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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4-

러브콜 |2007.02.26 16:11
조회 355 |추천 0

룸살롱 아방궁

  술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무교동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쉽게 찾을 수 있을까 하던 내 걱정을 비웃기나 하듯 야구장 전광판만한 크기의 룸살롱「아방궁」이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아방궁」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여느 룸살롱보다 규모가 큰 룸살롱이었다.

  가지각색의 조명으로 휘황찬란한 간판 밑에 있는 문을 밀치며 발을 들여놓자 지하로 내려가는 붉은 양탄자가 깔린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자 유리로 된 문이 나타났고, 나는 유리문을 밀치며 마치 룸살롱「아방궁」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인 양 기죽지 않으려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서자 문 앞에 서 있던 웨이터들이 VIP 손님 대하듯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비록 장삿속이지만, 그들의 환대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중 홍명보라는 축구 선수 이름을 사용하는 웨이터의 안내로 룸으로 들어가면서 진현우가 일러준 대로 정지영이라는 마담을 찾았다.

  얼마 있지 않아 여자의 몸매로는 뚱뚱한 편에 속하는 여자가 들어와 자신을 정 마담이라고 소개하면서 내 앞자리에 와 앉았다. 마담이라면 제법 나이가 들었으리라는 고정관념을 나는 갖고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해서 그렇지 나이가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앳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나이 어린 마담은 난생 처음 본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찌됐든 그녀는 마담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데가 있는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여기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저를 어떻게 아셨죠?」

 「친구가 여기 물이 좋다고 해서 찾아 왔어요.」

 「친구 분이요?」

 「최은수라고 아시죠?」

  나는 죽어서 지금은 없는 최은수의 이름을 대면서 언짢아지는 기분을 감추기 위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재빨리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오랜 직업상 몸에 밴 듯한 매우 빠른 솜씨였다.

 「아, 최 부장님이요!」

  내가 최은수의 이름을 대자 정 마담의 얼굴엔 무척 반가워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그놈이 꼭 한 번 가보라고 해서 찾아 왔어요.」

 「최 부장님은 잘 계시죠? 오늘 같이 오시지 그랬어요.?」

 「그렇지 않아도 그 친구하고 같이 오려고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최은수가 죽은 걸 정 마담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음엔 꼭 같이 오세요.」

  나는 최은수의 죽음을 모르고 있는 정 마담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또 다른 단골손님을 잡기 위한 것임을 느끼면서「실은 은수 그놈은 죽었소」라고, 나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그 말을 꿀꺽 삼켰다. 최은수의 죽음을 정 마담에게까지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럴게요.」

  나는 거짓으로 흔쾌히 대답하고 나서는 그녀가 눈치 채지 않게 한숨을 담배 연기에 섞어서 길게 내쉬었다.

 「술과 안주는 무엇으로 하시겠어요?」

  정 마담의 목소리가 금방 장삿속 말투로 바뀌었지만 나는 나쁜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찾아 왔으므로 술은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거나 좋은 걸로 주세요.」

  양주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게 없는 나는 정 마담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이곳은 삼류 룸살롱처럼 가짜 양주를 내놓거나 바가지를 씌울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최은수가 이곳을 단골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가씨는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정 마담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가씨를 원할 참이었다. 룸살롱에 와서 아가씨를 찾지 않는다면 술집에서 안주 없이 소주만 시켜 마시는 격이 아닌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조그만 기다리세요.」

 「아니, 잠깐만요!」

  나는 몸을 일으키고 나가려는 정 마담을 불러 세웠다. 내가 찾을 아가씨는 이하나의 친구인 유진이였다.

 「은수의 얘기로는 여기 이하나라는 아가씨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러나 나는 지금 이하나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일부로 정 마담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유진이보다 그녀를 먼저 찾았다.

 「지금 그 아가씨는 여기에 없구요. 다른 아가씨 넣어 드릴 게요.」

 「그 아가씨 결혼했죠?」

  나는 정 마담이 말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 부장님이 그러세요?」

  약간 당황한 듯 정 마담의 목소리에 섞여 있던 특유의 애교가 사라졌다.

 「그놈이 그 아가씨에 대해서 하도 침이 마르도록 얘기해 장난삼아 한 번 말한 거예요.」

 「최 부장님이 무척 좋아하던 아가씨였는데, 얼마 전에 결혼했어요.」

  정 마담은 이하나의 결혼을 무척 애석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녀의 단골손님이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하나는 결혼해서 여길 그만 두었다니까 안 되고, 유진이라는 아가씨는 됩니까?」

 「유진이요? 호호호……, 유진이를 최 부장님이 추천하셨나보죠?」

 「예, 꼭 그 아가씨를 파트너하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정 마담이 나가고 십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양주와 과일을 예쁘게 깎아 만든 안주가 들어오고, 또 오 분 정도 흐르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키가 훤칠한 미모의 아가씨가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들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나는 유진이의 미모를 보고 이하나의 미모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유진이가 따라 주는 양주를 홀짝이면서 망설일 수 있는 데까지 망설이다 거의 필터까지 타 내려온 담배 불을 재떨이에 비벼 끄고 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최은수라는 사람 아시죠?」

  부드럽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은 마치 수사관이 사건 용의자를 다루는 듯한 말투가 되어 버렸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취재하면서 곤욕을 치를 때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가장 부러워했었다.

 「아, 최 부장님이요!」

  그러나 내 말투와 상관없이 유진이 역시 정 마담처럼 내가 최은수의 이름을 대자 무척 반가워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자 양쪽 볼에 보조개가 예쁘게 들어갔다.

 「예.」

 「최 부장님하고 어떤 사이세요?」

  정 마담이 나와 최은수의 관계에 대해 유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친구예요.」

 「아, 그러세요. 최 부장님, 며칠 전에도 여기에 오셨다 가셨어요.」

 「그게 언제죠?」

  흔히 이곳을 찾은 남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아가씨들에게 반말을 쓰지만 목적이 술을 마시러 온 것이 아닌 나는 유진이를 한 여성으로 대하고 싶어 계속해서 존대말을 쓰기로 했다.

 「지난 이십이 일이었는데, 다른 곳에서 마신 술에 많이 취해서 오셨어요.」

  지난 이십이 일이라면 최은수가 자살하던 전날이고, 이하나가 결혼한 전날이기도 했다. 그는 죽기 전에 이곳에 와서 짚더미에 붙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녀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달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개인 질문을 해도 될까요?」

  나는 잠시 유진이의 눈을 응시하고는 거부감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 한해서만 하세요.」

  웃는 얼굴로 말하면서도 유진이의 목소리는 냉기가 감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녀는 많은 남자에게 엇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내 질문 역시 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하나 씨 아시죠?」

 「이하나요?」

  내가 이하나라는 이름을 꺼내자 유진이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하나 씨하고 친구시죠?」

 「예. 하나는 제 친구예요.」

 「이하나 씨하고 어떤 친구 사이인가요?」

 「친구 사이가 어떤 친구 사이도 있나요?」

  내 질문에 유진이는 기분 나쁘다는 말투로 대꾸하고 나서 양주를 한 번에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내 말은 이곳에서 만난 친구냐는 거예요.」

  나는 유진이의 빈 잔에다 양주를 따르면서 말했다.

 「하나하고는 대학교 동창이에요.」

  유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고 나서 항상 하는 버릇처럼 두 손으로 긴 머리를 뒤에서 앞으로 쓸어 내렸다가 다시 앞에서 뒤로 쓸어 올렸다. 그 모습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대학교 동창이라 구요?」

  그녀들이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너무 뜻밖의 일이라 놀란 토끼 마냥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나에게 그녀가 눈썹을 갈매기처럼 일그러뜨리며 불쾌한 얼굴로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불쾌감을 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대학교 졸업한 사람은 이런 곳에 나오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 말은 그런 게 아니고, 그런 학력이라면 여기보다 더 좋은 직장이 많을 텐데…….」

  유진이의 불쾌해 하는 표정에 당황해진 나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말꼬리를 흘려버리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번에도 내가 불을 붙이기 전에 그녀가 불을 붙여 주었다. 그녀의 손놀림이 나보다 빨랐던 것이다. 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 한 마디도 조심스럽게 내뱉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나오는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다 말 못할 복잡한 사연들을 갖고 있어요.」

  불쾌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유진이는 자신들을 옹호했지만, 그녀 역시 말 못할 복잡한 사연이 있는지 불쾌한 표정 뒤에 어두운 그림자가 맴돌고 있었다.

 「대학에서 뭘 전공했죠?」

  나는 유진이의 감정이 불쾌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취재 나가서 취재원과 대화하듯 물었다.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다 필요 없는 거죠.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이 아니니까요.」

  어느새 불쾌한 감정을 감추고 부드러움이 섞인 어조로 내 말에 대꾸하는 유진이를 보고, 나는 담배 연기를 연거푸 길게 내뿜었다. 정 마담이 그랬듯이 그녀 역시 감정 관리가 변화무궁하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이런 곳에서 과연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최은수도 그 의문을 풀지 못해 이하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심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자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하나 씨는 어땠어요?」

 「하나는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친구였어요. 다만, 가정환경이 따라 주지 않았죠. 그런데 왜 하나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 하시죠?」

  유진이의 얼굴에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나는 이쯤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곳에 와 유진이씨를 만난 목적은 최은수와 이하나 씨에 대한 관계를 자세히 듣고 싶어서 입니다. …… 사실…… 은수…… 은수 그놈, 죽었어요.」

  나는 음울한 얼굴로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숨을 몰아쉬며 거두절미하고 결정적인 말을 더듬거리며 내뱉었다. 그녀에게 최은수의 죽음을 알려야만 그녀의 입에서 솔직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예? 최 부장님이 죽었어요!」

  유진이는 대경실색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대더니, 충격으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내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으니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은수 그놈, 이하나 씨가 결혼하던 그 날 그 시각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어요.」

  유진이는 자기 친구인 이하나 때문에 최은수가 목숨을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슬픔을 삼키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으나 이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방울은 그녀의 눈만큼이나 컸다. 그녀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는 것을 보자 나 역시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그런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들고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불장난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난 뒤 냉정을 되찾은 유진이는 내가 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머뭇머뭇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오셨을 때 굉장히 괴로워 하셨어요. 하나의 결혼을 축복하면서도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셨으니까요. 두 사람의 사랑이 보통을 뛰어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 부장님이 자살까지 하실 정도로 하나를 사랑하셨는지 미처 모르고 있었어요. 참 좋은 분이셨는데…… 그 날 하나의 결혼 선물로 CD를 몇 장 사오셨어요. 하나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면서, 베토벤의 비창(悲愴)이 수록된 CD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수록된 CD였어요. 결혼식 날 예식이 끝나고 하나에게 전해 줬는데, 하나가 최 부장님의 선물이라니까 무척 좋아했었는데…….」

  유진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내가 아까 정 마담이 준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자 그녀는 담배 연기를 가슴 속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이하나 씨도 은수를 사랑했던 것 같은데, 왜 결혼을 했지요?」

  나는 최은수의 일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토대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하나는 그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가정형편 때문에 할 수 없이 억지로 한 결혼이에요.」

  유진이의 어조는 사막의 모래처럼 메말라 있었다.

 「억지로 결혼을 했다 구요?」

  나는 무척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이야기도 최은수의 일기에 기록된 것이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예. 할 수 없이 선택한 결혼이었어요……. 휴-!」

  잠시 말을 멈추었던 유진이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다음 계속해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하나는 매우 불행한 친구였어요. 이제 결혼했으니까…… 잘 살겠죠. 그런데 최 부장님이 돌아가셨으니 어떡해요…….」

  나는 유진이가 최은수와 이하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나는 최은수의 일기 내용과 유진이의 이야기가 거의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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