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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22-

러브콜 |2007.03.14 10:17
조회 411 |추천 0

호스피스 병동의 천사 입원실

  호스피스의 치료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사회사업가와 성직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팀웍을 이뤄 치료하고 있다.

  나는 간호사의 안내로 양선아를 이동식 침대에 눕히고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십 층에서 내려 그녀를 천사호실로 옮겼다. 그녀가 지낼 입원실은 독실이었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일반 입원실은 커튼으로 칸막이를 쳐놓고 있었으나 매우 협소하고 꽉 막혀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녀를 좀더 좋은 환경에서 남은 마지막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병원 측과 합의한 끝에 간신히 독실을 구할 수 있었다. 입원실은 아주 깨끗했다.

  나는 간호사들이 양선아의 입원한 천사호실을 천사 입원실로 부른다는 것을 얼마 후에야 알았다.

  양선아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간호사가 염분이 담긴 주사액과 영양제 주사액이 든 주사를 놓은 후 반창고에 날짜를 써서 붙여 놓았다. 간호사에게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정맥주사를 오래 놓게 되면 그 윗부분부터 정맥이 굳어져서, 손등에다 주사를 놓은 후 날짜를 봐서 손등에서 팔뚝 부분으로 올라가며 주사를 놓기 때문에 날짜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사를 맞고 나자 양선아의 가빴던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몸 상태가 한결 좋아진 양선아가 물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가 편안히 눕도록 침대의 상체부분을 약간 들어올리고 앙상한 뼈를 감싼 듯 마를 대로 말라 버린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 말했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

  그날 저녁 담당 의사가 왕진을 돌고 난 후에 간호사가 와서 피의 영양상태와 적혈구의 숫자 등을 조사하기 위해 양선아의 팔에서 피를 뽑아 갔다.

  병원의 아침은 환자들의 음식을 실은 식반찬의 바퀴가 구르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금식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양선아에게는 음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염분이 담긴 주사액과 영양제 주사액이 그녀의 팔을 타고 들어갔다.

  오전 시간이 끝날 무렵 양선아의 상태는 통증도 없어지고 식욕을 느끼는 등 전날보다 많이 호전되어 있었다. 나는 담당 의사가 입원실에 들어오자 그녀가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하는데, 미음이라도 먹일 수 있는지를 물었다.

 「환자가 정 원한다면 약간의 미음과 물을 마시도록 하세요.」

  담당 의사가 양선아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점심식사 시간에 양선아에게는 미음과 시원한 하얀 물김치가 나왔다. 그녀는 아주 작은 양이었지만 미음과 김치 국물을 맛있게 먹었다. 또 오후 네 시쯤에 간식으로 나온 깨죽도 먹었고, 포도주스도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그녀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이러다가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어느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려고 하늘에서 금덩어리가「뚝!」하고 떨어진 것처럼 그녀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암덩어리가「뚝!」하고 떨어져 대변과 함께 화장실에 처박힐 것만 같았다.

  나는 양선아가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침대를 창 쪽으로 돌려놓아 주면서 카세트에 테이프를 꽂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겨울나그네」가 수록된 테이프였다. 차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도로를 바라보던 그녀는 음악이 흐르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양선아는 슈베르트의「겨울 나그네」를 들을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편으로 끌려 들어가곤 했다. 마음에도 없는 정영식과 결혼할 때 친구인 유진이를 시켜 슈베르트의「겨울 나그네」와 베토벤의「비창」이 수록된 CD를 선물했던 최은수를 떠올렸던 것이다.

  양선아는 정영식과 이혼을 하고 그런 대로 생활이 안정되자 제일 먼저 최은수를 찾았다. 회사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는 여자 직원은 입사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그런 사람은 없다고 차가운 목소리로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가끔 룸살롱에 함께 온 회사 직원이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찾을 수 없었다. 유진이 역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이 끊긴지 오래였다. 모두 그 동안 소식을 끊고 살아온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양선아의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병원은 카돌릭 병원이라 수녀원에서 삼 년간의 수련을 마친 실습 수녀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입원실에 찾아온 수녀들은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조용한 목소리로 성가도 불러 주었다.

  그런데 양선아의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복수가 차는 것은 위암 때문이 아니라 간으로 전이된 간암 때문이었다. 복수가 차오르자 그녀의 배가 안으로 쏙 들어갔던 배꼽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어올라 옆으로 돌아눕기도 힘들게 되었다. 항상 누워 있는 그녀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가끔씩 옆으로 뉘어 놓고 등을 주물러야 했지만 이제 그런 기본적인 간호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담당 의사가 들어와 양선아의 기록카드를 체크하고 그녀의 상태를 검진한 후 입원실을 나갔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의 뒤를 따라 나가면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한 이삼 주 정도 남았습니다. 환자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나요?」

 「아직 말을 못했습니다.」

 「환자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또 죽음에 대비해서 인생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대학시절에 나는 친구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위독할 때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옳은지, 아니면 그냥 숨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친구들과 논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분분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논쟁이었지만 나는 그때 그 사실을 환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의사의 말에 동감하고 있으면서도 양선아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내 입으로 그녀에게 그런 엄청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양선아에게 말을 전해 주지 않자 담당 의사가 입원실을 찾아 왔다.

 「죄송하지만 밖으로 잠깐 나가 있으시겠습니까?」

  양선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으로「무슨 일이냐?」고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애써 그녀의 눈길을 피해 입원실을 빠져나와 문을 닫으면서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훔쳐보았다.

  담당 의사가 양선아의 침대 옆에 앉아서 낮은 소리로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녀에게 임박해 있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한참 후 의사가 입원실 문을 열고 나왔다.

 「사실대로 말씀하신 겁니까?」

  나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아 한 잔을 의사에게 건네며 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인생을 정리하라고 말했습니다.」

  내 손이 너무 떨어 종이컵 안의 커피가 출렁거렸다.

 「반응은 어떻든 가요?」

  내 얼굴은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담당 의사는 나에게 목례를 하고 다른 입원실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양선아의 얼굴을 마주 쳐다볼 용기가 없어 바로 입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신없이 병원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아니, 그녀를 입원실에 혼자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금 그녀에게는 내가 절실히 필요할 때였다.

  영화나 소설 같은 것에서 보면 죽음을 앞에 둔 사람한테「마지막으로 소원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물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그 동안 이루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소원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양선아에게 마지막 소원을 물으면 그녀는 어떤 소원을 말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약 그녀가 소원을 말한다면 난 그 소원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끝까지 그녀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어 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죄지은 사람이 경찰서에 자수하러 들어갈 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입원실에 들어갔다. 입원실에는 수녀들이 양선아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있었다.

  수녀들이 돌아가고 입원실 안에는 이젠 양선아와 나 둘만이 남아 있었다. 입원실 안에 무겁게 흐르는 침묵에 깔려 나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없이 희미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순간 나는 울컥 목구멍에서 솟구쳐 오르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선생님, 저 소원이 하나 있어요.」

  침대에 누워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던 양선아가 입을 열었다.

 「…….」

  나는 잠자코 양선아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제 소원 들어주실 거죠?」

  나의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 양선아는 다짐하듯 또 물었다.

 「누구의 소원인데 내가 안 들어주겠어.」

  내가 묻지 않아도 그녀가 먼저 마지막 소원을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양선아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우리 어머니 산소 아시죠?」

 「…….」

  나는 양선아는 더 이상 마주보지 못하고 무척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어머니 산소 옆에 있던 그 빈자리 보셨죠?」

 「응.」

  나는 그때 봤던 풀이 무성했던 그 빈자리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 곳이 제가 들어갈 자리예요.」

  그러니까 양선아는 죽어서 어머니와 같이 있고 싶어 미리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놓은 거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는 자신의 빠른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양선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나와 마지막 이별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껴안은 채 꺼억꺼억 울음을 토해 냈다.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동안 무척 고마웠어요.」

  

  양선아의 배에 복수가 더 차오르기 시작했다. 간에서는 알부민을 만들어 피의 농도를 체액과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간 기능이 떨어지면 알부민을 만들지 못해 피가 묽어지고, 묽어진 피의 수분이 체액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장간막을 통해 복강 내에 차게 되는 것이다.

  복수가 더 차오르자 양선아의 거동이 더욱 힘들어졌다. 그녀는 혼자 힘으로는 옆으로 돌아눕지도 못하고,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말라빠진 두 팔과 퉁퉁 부은 다리뿐이었다. 그것도 힘들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만 했다.

  담당 의사가 복수로 가득 찬 양선아의 배를 만져 보았다.

 「복수를 빼낼 수 없을까요?」

 「복수를 빼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주사기로 복수를 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인데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복수를 빼내도 바로 또 찰 겁니다. 또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알부민 주사를 놓아서 피의 농도를 상승시켜 복수 내의 물을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일단 알부민으로 복수를 빼내도록 하지요.」

  노란 알부민 액이 양선아의 팔을 통해 천천히 몸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좋다던 알부민으로도 그녀의 배에 찬 복수는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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