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난 몇년간 내가 간직한 일기와 메모장에 의존하며, 모아 하나로 뭉쳤을 뿐이며, 그냥 악플없이 심심풀이로 읽어주길 바라며, 이 글을 그녀에게 선물합니다.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을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가슴뼈가 부러지도록 안아주어도 모자른 그런 사랑. 멀리서 다가오는 그 사람을 보면 숨이 턱까지 차와 머리가 어질어질 되고, 내 모든 세포들이 주뼛주뼛 서면서 그 모든 것들이 그 모습만에 집중한다. 나의 동공은 커지고 그 사람 주변에는 눈이 부신 빛이 생긴다. 난 그 사람을 아무말없이 안아준다. 나의 심장을 터질듯하고 미칠듯이 마구 뛴다. 그 순간 난 이 세상 최고의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이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그런 감정은 금방 식는다고 한다.
난 그 사람과 미워서 정말 보기 싫어서 헤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내겐 너무나 과분한 그런 사람. 그녀의 웃음을 보고나서야 난 웃을 수 있었으며, 그녀의 미소를 보고나서야 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난 그녀가 우는걸 보았다.
중요한 무언갈 잃은 사람처럼 뭐가 그렇게 서러웠었는지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운다.
난 그때 피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에선 피가 거꾸로 돌고 있었다. 너무나 슬펐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내가 잘할께.
항상 이렇게 난 모자른듯 주었나싶다.
그래서 잘못했고, 그래서 미안했고,
그래서 더욱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지금 그녀는 또 어디론가 그림자조차 감추게 되었다.
이 새벽에 난 다시 또 쓰라린 가슴을 안고 준비한다.
지금 내가 생각나는건,
따듯한 태양아래서 그녀의 무릎을 비고 눈을 감았을때다.
이게 바로 천국이구나. 이게 바로 사랑이구나.
그 무릎은 너무나 부드러워 나를 천국까지 인도해주었다.
지금 그 따듯했던 그녀의 무릎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욕심내어 그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한
준비를 조금씩 조금씩 한다면,
언젠가 그녀의 무릎은 다시 내 것이 되지 않을까하는 바램으로
이렇게 조금씩 적다보면, 어느새 내 기분은 최고조에 다달한다.
그녈 생각하면, 지금도 난 어린 아이인거 같다.
지금부터 그녀와의 운명같은 만남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그녀와의 첫만남이다.
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경희대 체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의 반대에 무릅쓰고 난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부터 우연히 시작한 헬쓰의 많은 영향을 받아, 운동이 없으면 이 세상은 불행하다는 말도 안되는 일념으로 내가 체대에 진학해 체육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과 실기, 그리고 사회에 부정적일 수도 있는 체대학도들에 대한 사회적 관념을 뒤짚어 엎겠다는 일념 하나로 선뜻 잘하고 있던 공부를 조금은 멀리하고 운동에 심취하며 체대 입학을 꿈꿨다.
체대입학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고3 수능 직전에 반짝 이벤트식으로 체육학원에 다니는게 마치 체대입학의 교본인듯 생각하여, 아무 꺼리낌없이 학원에 등록하였다.
난 아주 운이 좋았다. 어렸을 적부터 농구를 심하게 좋아하여 한번 농구를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슈퍼맨으로 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아주 좋은 운으로 티비에서만 보던 연대 농구부원들과 함께 한 코트에서 농구도 하곤 하였다. 그때 내 자유투 성공률은 정말 100프로였다, 밀거나 말거나ㅋㅋ
난 체력도 몸도 너무나 좋았다. 모든 실기는 거의 만점이였다.
이과였지만 그 이과반에서도 어느정도 했으니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체육학과에 진학하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처음 등록했던 학원과 마찰이 조금씩 생겨 그만 두게 되었다. 난 X도 없으면서 잘난척하는 부류들을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번째 학원을 그만두고, 수능일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3년간 난 2분단 맨앞자리를 몇번 빼고 놓친적이 없을만큼 학구적이였다. 당연 수능 모의고사 점수도 잘나왔고, 수능에서도 물론 기대를 만빵하고 있었다.
수능일은 금방 돌아왔다. 수능일에 난 그때 당시 유행 코드에도 무척 민감한 편이여서, 복고풍이 유명하던 그 당시, 꽉 끼는 바지와 타이트한 상의로 코트를 입고 갔다.
이게 화근이였다. 밤새 긴장감에 계속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고, 어머니가 새벽에 챙겨주시는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거기에 아침을 먹으면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고 신문기사에 대문짝만한게 나온 기사를 보고 평소에 전혀 먹지 않았던 아침밥을 먹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상하의로 타이트하게 입고 갔던 옷들은 점점 뒤틀려 오는 내 배를 마치 풀려고 하면 더 조이는 수갑처럼 감아조였다.
우웩!을 하려고 내 자신을 어렵게 어렵게 달래며 1교시 언어영역이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가고,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문제를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굳세어라 필용아 하면서 정말 최선을 다하여 풀었다.
이제 답만 답안지에 옮기면 되었다.--; 그래 5분만 참자.
5분후면 화장실에 달려갈 수 있어. 필용아. 참자. 참어.
난 그렇게 나를 달랬다. 꾹 참으며 답안지에 정성스레 옮겨적었다.
휴~ 길고 길었던 1교시가 끝나기 1분전.
난 답안지에 덩그러니 외롭게 남아있는 맨마지막 칸이 보이는게 아니던가.
"아.. X됐다."
바로 손을 들며 말했다.
"저기요, 밀려썼어요--; 답안지 좀 바꿔주세요ㅠ"
감독관 왈, "시간 1분전이라 안되니까 일단 그냥 내세요"
"헉;;"
그 1분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재수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내 모습을 말이다.--
정말 끔찍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몇번의 방황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열심히는 했었기 때문에 그에 충분한 댓가가 있으리라 항상 생각해왔다.
그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마치 아인슈타인인냥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냈다.
"재수를 해야하나?"
"아님 걍 여기서 나가버려야 하나?"
"아님 일단 시험은 한번 봐야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한 난 그냥 답안지를 내었다.
1교시가 끝나고 난 눈치를 챘다. 아주 긴 지문 밑에 아주 짧은 문제를 지나친걸,--;; 완전 OTL.
하지만 난 화장실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같이 시험보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냄새를 풍기고 싶지 않아, 얼른 화장실로 튀어갔다.
돌아오자마자 같이 시험보게된 같은 반 친구들 몇몇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 얼마나 밀려썼어?"
"야. 으쩌냐"
"너, X됐다"
몇마디가 내 귀에 들렸지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놔, 왜 화장실에 휴지가 없고 지랄이니"
양말 한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난 밀린 답안지보다
내 맨발 생각에 안습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극구 만류가 그냥 시험장을 나가려던
나를 2교시 시험시간을 붙잡게 되었다.
난 맨 마지막 교시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험시간이 종료 되었다.
시험을 잘봤건 망쳤건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은
우리 수험생의 인생 시작을 알리는 종이였다.
다들 가방을 천장으로 집어던지며,
지긋지긋했던 고교생활을 마무리하려는듯 싶었다.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되서 알게 된거지만,
그건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아니라 내 인생의 폭풍을
알리는 종이였던 것이였다.
시간을 흘러 수능성적이 나오는 시간이 되었다.
난 성적표를 받았다.
헉!! 예상보다 더 적게 나와버렸다.
"아.. 이제 내 인생은 종쳤구나"라고 생각했다.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얻은 친구들의 환호,
그리고 나처럼 좋지 않은 성적을 얻은 친구들의 한숨소리를
뒤로 하고 난 뚜벅뚜뻑 학교 정문을 나왔다.
그리고 난 집에 들어가서 먼저 가방을 풀고,
내 수능성적표를 씹어먹었다.
그리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보름 넘게 내 방 문밖을 나오지 않았다.
내 이 안습같은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네가 선택하고 네가 낳은 결과를 네 손으로 감당못하니?"
"결과가 어떻든 최선은 다해봐야 하는거 아니야?"
지금 내 나이 스물여덟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정말 우정을 나눈 친구이기도 하며, 사랑스런 고귀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마보이란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ㅋㅋ
그런 어머니가 나에게 준 선물 중에 가장 큰 두가지 말씀이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해봐라"
이 말안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뜻이 담겨져 있다.
극렬한 결과론자들은 과정 따위는 무시한다.
난 어렸을 적부터 이런 논리를 갖았다.
"그럼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칼을 들고 있다가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과 부딪쳐 칼을 떨어트렸는데 그 옆에 있던 사람이 그 칼을 주워 바라보다가 맞은편에 오는 사람을 그냥 무심코 찔렀다고 가정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걸 예라고 드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보다 복잡하고 논리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는 고삐리 아니였던가?"
난 물었다!
"쓰불, 그럼 이건 도대체 누구의 잘못이야?"
난 아직도 못풀고 있다ㅋㅋ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맨처음 칼을 들고 있던 사람의 잘못일까?
아니면,,,
우연히 떨어진 칼을 들고 무심코 사람을 찌른 마지막 사람일까?
도덕적인 서양 철학자 칸트도 울고 갈 질문과 답이겠지 OTL;;ㅋ
하지만 난 어렸을 적에 그것이 중요했다ㅋㅋ
하여튼 ㅋㅋ 최선을 다해보란 어머니의 말씀이 나에게 자극이 된건지 아님 재수가 하기 싫었던건지 모르겠지만 ㅋㅋ 난 다시 두번째 체육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기대반 좌절반이였기 때문에 그다지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하필 그때 그 학원에서 좋아하게된 누나가 생길줄이야--; 물론 이뻤다. 정말 성형했다고 했을만큼 오똑한 콧날, 매끄러운 피부, 王짜가 새겨진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그녀 때문에 난 항상 실기시험보는 전 날에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시험장가서 술기운으로 농구공을 던지고 멀리뛰기를 하고 매트리스에 토를 하곤 하였다ㅋ
"우웩!!!"
물걸레를 들고 온갖 안주들을 닦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남자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누나는 결국 나와 사귀게 되었다.
친구들은 물론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ㅋㅋ
몇년이 지나서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니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그렇게 술기운으로 시험을 보니 아무리 내가 구로갑 형님이라고 해도 합격할 수 없었던 문이였다.
그렇게 한군데 두군데 세군데 낙방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낙방의 쓴맛을 보고 있던 와중 우연히 친구가 한 대학교 원서를 접수하러 간다고 했다.
"그럼 내 것도 부탁해, 내가 돈줄께!!"라고 던진 한마디로 난 결국 그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참 우연히도 그 친구는 나와 함께 대학동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가 없는 순간이였다--;;
결국 난 친구의 도움에 힘입어 그렇게 문안하게 대학에 입학하였다.
OT를 하고 MT를 가고 어떤 일들로 난 친구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때 문화적 특기의 대세였던 차력사로서의 면모를 만인에게 19금버전으로 모든걸 선사했다.
절대 일말의 아쉬움도 남지않을 연기였다.
그로인해 잘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거였다--;;
그 당시 난 그곳에 있던 만인의 눈물, 콧물을 다 뺀후 우리 조는 우승의 영예를 안고 소주 한박스를 받았다.
우리 동기는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1조당 인원은 10명도 안됐지만 5명이서 밤샘작업으로
그 소주 한박스와 막걸리 한박스를 처리할 수 있었다.
술을 잘 못마시는 나로선 간혹 간질 증세와 지속적인 구토증세를
선보이며, 우리 조의 적이 되어갔다.
하지만 우물안에 있던 개구리가 넓은 호수가 근처로 가게되니 생기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였다. 내가 대학이란 곳에 가면서, 세웠던 목표들과 이상들은 한낯 소주짝에 기대어졌고, 말도 안되는 교수들의 학습론과 교수론으로 나의 화련한 대학생활은 어느덧 서서히 문을 닫고 있었다.
점점 재미를 잃어가고 결정적으로 동기와 사귀게 되고 헤어지면서 난 대학생활에 신물이 났다. 막 놀았다.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그것이 자유인줄 알고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차차 학교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내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하루에 2만원씩 받으며 나름 풍족하게 생활하던 나의 생활고는 어느날 어머니가 내가 학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던 날부터 만원으로 줄면서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담배값 2,000원. 그때 정우성이 우리의 영웅이였다. 맨날 그 비싼 양담배 말보르 레드를 피면서 우리의 돈과 목을 앗아갔던 그 비트의 명장면은 어느덧 태양은 없다의 시나브로 붐을 일으켜, 약간의 생활고충을 해결해 주었고ㅋㅋ 우리의 목은 차츰 본연의 목소리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ㅋㅋ 아마 우리 80년생 나이때라면 다들 공감하겠지--;; 그렇게 방황하던 중 우연히 게임방이라는 곳을 알게되었다. 그 게임방의 간판은 나에게 아직도 선명하다. 그 곳에서 내 운명은 180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게임방은 오직 스타아니면 취급을 안하는 곳이였기 때문에 내 친구들 역시 스타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난 그 게임을 보면서 뭐 이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는것도 없이 그냥 따라가기만 하고 투덜투덜 되기만 하였다. 그 무렵 대학생이 되었으니 집에 데스크탑 하나는 있어야지라는 생각에 어머니 아버지에게 말했다. "좀 도와주십쇼!" 그 동냥에 힘입어 그 당시 최고급 컴퓨터인 펜티엄이라는 엄청난 기계가 나에게 생긴 것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마우스란 녀석은 잘때도 손에 끼고 잘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ㅋㅋ
그러던 중 바탕화면에 스타란 글씨가 내 머릿속 깊게 자리잡았다. 왜냐하면 어,, 게임방에서 하던 게임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전에 난 나우누리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스타란 게임을 접할 수 없었던거 같다. 그 스타라는 글짜가 내 머리속에 들어온 후론 역시 외골수의 기질을 발휘해 빌드오더를 메모장에 적으면서 컴퓨터와의 1:1 한판전쟁을 치루고 지면 담배를 이기면 환호를 쳤다. 몇일 열심히 노력해서 게임방엘 갔다. 자신만만한 말투로 친구들에게 말했다.
"야 나보다 스타 잘하는 놈 누구야?" 하면서 말이다 --;
보나마나 난 꼴좋게 마린 10마리를 뽑기도 전에 져버렸다. 자존심이 강한 나로선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때부터 죽어라 했다. 정말 운동도 때려치고 겜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때 내가 여자말고 게임에 미칠 수 있었던건 여자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일인데--;;
그러던 중 친구 한명이 게임방에 자주 놀러오는 동갑내기 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접근했다. 스타란 게임은 로그아웃 후에 다시 로그인하게 되면 최근에 접속했던 아이디가 띄게 되었있다.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운좋게도 그런 식이였다.
아이디를 알아내고 무슨 서버인지 알아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게임방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고 한마디를 건네며 조금씩 우리 친구들과 친해져 갔다.
그런 일들이 있게된 후에 5명 친구들중에 나 빼고 다들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로선 그녀는 엽기적인 여자였다.
난 그때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5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 5명의 친구중 나를 포함한 2명의 친구를 제외한 3명의 친구는 술을 무척 잘 마셨지만, 그녀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술자리를 갖게되면, 나와 2명의 친구를 제외한 3명의 애주가들은 항상 결국 테이블과 입맞춤을 하고 있었고 그 입맞춤을 하면서 입술과 입술 사이로 찐덕찐덕한 오물이 오고갔다 --;;
하지만 그녀를 무척이나 강했다.
혼자 소주잔을 들면서 "한잔더! 한잔더!"라고 혼자 외치면 술을 들었다. 나처럼 보수적인 사람의 눈에는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을뿐만 아니라, 내 이상형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생각뿐이 안들었다. 그건 지금에 와선 정말 나만의 착각이였다는게 절실히 들어나게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사랑스런 모습이였고, 정말 꽉 안아주고 싶은 여자였던 것이다.
나중에 우리가 사귀게 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남자들 앞에서 취하면 약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고,
자기도 모르게 자존심을 세웠던 걸로 결론 지어졌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소문으로 그녀와 누군가와 사귄다는 소리가 들렸다.
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좋아하는 감정이 뭔지, 그녀가 나에게 미치게 될 영향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