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입니다.
다들 기운 내서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 토요일은 언제 오지? =============================
떠밀리듯 들어간 나이트의 풍경은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무대 위에서 정신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대를 둘러싼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예상보단 지극히 준수한 분위기에 난 한 시름을 덜었다.
다만 지나치게 큰 음악소리에 상처가 울린다는 게 문제지만...
한나 - 일단 앉아서 이야기나 해요.
기억 - 뭐?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한나 - 자리에 앉자고요~!
기억 - 아, 응. 다른데도 이렇게 시끄러운가? 상처가 울리는데....
한나
- 클럽 같은 데 비하면 조용한 편이에요.
일단 맥주 기본만 시키죠?
기억
- 응? 어디보자.... 맥주 4병에 과일 뿐인데 3만5천원?
뭐가 이렇게 비싸?
음악 소리는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시끄럽고,
술값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이런 곳이 뭐가 좋아서 이렇게 바글바글 모여 있는 걸까?
기억
- 이거 원... 갈수록 태산이네.
이래도 장사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한나 - 에이, 몸 흔들고 부킹하고 그러려고 오는 거죠.
기억 - 부킹? 부킹은 또 뭐야.
한나
- 음... 즉석미팅 정도 되겠네요.
테이블 옮겨 다니면서 인사 주고받는...
기억 - 한나 넌 이런데 자주 와?
한나
- 아뇨, 가끔 몸 풀러 오고는 싶은데
같이 올 사람도 마땅치 않고...
혼자 오면 껄떡대는 남자들 때문에 골치 아프고...
그래서 잘 안 와요.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기엔
매번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여야 했기에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 자연스레 나란히 붙어 앉게 된 우리.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변의 소음은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 된 후였다.
기억 - 한나야, 공대생들이 물에 빠진 사람 구하는 법 알아?
한나 - 네? 공대생들이 하면 뭐가 달라요?
기억
- 일단 토목공학과는 사람이 빠진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해서 수위를 낮춰서 구해.
재료공학과는 강물을 순식간에 흡수할 수 있을만한
흡수재를 개발해서 강물에 풀어주고....
한나 - 어머머? 뭐예요 그게~.
기억
- 또 있어, 조선공학부는 주변에 있는 재료로
구명정을 건조해서 구하고...
원자핵공학과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해서....
보통은 쉽게 공감하기 힘든 공대생 개그에도
귀를 기울이고 웃어주는 그녀.
어느새 공대생의 인명 구조법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각 전공별 인명구조법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나 - 음... 또 무슨 과가 있죠? 아, 심리학과!
기억
- 심리학과는.... 음... 이 물에 빠진 사람한테
수영할 수 있다는 암시를 걸어주는 거야.
당신은 뜰 수 있습니다.
당신은 헤엄칠 수 있습니다...
한나
- 아하하, 오빠 진짜 재밌다~.
그럼... 이건 진짜 없다. 종교학과는요?
기억 - 물에 빠진 사람을 전도해야지. 주예수를 믿으세요~.
한나 - 에이, 그런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구해져요?
기억 - 영혼은 구했잖아?
한나 - 아!! 맞다, 맞다!
한참 신들린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을 때,
귀에 들려오는 익숙한 음악. =Stop= 이었다.
=오데라잇 해비즈 올뎃츄 김미이~~=
(All that I have is all that you given me~)
한나 - 아! 블루스타임이다! 오빠, 가요.
기억 - 응? 아.... 응.
흥겨운 춤을 추던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로 돌아가고
몇몇 커플이 쌍쌍이 붙어 서서 몸을 부비는 가운데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나갔다.
시작 부분은 놓쳐버렸지만 워낙 연습을 많이 한 탓에
스텝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한나 - 진짜 블루스가 뭔지 보여주자고요.
기억 - 으....응.
아무래도 다들 좌우로 몸만 기우뚱거리고 있는 분위기에서
혼자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는 게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녀와 함께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DJ
- 오, 끈적한 블루스 타임에 끈적한 커플이 등장했습니다.
전문적으로 춤추시는 분들인가요?
역시 눈에 확 띄는 안무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우리.
어두운 무대엔 어느새 백색 핀조명 하나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쯤 되자 하나 둘 자리를 비켜주는 커플들.
어느덧 무대 가운덴 큼직한 빈 공간이 만들어졌고
우린 아무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스텝을 밟아나갔다.
한나 - 기분 어때요?
기억 - ..... 최고야.
나의 나이트 첫 방문은
그렇게 잊기 힘든 추억 하나를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선물로 양주 한 병까지 받아들고 나이트클럽을 나선 우린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쉽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가볍게 안주거리를 사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민아는 연극부 MT에 가서 집을 비웠다는 게 그녀의 설명.
기억 - ..... 정말 오랜만에 오네.
한나 -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기억 - 추억? 아... 그래. 그러네.
곧 거실 바닥에 과자쟁반을 놓고
나이트에서 받은 양주로 술자리를 편 우리.
한나 - 성공적인 첫 나이트 순회공연을 기념하며 건배~!
기억
- 건배~! 응? 잠깐, 순회공연이라니?
앞으로도 계속 하려고?
한나 -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이미 술이 좀 돼서 들어온 데다
양주까지 한잔씩 마셔 놓으니 취기가 도는 건 금방이었다.
발음도 알딸딸하게 꼬이는 게
서로가 취했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덜컥 위험한 생각이 든 난 그녀에게 물었다.
기억 - 그런데....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민아도 없다면서...
한나
- 언니 혼자 있을 때도 몇 번이나 왔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기억 - 아... 아무 일도 없진 않았는데.
한나 - 어머? 그럼 무슨 일 있었어요?
기억 - 응? 아, 아냐. 아무 것도.
한나 - 어어? 말해봐요~. 무슨 일 있었는데요?
기억 - 특별한 일은 없었어. 그냥 팔베개하고 잔 것 정도밖엔...
생각해보면 참 용했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거라곤 악마 세 마리(혹은 그 이상) 뿐인 내가
그 위기들을 다 무사히 넘겨왔다는 게.
아니, 그 기회를 다 놓쳤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술잔을 들여다보는 나를
꽁해서 보고 있던 한나는
대뜸 대화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한나
- 아까 음악 소리 때문에 상처 울린다고
툴툴대더니 몸은 괜찮아요?
기억 - 아... 그 땐 정말 혼났어. 속이 다 울렁울렁 하더라고.
한나
- 에이~ 꾀병 아니에요?
스텝에서 힘이 넘치는 게 다 나은 것 같던데요?
기억
- 아냐. 아직도 이런 데 누르면 얼마나 아픈데.
아까도 음악이 둥둥둥 하니까 이런 데가 다 욱신욱신하게....
한나 - 어디요? 여기요?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 갈비뼈를 짚어보는 내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그녀.
그 순간, 척수를 타고 찌릿한 간지러움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한나 - 어머? 방금 그 움찔은 뭐예요?
기억 - 아, 아무것도.... 아니, 아직 아파서 그러는 그래.
한나
- 에이~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닌데 뭘.
간지러워서 그러는 구나?
기억 - 아냐, 나 간지럼 안 타.
한나 - 진짜요? 어디 다시 한 번...
= 움찔! =
어떻게 그렇게 약점을 콕콕 집어서 공격하는지,
그녀의 손가락이 옆구리에 닿는 순간
난 다시 사지가 오싹하는 짜릿함을 느껴야 했다.
원래 간지럼 같은 거 잘 안탔는데....
사고의 후유증인가?
한나 - 어머나? 오빠 너무 귀엽다~ 어디, 어디, 어디...
기억 - 어우, 잠깐. 아프다니까. 그러지 마~.
한나 - 오빠도~ 간지러우면 간지럽다고 해요. 콕콕콕콕~.
기억 - 읏, 그만, 그만~.
왠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난
옆으로 자리를 피해 앉으며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재미를 들인 듯한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나 - 요기에요? 요기? 요기?
기억 - 아, 아닛, 그, 그만하라니까!
난 혈도를 짚듯 민감한 부위만을 계속 찌르는 그녀의 공격에
견디다 못해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았다.
깜짝 놀란 그녀는 손목을 뒤로 빼냈지만
난 끝까지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고,
제 기세에 눌린 그녀가 뒤로 쓰러지면서
난 그녀의 위로 엎드린 자세가 되고 말았다.
기억 - .......!
바닥 위로 어지럽게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듯 동그랗게 뜬 눈.
약간 느슨해진 옷매무새.
내 손에 완벽하게 제압된 두 팔.
지금 이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직감한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호흡이 가빠왔다.
하지만 바로 손을 놔줬다간
그녀가 또 내 옆구리를 공격하려고 들 것 같았기에
일단은 조금 버텨보기로 했다.
한나 - 이제 어떻게 하려고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듯
눈웃음까지 지으며 날 바라보는 그녀.
그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데...
난 형편없을 만큼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음이 분명했다.
기억 - 그.... 그만 할 거지?
한나 - 아뇨, 손놓으면 계속 할 건데요.
기억 - 너, 너... 그만하는 거다? 알았지?
한나 - ......
그녀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