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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같은 이야기... 우리 할머니.

영이 |2003.04.14 11:34
조회 2,500 |추천 1

전부터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집안 욕이라 차마 하지 못하고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일어난 일이 너무 기막히고 아파, 하소연할데가 없어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됩니다.

얘기가 좀 긴데요.

그래도 처음 부터 얘기하고자 합니다.

차근차근 앞뒤 사정을 아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괜히 저와 저희 어머니만 욕먹을거 같거든요.

저희집은 딸만셋인 딸부잣집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생과 둘이서 할머니댁에 얹혀 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셋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좀더 나은 삶을 위해 부모님께서는 큰 결심을 하셨지요.

가게를 얻었는데 초등학교가 좀 멀리 있어서 아직 어린 막내만을 데리고 돈을 벌겠다고, 저희 가족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오손도손 정답게 살았었는데 헤어진다니 슬펐지만, 어린시절에는 왜 할머니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같은 것이 있지요.

저도 그래서 저는 할머니께서 정말 포근하시게 저희들을 감싸주시고, 잘 대해주실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장사하시느라 바쁘셔서(그전까지는 어머니께서 조그만 시장안의 노점상을 아버지께서는 짐을 싣고 멀리까지 가셔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라면을 끓여먹기 일수였고, 밥 한번 제대로 챙겨먹은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지만 부모님이랑 헤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고 마냥 좋기만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누가 챙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냥 가슴 따뜻해지고 즐겁고 안심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교회는 계속 다녔기에 한주에 한번씩 교회에서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처음 몇달은 좋았는데 갈수록 할머니에 대해 정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언제나 아침 6.7시전에는 깨워서 집 전체 청소를 시키셨습니다. 하루에 필히 두번. 필요할때는 세번정도씩...

집안일 하나하나 저희들을 시키셨는데 어린 마음에 좀 원망도 스러웠지만 그분들 살아오신게 그렇고 또 그게 당연한줄 알고 열심히 했었지요.

그런데 방학때도 꼬박꼬박 깨우시고(늦잠자는 걸 못보시더군요.) 아침 저녁 집안 청소에 설겆이에 상차림은 당연한 저희 몫이었습니다.

일하기 싫어 동생이랑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지요.

그전까진 싸움이라고는 모르고 서로 쌍둥이처럼 붙어다녔었는데 할머니 댁에 들어오고 부터는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이간질 덕분이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고의가 아닌 할머니의 천성인거 같은데 항상 따로 불러서는 교묘하게 이간질을 시키시더군요.

첨엔 무시하다가 차츰 마음에 쌓여서 서로 멀어지게 되고 싸우게 되고....

게다가 어쩌다 친구가 오면은 친구에게도 일을 시키시더군요.

저희집에 오면 당연한 코스가 걸레입니다.

결국엔 오려는 친구도 없었지요.

거기까진 괜찮았습니다.

그렇게 몇년 살다가 부모님은 아예 들어오시고 화물차를 몰고 장사를 다니셨습니다.

그때 저희집이 조그만 18평짜리 아파트였는데, 큰방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생활하시고, 두번째 방은 증조할머니, 가장 작은 방은 저희 부모님 저희 셋은 마루에서 생활했습니다.

힘든 생활이었지요.

부모님은 새벽 세,네시에 나가셔서 저녁 열두시 다되서야 들어오셨구요.

할머니는 항상 집에 안계셨습니다.(그땐 어디가시는줄 몰랐지만 교회모임이든 어디든 놀러가는데는 다 다니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리어카에 화분을 싣고 팔러다니셨구요.

집에오면 항상 방문이 모두 잠겨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습관이죠.

그럼 저희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라면을 끌여먹고 거기에 엎드려 책이나 읽거나 숙제하며 할머니가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마루에는 TV도 없었거든요.

어쩌다가 작은방(부모님방에 조그만 흑백 TV가 있었습니다. 잘 안나왔지만...)에서 만화프로라도 볼라치면 빗자루로 맞았습니다.

할머니에게 안들키려고 소리까지 완전 죽이고 문잠그고 보다 열쇠 따고 들어와서 빗자루로 무차별 때린적도 있습니다.

애들이 무슨 티브이냐고 만화프로 이십여분 보는 것도 못봐줬습니다.

놀지 못하게 어떤 일거리든 말들어 시키고 나가 놀라치면 부르고 그랬습니다.

그땐 정말 빗자루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전기, 물등을 아끼시는 것 같은데 저희가 쓰는 건 아까답고 별 잔소리를 다하시면서 본인이 쓰시는 것에는 관념이 없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저희는 알아서 각자 도시락을 싸고 알아서 밥챙겨 먹고 다녔습니다.

할머니께 더 기대고 싶지도 않았고, 저희 밥 좀 해주고 도시락 싸주는 걸로 정말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시더군요.(지금 말씀이.. 저희 부모님께 '너거 자식 먹여살리느라 내가 골병들었다.')

 

그 후로 각자의 생활이 되었고 저흰 알아서 챙겨먹었습니다.

그래도 어리다 보니 끼니의 대부분은 라면이었고, 여전히 청소나 설겆이, 빨래등은 저희 몫이었습니다.

어쩌다 집밖에서 좀 나가 놀려고 하면 할머니께서 부르셔서 어떤 일이든 시키셨고, 과자하나 사먹는데도 할머니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저희들이 용돈을 넉넉히 받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오십원이 다였거든요.

어쩌다 여름에 50원짜리 하드를 사먹을라 치면 '너네 엄마는 너희한테는 어지간히 돈도 잘 주네.' 이러시고 애들이 무슨 군것질이냐고 뭐라하셨습니다.

저희 형편에 언제나 단벌이었는데 어쩌다 티라도 하나 사줄라치면 할머니께서 어머니께 야단을 치셨습니다.

할머니는 계절만 바뀌면은 뭐가 필요하다 뭐가 없다 사달라시면서 애들 운동화한짝 사주는데도 별의별 욕을 다하셨습니다.

게다가 눈은 얼마나 높으신지 저희어머니가 할머니 옷은 왠만해선 비싸고 좋은 것 사들릴려고 하시는데 사다드리면은 색깔이 노티난다. 이게 뭐냐.. 식으로 입지도 않으시고 던져놓으시든지 차라리 돈으로 다시 받으시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어느날 할머니께서 왠일로 주말에 저더러 같이 나가자고 그러시더군요.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었는데 서문시장엘 갔습니다.

물건은 안사시고 여기저기 구경하시더니 옷가게로 가셨는데 어느 코트 앞에서 마음에 드신듯 한참이나 이리저리 보시더니 주인아저씨께 얼마냐고 물어보시더니 얼마다라고 말씀하시니깐 한숨을 푹 쉬시며 저랑 그냥 돌아오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녁에 어머니께 할머니가 어떤 옷이 마음에 드셨는데 돈이 없으셔서 못사시는 것 같은데 좀 사드리면 어떻냐고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한숨을 푹 쉬시며 '얼마전에 코트 사드렸는데....'라고 중얼거리시더군요.

그때의 그 마음은 어린마음에 뭔지 몰랐지만 커서는 뭔지 알겠더군요.

자신이 원하는 건 손에 넣고자 어린애도 이용을 서슴치 않으시는 할머니...

저희들이 할머니께서 시키시는 일에 불만을 표하거나 조금이라도 반항을 한다치면 저녁늦게 들어오신 어머니께서 무릎을 꿇고 앉아 몇시간이고 설교를 들어야했습니다.

심심하면 어머니는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고,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점점 쌓여갔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집에오면 설겆이는 그냥 쌓여있기 일수였고 할머니께서는 밥만하시고, 다른것엔 손도대지 않으셨습니다.

반찬도 어느순간부터 할머니 드시는 것 저희가 먹는 것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비싸든말든 생선이 있어야 했고 한겨울이라도 드시고 싶으시면 야채에 과일에 다 드셔야 했습니다.

초등학교 어느날 집에 와보니 역시나 할머니는 안 계시고 냉장고를 열어봤더니(아직 부모님이 같이사시기 전) 할머니께서 짜장을 해놓으셨더군요. 딱 둘이서 먹을만한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랑 맛있게 밥을 비벼 먹었는데, 저녁에 할머니께서 오셔서 냉장고를 보시더니 '이런 빌어먹을 것들이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그건 왜먹노? 내 먹을려고 만들어서 남은거 저녁에 먹을려고 넣어놨더니' 이러시더군요.

그후로 할머니께서 드시는것 할머니 드시라고 어머니께서 갖다 놓은 고등어, 갈치, 상어고기(특히 상어고기를 좋아하십니다. 아무리 비싸도 드시고 싶을 땐 드셔야 되지요.)등은 저희들 손도 안댔습니다.

저흰 정말 도시락 빼고는 라면만 먹고 지냈습니다.

어쩌다 비가 와도 마중나올 사람이 없어서 비맞고 오기 일쑤였구요, 도시락을 잊어먹거나 아침에 늦잠자서 못싸는 날은 그냥.... 하루종일 굶었습니다.

겨울에 불도 안들어오는 추운 마룻바닥에서 자는 것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가끔씩 생각날때마다 저희를 불러 앉히고는 어머니 욕하시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저를 부르시면 어머니 욕하시고, 동생을 부르면 저와 어머니 욕하시면 닮지마라 그러시고...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며 전문대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후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증조할머니 얼굴도 보기 싫다며 저희가 들어올때까지는 상도 들리지(항상 저희에게 상을 들이게 시키셨습니다.) 않으셨던 할머니...

치매 걸리신 증조할머니를 얼마나 구박하셨는지는 옆에서 본 제가 잘압니다.

그러면서도 병든 시어머니 모신다고 교회에서는 효부로 소문이 났더군요. 참, 기가 막혀서...

그리고 제가 전문대를 졸업하는 해 겨울에 할아버지께서 빙판길에 넘어지셔서 심하게 다치셨습니다.

그리고 큰 수술을 하시고 병원에 한동안 계셨는데, 그때... 저희는 그냥 할머니 얼굴 안봐도 생각에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저흰 마루에서 생활했고 할머니는 어디 나가시면 꼬박꼬박 문을 잠그셨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저희부모님 얼굴이 어두워지시더군요.

병원비가 만만치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항상 맏이니깐 식으로 저희아버지께 혼자 책임질것을 종용하신 할머니께서는 이때도 마찬가지였고,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없이 병원비를 다 부담하셨습니다. (모르지요.. 고모님은 좀 보태셨을지...)

그런데 피곤하더라도 언제나 식사 챙겨 저녁마다 병원에 꼬박꼬박 들리시고 병원비 다 부담하시는 저희 어머니는 병원사람들 붙들고 얼마나 욕을 하셨는지 어느날 같은 병동의 환자보호자분이 너희할머니 왜 그러시냐고 그러시더군요. 그분이 보시기에도 피곤한데도 들르고 갖은 정성 다하는 어머니 욕하시는게 이해가 안되셨던 모양이지요.

그런데도 그 긴 병원 생활 중 딱 하루 들러서 멀건 곰국 끓여 들려 용돈 십만원만 할머니께 쥐어주고 병원비 얘기 나올까봐 전화한번 없고 얼굴마주칠까 급히 돌아가신 저희 막내숙모 칭찬은 입이 마르시더군요.

편애하신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일 줄이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저희가족이 병원비 부담하기에는 너무나 큰 짐이었지만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퇴원한후 한동안 빚갚느라 고생했습니다. 단순한 입원비만이 아닌 수술비까지였으니깐요.

그런데... 제가 아직 취직자리가 정해지지 않은채 졸업한 후 퇴원해서 집에서 몸 추스리시던 할아버지께서 암판정을 받으셨고 일년 가량을 앓으셨습니다.

아시겠지만 암이라는 것이 본인도 힘들지만 가족도 힘들지요...

전신에 암이 퍼지셔서 고통받으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치매까지 걸리셔서 제정신이 아니실때도 많으셨고 고통에 몸부림칠때도 많으셨지만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던 저희들은 집에서 진통제나 주사하고 지켜보는 것이 다였지요.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할아버지 병수발드신다고 고생한다고 그러셨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던말던 옆에서 TV보시고 상관도 않으셨습니다.

하루 세끼 챙겨드리는게 다였지요.

나중에 할아버지께서 대소변도 못가리시고 화장실이나 집안 여기저기 대변을 묻히시면 할머니께서는 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치웠지요.

그때 저는 집안도 이렇고 해서 취직은 당분간 포기하고 자격증이나 따서 나중에 취직하자란 생각에 있었는데 그만 IMF가 터져서 취직도 못하고 계속 집에 눌러앉게 되었지요.

할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하시면 옆에 있는 저까지 고통스럽고 마음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할머니 고통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언제나 아프신분 이해도 안해주시고 오히려 큰소리 치시고 짜증을 내시더군요.

그러다가 어느날 제가 방에 있는데 크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할아버지께서 아프시다 못해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시는데 할머니께서는 병원가봤자 대책이 없다는 걸 아시지요... 그래서 안된다고 소리치시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점점 인신공격으로 가고 듣고 있자니 쾅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할아버지께서 나가신거였습니다.

그당시 할아버지께서는 암이 전신에 퍼지셔서 눈도 안보이셨을 땝니다.

전 그래도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바로 쫓아나가실줄 알았습니다.

눈도 안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나가셨는데 걱정도 안되시는지 누워서 TV를 보시더군요.

전 그래도 믿었습니다.

좀 있다 일어나실거라고... 할아버지 찾으러 나가실거라고....

저는 할머니가 쫓아나가시길 바라는 맘으로 계속 보고 있었는데 몇십분이 지나도록 안나가시더군요.

허참........

바로 앞이 찻길이고, 눈도 안보이시는 분이 나가셨는데 태연히 TV 코미디 프로를 보시면 킥킥대시는 모습이란...

제가 허겁지겁 나가서 동네를 뒤졌는데 할아버지를 못찾았습니다.

찾고 찾다 혹시나 싶어 아파트 뒷쪽 주차장엘 가봤더니...(또..눈물이 나는군요.... 흑...) 앞이 안보이셔서 벽을 더듬어 가시던 할아버지께서 담 구석에서 더 나가시진 못하고 헛걸음질을 계속하고 계시는 거였습니다.

그순간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할아버지 손잡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할머니께서는 돌아보지도 않으시더군요.

그순간 느꼈습니다.

할머니는 인간이 아니구나.

어쩌면 저렇게 남편이 아프든지 아들이 아프든지 신경도 안쓰고 본인만 생각할 수 있을까... 라고.

저희 할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그 고생을 하시며 돈을 버시는데도 어디서 돈을 퍼다 오는줄 아시는지 저희 살림에 맞지도 않게 사치를 많이하시더군요.

음식 드시는 것도 그렇구요.

해마다 보약은 꼬박꼬박 해드셔야되구요. 약중독으로 이병원 저병원다니시면서 갖은 약은 다드십니다.

의심도 많으셔서 아버지께서 약 지어드리면 약국이나 처방전써준 병원에 전화해서 약하나 뜯어 이약은 무슨약이고 이 빨간약은 무슨약이고.... 전에 못보던약이 하나 들었는데 이건 무슨약이고... 다 확인하십니다.

전에 살던집 근처 약국, 병원, 한의원에서 유명했습니다. 별나기로...

저도 약타러 갔다 쪽팔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사골은 일년중 6,70%는 항상 찜통에 들어있구요.

제 어릴 적 생각은 혹시 아버지가 업동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좀 커서는 혹시 할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오셨나? 그런 의심을 했었구요.

씨받이라는 영화를 본 다음에는... '아~ 옛날엔 그래도 우리집이 좀 살았다더니 첫째 딸낳고 증조할머니 강요로 씨받이 들여서 아버지 낳으셨구나. 그러니깐 증조할머니 그렇게 미워하시고 아버지 잘되는 꼴을 못보시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꼼짝도 못하셨구나..'라고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구요.

그렇게 할아버지도 돌아가시지 할머니께서는 마치 넋놓은 사람마냥 있으셨는데 그게 왜 그렇게 연극으로 보이던지...

어떤 부인이 남편 장례식도 지키지 않고 딸집에 가 있다 끝나면 온답니까?

네???

옷도 어머니가 사드린 하고많은 옷중에 제가 입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없어진 낡은 옷을 입고서는 넋잃은 듯 계시다 근처 고모님댁에 가셔서 끝난 다음 오시더군요.

그런데 삼년 사이에 두분의 장례비용 병원비용은 언제나 저희아버지 몫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후에 병원에 입원하실때도 그러시더군요.

'우리 쓸건 다 벌어놓고 안갔나(할아버지가)'

뭔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할아버지가 나도 모르는 재산을 아버지께 남기셨나????

그런데 그 말이 바로 아파트를 말씀하시던거더군요.

하~

지금 당장 몇백만원이 필요한데...

삼년사이에 몇천만원이 나갔는데....

그래서 그렇게 뻔뻔스러웠었구나.

비싸거든 뭐든 하고싶은대로 다 해달라고 하셨구나...

납득이가더군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여전히 백수생활하던 저는 일년가량 우울증에 시달렸었습니다

뒤늦게 취직하려 했지만 대구 경기도 아직 안풀렸고, 뭐하나 취직준비 해놓은게 없고 자신감 상실에 대인기피증까지 있던 저는 취직이고 뭐고 포기해야했습니다.

그저 멍~하니 집에 누워서 하루종일 라디오를 들으며 생활했습니다.

누워있다있다 배고프면 멍하니 일어나 밥챙겨먹고, 다시 누워 라디오 듣고.

불면증까지 생겨서 밤새도록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새벽에 몇십분 살풋잠들면 자는거고....

그렇게 일년가량되자 살이 찌더군요.

20kg이 넘게 쪘습니다

대인공포증은 심해져서 밖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고 말이 더듬거리고, 횡설수설 했습니다

교회생활도 제대로 못해 본예배만 드리고 도망치듯 집으로 다시와 드러누웠지요.

그러다 문득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취직할래도 경력도 없고 나이만 먹구, 뭐하나 내새울게 없는데 될리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심각한 자격지심도 한몫을 했구요.

그래서 결심한 것이 편입이었습니다.

평소 부모님이 못배운게 한이셔서 저한테 기대를 많이하셨는데 전문대 들어갔을 때도 막바로 편입얘기 꺼내셨을 정도니깐요.

그때는 싫다고 반항도 했었는데 그순간 그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털고 일어나 책꽂이에서 썩고잇던 빨간기본영어부터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잡는 영어라 힘겨웠지만 한권을 마스터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부모님 몰래 시험을 쳤습니다.

결과는 의외로 제가 원하던 대학과 혹시 몰라 예비로 쳤던 대학 둘다 붙었습니다.

마침 편입생을 많이 모집하던 해였기도 하구요.

그런데 제가 간 대학은 원래 목표대학이 아니고 예비로 쳤던 대학이지만 그 사연은 뒤로하고, 그때 부모님은 IMF 때 거래하시던데가 부도가 나서 돈도 못받고 손해를 많이보셨었는데 그럴때 할아버지 병까지 힘겨웠었지요.

그래도 좀 폈으리라 생각하고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등록금을 주셔서 생활이 좀 나아졌구나 라고 생각햇는데 아니었지요.

그래도 졸업후 반드시 갚아드리리라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남들이 다하고 땡땡이 한번 안치고 용돈도 아껴가며 한눈 한번 안팔고 공부만 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할려고 보니... 나이가 걸리더군요.

여자 나이란게 그렇게 걸릴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여기저기 원서도 내보고 했지만 연락오는데는 없더군요.

학교 다니던 중에... 할머니께서도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신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런 병이란 것이 지쳐서 자세한 병명도 안들으려고 했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혈액암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겨울방학 때여서 제가 병원에 있었는데요.

좀 억울했었습니다

그때 정보처리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려는데 그때까지 저희집에 컴퓨터가 없었거든요. 제가 컴퓨터 관련 관데도 불구하고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서 생활하다시피했습니다.

그래서 방학내내 학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준비했었는데 시험치는 그 전달에 할머니께서 입원하셨습니다.

전 한달을 병원에서 살아야했고, 자격시험 원서도 못해고 시험도 못쳣지요.

그때가 실기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지만 한번더 남은 것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못쳤거든요.

그후 시험 제도가 바껴서 첨부터 다시 공부해야했고, 산업기사가 아닌 기사따면되지뭐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못땄습니다. 계속 일이 생기고 공부할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요.

이 얘긴 뒤로하고 할머니 병원생활은 끔찍했습니다.

사실 특별히 치료방법도 없고 누워서 영양주사나 맞고 링겔이나 맞고 숨차다 그러셔서 산소마스크 옆에두고 있는 거 외엔 없었는데도 옆에 누가 없으면 난리 났습니다.

중환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같은 병동의 보호자분들이 이해를 못하겠다 그러시더군요.

다른 보호자분들은 저녁에 갔다가 한낮에 와서 잠깐 있다 가는데 여긴 이십사시간 부어있으니깐요.

그때 저는 낮 내내 병원에서 생활했는데 병원밥은 냄새난다고 싫다고 하셔서 아침에 죽끓여 택시타고 병원가서 하룻동안 드시게 하고, 저는 병원밥도 혹시나 할머니 드실까 샌드위치 사먹거나 컵라면으로 끼니때워가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밤새 지내고 살풋 잠들면 할머니 화장실 가실때마다 부축한다고 깨고, 새벽에 택시 타고 집에가서 죽 끓여서 다시 들고오고의 생활이 반복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녁마다 들리셨구요.

그 사이에 저는 집으로 가서 옷갈아 입고 씻고 그나마 한끼 챙겨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안되셨는지 이틀에 한번은 어머니께서 밤에 계셨는데 하루종일 일하시던 분이 밤에 병원에서 새우잠자고 틈틈이 할머니 부축하고 쉬운일입니까?

피곤하셔서 얼굴에 경련이 일고 입이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성을 다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욕이더군요.

어느날 옆에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별나다란 소리가걸리셨는데 오늘은 혼자있어 보겠다고 그러셔서 다 집으로 와 모처럼 단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갈려고 깨보니 어머니가 안계시더군요.

새벽 2시에 전화가 와서 불려갔다더군요.

뭔가 위급한 상황도 아닌데도 말이지요.

한달 지나자 도저히 생활이 안되더군요.

온 식구가 병원에 매달려서는..... 그때 죽을 뻔도 했습니다

병원가는 길에 바로 그 대구 지하철참사사건이 터졌었거든요.

바로 몇분차로 어머니와 저의 목숨이 왔다갔다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밤새시고 아버지께서 들려 데려오시고 제가 새벽에 죽끓여 택시타고 가는 길이 바로 거기였거든요.

제가 택시타고 가는데 경찰차들이 빼곡이 있고 엠블런스가 왔다갔다하는데 가슴이 털컥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하시다는 걸 알아 다행이었지만, 병원에서 무슨일인지 다 알고 계시면서 부모님안부한번 안묻는 할머니가 그렇게 야속할줄이야.....

어쨋든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퇴원하자고 그랬더니 집에가면 밥챙겨 줄 사람이 있냐 혼자 있어야 되는데... 이러시잖겠습니까?

물론 저희도 바쁘고 혼자 집에 계시면 외로운 것이야 이해가 가지만 온식구가 여기에 매달려 생활이 안되고 병원생활 한달만에 제가살이 8kg가량 빠졌습니다.

어머니는 입이 돌아갔구요.

병원비는 그냥 땅파서 나옵니까?

누구하나 보태는 사람도 없는데...

결국 한주를 설득시켜 퇴원했는데 할머니에 대한 미움만 쌓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병실에 제가 없는 틈틈이 어머니 욕하시는 건 여전했구요.

얼굴한번 안비친 막내숙모는 천사로 둔갑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요.

어제의 사건 때문입니다.

최근에 저희집이 이사를 했습니다.

그나마 증조할머니 방을 저희가 쓰게되면서 조금은 넓어졌지만, 저희 부모님은 우풍심한 방에서 발도 제대로 못펴고 주무셨습니다.

둘째가 결혼을 했는데 사위가 와도 어디 앉으라고 권할 자리도 없었습니다.

집은 예전에 내놓았었는데요.

너무 낧은데다 아파트 한채뿐이라 재개발 희망도 없거든요.

이십년 가량 아파튼데 차라리 빨리 팔아버리고 전세를 얻는게 낫겠다 싶어 내놓았는데 삼년이 넘게 안팔리다 겨우 팔렸습니다.

집 내놓았다는 말씀은 벌써 할머니께 말씀드렸고, 중간중간에 부동산에서 사람오면 할머니께서 쫓아내신것마도 얼만데 말도없이 팔았다고 노발대발이시더군요.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인지 새로 신축한 빌라를 그야말로 전세값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놓고 방 가지고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한참 고민후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중간방은 저희가(둘다 아직 공부중이라-대학공부, 취직공부-책이많습니다.) 작은 방을 할머니께 드렸는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이사할때 저희 부모님방에 있던 물건들은 다 어디서 줏어왔던 것들이었거든요.

들어내자 와지끈 다 부서젔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시고 처음으로 장농을 새로 해넣으셨지요.

그런데 그게 배가 아프셨는지 -큰방뺏겼죠, 장농 새로 샀죠.- 이사한 첫날 내내 할머니 방에서 바닥치는 쿵쿵소리와 에휴 한숨소리와 물건 던져 부수는 소리가 나서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하기 전에도 저희 할머니께서 아버지께 그러시더군요.

'너 이 큰 재산 너혼자할래?'

한심하고 기막히고 어이없고......

그 아파트 팔면 딱 오천만원 나옵니다.

전세값도 안되지요.

그것도 막내삼촌 부탁으로 대출 잡혀있었습니다.

그 재산 나누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네?

막내 삼촌도 저는 뭔지 모르겠지만, 이사하는데 뭔 서류가 필요하다더군요.

대출에 관련된 거겠지요.

그런데 서류를 안해줘서 저희 부모님 피가 말렸습니다.

저는 그런건 잘 몰라 무슨 서륜지는 모르겠지만, 새집 계약전에 받아야지 계약을 한다는데 저희 짐 다싸고 이사가는 날까지 그 서류를 떼놓고도 없다고 안건네줬다네요.

저희 부모님 이사전날 그집까지 찾아갔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일로 저희 부모님 빚을 져서 월 이자만 팔십이 나가신다네요.

저는 서류니 법적 절차니 몰라서 뭔지는 모르지만, 이 소리 듣고 기가 막히더군요.

새 빌라도 저금리 융자받았죠. 전의 아파트도 대출금이 안받아져있죠....

저희 부모님이 무슨 죄입니까?

막내 숙모 왈 이 재산도 유산이니깐 나눠야 되는거 아니냐구....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이거 나누면 저희는 길바닥에 나앉으라는 겁니까?

그래서 갖고 있는 서류도 안주고 저희부모님 피를 말렸다더군요.

거기까지 찾아가서 겨우 서류받았는데 그숙모왈 '이제 형님 얼굴볼일 없다. 잘먹고 잘 살아라' 했답니다.

이거 읽고 제가 누군지 짐작가시는 분도 있겠지만 누구를 욕하자는 게 아니라 너무 답답해서 입니다.

바로 어제 저희 어머니가 할머니께 개패듯 맞았습니다.

그저 아침에 식사때 까진 좋았는데 그저께 사드린 사골이 (그동안 많이 참으셨다 했습니다.) 살코기가 없다고 뭐라 그러시더니, '어머니 저도 그거 생각못한건 아닌데 너무 비싸서요..'어머니가 미안해서 말하니깐 '돈이문제냐...' 시더군요.

지금 돈이 없어서 돈빌리느라 뛰어다니시는데...

사실 이집도 할머니때문에 얻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가게도 성주에 있고, 그쪽으로 나가시길 바라셨지만(그쪽이 집도 훨씬 사구요.)머니께서 근처에 친구분들 계시고 또 교회근처여야 한다고 고집하셔서 바로 할머니 교회 건너편에 집을 얻었거든요.

사실은 얼마전에 보약을 지어달라셨는데(말씀하실때가 한참 지났다 했습니다.) 지금 드시는 약도 많으신데 굳이 보약을 드시겠다네요.

저희 집 어떨땐 할머니 보약값만 한달에 몇백이 나갑니다.

그래서 돈도 안되고 해서 안해드렸는데 그게 심통이 나신거였지요.

그래도 그정도로 넘어가나 햇는데 식사 다하시고 저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버지 건강문제로(당뇨병이시거든요.)어머니랑 얘기하시다 할머니도 끼어드셨는데 '죽으면 천당가고 좋지뭐~'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게 화근이 되셔서 싸움이 일어나셨습니다

'너거 내 죽으라고 기도하는거 안다' 그러시면서 마구 쏘아붙이셨는데 기도 안차더군요.

어머니도 그동안 참은게 있죠. 안 그렇습니까?

무묵히 몇십분 들으시다가 드디어 폭발하셨는데 말다툼정도로 끝나고 어머니는 그냥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방에서 귀닫고 있어서 무슨 말씀이 오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씻을려고 욕실로 들어가는데 할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막내가 뭐 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간호 한번 안했어? 니는 했나?'

기가 막혀서~~~~~

병원에서 밤새고 맨날 음식해나른건 허깨빕니까??

네????

제가 순간 터졌지요.

'병원에서 간호한건 그럼 누구냐고...'

할머니도 뜨끔했는지 '집에서 언제한번 해봤냐?'시더군요.

참나~ 저희 부모님이 노십니까?

지금도 집에서 주무시는 시간이 네시간도 안되건만....

그리고 안하신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전화하시면 성주에서 여기까지 달려오셔서 병원에 데려가시고 다하십니다.

그런데 그동안 해드린게 얼만데 '너거가 나한테 해준게 뭐있냐? 너거 고생한게 나때문이가? 저거 자식 대학보낸다고 그랬지. 내 밑천 갖고 너거 자식 대학보냈잖아'이러시는거 있죠?

하~~~

솔직히 제동생이랑 저 아직도 철따라 단벌입니다.

그 흔한 악세사리 하나 안하고 다닙니다

돈아까워서.

그런데 할머니는 옷장가득 옷입니다

그것도 고급으로만.

저희집에서 가장 옷많고 멋쟁이는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해준게 없다구요?

그동안 약값 병원비, 드시는 것만도 저희집 최고 돈쓰는이입니다.

저희 아직도 라면으로 끼니떼우고, 어쩌다 인스턴트 음식...동그랑뗑 같은 거 사놓으면 '아들은 어지가이 잘사준다' 그러십니다.

할머니 밥상이요?

항상 생선에 곰국에, 봄에는 봄나물, 겨울에도 드시고 싶다면 수박사다드리고 저희집 형.편.에는 호화판입니다.

저희 형편에 그정도면 넘치다 못해 등꼴빠지게 해드린거지요.

뭘 바라시는 겁니까? 네?????

어쨋든 제가 터진게 발단이라서 또 막 고함지르고 하시더니 저희 어머니도 대꾸하셨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방으로 달려들어가셔서 어머니 머리를 잡으시려다 키가 안 되시니깐 어깨를 틀어지시고 흔드시더군요.

넘어질 것 같으니깐 어머니께서 우선 할머니를 앉혔습니다.

거기까지 보고 저는 기막히고 허탈해 그냥 방에 들어와 교회갈 준비나 했습니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 커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할머니께서 어머니 멱살을 잡으시고 얼굴을 쥐어뜯고 때리고 계시더군요.

옆에 있던 슬리퍼로 마구 때리셔서 어머니께서 간신히 슬리퍼 뺏어서 다시앉혀 얘기하는데 어머니도 감정이 격해져서서 잡고 있던 슬리퍼로 바닥을 치면서 언성을 높이셧는데 손에서 슬리퍼가 순간 빠져나가면서 할머니 무릎으로 튀어 나갔지요.

그랬더니 다시 할머니가 달려드셔서 마구 때리시더군요.

컵을 던져서 다깨지고 새로산 다리미를 던져서는 모서리에 새장판이 다 뜯기고....

다리미도 부서지고..

어머니께서 할머니 떼 놓으시려고 손을  풀려 하셨는데도 안되더니

나는 아까 말리다 지쳐서 하는대 까지 해봐란 식으로 내버려뒀는데 막내가 말리다가 할머니 손목을 잡고 겨우 떼어냈지요.

기운이 얼마나 세신지.....

그런데 싸우시면서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이년 저년 빌어먹을년 화냥년, XX년  차마 입에 못담을 욕을 하셨는데. 좀 진정된다음에 어머니가 왜 욕을 하시냐고 그러니깐 내가 언제 욕하더냐 나는 욕이라곤 모르는 사람이다. 년 소리도 오늘 처음 해봤다 그러시더군요.

하하하~~~~~

제가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년소리하는 걸 처음본게 초등학교 땝니다.

중간에 수도 없이 들었구요.

기가 막혀서~

그러더니 며느리가 시어머닐 때렸다고 마구마구 소리치시더군요.

순간 허탈해서 모두 그냥 바라봤는데 막내가 말리느라 잡은 손목에 벌겋게 손자국이 나있더군요.

그걸 때렸다구... 오죽하면 맞는 나를 막내가 간신히 떼어냈겠냐고...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셔서 듣고 있던 막내도 기가 막혀 그냥 방으로 들어가버렸지요.

그러더니 여기저기 전화해서는 며느리가 팼다고 전화를 하시더군요.

가장 기가 막힌말....

'집 팔았으면서 나한테 돈한푼 안주고...저것끼리 해먹고....

줄돈이 어딨습니까?

지금 몇천만원 빚이 져 있는데...

하아~~~~

저희 이사할때 할머니 왈 '0아 공부시킬려고 집팔았나...'시더군요.

제가 미쳤다고 공부 더합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건 일자린데....

저 어릴때부터 할머니가 과자사먹으라도 동전한닢 지어준적 없습니다.

할머니한테 뭐 받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왜나오는겁니까?

여러분, 이 할머니가 친할머니 맞을까요?

정말 유전자감식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씨받이라 저희아버지 나았다는 추측이 맞지않을까요?

가끔 저 피가 제 피에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저희 할머니 낙이 전화통 붙들고 며느리 아들 욕하는 겁니다.

할머니만 집 전화기를 쓰시는데 전화세만 항상 6만원이 넘었었지요.

저희 이사오고 나서 할머니.. 한번도 방에서 안주무셨습니다.

마루에서 주무셨지요.

방좁거든 마루에서 생활하고 방에서 잠만 주무시라 그랬더니 아예 마루에 살림을 펴놓고사십니다.

누구오면 부끄러워서 못살겠습니다.

이사왔을 때 침대 놔달라기에 막내 고모께서 사주신다셨는데 저희가 그 후에 이모들이 돈을 모아 소파를 사주셨거든요.

소파 놓았더니 침대 놓을자리 없다고 화나셔서는 전화하셨더군요.

그게 뭔소리입니까?

방놔두고 거실에서 아예 살겟다는 겁니까?

할머니 마루에서 생활하셔서 계속 마루에 보일러 넣었습니다

저희 이사온지 십일 약간 넘고 가스비가나왔습니다.

십몇만원이더군요.

하긴 거실이 방세군데 다합친것보다 크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그래서 방에서 주무시라고 말씀드려도 방에들어가면 숨을 못쉬겟느니 목이따갑느니.. 별의별 증상을 다 대시더군요.

마치 공부하기 싫다싫다 생각하면 진짜로 어딘가가 아픈 고3처럼 할머니도 그러신거지요.

그래서 방에서 주무시라고 -또, 돈도 없구요.- 마루에 불 빼고 방에 불넣어드렸더니... 그래도 계속 거실에서 주무시면서 기침하시고 아픈티를 내시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방으로 들어가게 하셔야지.

그랬는데 어제 하시는 말씀 '아들은 마루에서 잘때 불넣어주더니 내자니깐 빼고, 내가 쓰는 건 전기도 아깝고, 먹는 것도 아깝고 다 아깝재?' 그러시잖겠어요?

저희들 이사오고 마루에서 잔적 한번도 없습니다

계속 할머니께서 한가운데 누워계시는데 어디서 잡니까?

그리고 가족끼리 모여 텔레비젼 보는 그런 단란한 풍경이 꿈이었는데 저희 이사하면서 둘째가 큰 텔레비젼을 거실에 놔줬습니다

그런데, 그 텔레비젼으로 뭐본적 저희 한번도 없습니다

24시간 할머니께서 누워서 보시는 데 뭘봅니까?

그래도 뭐라 그런적 한번도 없습니다

기가막혀서....

오늘도 새벽부터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며느리가 사람팼다고 막 그러시더군요.

하하하하하..........어이없어 웃음만 나옵니다.

치매면 이해라도 하지.....

차라리 미쳤으면 미쳤다고 이해나 하지.....

제가 본 할머니는 항상 거짓말이 입에 뱄습니다

어떤 상황설명을 하시면 서두는 진짜인데 갈수록 본인한테 유리하게 될수잇는 한 상대는 나쁘게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는 99.9%가 거짓말이고 나도 하지 않은 말과 상황을 어느새 할머니가 소설쓰듯 말씀하고 계시다면 말다했지요.

제가 전문대 졸업후 백수생활 할때 편지를 한통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앞으로 발신인 불명으로 편지가 왔는데 두장의 긴 편지였는데 읽어보니 이해가 안가서 봉투를 몇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내용인즉 요약해보면'너 인간이 그렇게 살면 안된다. 노인네 그래 구박하고, 삿대질 하고 추운데 방에 불빼고... 쭉쭉~~'이었습니다

전 잘못온 편진줄 알았습니다

제가 할머니한테 삿대질하고 했다는데 세번을 읽은 후에야 이해가 갔습니다

그후로.... 한달을 울었습니다

울면서 편지를 쓰다 찢었다....

쓰다 찢었다...

잘려고 누웠다가 울고...

억울하고 원통하고 서글프고......

그러다가 우리에겐 친척도 할머니도 없다... 그냥 불쌍한 할머니 한분 모셔놓고 산다치자...라고 생각하고 신경 끊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가 미치겠는데 어쩝니까?

그때 초여름이었습니다.

할머니 방 보일러 파이프가 저희방을 경우해서 가기 때문에 큰방만 튼다하더라도 더웠습니다.

저희들 겨울에도 최하로 맞춰놓으면 전체가 뜨끈뜨끈했습니다.

그리고 정말정말 추운날은 중간정도로 약간 올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보일러가 끝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한번도 중이상을 올려본적도 없었는데 봄에...... 끝까지 올려 놨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할머니신가보다.. 그래도 심했네.. 싶어 중간정도로 낮췄습니다.

저희가 더워서 방에들어갈수가 없었거든요.(그때 초여름인데도 가스비가 십만원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불을 꺼뜨리다니요..

방을 냉방으로 만들고 제가 할머니께 삿대질을 했다니요?

하~

그때 말다툼이 있긴 있었습니다.

뭐가 심통이 났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제게 시비를 거시더니 '너거가 내 옷을 사줘봤나 뭐해줘봤나? 아들옷은 어지가이 잘사주면서 너거 어마이도 참...' 이러시더군요.

그때 제가 입고 있던 옷은 산지 삼년 되서 물빠진 남장하나에 어머니 몽빼바지였습니다.

말이됩니까?

그때 제게 있던 옷중에 가장 최근 옷이 산지 일년 반정도 되는 청바지였습니다.

하하하.........

얼마전에 치마까지 사드렸는데....

어쩜 그렇게 해드린건 까맣게 잊어버리시는지...

아마 지금도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옷장에 있는 옷중 어머니가사드린건 하나도 없다 그러실겁니다.

제가 보기엔 할머니 천성이신거 같습니다

입을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데 말을 하시면서 그걸 사실로 믿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시간이 갈수록 완전 소설처럼 현실에 전혀 있을 수도 없는데 진자처럼 믿어버리신다는 거지요.문제는 아마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딸입장에서 아들입장에서 들으시는 분들은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어제는 싸우다 결국 '나가라 내집이다. 나가 살아라'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가만있던 제가 그랬지요.'증조할머니가 할머니한테 똑같은 말했을때 뭐라그랬습니까? 그거 다 떨어먹었지 어딨냐고 그랬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햇더니 입을 다무시더군요.

저희 아버지 말씀들어보니깐 할머니가 집 두채는 떨어먹었다더군요.

큰집에 살다가 할머니가 사치하셔서 좀더 작은집 작은집... 그렇게 옮기다 산게 전의 아파트라더군요.

제 기억에도 예전에 큰 양옥에 나머지 방은 세를 넣어서잘사셨던것 같은데.

지금 그자리에 개발이되서 그땅만 갖고 있었어요.

아들들 고생은 안했을 거라고 그러시더군요.

아버지 중학교 나오고는 공장에 넣고 그 돈으로 흥청망청 쓰시던 분이시랍니다.

저희 할머니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어쩜 그렇게 눈꼽만큼도 없는지....

그래서 아버지가 저희에게 거시는 교육에 대한 기대가 크셨나봅니다.

실제로 저희아버지 발을 보면 예전에 고생하시면서 많이 다치셔서 발톱이 성하신게 없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울면서 나왔습니다

요즘 국비 무료 학원에 다니거든요.

슬픕니다

집에도 가기 싫고.....

정말 얼굴도 보기 싫고...

우리 할머니 정말 어쩌면 좋겠습니까?

네????

 

언젠가 저희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라고..

정말 조금만 덜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추천수1
반대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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