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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계시나요

김정미 |2003.04.08 20:51
조회 210 |추천 1

꿈 많았던 여고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겨울이었다

강원도 두메 산골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먼 곳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기차를 두번씩이나 갈아타고서 도회지로 나가게 된 행운의 이유는

다름아닌 대학 본고사를 보러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제일 먼 곳까지 나아가 본 곳이라고는 우리집에서 기차로 두시간 거리인

동해바닷가를 한번 가 본 기억밖에는 없었으니,

이번 여행이 예사로운 일은 결코 아님은 분명한 것이다

대구에서 본고사를 치르고 늦은 시간 기차를 타고 영주역에 내리게 되었다

영주역에서 두어시간 기다려서 서울에서 오는 기차로 갈아타게 된다

새벽녘에 영주역에 내리니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때는 겨울 하고도 새벽이었으니 피부속 깊이 스며드는 한기가 낯가림 잘하는 사춘기소녀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으니 그 추위가 오죽 했겠는가

교복을 입었다고는 하나 누가 봐도 영락없는 촌 여학생임은 들통나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대합실 구석진 자리에 땅만 보고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조금씩 졸리는 눈을 애써 크게 뜰 수 밖에 없는 것이 기차를 놓치면 않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난무한다

엄마는 잘 계신지... 시험문제도 오락가락...

"본고사 치고 오시는 길인 모양이죠?"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웬 남학생이 서 있는게 아닌가

까만 교복을 입고 한 손엔 가방을 들고 빙그레 웃고 서 있었던 것이다

순간 부끄럼이 앞서고 어찌 할 바를 몰라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 남학생 슬그머니 내 옆에 앉더니 내가 들고 있는 책을 힐끔 본다

"시험은 잘 치루셨나요? 저도 시험치고 오는 길인데..."

어느 대학인지 조차 물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한 촌 여학생에게 그 학생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얼었던 몸이 대합실 난로불에 녹아지듯 내 마음도 서서히 친밀감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무슨 과를 지원하셨나요? 어떤 문제가 나왔던가요?"

우린 방금 치른 따끈 따끈한 시험문제를 들먹이며 수험생으로서의 분위기가 어느새 어색함은

저 만치 달아나게 하고 있었다

주로 예비고사 문제 내용과 국사나 사회과목의 내용들로 대화는 장단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마치 동창생을 만난 듯 친밀감과 동지의식으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벌써 우리는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되어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흘러 내가 먼저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해져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 남학생이 없어 진 것이다

기차는 들어 올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개찰구 앞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시야에 그 남학생은

들어 올 줄을 모른다

어딜 갔을까...인사없이 갈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두리번 거려 봐도 그 학생은 보이지를 않고 시간은 초조하게 자꾸만 흐르고

애가 탄다

기다림의 한계가 지나고 아쉬움과 서운한 마음 가득히 개찰구를 마지막 빠져 나가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그런데 저 만치서 숨을 헐떡거리며 그 남학생이 달려오는게 아닌가

손에 까아만 봉지를 들고서...순간 어찌나 반가운지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 남학생 급히 가져온 봉지를 내 손에 건네주며 손을 흔든다

기차는 저 만치서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는데 급한 마음에 봉지만 건네받고 서둘러 기차에 오른다

그 학생의 뒷모습도 보지 못한체 기차는 플렛홈을 빠져 나갔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야속한 기차는 사정없이 달리고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봉지를 열어보았다

보름달빵, 음료수, 과자, 껌 등등..이 들어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그 학생은 어떻게 이런 것을 준비 할 생각을 다 했는지

갑자기 그 학생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 왔다

그리고 유수같은 세월은 흘러 흘러 지금 추억의 한페이지를 넘기고있다

가끔 버릇처럼 그 학생을 떠 올려볼 때가 있다

이해 타산적인 세상속에서 그 학생은 조건없는 베품의 모습을 보여 줄 줄 아는 사람이었음이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이제 나처럼 중년이 된 그 사람은 아마 지금도 어디에선가 어떤이들에게 그런 따스한 정을

나눠주며 살아가리라 믿어진다

어디 계시나요

살아생전 꼭 한번만이라도 그 냉기 흐르던 그 대합실 그 의자에서 만나고 싶은데.

이젠 국사문제 말고 자녀교육문제를 주제로 삼아도 좋구요

글로 옮겨 놓고 나니 정말 꼭 보고 싶어지네요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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