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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챠일드 #3

crux |2007.02.14 08:12
조회 520 |추천 0

 

#3.

 

 내 은색 파사트는 서울 외곽도로를 내달렸다.

 

 직장이 있는 분당까지는 집에서 약 30분이 걸린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출근하는 역방향이지만 요즘은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은 비교적 도로 흐름이 순탄한 편이다.

 

 분당 도심을 주행하자 창밖으로 고층 오피스텔 무리들이 휙휙 지나간다. 요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생겼는지 거의 같은 풍경들이 계속 반복된다.

 차가  외곽 쪽으로 빠지는 2차선 도로에 접어들자 비로소 회색 건물무리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대신에 여백이 많은 한적한 풍경이 내 눈 앞을 채우기 시작한다.

 

 한참동안 2차선 도로를 달리자 한적한 시외 전원 주택군이 보인다.

 좀 더 지나가면 육중한 바리케이트를 정문 앞에 설치한 7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차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천천히 주행을 한다.

 차가 정문에 다가가자 경비원이 바리케이트 옆에서 나타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종합 식료품 회사의 연구소라는 이곳의 특성상 보안이 항상 철저하다.

 

 자동차에 탄 상태로 내 ID카드를 창 밖으로 내밀었다. 경비원이 초소에 들어간 후 차단기가 올라갔다.  내 ID카드를 돌려받고 정문 안으로 진입한 후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엔 차가 많지가 않았다.

 

 저 끝에 눈에 띄는 차가 있다.

 녹색 재규어.

 고급차라서가 아니라 언제나 내차보다 일찍 주차되어 있는 거의 유일한 차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연구소 소장의 자가용 차다. 주인의 유난한 깔끔함을 반영하듯 차체는 조금의 흠결도 없이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연구소 건물 현관에서 다시 무인 기계식 ID카드 검색을 하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내 사무실은 3층의 생화학 실험실 옆에 위치한다. 사무실 현관의 전자도어에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문이 열린다.

 

 공간은 넓지 않지만 손님 접대용 소파까지 갖춰져 있다. 다른 연구원들은 여러 명이 한 사무실을 쓰는데 비해 실장이라는 직위 덕에 개인 공간을 가진 것이다.

 

 전등 스위치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루 일과는 내가 먼저 소장과 타 부서 책임자들과의 미팅을 하고 나서야 시작이 된다. 이른 출근 탓에 아침 고위급 미팅까지는 아직 1시간여가 남았다.

 

 실험실 연구원들은 정규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오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전날 실험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른 출근을 하긴 어렵다. 그런 탓인지 복도에서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려오질 않는다.

 

 문득 앉은 채로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연구소 안에 마련된 자그마한 운동장(그래봐야 농구코트가 고작이지만)과 연구소를 에워싼 담 너머의 다른 회사 연구소나 공업시설 정경이 보인다. 내 사무실의 창 밖의 전경은 이 건물 내에서도 나쁜 편에 속한다.

 

 삭막한 지상전경에 싫증이 나서 눈길을 하늘로 보낸다. 구름이 적어 더욱 짙푸른 하늘이 내 눈에는 웬지 황량해 보인다.

 

  뻥 뚫린 하늘이 시선을 가로막지 않아서 초점이 흐려진다. 시야에 분명한 상이 맺히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상념에 빠지게 되는 것이 내 버릇이다.  지난 추억들이 저 가슴 속 깊은 바닥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래.............아주 예전의 그 시절.... 이렇게 이른 아침에도 그와 나는 만나곤 했었지..... 바로 전날 밤늦게까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날들은 왜 그리 오래 가질 못했을까.


똑똑.


문득 귀에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달콤한 추억 다음에 떠올릴 슬픈 기억들을 덮어버렸다.

 

 “..................네..................”


 내 간단한 대답에 살며시 사무실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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