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주식인가 간식인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불과 십 년 사이에 비만증 어린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를 무턱대고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아들딸에게 영양
많은 음식과 좋아하는 간식을 자꾸 먹인 탓으로 몸은 뚱뚱해지고 행동은 느려져
간다는 것이다.
문교부의 통계(89년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육 학년 어린이의 평균키가 남자는
143.7cm,여자는 145.43cm로서 십 년 전에 비해서 각각 5.2cm, 5.34cm 더 커졌다.
또 이들의 몸무게 경우도, 남자 36.3kg, 여자 36.16kg으로 역시 십 년 전보다
4.9kg, 4.66kg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체력은 낮아졌다. 육학년 남자 어린이가 백 미터 달리기에서 십 년 전보다 일 초 가량 늦어지고, 여자 어린이는 철봉 매달리기에서 지탱하는 시간이 일초 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불어나는 어린이의 몸만 바라보면서 즐거워해야 할 것인가? 사람을 기른다면
몸보다 정신을 더 살찌게 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집에 마음을 일깨우는 글귀가 붙어 있고, 책들이 언제나
손에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나를 이기자' '시간을 아끼자' 등등 그들 마음의 지표가 될
글귀가 눈앞에 있어서 흐트러진 생활을 바로잡고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책들이 언제나 책장 안에 가지런히 갇혀 있을 뿐, 그 문이 한 번도 열리지
않는다면, 책은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장식을 위한 것이라고 우리 어린이가 잘못 알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어떤 이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가서 벽의 길이를 재고, 그 만큼 전집류를 자로 재어 사서 꽂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식탁이나 응접실을 잘 꾸며 안락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마음을 쓰기보다는 가정에 독서의 분위기가 감돌게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텔레비전을 멀리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부모여야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서, 자기네는 그 길로 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어린이들만 가라고 강요한다.
어른이 앞서 가서 위인도 만나고 공주도 만나고 수염이 긴 할아버지도 만나고 큰
집과 나무도 구경한 다음, 뒤따라온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대화가 풍부한 가정에서, 상과 칭찬이 풍부한 가정에서,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가정에서만 위대한 사람, 훌륭한 민주 시민이 성장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하여 자꾸 토론하다 보면, 어느 틈에 보이지 않는 독서의 키는
무럭무럭 자라 엄청날 정도가 된다. 그 키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한계도
뛰어넘는다.
어머니들은 성급하게 묻는다.
'우리 아이는 몇 학년인데 무슨 책을 읽으면 좋으냐'고.
독서 학년은 학교의 학년처럼 틀에 맞출 수가 없다. 삼 학년은 세모꼴, 사 학년은
네모 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삼 학년이지만, 독서 학년은 6학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마음 아픈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전국에서 책이 팔리지 않아 서점
백여 군데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 중 서울만도 서른 네 군데가 없어졌는데,
열 여섯 군데는 운동 구점이 되고 열 두 군데는 전자 오락실이 되고 여섯 군데는
옷가게로 바뀌었다고 했다.
책보다 스포츠에 들뜨고, 전자오락실에 마음을 빼앗기고, 속마음은 텅 비었는데
겉멋만 부리려 하는 풍조의 반영이 아니겠는가. 어린이에게 독서를 권하기 전에
먼저 부모가 어린이의 손을 이끌고 서점에 가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그리하여
서점이 자꾸자꾸 늘어나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가 된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번영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나고 문화의 꽃이 눈부시게 피어나지 않겠는가.
우리 어린이에게 무슨 책이 적당하겠는가를 묻지 말고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어미
새가 먹이를 입으로 물어 어린 새에게 먹이듯, 먼저 읽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독서
먹이'를 찾아 주는 그런 사랑과 성실을 본받을 수는 없을까.
책은 정신의 주식이지 간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말을 함부로 한다.
'할 일 없으니 책이나 읽어볼까. 심심하니 책이나 읽자'고.
독서는 심심풀이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길러 주어 참된 인격을
갖추게 하고, 지식과 경험을 넓혀 주며, 자기 목표를 이루는 의지를 길러 주고,
자율적인 학습방법을 익히게 함으로써 평생교육의 기초를 닦아 가게 하는 것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들인 책 읽는 버릇이 평생토록 계속됨을
되뇌이고 싶다.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책을 펼쳐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 부모의 참된 힘은 돈이나 권력을 과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서 해결의 길을 찾도록 이끌어 주는 데에 있다.
지은이 < 김 수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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