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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의 고통

돈키호테 |2003.04.03 10:14
조회 4,252 |추천 0

 

 

 


죽음의 안개는 이렇게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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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

         

 

고엽제 枯葉劑 (defoliant)
 



 

   

   농약의 용도상 분류에서 낙엽제(落葉劑)에 해당하는 것을 고엽제라고 속칭하지만, 흔히 미국군이 베트남전쟁 당시 밀림에 다량 살포한 2·4·5-T계 제초제를 가리킨다. 미국은 고엽제를 무기로 보지 않고 밀림을 없애 게릴라전을 막고 군량의 보급을 차단할 목적으로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미국군은 이 작전을 '오렌지작전'이라 불렀지만, 매스컴에서는 이를 '고엽작전'이라 보도하고 여기에 쓰인 약제를 고엽제라 하였다. 1969년 미국은 동물실험에 의하여, 2·4·5-T계 제초제를 합성할 때 함유하는 초미량의 불순물인 다옥신이 인체에 들어간 뒤 5∼10년이 지나면 각종 암과 신경계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밝히고 이 약제의 사용을 중지하였다.
   1994년 6월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군인 및 민간인 약 2백만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용사들 중에서도 고엽제로 인하여 상당수가 두통·현기증·가슴앓이·피부에 혹이 생기는 등 고엽제 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국제연합(UN)은 고엽제를 '제네바일반의정서'에서 사용금지한 화학무기로 보고 베트남전쟁 이후 고엽제의 사용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국에서는 여전히 고엽제가 작물파괴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기아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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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


(죽음보다 고통스런 고엽제후유증)

 

1965년 2월5일. 해병대 특수부대 공병중대 김민영(25)상병은 국민들의 환호속에서 비둘기부대1진인 180여명의 부대원들과 월남전에 파병된다.

비둘기부대는 사이공 서북방40Km지점에 위치한'디안'에 막사를설치하고 베트콩들과 대치한다.

울창한밀림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베트콩들과는달리 한국군은 전투에 어려움이많았으며 결국 같은해 7월2일,부대의시야를 확보하기위해 일명 '낙엽작전'을 수행하게된다.

부대막사를 중심으로 여의도면적에 달하는 밀림을 불도저로 완전히 밀어버리고 고엽제를 살포하는것이 이작전의 임무다.

불도저로 나무를 밀어내면 뒤따라 트럭에실린 물탱크로부터 병사들이 고엽제를 살포한다.

파혜쳐진 밀림주변에 소방호스를 사용해 고엽제를뿌리면 나무는 더이상 자라지못하고. 다음날이면 누렇게 낙엽으로 변한 나무들만이 나뒹굴게된다.

불도저위로 쏟아지는 고엽제를맞으며 김상병등은 29일간의 작전을완수했고,이로인해 표창까지 받았던 월남전의 고엽제,이것이 첫번째 실시했던 한국군의 '고엽제작전'이었다. 문제는 한달후에 발생한것이다.
김건송상병이 소변을못보고 온몸이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난것이다.

김건송 상병이 후송된후 김민영상병도 온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났고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그이유를 알수없었다.

이유를 모르니 약이 있을리없었고 그저 모르핀을맞으며 고통만을 달랠뿐이었다.

"그 첫번째작전에서 고엽제에 피폭된전우는 최소200명 가까이 될겁니다.

외곽근무를섰던 경비대대전우들은 모두 피폭됐다고 봐야할거니까요.

고엽제가 뿌려진 밀림에서 기념사진도찍고 누워딩굴기도하고 했으니까 작전에 투입된사람은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겁니다.

그래도 고엽제 때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김민영(60전주시 서서학동)씨는 그당시 고엽제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는것을 아는사람은 아무도없었다고한다.

그래서 전쟁초반에는 비행기살포가아닌 소방호스로 고엽제를뿌리고 아무 거리낌없이 작전을 수행했던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월남전에참전해 국가에 부를 안겨다줬지만, 7만명이넘는 참전전우들이 고엽제후유증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중 고엽제후유증으로 판명돼 국가유공자로 지정된사람은 3천~4천명, 후유의증환자로 지정돼 매달20만~40만원의 보조를받는 사람이 5천~6천명 정도다.

문제는 어떤혜택도 받지못하고 있는사람이 10만명이 넘는다는사실. 등외판정을받은 5만명의 전우들은 약값만 보조를 받고 있다.

 

고엽제는 몸속의폭탄이다.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를일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와야만 한다고한다.

또 진단서를 받아서 보훈병원에 재심을 신청해도 번복되는 경우는없다.

결국한번 등외판정을 받게되면 다시는 후유증환자로 지정될수없는 제도적인 문제가 있는것이다

김씨는 지난2년동안 검사비가 수백만원하는 검사를받고 진단서를 보훈병원에 제출, 재심을 신청해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받고있지 못하고있다.

김씨에의하면 보훈병원에 재심을받으러 갈때마다 같은의사가 심사를 한다고하니 재심에 통과되는것은 애초부터 무리인지도 모른다.

재심을 받으러 가는도중 차에서죽는 경우도있고, 죽은후에 대상자로 지정된 경우도 있다한다.

"그래도 저는 가진재산이있어 검사받고 재심을 신청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우들은 이런상황이 아닙니다.

병이 완전하게 발병하지 않더라도 근육을 제대로 쓸수없기때문에 일을못합니다.

경제활동을못하니 결국,가정은 파탄나고 당장 하루먹고살기도 힘든데 수백만원하는 검사를 어떻게 받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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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는 신경을 완전히 녹여 버린다.

 

그리고 잠복기간도 길다.

언제 어느때 터질지모른다. 한번터지면 걷잡을수 없다.

김씨도 65년 발병후 2번 병원신세를지다 지난 95년부터 이가빠지고 봄에 마비증상이 왔다고한다.

같이 작전을 수행했던3명은 죽거나 식물인간이 돼있는상태다. 더 큰문제는 고엽제가 자녀에게 영향을줬다는 것이다.

 

"제 자식놈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

 

저야 이미 죽은목숨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하나밖에없는 25살 아들놈은 지금 허리를 제대로 못쓰는등 마비증세를 보이면서 고엽제후유증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들놈 검사한번 해보자고 하지만 도저히 병원에 갈수 없었습니다.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에 갈수없었던 것은, 그 사실(고엽제피폭)을 인정하게 되는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현재 김씨는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다 !
 

 

매일 마약과 모르핀으로 고통을 삭히고있다.

비오기 전날이면 몸의통증은 더해진다. 입이붓고 밀려오는 통증을 이기지못해 모르핀을 먹어야한다.

음식도 못넘겨 곡물을빻아 우유와섞어 마신다.

치료약도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는 고통의 연속일뿐 말기 암환자보다 많은마약과 모르핀을 먹고있지만 이것도 면역이됐는지 예전만큼 잘듣지 않습니다.

"이게어디 사람이 사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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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만도못한 삶을사느니 차라리 안락사를시켜달라!"

 

실제로 김씨는 지난5월14일 서울보훈병원에 안락사 요청서를냈다.

이씨가 낸 청원서에는 "이렇게 굼벵이만도 못한 삶을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고 씌어있다.

 

죽음보다 사는것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연금과 치료비를 아끼기위해 7만명이넘는 전우를 벌레보듯하고있는 정부가 어디있습니까?

그래도 김대중정권은 뭔가 다를줄 알았는데 똑같습니다.

국가를위해 싸우다 병을얻은 군인들에게 이런대우를 해준다면 앞으로 누가 애국을할것이며 나라의위기에 누가 나서겠습니까?

죽는날까지 고통받는 전우들을 위해 싸울겁니다!"

 

고 엽 제!

 

베트남전쟁기간중 베트콩의 은둔지와 무기 비밀수송로로 이용되어온 정글제거와 시계를 청소하기위해 또 베트콩 경작지 농작물제거를 위해 1960~1971년 베트남국토의 15%에 해당되는 60만에이커의 광범위한 지역에 2,000만G/A의 고엽제(AGENT-ORANGE)를 살포했다.

그중80%에 해당하는 1,600만G/A의 고엽제를 한국군작전지역에 무차별 살포하였다.

 

고엽제속에는 독성이강한 물질인 다이옥신이 함유돼있다.

 

다이옥신은 치사량이0.15g인 청산가리(Kaliumcyanid)의1만배, 비소(AS)의 3,000배에 이르는 독성을 갖고있다.

다이옥신1g이면 사람 2만명을 죽일수있는 지구상에서 독성이 가장 강한 독극물이다.

이것은 잘분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용해도 되지않아서 인체에 극히 적은양이 흡수되었다 해도 점차로 몸속에 축적되어 10년~25년이 지난후에도 각종 암,신경계손상,기형유발,독성유전등의 각종후유증을 일으키게된다.

 

베트남전쟁당시, 고엽제 사용에관한 별다른지시나 주의사항도 없었고, 특히 비행기로 공중살포시에는모기에 물리지않는다해서 고엽제가 쏟아지는곳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했다.

부대주변에서 제초작업을하는 병사들은 고엽제가루를 철모에 담아서 맨손으로 뿌리기도했다.

작전 기간중에는 흐르는물을 수통에담아서 거기에 소독약 몇알만 넣어 마셨다하니 그간 축적된 고엽제의양은 이루 말할수 없을것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신중현 작사/작곡

김추자 노래

 

자료출처:http://www.vietnamw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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