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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 소리 들었지만 인심 잘 쓴 하루

김명수 |2003.03.16 14:25
조회 315 |추천 0

              촌놈 소리 들었지만 인심 잘 쓴 하루


    우리집은 담이 없다.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렇다고 길과 경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집 뒤에는 대나무숲이 천연 울타리가 되고 나머지 삼면은 허리 높이로 엉성한 펜스로 둘러놓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시각적으로는 트인 공간이다. 대문도 없다. 굳이 대문이라고 흉내 낸 것은 줄장미와 개나리 그리고 능소화 넝쿨로 담 올리고 아름 벚나무 두 그루사이로 들어서면 대문이다 하는 생각이 들도록 되어있다. 벚꽃 개나리 장미꽃 능소화 철따라 피고 지면 볼만 하다.


    지난해 봄이었다. 뒷산 암자로 올라가던 할머니 두 분이 아내보고 하는 말을 들었다. 아내의 나이도 수월찮지만 할머니들은 아내를 보고 새댁이라 불렀다. “새댁, 마당에 나물 좀 뜯어 가면 안 될까?” 아내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우리집에 나물이 어디 있나? 하는 의아심어린 눈빛이었다.


    아내는 잡초와 들꽃을 확실히 구별 못한다. 때문에, 마당에 난 잡초 한포기 뽑을 때도 꼭 나에게 동의를 구하고 뽑는다. 도라지를 잘못 뽑아버린 실수 때문이다. 들꽃은 꽃집에서 사람의 손에 꽃 피운 화려한 온실의 꽃 보다 오히려 참솔한 순정이 더 묻어있다. 때문에, 아무 풀이나 마음대로 뽑지 말고 그대로 두게 하다보니 들풀을 보는 분별력만 더 없어졌다.


    아내의 식물 감별하는 눈은 학습을 통해도 이 풀 저 꽃을 천성적으로 구별 못한다. 말이 된다면 식물치라 할만하다. 민들레와 왕고들빼기 고들빼기 씀바귀 등 젖 액이 분비되는 식물은 무조건 씀바귀고 민들레다. 제비꽃과 오이풀, 질경이와 근대, 아욱과 접시꽃 까지 영 구별 못한다. 쑥과 구절초, 개망초를 구별하는 나를 경이의 눈으로 본다. 잡초 뽑다가 곧잘 귀히 여기는 들꽃을 뽑아버려 눈총을 받기가 한두 번 아니다. 아욱과 어린 접시꽃의 다른 모습을 분별시켜 주는데 꽃이 필 때 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아욱을 보고 잎 넓은 제라늄이라 하더니 나중엔 어린 접시꽃을 보고 아욱이라 했다. 질경이를 보고 근대라고 우기기도 한다. 콩잎과 팥잎은 아마도 평생 구별 못할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다보니 그러려니 한다만 어떤 때는 “당신 너무 둔한 것 아냐?” 하며 핀잔도 준다.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도시살이가 진저리나서 시골로 내려 왔지만 그렇다고 아내나 나나 도시를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숨어있던 본성을 찾은 것 같다.


    한번은 잔디 정원을 꾸밀까 하다가 정원 전체가 제비꽃, 민들레, 씀바귀, 눈에 보일 듯 말 듯 핀 뱀딸기꽃 인동초에다 찔레꽃 그 이외에도 이름 모를 야생 들꽃이 자리자리 피어난 모습이 오히려 잔디보다 더 보기 좋아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제비꽃 앙증맞은 보라색 수줍음도, 민들레 씀바귀꽃 노란 따뜻함도 클로버 보드라운 푹신함도 인동초 넝쿨 펜스 감고 하얀 혓 술 날름 내민 흰 꽃들 참 보기 좋아서다.

새삼스러운 말이라 할 것도 없다. 본연의 형질로 변함없이 제 모습으로만 피는 들꽃은 언제나 우리의 산야에 예전의 모습으로 피고 진다.


    나는 우리 들풀과 들꽃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좋아 하는 것도 아니고 태생이 시골인지라 어릴 때부터 친근하게 보면서 자란 탓이기도 하다.  예전에 잠시 충남 공주시 우성면이라는 시골에서 살았을 때 우리집 주위 산자락과 들에는 들꽃이 지천으로 피고지고 했다. 나를 매혹시켜온 순박한 들꽃은 지금 살고 있는 경주로 이사를 와서도 늘 내 곁에서 수줍은 모습으로 시절 따라 피고 지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꽃들은 패랭이, 민들레, 씀바귀, 할미꽃, 제비꽃, 인동초, 구절초, 개망초, 나팔꽃 따위를 캐어다 화단에 옮겨 심었는데 그 종류가 제법 다양하다. 들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끈질긴 생명력과 아무런 꾸밈이 없다는 것이다.

   

    들꽃을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들꽃은 인위적인 손을 타지 않고 구태여 힘들여 비료를 주거나 물을 주거나 김을 맬 일손이 없어도 알아서 때가 되면 피거나 지거나 한다. 그리고 제 한 몸 씨내릴 곳만 있다면 박토건 옥토건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끈질긴 씨내림으로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의 소산이다. 또 들꽃은 꽃이 필 시기를 스스로 택해서 피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초지상적인, 지극히 현실적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매혹적으로 던져 준다. 가령 도저히 식물이 자라나지 못할 시멘트의 틈새나 심지어 사람들이 수없이 걸어 다니는 보도블록의 사이에 뿌리를 내려 그곳이 원래의 제자리인 듯 동화된 잡초를 볼 때, 절벽 바위틈새에, 혹은 찬 눈밭에 핀 산(山)꽃들을 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처연히 조응된 들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들풀 들꽃이 살아 숨쉬는 산천의 주인으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푸른 공기와 숨쉬는 땅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 만 고요히 피는 이 들꽃의 끝 모를 생명의 기세에는, 친화한 동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이감을 나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들꽃이 피우는 꽃의 향내는 확실히 사람의 손길에 개량되어 채색된 아름다운  인공적인 꽃보다야 다르지만 산야를 바탕삼아 때 맞는  계절에 수더분히 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명적인 꽃이 아닌가 한다. 이 들풀 들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하고 견개한 정절의 꽃이 아니라하면 안 될 것이다.

 

    모든 조건을 어려움으로 여기지 않는 불굴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 바로 들꽃이다. 그래서 나는 들꽃을 사랑한다. 그리고 불굴의 도전정신과 질긴 인내를 찾아보기도 하고 조건에 순응되어 살아가는 조화의 미덕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 들풀 들꽃이 화려하거나 품새가 좋거나 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질박한 인정과 청초하고 때 묻지 않고 청순함이 넘칠 뿐 아니라, 만약 기품과 모양새가 볼 품 없다 해도 도전자적 성격과 불굴의 기질만은 인위적으로 사람의 손을 통해 전래의 형질을 빼앗겨 개량된 온실의 꽃과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그 인내의 패기와 그 끝없는 본능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질긴 인내의 아름다움을 표하고 있는 것마저 내가 들풀 들꽃을 사랑하는 이유다.

 

    근래에 와서 우리 들꽃의 아름다움을 뒤늦게 발견한 많은 이들이 특별한 관심 속에 찬양되며 보급되고 있다. 그것은, 정말로 바람직한 일이다. 들꽃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뒤늦게나마 우리 것에 대한 열정이 이름 없는 들풀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 그것이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들풀은 그 초성(草性)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고유의 종이 풍요롭게 보급되고 번성하여 외래의 꽃을 능가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상상을 나는 가끔 한다. 우리 들풀 들꽃의 상태를 보더라도, 다른 손질된 꽃들에 비해서 얼마나 생명력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독특한 아름다움과 특종의 성분, 특정의 기질을 가지고 우리의 귀중한 토종의 특화된 자산이 되어  우리들의 으뜸한 초본으로, 세계인의 귀여움 받는 우리 꽃으로 알려졌으면 하는, 그것이 소박한 마음으로 내가 소망하는 일이라 하겠다.

   

    여기서 중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왜 우리 들풀에 관심을 두어야하나 하는 문제다. 우리는 식물의 자본성에 일찍 눈을 뜬 서구 여러 나라들이 세계 각지로부터 수집한 식물의 본질을 특화 발전 변형시켜 개량한 뒤 그것이 바로 자원이 되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뒤늦게나마 우리 것에 대한 보존에 열성을 더 해야만 할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우리 들풀 들꽃만큼 토속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담담한 가운데 수더분한 노련미가 보이는 지순한 할미꽃을 무척 좋아한다. 할미꽃, 그 할미꽃이 보여주는 말할 수 없이 인정스럽고 따뜻한 할머니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좋다. 할미꽃 이름도 얼마나 좋은가? 우리집 넓은 마당에 금년에도 들꽃들이 피운  향으로 가득하여 새와 벌과 나비가 다시 찾아와서 일상에 찌든 나에게 싱그러운 평화와 뿌듯한 풍요를 줄 것이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나물 좀 뜯자는 할머니들의 주문에 넌짓 동의의 뜻을 보냈다. 한 줌 뜯어가도 좋다는 눈빛을 아내에게 보냈다. 두 분은 제법 많은 양을 신나게 뜯었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흥을 내며 뜯고 있는 풀을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사실 나도 궁금히 여기고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잡초는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억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을 뿐 틀림없이 본적이 있었다.


    아내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뜯어 가는 것은 괜찮은데요. 그 풀이 무슨 나물이지요?” “아이고, 이런 촌사람들 봤나, 지거 밭에 나물도 모르고 키웠나, 이거 부지깽이나물 아이가, 된장에 참기름 한 방울 넣고 조물락 조물락 무치면 밥도둑 아이가, 쌈 싸도 향이 얼매나 좋은데”  아, 맞다! 그래 부지깽이나물이다. 그때야 생각이 났다. 울릉도의 특산 나물 부지깽이나물이었다. 울릉도 여행 중에 무친 맛도 보았고 쌈도 싸먹어 본 나물이 그제야  생각났다. 바닥에 부지깽이나물 깔고 생선 웃 올려 졸인 찌게는 지금도 아련한 맛으로 그 향이 입안 뱅뱅 돌고 있다. 전라도에서 고사리나 고비나물 아니면, 말린 고구마줄기 바닥 깔고 조기 웃 올려 졸여먹은 맛과 앞 다툼 벌일 정도로 맛이 있었다. 


    울릉도에서는 옛날에 흉년이 들면 섬 주민들의 훌륭한 구황식물로 맛도 향도 아주 띄어난 나물이다. 윗순 똑똑 따서 생채로 먹기도 하고 삶아 말려 묵나물로 겨울 밑반찬 하기도 한다.  고기 구워 상치대신 쌈 싸기도 한다. 그 맛있는 울릉도 부지깽이가 우리 집 펜스를 따라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올 봄에는 나도 좀 따 먹어야겠다. 여러해살이 풀이라 따로 씨 뿌릴 필요도 없다. 돼지우리 속의 진주 이야기야 알고 있지만 모르면 촌놈이고 촌놈 소리 들었지만 인심 잘 쓴 봄 날 하루였다.


              03,  03,  16  우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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