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 다들 이리저리 심란한것 같네요, 속이 여린 사람들이 세상 잘 살아가는
부류에게는 사회 부적응자의 일부 부류로 보일수도 있고 그들에겐 당연한 룰을
쫒아가길 거부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당위를 거부하는 일탈집단으로 보일수도 있겠죠.
잘사는 또는 잘살아가려는 여럿중에 하나만 그런 여린 가슴을 갖고 있다면 그는
아마 어느정도의 왕따와 인내심 증가 훈련을 받으며 참아보려하다가 어느순간에는
아마 자폐를 고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마치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성장의 중단을
선택하여 신체적 한계를 얻는 대신에 정신적 자유를 얻듯이 나역시 스스로의 고립을
선택했다. 봄은 파열의 계절, 꽃도 피어나려면 꽃눈이 열려야하고, 잎도 껍질을 찢어야
햇살을 마주하며 한갓 들풀도 발아의 고통과 대지를 뚫고 뿌리를 내리며 새싹을 올리는
멀티 태스킹을 하는 이시절, 난 고립을 택했다.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길 바랬던 기억이
부서진 이봄에 나의 선택은 일부 생활권에서의 자폐, 다행히 컴이 있고 가족이 있어
아직은 숨쉬고 있지만 내 인생의 중반에 찾아온 이 고립은 성장이라는 성취감은 없지만
왜 많은 이들이 인생을 나비의 꿈에 비유했는지 진진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리라
내가 한동안의 고립에서 무엇을 배우고 잃을 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사람에게 진지했지만 서로
솔직하지 못했기에 내려지는 고통의 과정이라고 감수하고 다시한번 몇년쯤 후에 진지해질
기회가 올지라도 그때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으리라. 지금의 그와의 일들을 기억하기위해 예전의
그에대한 기억을 회상한게 너무 힘들고 , 지금의 그를 더이상 남들에겐 알리고 싶지않을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비록 앞으로 내가 호감을 갖게될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라고 지금의그가
언급될일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과오를 또하나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내 남은
인생의 웃음을 다 소진해서라도 그의 명예를 지킬수만 있다면 난 하나도 아깝지 않다. 난
미련해서인지 남을 웃음 거리로 만들어 즐기는 웃음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더 반갑다. 누군가
남들의 웃음 사이에서 짋밣히는 고통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엔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알면서도 의도를 갖고 확대 재생산하는 일을 더이상은 방관하기 힘들기에 난 고립을 택했다.
치욕스럽게 잡히지 않으려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리면 적어도 구덩이의
위치는 고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대문 밖으로 나가서 또다른 인연을 만들지 마라라는 말이 이봄의 나의 화두가
되고 가끔은 내게 이런일이 생긴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꿈인 것같다. 옆에 있어주기만
했어도 힘이 나고 의지가 되던 시기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많이 알고 싶었고, 도와주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는데도 역시 난 세상의 규칙에 순응 못하는 원초적 부적응에 가까운 존재여서 인지
그녀는 여전히 그의 곁에 남았지만 난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것 같다. 언젠가처럼 말없이 꼭
안아주길 원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