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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 Story +10

수레국화 |2007.03.26 23:38
조회 652 |추천 0

서울로 돌아온 다홍은 서둘러 유학준비에 들어갔다. 학교에 가서 학과장님께 교환학생 추천을 부탁드렸지만 이미 정원이 다 차서 어렵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직접 하자니 학교선택부터 랭귀지코스 선택까지 여간 복잡한게 아니다.  점심도 못 먹고 하루종일 뛰어다녔는데 벌써 저녁시간이다. 아직 은수와의 과외가 한 주나 남아서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혹시나 민경이라도 마주치면 그간의 일을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아 바로 동아리 방으로 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민경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홍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소리 쳤다.

“야~~ 이 지지배야, 너 전화기 밥 말아 먹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그랬어?”

“그랬어라니? 기지배, 은수선배 잊는다고 할때는 언제고 지리산까지 쪼르르 달려가더니, 왜 갑자기 실종된건데? 그러고도 태연스럽게 스터디하러 납시고? 대답하십니다. 이다홍씨.”

“나 많이 복잡해. 그래. 그냥 그날은 내가 미쳐서 그랬다고 생각주면 안되겠니?”

민경은 평소의 다홍이라면 뭔가 변명이라도 하며 민경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을텐데 달랐다. 여느 때와는 달랐다. 생각할 게 많은 얼굴이다.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

“그렇지뭐.”

있었단 말인지 아니란 말인지. 민경은 더 물으려다가 은수가 들어와서 입을 다물었다. 다홍은 아무렇지 않게 비디오를 넣으며 은수에게 인사했다. 은수 역시 당황스러운 듯 했다.

“이다홍, 전화 계속 안되던데”

“배터리 나갔었어요. 그럼 시작할까요? 민경이 넌 옆에 조용히 있던지 도서관 가던지 해. 이따가 마치면 전화할게.”

민경은 사라져 달란 말인 줄 눈치 채고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달리 심각해보였다. 민경은 공부하고 있는 준용을 불러내었다.

“은수선배한테 뭐 들은거 없어요?”

“뭐? 다홍이?”

“방금 동아리방에 왔는데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는게 안쓰러워 죽겠어. 거기서 무슨 일 없었대요?”

“은수형도 다홍이 못 만나서 우리한테 그렇게 전화했었잖아. 왜? 무슨 일 있었대?”

“아니.. 확실한 건 모르겠는데 표정이 초조해보이고 생각하는게 있는 것 같았어. 단지 지리산까지 갔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래도 은수 형은 다행이라고 하던걸. 다홍이 마음을 어찌 되었거나 알게 되었으니까. 둘이 뭐 진도 좀 나가는 것 같지는 않았어?”

“전혀 올시다. 찬바람이 쌩쌩불던걸뭐. 거기서 못 볼걸 봤나? 다홍이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은수도 다홍의 마음을 전혀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내내 스크립트와 티비 화면에만 시선을 두고 은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벙어리가 된 것도 아니고 주의해서 들어야 할 부분, 은수가 잘못 들은 부분은 지적해 주고, 은수의 질문에 자세하게 답했다. 스터디가 끝나고 다홍은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왜 이렇게 책이 없어? 도서관 안가?”

“네. 오늘부터 도서관 갈 시간 없어요. 그럼 도서관가서 공부하세요. 수요일에 만나요.”

다홍이 시계를 보고는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그저께.. 나 찾으러 지리산 왔었어?”

“아뇨. 그만 가볼게요.”

다홍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뛰어 나갔다. 과외 자리가 하나 들어와서 가봐야했다. 다홍은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 

새로 하게된 목동 과외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아들을 꼭 보내야 한다는 어머니 말이 있어서 가기 전부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돈만 많이 준다면야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해 갈 수 있다. 55평의 부잣집 마님답게 학생 어머니는 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두고 살고 있다. 다홍이 들어서자마자 학생 방으로 데려갔다.

“우리 지환이예요. 두 달 밖에 못하신다고 했죠? 그럼 매일 와주시구요. 단, 토요일 일요일은 쉬도록 하세요. 과외비는 선생님이 흡족해 하실만큼 드릴께요. 한달에 한 장 이면 되겠죠? 이번 기말고사와 여름방학이 너무 중요하니까 일단 이번주는 기말고사 신경써 주시구요,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인 영어 공부 해주세요.”

지나치게 자신감이 많은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는 그다지 공부에 관심없는 듯 다홍에게 인사만 하고 화장실가서는 다홍이 나올 때가 되어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다음날 과외집에 가니 아이 어머니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시켜 쟁반 가득 간식을 내왔다. 그리고 자신은 과외하는 내내 공부방의 문을 열어두고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과외를 관람했다.

“선생님, 여기 과외비 받아가세요. 선생님 목소리가 좀 작은 것 같던데 조금 높여 주시면 좋겠구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회화도 좀 해주세요. 아무래도 영어 면접이 있다보니 소홀히 할 수가 없어서요. 아시죠?”

다홍은 아이나 어머니가 어떻든 간에 과외비만 생각하고 꾹 참고 두달을 버티기로 작정했다. 과외집을 나서서는 무작정 걸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걷는 게 상책이다. 집까지 걸어오니 거리에는 상점의 불이 다 꺼져 을씨년스러웠다. 과외할 때마다 다홍은 마음이 착잡하다. 자신은 학교 다닐 동안 과외란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런 건 부자집 몇 몇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자신은 그 돈을 받아 살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은수는 마지막 수업만 남겨놓은 날, 조금 일찍 도착해서는 동아리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수업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잡고 있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나가는 다홍에게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해 봐야 한다. 민경과 준용도 포기했는지 다홍과 만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5분전, 다홍이 도착했다. 역시나 대강 인사하고는 비디오를 넣고는 처음으로 돌려 맞추고 있다.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저 화난 것도 아니고 새로 과외가 생겨서 바빠서 그래요. 궁금한 거 다 해결됐죠? 그럼 시작할게요.”

마지막 스터디가 마치고 다홍은 또 후다닥 가방을 챙겨서 나가려고 했다.

“이다홍, 오늘 우리 스터디 마지막 날이야. 그냥 갈거야?”

“갈게요. 선배가 과외 왜 했는지 알아요. 그래서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거예요. 그럼 먼저 갈게요.”

“너 실망스러워. 이렇게 자기 멋대로이고, 다른 사람의 성의는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니?”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선배의 기억에 어떤 사람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가야지 과외에 늦지 않아요.”

다홍은 가방을 들고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봤다. 은수는 팔짱을 끼고 화난 표정으로 다홍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선배, 나중에, 아주 많이 시간이 흐른 나중에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참 반가울 것 같아요. 선배 좋은 사람이잖아요. 그럼 정말 갑니다.”

다홍이 동아리방을 나오니 민경과 준용이 맥주를 사들고 밖에 서 있었다. 마지막 과외 축하할 겸 맥주 한잔 하려고 했다가 다홍과 은수의 대화를 들은 것이다.

“너 정말 그냥 갈거야? 과외 미루면 안돼?”

민경은 다홍의 손을 잡았지만 다홍은 슬며시 그 손을 뺐다.

“갈게. 그래야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들 다 버려질거야.”

민경은 다홍의 각오가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 고집을 누가 꺾으랴.

다홍은 버스에 오를때까지도 눈물이 났다. 자신이 왜 그렇게 매정하고 모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왜 도망가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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