가.? 더 이상 숨기는 건 없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은희가 니 좋아하는 건 왜 얘기 안 하는데.”

말 문이 막혀 버렸다. 그것까지 얘기 했다는 건 모든 걸 다 얘기 한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은희가 고백을 했고 은희가 먼저 하자고 해서 키스를 했다고 얘기 하는것도 웃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은희가 내 좋아한다고 얘기는 하더라. 근데 은희가 내 좋아한다고 해서 변하는 거 있나.? 내가 지금 니 좋아하고 그 마음 변하지 않으면 지금 은희가 내 좋아하는 거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니가.? 니랑 내 사이에 은희가 내 좋아 하는 게 문제가 되나.? “

“그럼 문제가 안되나.? 내가 은희랑 모르는 사이가 안 보고 싶으면 안 볼 수 있는 사이가.? 그리고 은희가 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어떻게 둘이 그럴 수 있는데.. 너희 둘이 그러면 내가 언젠가는 알게 될 꺼라는건 생각 못했나.? “

지연인 또 울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울던 그런 눈물이 아니라 원망이 가득 담긴 그런 울음이였다.

나는 우선 지연이에 눈물을 멈추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연아 나를 못 믿겠나.? 나는 니를 사랑한다니까 내가 니 친구랑 그런 짓을 하고 니한테 사랑한다고 말 하는게 웃기게 들릴 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얘기 했제. 어제는 그냥 충동적인 거였다고.. 내가 사랑하는 건 은희가 아니라 너라고..”

“지금 그 말을 내보고 믿으라고. 니는 내가 니 친구랑 그런 짓을 하고 내가 니한테 니 사랑한다고 우리 어제는 그냥 충동적으로 미쳐서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그랬다고 하면 니는 날 믿을 수 있겠나..?”

내가 억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나는 분명히 지연이가 그랬다면 못 믿었을꺼다. 아니 헤어 졌을지도 모른다.

내 자신이 더 싫어졌다. 나는 용서 하지 못 할 것을 용서 해 달라고 강요 하고 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사실데로 다 털어 놓고 용서를 빌었다면 상황이 더 나았을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고 어떻게든 내가 수습하지 않으면 않되는 일이였다.

“그래 미안하다. 지연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니가 잊을 수 있겠노..? 내가 어떻게 하꼬.?”

“됐다 다 필요없다. 헤어지는 마당에 용서는 무슨 용서.. 그냥 니랑 마지막으로 밥이나 한 그릇 먹고 갈려고 들어가자고 한 거다. 이제 됐으니까 나는 갈란다.”

여전히 눈은 울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차가웠다. 그렇게 냉정한 지연인 본 적이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지연이를 잡을 수 없었다. 아니 잡는다고 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울면서 돌아서는 지연이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연이가 나가고 나는 혼자 레스토랑에 앉아 담배만 피워 됐다.

내 자신한테도 화가 났지만 은희가 너무 너무 미웠다. 내가 그렇게 부탁을 했고 자기도 그냥 좋아하는거 라며 비밀로 하겠다고 해놓고 하루를 못 넘기고 지연이에게 다 말 해 버린 은희한테 화가 너무 났다.

시계를 보니 수업이 마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나와서 다시 효성여중 앞으로 갔다.

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나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며 은희가 나오길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고개를 드니 내 앞엔 은희가 서 있었다.

“왠일인데..? 지연이 만나러 왔나.? 지연이 몸이 안 좋아서 조퇴하고 먼저 갔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얘기하는 은희를 보니 더 화가 났다.

“야.. 니 너무 하는거 아니가.? 내가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 하루를 못 참고 지연이한테 얘기를 하면 어떻하는데..? 그냥 좋아하는 거라며 내랑 사귀고 싶어서 좋아하는게 아니라며 그리고 어제 니가 하자고 해서 했지 내가 하자고 해서 한거가..?”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있는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가만히 날 보던 은희가 돌아서서 그냥 가버렸다.

“ 야 어디 가는데.. “

나는 돌아서서 가는 은희를 잡아 세웠다.

“니가 화가 나있는 건 알겠는데 여기 우리 학교 앞이거든. 다른데 가서 얘기 좀 할래. 나도 쪽 팔리거든 내가 친구 애인 뺏을려고 한 나쁜년 되는거 싫으니까 우선은 조용한데 가서 얘기 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황당했다. 지금 누가 화를 내야 되는 상황인데 저렇게 당당 할 수 가 있는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은희를 따라 걸었다.

은희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아까 내가 지연이랑 밥을 먹은 레스토랑이였다.

“거기 들어가기 싫거든 조용한데 갈꺼면 다른데 가자. 거기는 싫다.”

나는 지연이랑 같이 갔었던 가게에 은희랑 들어가기 싫었다.

“그럼 어디 갈껀데 우리 동네에 아는데 있나.? 나는 여기 말고는 아는데 없다.”

“얘기 할꺼면 아무 때라고 상관없는데 그가게는 싫으니까 딴 데로 가자고… 그냥 아파트 놀이터로 가자.”

그래서 우린 학교 근처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자 말자 은희는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 하던 여자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니까 황당 할 수 밖에 없었다.

울고 있던 은희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 했다.

“그래 내 니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고, 지연이한테 얘기 한 것도 너희들 헤어지라고 얘기 한거다. 나는 안 힘든 줄 아나.? 나도 고민 많이 했다. 내가 너희들 만나게 해줬는데 어떻게 하다가 내가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몰라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은희는 울먹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들 서로 좋아하고 있다는 거 안다. 근데 내가 니 좋아하는 거 언제 지도 모르겠고. 그냥 좋은 걸 어떻하노.? 내가 니랑 아무 이유 없이 키스 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그렇게 해퍼보이나.. 내 그런 여자 아니거든. 그렇다고 지금 내가 니랑 사귀길 원하는 건 아니다. 그냥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은희는 어깨가 심하게 떨리며 울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은희는 처음부터 날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그걸 알면서 키스를 했다.

책임이 따를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까지 올 줄은 생각 못했다. 모두가 내 책임 이였다.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고백을 받았을 때 거절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와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안다.

나는 울고 있는 은희를 보면서 한 참을 아무 말 없다가 은희에 어깨를 잡았다.

“그래. 니 마음은 나도 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니 친구 애인이고 내가 니한테 해줄수 있는건 니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게 없는데.. 내가 미안하다. 니가 고백했을 때 니랑 만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니랑 그런 짓을 한거니까. 내 책임이 크다. 하지만 나는 지금 지연이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데.”

“원하는 거 없다. 처음부터 니가 내 친구 애인이라는 거 알면서 시작 된 마음인데 내가 니 한테 바라는 게 뭐가 있겠노. 내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니는 지금 내 친구랑 사귀고 있고 내 남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냥 내 혼자 니 좋아하는 거니까 금방 마음 접을꺼다. 내가 지금 애인이 없어서 그런거니까 남자 생기면 금방 정리 될 거니까 신경쓰지마라.”

“어떻게 신경이 않 쓰일수가 있노.?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고 우리가 아무일 없었다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잖아. 분명히 변하는 건 없겠지.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 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냥 한동안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은희가 언제 부턴가 나를 보고있었다.

“니 정말 매력 없는데. 내가 왜 니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했는지는 과거 형인데 은희는 과거 형으로 말 하고 있었다.

“그래 내 매력 없다. 얼굴이 잘 생겼나.? 키가 크나.? 돈이 많나.? “

“내가 니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보니까 니 정말 매력 없는데, 그냥 지연이랑 잘 해봐라 나는 빠질 테니까.”

은희는 아주 옛날에 날 좋아했었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오래 전에 날 좋아했었고 이젠 포기 한다는 식에 말투였다. 여자란 참 무서운 동물이다.

“괜찮겠나.? 그냥 이대로 정리 되도 상관없나.?”

“왜.? 내가 뭘 바라면 들어 줄거가.? 아무것도 못 해줄 거면서 그냥 지연이랑 잘 해봐라. 나는 이제 매력 적인 남자 찾아 볼란다. 니 주변에 괜찮은 남자 없나.? 키 크고 잘 생기고 돈도 많으면 좋고…”

방금 전 까지 날 좋아한다고 울면서 소리치던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황당 했지만 다행이다 생각했고, 마땅히 대답해 줄 말이 없어서 그냥 은희만 보고 있었다.

은희는 잠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날 보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갈란다. 우리 어제 있었던 일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내가 어제 했던 얘기도 못 들은걸로 해라. 지연이한테 잘해줘라. 내가 아침에 그 얘기 했을 때 마니 울던데, 니 많이 좋아하는거 같더라.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싸우지 말고 잘 만나라. 그게 내한테 주는 선물 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니한테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그래 잘 사귈께. 나도 이젠 지연이 많이 좋아하니까 지연이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 될지를 모르겠다. 아까 만났었는데 울면서 다시는 내 보기 싫다고 얘기 하면서 집으로 갔다.”

“만났다고.? 어떻게.? 조퇴하고 일찍 들어갔는데..”

나는 내가 조퇴하고 와서 지연이를 만나서 있었던 일을 얘기 해 주었다.

“우선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라. 전화로 얘기 하지말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라. 암튼 나는 이제 빠질 테니까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 나는 그만 갈란다.”

나는 은희랑 헤어지고 놀이터에 한 참을 앉아있었다.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하면 지연이가 나올지도 의문이였고,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도무지 머릿속이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지연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여.. 보세요.?”

지연이 였다.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내다. 너희 집 근천데 나올 수 있나.?.”

지연인 아무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지연이 어머님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어머님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들고있었다.

나는 공중전화 앞에서 30분쯤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연이가 전화를 받았고 집 근처라고 잠깐만이라도 얘기를 하자고 하고 않 나오면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1시간쯤 지났을까 지연이가 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 주위가 다 부어있었다.

“왜.?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니 보기 싫다니깐 빨리 집에 가라.”

나는 그냥 지연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라고 해놓고 왜 아무말 않하는데. 할 말없으면 들어가께.”

돌아서는 지연이를 돌려 세워서 무작정 안아버렸다.

처음에는 벗어 날려고 애를 썼지만 이내 잠잠해 졌다.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그대로 지연이를 안고 있었다.

100 마디 말 보다 이런 식에 스킨십이 내 마음을 전달하기 더 쉽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건데.? 숨 막힌다. 놔라.”

지연이에 얼굴을 보니 이제 울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한번 더 힘 주어 지연이를 안고는 놓아 주었다.

“미안하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니한테는 변명으로 들릴 거라는 거 안다. 솔직히 내가 잘못한 거 알고 있고 니가 내 용서를 안 해준다고 해도 할 말은 없는데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 우리 이것밖에 안되나. 이대로 헤어져도 후회 안 할 자신 있나.?”

“그런 얘기 하려고 부른 거면 들어 가께.”

목소리가 굉장히 차가웠다.

정말 이대로 끝날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도저히 방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머리 속이 텅 비어 있는 거 같았다.

조용히 내 얼굴을 보고 있던 지연이가 입을 열었다.

“혁수야 내가 니를 용서를 한다고 해도 이번 일은 절대로 안 잊혀지지 싶다. 그러니까 우리 더 깊어 지기 전에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 니를 믿고 안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이번 일 절대로 안 잊혀질꺼 같다. 그러니까 은희나 니 보면서 어제 너희가 한 짓이 머릿속에 지워지지가 않을꺼 같다.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우리 헤어지자. 지금은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 “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

나는 지연이를 잡을 수 없었다. 잡는다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더 이상은 붙 잡을 힘이 없었다.

나는 지연이가 떠난 놀이터에 한 동안 멍 하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와서도 밥도 못 먹고 방안에 가만히 누워 천정만 보고 있었다.

저녁에 11시쯤 되어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받는것도 귀찮아서 그냥 누워있었는데 동생이 와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수화기를 드니 은희였다.

“지연이랑 화해 했나.?”

“아니. 내 말은 들을려고도 않한다. 니랑 헤어지고 만났었는데 그냥 헤어지자고 하더라. 내 말을 않 듣고 그냥 어제 있었던 일을 못 잊을 거 같으니까 그냥 헤어지자고 하더라.”

“맞나. 미안하다. 괜히 내 때문에..”

“아니다. 지금은 누구 잘 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니까. 내 지금 전화 통화 할 기분 아닌데 나중에 다시 통화하면 안되나.”

다 귀찮았다. 그냥 빨리 잠 들고 싶었고 전화를 들고 있을 기운도 없었다.

“그래 그럼 오늘은 그냥 쉬고 내가 내일 학교 가서 지연이랑 얘기 해보께.”

나는 전화를 끊고는 엎드려서 잠을 청했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잠이 들려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잠을 청하려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머릿속엔 지연이 생각 밖에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1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직감 적으로 지연이라는걸 알았다.

“여보세요. 잤나.?”

“아니 않자고 있다. 내가 뭘 잘했다고 자노.?”

“……”

지연인 아무 말 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연아. 도저히 용서가 안되나.? 내가 어떻게 하면 용서 해 줄 건데. 어제 있었던 일을 잊어 달라고는 안 하께. 대신 한번 만 더 기회를 주면 안되나.? 내가 참 뻔뻔하다는 거 안다 근데 정말 니랑 헤어지는 거 싫은데 이번 한번만 용서 해주면 안되나..? “

여전히 지연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를 듣기만 했다.

“니랑 헤어지고 화가 너무 나서 너희 학교 앞에서 은희 만났다. 만나서 내 감정 확실하게 얘기 했고, 이제 두 번 다시 단 둘이 만나거나 은희가 내 좋아한다거나 할 일 없을거야. 니가 어제 있었던 일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그 일을 덮을 줄 만큼 잘하면 안되나.? 이번 한 번만..”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지연이가 은희 이야기가 나오니까 입을 열었다.

“혁수냐 나는 니가 차라리 다른 여자랑 그랬으면 잊을 수도 잊으려고 노력도 해 볼 꺼 같다. 근데 은희랑 그랬다는 게 지금은 이해도 안되고, 아니 이해 하기도 싫고 둘 중에 누구 하나가 잘못 했다기 보다는 나는 너희 둘 다 밉다. 어떻게 너희가.. “

지연이는 말 끝을 흐리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지연아 울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니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한번만.. 한번만 용서 해주면 안되나.? 정말 한번만 다시는 안 그럴게.”

여전히 지연이는 울고 있기만 했다. 우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데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데 지금 간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였다.

“나도 생각 많이 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희들을 용서할 수가 없고, 용서 하고 싶지도 않고, 근데.. 니가 말 했듯이 이대로 니 하고 헤어지면 후회가 될 거 같아서 전화 했다.

혁수야 정말 왜 그랬어..? 내 생각 안 나더나..?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가..?”

격양된 목소리 였다. 하지만 용서를 한다는 말은 않 했지만 그래도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지연이가 고마웠다. 아니 많이 사랑스러웠다.

“그럼 니도 내 하고 못 헤어지겠다는거제.? 역시 그렇체.?”

“지금 그게 중요하나.? 나는 이번 일 그냥 안 넘어 갈 꺼다. 분명히.”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어도 분명히 처음보다는 목소리가 많이 풀려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당연히 니 생각이 났지. 근데 정말 상황이라는게 그렇게 안되더라 분위기가 그렇게 되니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렇게 되더라. 대신 정말 내가 오늘 일은 평생을 두고 후회하고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께. 고마워… 그리고 정말 좋아해.”

“치.. 좋아한다고.. 아까 낮에는 사랑한다며.. 그리고 우리 담임 선생님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좋아하는건 언제든 새로운 게 생기면 버릴 수 있고 더 나은게 있으면 좋았던 물건은 버릴 수 있으니까 남자가 좋아한다고 하면 따라가지 말라고 하더라.”

조금 전 까지 화를 내고 있던 지연이가 이젠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몰아서 얼른 화제를 돌려서 어제 이야기를 않하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좋아하는 건 언제든 버리고 다른 걸 살 수도 있고, 새로운 걸 얻으면 지금 좋아하는 걸 버릴 수 있으니까. 사귀는 사람한테 좋아하는 다는 말은 아닌거 같네. 근데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도 안 좋치만, 그렇다고 너무 남발 하는 것도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내가 사랑한다고 말 않하면 못 느끼나.? 사랑은 말로 하는거 보다 느껴지는거 아니가.?”

내가 생각해도 정말 닭살 같은 느끼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연예소설을 많이 읽은 터라 이런 말들이 조금은 자연 스러웠다.

“니 지금 얼마나 느끼한지 아나.? 김치도 없는데 왜 그러노.?”

“내가 원래 좀 느끼하다. 어른들은 다 주무시나.?”

“아니. 둘이 데이트 한다고 저녁에 나갔다. 오늘 안 들어오지 싶다.”

“안 들어오신다고.? 내가 지금 가두 되나.?”

어른들께서 안 계신 거면 지금 집에는 지연이 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하니 잠이 확 달아났다.

“안 된다. 우리 아빠가 나가면서 경비 아저씨한테 내가 나가거나 우리 집에 누구 오면 연락하라고 미리 얘기 해놓고 나간다. 그래서 오늘은 않 되고 나중에 우리 집에 한번 초대 하께.

그리고 이젠 내가 두 번 다시 어제 이야기는 않 할 테니까 다시는 그러지마. 정말 다시는..”

“그래. 이제 두 번 다시 니 눈에 눈물 안 흘리게 하께.”

말은 편하게 하고 있었지만 언제 이 말을 할까 긴장 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지연이가 먼저 말을 해 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분명히 내가 잘 못한 일이고 두고두고 혼나도 될 만한 그런 일이라고 생각 했으니까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은희는 정리가 됐으니 앞으로 우리만 행복하게 잘 지내면 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됐고, 우리는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우리는 첫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혁수아 오늘 집에 어른들도 안 오시니까 옛날 얘기나 해줄래.? 니가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다. 내 만나기 전에 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

나는 내 지난 15년 간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