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진
담배 연기로 가득 찬 장성우의 원룸 한쪽 벽면엔 크고 작은 이경아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서 사진들을 바라보며 땅이 꺼져라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장성우의 계획은 지금까지 진척된 게 하나도 없었다. 이경아와 만나는 그 남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으니, 너무나도 큰 상실감에 그의 가슴속은 숯덩어리처럼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더구나 이경아의 생일날 양수리의 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두 사람의 만남이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장성우의 눈에 목격되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광경을 볼 때엔 속에서 열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그 남자의 뒤를 캐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만남이 절실히 필요한 그였다.
하루빨리 그 남자를 이경아에게서 떼어놓아야 하는데……, 그 남자는 솔잎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송충이 같은 존재였다. 그 남자를 생각하자 장성우는 얼굴에 송충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손으로 얼굴을 빡빡 문질렀다.
장성우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고 손을 뻗어 전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이경아의 레코드 가게로 전화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이 일요일이라 가게문을 열지 않았는지, 아니면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지, 하여튼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장성우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줄담배를 피운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또 피우는 담배였다. 아침에 깨끗이 비웠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서 벌거벗은 두 남녀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경아와 그 남자였다. 장성우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담뱃불을 재떨이에 비벼 끈 다음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이번엔 그녀에게 전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수화기를 든 장성우는 양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쉰 다음 박종수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보세요?”
신호음이 한참 울려서야 전화를 받은 박종수의 목소리는 무척 피곤한 듯 힘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고 있는 도둑놈 때문에 비상사태였던 것이다. 미처 그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던 장성우는 후회를 했다. 보나마나 말도 꺼내기도 전에 신경질부터 낼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랴,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팔 수밖에.
“나, 성우야. 요즘 전영호라는 도둑놈 때문에 무척 바쁘지?”
장성우의 목소리는 박종수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스러웠다.
“어, 그래. 그놈의 도둑놈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러나 박종수의 목소리는 지난번과 달리 장성우가 의아해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냐,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서 전화해봤어.”
장성우는 박종수의 전번과 다른 상냥한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오히려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하고 어정쩡한 말로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의 말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너 혹시 지난번 말했던 차량조회 건 때문에 나한테 전화한 거 아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이 자식이 먼저 꺼내다니? 장성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박종수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는 낚시터에서 월척을 낚는 순간과 같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그래. 알 수 있겠니?”
그래도 마음이 불안한 장성우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 번호 불러봐.”
“서울 라에 ××의 오천칠백구십구 번인데, 검은색 그랜저야.”
장성우는 잠깐 사이에 박종수의 마음이 변할까봐 숨도 쉬지 않고 그 남자의 차량번호를 불러줬다.
“지금은 바쁘니까 내일 조회해서 전화해줄게. 그런데 무슨 일이야?.”
“네가 걱정할 일은 아냐.”
“중요한 일이라면서?”
“그건 전화로 말고 나중에 만나서 얘기해줄게.”
“그래, 알았어.”
장성우는 박종수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차량조회를 해주지 않는다 해도 사실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유부남과 만나고 있는 여자 때문이라면, 그런데 그 여자를 죽도록 사랑해서 그렇다면 ‘소설 쓰지 마!’라고,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라고 비아냥거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장성우는 박종수와 통화를 끝내고 흡족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하더니, 지난번 그와는 죽어도 상종하지 않겠다던 장성우의 마음이 지금은 술을 거나하게 사줘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확실히 사람의 마음은 간사했다.
이름은 오승구. 나이는 마흔 다섯. 가족사항으로는 부인과 쌍둥이인 딸 둘. 직업은 ‘삶을 아름답게’라는 출판사 사장이면서 대한출판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주소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
박종수가 차량조회와 신원조회를 통해 알아낸 오승구의 신상내용이었다.
박종수는 장성우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그는 박종수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드디어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토요일이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퇴근을 한 장성우는 곧장 성북동에 있는 오승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오승구와 이경아가 함께 있는 장면이 찍힌 8×10 크기의 사진들이 들어있는 서류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그의 눈에 사진들을 보고 놀라 자빠지는 오승구의 아내 모습이 선했다.
가끔 신문의 문화면에 오르내릴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큰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승구의 집은 월급쟁이인 장성우가 평생 돈을 벌어도 살 수 없는, 평생 꿈꿔 보지도 못할 호화스러운 집이었다.
성채와 같은 오승구의 집에 주눅이 든 장성우는 선뜻 대문 앞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런 모습이 수상했던지 두툼한 검은 잠바를 입은 경비원이 가스총을 옆구리에 차고 그에게 다가왔다. 그때서야 그는 군데군데 사설경비초소가 있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장성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경비원의 눈초리는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 비행하는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집들이 너무 좋아 구경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비원의 기세에 눌려 언뜻 대답을 찾지 못했던 장성우는 잠깐 머뭇거리다 적당한 핑계를 생각하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려다가 들킨 사람처럼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등줄기에 식은땀까지 흘렸다.
“여기서 서성거리지 말고 빨리 가세요.”
경비원은 장성우를 마치 도둑놈 취급하는 듯 시선을 내리깔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사진이 든 봉투를 직접 우편함 속에 넣으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수고하세요.”
장성우가 경비원에게 인사를 하고 왔던 길로 뒤돌아 서서 가는데 때마침 언덕길을 따라 올라오는 그랜저가 있었다. 그는 눈에 매우 낯익은 그랜저라고 생각하며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 가장자리로 비켜서면서 힐끗 차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차는 오승구의 차였다.
오승구의 차가 속도를 줄이며 집 앞에 멈췄다. 그러자 아까 그 경비원이 재빨리 뛰어와 꾸벅 인사를 하며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 모습을 쳐다보면서 장성우는 가진 자들의 위세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경아 역시 그 위세에 놀아나는 인형에 불과한 존재라는 생각에 그는 아파 오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오승구는 잔뜩 화난 얼굴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소파에 앉아 라이터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줄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늘은 캐주얼 차림으로 이경아를 만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고 일찍 귀가한 오승구는 우편함에 꽂혀 있는 서류봉투를 집어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수신인은 자기 이름인데, 발신인이 없었던 것이다.
오승구는 서류봉투 속의 내용물이 뭔지 궁금해서 구두를 벗으려다가 말고 신발장 옆에 서서 봉투를 뜯었다. 내용물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이 세상이 마치 한꺼번에 정지하기라도 한 듯한 충격으로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봉투 속엔 8×10 크기로 인하된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두 남녀가 모텔 객실 창가에 서서 서로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진하게 나누고 있는 것과 그 두 남녀가 다정스럽게 팔짱을 끼고 양수리의 ‘화이트 하우스’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남자는 오승구 자신이었고, 여자는 이경아였던 것이다. 지난번 그녀의 생일날에 찍힌 것이 틀림없었다.
혹시 협박이나 요구사항 같은 문구가 적힌 메모지가 있나 하고 봉투 속을 뒤집어봤으나 사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놈이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사진만 달랑 보낸 것을 보면 쉽게 일을 끝낼 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아내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이모를 만나기 위해 오늘 아침 첫 비행기를 타 집에 없다는 거였다. 이경아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며칠 전부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런데 사진으로 인해 기분이 비 오는 날 진흙탕 속에 빠진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오승구는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의 짓인가? 오승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리지 않던 겨울비가 부슬부슬 청승맞게 내리고 있었다.
오승구는 창문을 열고 피우던 담배를 돌팔매질하듯 밖으로 던졌다. 빨갛게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던 담뱃불은 비에 젖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꺼져버렸다. 오늘밤은 이경아와의 만남을 포기한 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해답이 없더라도 고민 또 고민을 하며 지새워야 할 것 같았다.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을 다시 닫고 소파에 앉은 오승구는 또 애꿎은 담뱃갑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담배는 한 개비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빈 갑을 손아귀에 넣고 우그러뜨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도대체 어떤 놈인가? 그것부터 알아야 하는데, 그놈이 ‘나, 여기 있소’ 하고 먼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오승구는 지금의 기분으로 이경아를 만나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 일이 바쁘다는 거짓말로 핑계를 대고 오늘 만나기로 한 약속을 다음으로 연기하고 말았다.
“어떤 쌍놈의 새끼야!”
아내가 일본에 간 순간을 이용해 이경아와 마음껏 즐기고 싶었는데, 그 계획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 오승구는 큰 소리로 누군지 모르는 그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따르릉…….”
갑자기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오승구는 깜짝 놀라며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일본에 가 있는 아내의 전화겠지 생각하며 전화가 끊기려고 할 때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그러나 상대방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역시 아무 말이 없었고,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 올뿐이었다.
“어떤 새끼야!”
화가 난 오승구는 버럭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자 딸깍, 전화는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그는 단절음이 들려오는 수화기를 한동안 귀에서 떼지 못했다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틀림없이 그놈이었다. 사진을 보낸 놈…….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 오승구는 이를 악물고 얼굴을 찌푸렸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해봤으나 그것은 ‘나, 바람 피웠소’라고 신문광고를 내는 것처럼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놈이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게 뻔하므로 다른 방도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예전에 오승구는 아내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오직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그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이경아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아내에겐 물질의 풍요로움이 있었고, 그녀에겐 가슴 설레는 사랑이 있었다. 만약에 누군가가 그에게 아내와 그녀 둘 중에 한 명만 선택하라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만큼 그에게는 두 여자가 다 필요했다.
오승구는 충북 음성에서 땅뙈기 하나 없는 가난한 소작인의 3남 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째지게 가난했던 탓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농사일을 거들은 덕분에 그의 학업성적은 언제나 밑바닥을 기어다녔다.
빈곤의 연속인 시골구석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오승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일 없이 몇 개월 동안 빈둥거리다가 한창 바쁜 농사철로 들어설 때 불알 두 쪽만 가지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던 것이다.
친하게 어울리면서도 오승구와는 달리 공부를 잘해서 서울로 유학 온 친구인 이근식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흑석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이근식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
이근식의 주소만 달랑 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오승구는 길을 잘 몰라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지친 몸으로 중앙대학교 정문을 지나쳐 오래되어 낡은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거의가 노인들이 주인인 이곳의 집들은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취방을 내놓거나 하숙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이근식이 자취하고 있는 집도 그 중에 하나였다.
가까스로 힘겹게 찾은 이근식이 자취하고 있는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 집에서 자취하는 사람이 어림잡아 서른 명 정도라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대문의 빗장을 잠글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승구는 선뜻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약간 망설이다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엔 팬티와 러닝 셔츠 등 남자들의 속옷들이 빽빽이 널려 있었다.
마치 한 학생이 들어오다 오승구와 마주쳤다. 그는 그 학생에게 이근식이 자취하고 있는 방이 어디인지를 물었으나, 이름을 모르고 있었던지 학생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이근식의 사진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자 학생은 그때서야 알아보고 친절하게 방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이근식의 방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방문을 부수고서 들어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할 수 없이 그가 귀가할 때까지 주변을 배회하면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둠이 낮게 깔릴 즈음에 귀가를 한 이근식은 아무 연락도 주지 않고 불쑥 찾아온 오승구를 보자 무척 놀란 표정을 하면서도 반갑게 맞이했다.
이근식의 자취방은 서너 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로 비좁았고, 판자로 칸막이를 만들었는지 옆방에서 기침하는 소리까지도 다 들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구멍가게에서 사 가지고온 소주를 마시면서 옛날 추억을 되새기며 깔깔거리느라고 잠을 못 잤다. 밤새도록 지껄이는 두 사람의 대화에 아마 옆방의 학생은 시끄러워 잠을 설쳤을 게 뻔했다.
그 날부터 오승구는 이근식에게 얹혀 살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신문광고는 물론 직업소개소를 드나들면서 싸돌아다녔지만 취직을 한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적어도 마음에 드는 직장에 입사하려면 학벌도 좋아야 하고 인맥도 있어야 했는데, 그처럼 학벌은커녕 인맥도 없는 놈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는 것은 허황된 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막노동을 하려고 서울로 도망쳐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근식이 ‘너에게 딱 어울리는 좋은 직장’이 나타났다면서 소개해 준 곳이 바로 ‘삶을 아름답게’라는 출판사였다.
오승구는 그 출판사에 첫 출근하기 전날 밤에 이근식에게 축하주까지 얻어 마시면서 ‘나 같은 놈이 네 덕분에 취직을 했으니,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이 신세를 꼭 갚아 주마’하고 감동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출판사에서 오승구가 소속된 부서는 말이 좋아 영업부였지, 그의 주된 업무는 서점으로부터 주문 받은 서적을 배달하는 일에 불과했다. 고작 배달밖에 하지 않는 직원에게 월급을 남만큼 줄 리가 없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된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오승구는 혹시나 도중에 포기하고 그만 둘까봐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 이근식에게 그런 일이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면서, 밑바닥에서부터 배워 훗날에 자신이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겠다고 큰 소리를 쳐댔다. 걱정하고 있는 이근식을 안심시키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진실이었다. 그는 그 출판사가 마음에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머릿속에 든 게 없는 그에겐 하는 일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해서 좋았다.
그러나 얼마만큼 일에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길 때 오승구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죽기보다 가기 싫은 군대였지만 가기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고, 그는 머리를 빡빡 밀고 논산훈련소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인으로 또 다른 인생길로 들어선 오승구는 고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군홧발로 걷어차이면서, 고참이 되어서는 졸병들을 무차별적으로 군홧발로 걷어차면서 33개월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무사히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입대하기 전에 다니던 ‘삶을 아름답게’라는 출판사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휴학하고 그보다 21개월이나 늦게 군에 입대한 이근식과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다행히 이근식이 기거하던 흑석동의 자취방이 비어 있어 오승구는 그동안 알뜰살뜰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주인집 할머니에게 보증금을 지불하고 계약을 했다. 방세가 싼 것도 싼 것이지만 서울에서 아는 곳이란 이곳밖에 없는 그로서는 여기저기 방을 구하러 돌아다닐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예전엔 서너 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로 비좁은 방에서 두 사람이 비비적거리며 지냈는데, 이젠 혼자 생활하게 된 오승구는 그 비좁던 방안이 넓어 보일 정도로 호사스러움을 느꼈다.
오승구는 그 방에서 밝은 미래를 설계하며 입대하기 전에 다니던 출판사보다 나은 직장을 찾아 두 눈에 쌍불을 켜고 신문광고를 보거나 직업소개소를 드나들면서 싸돌아다녔다. 그러나 사회는 더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역시 학벌도 없고 인맥도 없는 그는 좌절감만 맛보아야 했다.
고작 열흘도 안되어서 예비군복을 입고 출판사에 나타난 오승구를 사장은 예전에 그의 성실 근면성을 인정해 군말 없이 복직을 허락했고, 그는 사장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출판사 사장에겐 오승구보다 나이가 세 살이 더 많은 최성희라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다. 나쁜 머리는 아닌데 공부에 담을 쌓고 노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는 삼수까지 했지만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출판사에서 경리업무를 맡고 있었다. 말이 좋아 경리업무이지 실질적으로 그녀가 하는 일은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최성희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이로운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출판사의 확실한 후계자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으므로 그 누구도 감히 나서서 처녀의 몸매가 아닌 펑퍼짐한 엉덩이로 버티고 앉아 있는 그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토를 다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마음속으로는 불만이 많을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사장 대하는 것 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출판사는 발간하는 소설들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사장의 눈에 확실하게 도장을 찍은 오승구는 말단 업무인 배달꾼에 불과했던 업무에서 벗어나 정식 영업부 직원이 되면서 대리라는 직함까지 갖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바로 그 날 밤, 오승구는 직원들의 요구에 의해 직원들에게 승진턱을 내야했다. 갑자기 예고 없이 벌어진 일이라 이미 선약이 있었던 직원들이 빠지는 바람에 직원 전원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팔십 프로가 넘는 직원이 그의 대리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좋은 오승구는 이 사람이 한 잔, 저 사람이 한 잔, 또 이 사람이 한 잔, 저 사람이 한 잔 건네주는 소주를 취하는 줄 모르고 냉큼냉큼 받아 마시고 나서 냉큼냉큼 그 사람에게 잔을 건넸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음식점에서 나와 근처의 다른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면서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리 마셔댔으니 오승구의 위장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는 운명의 덫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운명의 덫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다들 술에 잔뜩 취해 헤어져 돌아갔지만 오승구는 위장이 뒤집히고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 몸을 못 가눌 정도로, 혀가 안으로 돌돌 말려 제 발음을 내지 못할 정도로 만취해 도저히 그냥 택시를 탈 수 없었다. 급기야 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재빨리 호프집으로 뛰어들어가 화장실의 변기에 엎드려 왝왝, 하며 마시고 먹은 것들을 몽땅 토해내고야 말았다. 식당에서 먹은 돼지갈비와 상추와 마늘, 그리고 호프집에서 먹은 과일들이 형체 없이 범벅이 되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토악질을 끝내고 자동센서가 달린 세면대에서 수돗물로 입안을 헹군 뒤 오승구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화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땅이 흔들리고 다리가 휘청거려 몇 발짝 걷지 못하고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쭈그리고 앉았다. 가로등이 없었다면 그는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오승구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자꾸만 밑으로 떨어지는 고개를 들고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면서 쳐다보았다. 그의 어깨를 친 사람은 여자였다.
“성희 누나…….”
오승구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술에 너무 취해서, 승구가 혼자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최성희가 친동생을 대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오승구를 부축해 일으키고 그의 한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렀다.
창문을 요란스럽게 두들기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오승구는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프고 뱃속이 뒤틀렸으나 그대로 누운 채 고개만 약간 돌려 어슴푸레한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지금 누워 있는 방은 자신의 자취방인데 바로 옆자리에서 최성희가 이불을 걷어찬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고 있었던 것이다.
엄동설한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바짝 든 오승구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역시 벌거벗은 몸이었다.
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충격을 받은 오승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어젯밤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어젯밤에 호프집 화장실에서 여러 번 토악질을 했었어. 토악질을 끝내고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걸음을 옮길 수 없을 만큼 취해 가로등에 기대어 앉아 있었어. 그때 성희 누나가 나타나 ‘술에 너무 취해 승구가 혼자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내 몸을 부축하며 말했어. 그리고 나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고……. 오승구는 어젯밤의 일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최성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지껄였는지, 또 무슨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과 그녀가 벌거벗고서 같이 잤는지, 뭐가 뭔지 오승구는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빗방울은 점점 더 크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우르르 꽝, 하고 집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천둥소리가 크게 울렸다.
“언제 일어났어?”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최성희가 이불을 잡아끌어 상반신을 감싸며 일어나 앉았다.
“누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
오승구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수줍은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최성희는 얼굴에 불그스름하게 홍조를 띠었다.
“정말 미안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오승구의 얼굴엔 말할 수 없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최성희의 몸을 건드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난 괜찮아. 그리고…….”
최성희는 한껏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더 하려다 말고 그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선뜻 무슨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에선 뜻 모를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여전히 빗방울은 창문을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나…… 그 동안, 널…… 좋아했었어.”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최성희가 오승구를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난데없는 최성희의 고백에 오숭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녀의 몸이 그의 앞으로 쏠리면서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강렬하게 덮쳐왔다. 그때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게 된 그는 그녀의 강한 욕정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비가 오는 가운데에도 밖은 환희 밝아져 오고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그렇게 예고 없이 비 오는 날에 최성희와 첫날밤을 보낸 그 는 그 날 이후부터 싫든 좋든 그녀의 애인이 되었다. 그가 그녀의 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와 섹스를 했다는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름이 꽤나 알려진 출판사 사장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는 것이었다. 가난에 쪼들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그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