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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군화

피터팬 |2007.02.20 15:25
조회 158 |추천 0

보통의 월요일 아침에는 길 막히는게 싫어서 일찍 출근하는데

오늘은 우체국 문여는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면서 편지를 부치고 왔습니다.

난 곰신도 아니고 군화도 아니어서 이 코너에 주로 눈팅만 하면서 가끔씩 댓글을 달기만 했는데

오늘은 기분이 왠지 ... 그래서 글을 올려 봅니다.

아들 군화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아니 스스로 친구와 동반 입대한건 작년 1월 17일이었습니다.

입대하기 전날 저녁에 초딩때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가

밤 12시가 다 되어 들어온 놈은 머리를 시원하게 깎은 모습이었습니다.

밤새 놈의 방에 불이 켜 있었던 걸로 미루어

거의 밤잠을 못이룬 듯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춘천 102보충대로 향하는 차안에서 놈이 자기 싸이 아뒤와 비번을 알려 주더군요.

방명록에 올아온 친구들 소식같은거 좀 알려 달라구요.

보충대 입소식의 하일라이트인 작별의 순간...

군악대는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뽀빠이가 진행하던 프로에서 나오던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를 시작으로

어머니 은혜, 이등병의 편지 등등....을 애잔하게 연주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동반입대하는 친구놈과 농담을 주고받던

놈의 얼굴에 긴장감이 도는걸 읽었습니다.

억지로 웃음을 띠면서 "부모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던 놈을

껴안아 주면서 목이 메어 올라왔습니다.

"건강해라." 그 한마디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의젓한 아들 앞에서 눈물을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습니다. 몇번이고 앞차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밥을 차리면서 와이프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놈이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또 목이 메어 와 밥을 먹지 못했거든요.

놈에게는 1년 넘게 사귀었던 2살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와이프는 그 여친을 싫어라 했습니다.

2살 연상인데다 이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다는 겁니다.

내가 보기엔 이쁘장하던데... (물론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와이프는 집에 놀러온 그 아이를 몇번 보았다고 합니다.

난 좋다고 했지만, 결국 둘은 헤어졌습니다.

그냥 친구로 남기로 했다고 합니다.

요즘 세대가 아닌 나로선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이해는 합니다.

그 아이가 놈에게 힘들다고 헤어지자고 했답니다.

놈은 85년생으로 2학년인 상태였고, 그 아이는 재수를 해서 3학년이었거든요.

그 아이는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한거 같았습니다.

주말에 에버랜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하고 전일제 알바로 전환했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3가지였습니다.

놈이 입대하기 전에 같이 일본여행을 가기 위한 자금 마련과

자신의 학비를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

그리고 놈과 타이밍 (전역, 졸업시기 등)을 어느정도 맞추려고요.

난 기특하게 생각했었지요.

근데 그 아이는 늘 불안해 했었나 봅니다.

동안인 놈의 외모와 늘 주변에 맴도는 어린 여자 아이들 땜에...

그래서 더 2년이란 세월이 힘들게 다가왔나 봅니다.

난 이 군화와 곰신 코너를 보면서 그 아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놈은 지금 22사단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에 있지요.

지난달에 상병을 달고 지난 2월6일날 정기휴가를 나왔다가

2월15일에 복귀하였습니다.

며칠만 늦게 나왔으면 명절을 쇠고 들어갈 수 있는데...

복귀하는 날 회사를 쉬고 부대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일병 휴가때는 동서울에서 간성행 버스를 타고 가도록 했지만

지금은 간성에서 30분정도 버스를 타고 민통선 검문소까지 가야 하거든요.

작년 9월에 놈의 대대 전체가 전방으로 투입되어 금년 9월까지

민통선 내 해안초소에 근무해야 합니다.

전방 내륙쪽의 GOP 같은 곳이죠.

간성읍에 들려서 소대원들에게 갖다 줄 치킨을 6마리 사 가지고

검문소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서 오는데 역시 허전했습니다.

작년 7월말에 면회하고 7개월만에 본 얼굴이었는데...

하지만 13개월 사이에 놈은 한층 성숙된 모습이었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요즘은 후배중에 누군가를 새로 사귀는 중인가 봅니다.

휴가중 어느날인가 저녁때 전화로 자기가 태어난 시각을 물어 보더군요.

후배랑 둘이서 사주까페에서 점을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난 그 아이가 곰신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단지 젊은 아이들끼리 힘들고 어려운 청춘을 함께 해줄 수 있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한다면

그걸로 족한거 아닐까요?

저 역시도 옛날에 그랬었으니까요.

아, 그리고 예전에 사귀던 연상의 그 아이도 만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놈의 싸이에 들어갔다가 방명록의 비밀쪽지 중에

그 아이가 휴가 2일차에" 얼굴 함 봐야지"라고 올린 글을 봤거든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정말 쿨한건가요?

설날 저녁에 놈에게서 전화가 왔었는데

나도 못받고, 와이프도 못 받았습니다.

정말 미안했었습니다.

작년 추석때도 전화 안했던 놈이 나름대로 큰맘먹고 했을텐데...

휴가 복귀때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도

잘 가고 계시냐고, 치킨은 소대원 전체가 잘 먹었다고

안 하던 전화도 했었는데.

아들놈 없이 세번째 맞은 명절 차례를 지내고 나니 더 쓸쓸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답장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 -남자 & 여자- 에게 답장쓰기도 벅찰테니까요.

더구나 여자친구들은 답장 없으면 온갖 추측과 추리를 하는데

나까지 그 대열에 서 있으면 놈이 힘들테니까요.

이번에 사가지고 간 책도 읽고, 어학책 공부까지 하려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텐데...

암튼 2년간 청춘을 나라에 바친 이나라의 젊은이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많은 곰신들을 보면서

나도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놈이 받아논 포상휴가를 꽃피는 5월에 오겠다고 해서...

요즘 군대는 이런 어리버리한 놈도 포상휴가를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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