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축구는 투쟁적이다. 잠시라도 상대에게 볼에 대한 지배를 허용하지 않으려는듯 거친 몸싸움을 펼치며 달려드는 모습은 투쟁의 목적이 볼에 대한 쟁취에 있음을 보여준다. `볼에 대한 쟁취' 이것만큼 영국 축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볼에 대한 쟁취'는 `좁게 닫는 것'을 의미한다. 짧고 빠른 잔디와 변덕스러운 기후는 그라운드를 거쳐 온 볼에 대한 예측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 그라운드 사정의 불안정성과 결부된 볼 움직임의 불규칙성으로부터 비롯된 빈틈은 상대가 볼에 대해 접근 할수 있도록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된다. 화려한 기술과 개인기 보다는 볼의 소유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좀 더 빠르고 길게 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설령 볼의 소유권을 빼앗기더라도 이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투쟁적인 움직임이 영국축구의 상징적인 가치가 된것이다.
`Kick and rush'와 `대인 방어'
좁게 닫혔던 선수가 재빨리 좁게 닫을 것을 요구하는 이 투쟁적 움직임의 연속은 한쪽으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공간으로부터 볼을 뽑아내고 빈 공간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에게 길게 볼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영국 축구의 미덕이 되었으며 그라운드의 불안정성을 이용한 이 확률적 선택의 공방은 `대인 방어'라는 또 다른 영국축구의 특징을 낳는다.
사람이 아닌 특정지역에 대한 공간 커버를 모토로 하는 지역방어를 택하기에는 영국의 그라운드 사정은 적합하지 않다. 공중볼 경합과 세컨볼에 대한 처리를 중요시 하는 영국축구에 있어서 그라운드 사정과 결부된 볼의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적 움직임은 공격수보다 수비수에게 있어 불리한 요소이기에 공보다는 사람을 잡는 움직임이 중요하며 공이 있는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쏠림 현상은 다른 지역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2선에서 이 열려 있는 지역으로 볼이 뽑아내어 질 경우 전방에 대한 시야가 확보된 열려 있는 2선에서의 패스가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에 대한 헛점이 있는 `넓게 닫는'지역방어에 있어서 그 틈으로 쇄도하는 공격수에게 연결 될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결국 `넓게 닫는' 지역방어는 `좁게 닫는' 영국 축구에 있어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올 시즌 리그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쉐브첸코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세리아에서 많은 재미를 봤던 빠른 순간 스피드로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침투해 들어가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 상의 장점이 사람에 대한 악착 같은 대인마크와 순간적으로 두 세명이 달려붙어 공간활용의 여지를 주지 않는 영국적 스타일의 벽에 막혀 있다는 것이다.
`맨유, 그 잡종스러움'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국가간 축구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영입되기 시작하면서 보수적인 영국 축구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축구 스타일에 대한 구분과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으며 영국식이니 이탈리아식이니 독일식이니 하면서국가별 리그의 특징을 과거처럼 명확히 구별해 내기는 어려워졌다. 축구가 잡종스러워 진것이다.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과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같은 전통적인 리그의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는 이단아들의 탄생은 현대 축구의 `잡종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 있어 이 `잡종스러움' 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팀이 있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이다.
로이킨을 떠나 보낸 이후 앨런 스미스의 포지션 변경 실패와 하그리브스의 영입 실패등으로 인한 투쟁적인 미드필더의 부재는 `좁게 닫는' 영국적 스타일의 수정을 요구하게 되고 이에 대한 퍼거슨의 선택은 볼의 통제와 더불어 `넓게 닫는' 지역방어의 비중을 높인 것이다.
중앙 미드필더인 캐릭과 스콜스는 볼의 통제에 능한 선수들이지 투사형의 선수는 아니며 많은 활동량과 투쟁적인 움직임을 통해 특정 지역의 지배자가 될것을 요구하는 영국 축구에 있어 중앙 미드필더의 부재를 선수들에게 적절한 공간 분배와 역할 분담을 통해 커버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변화가 올 시즌 맨유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특이할 만 하다.
맨유의 중앙 수비수들은 상대의 역습과 오버래핑을 나간 윙백의 뒷공간으로 패스가 들어올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험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읽고 예측적인 움직임을 통해 위험지역에 대한 커버를 확실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이드백은 대인방어를 철저히 하고 측면 미드필더들이 사이드백에 대한 도움수비와 더불어 중앙미드 필더와 사이드백 사이의 공간에 대한 커버를 한다. 또한 중앙 미드필더들은 공간에 대한 커버보다는 상대 중앙공격수를 대인마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볼의 쟁취를 주된 임무로 하는 투쟁적인 성향의 일반적인 EPL의 중앙미드필더들과 달리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들은 볼의 쟁취보다는 상대방의 공격 전개에 있어 선택방향의 폭을 줄여주는데 그 임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공격 흐름을 예측하고 있는 중앙 수비수들 쪽으로 상대의 공격을 유도 하는 지역방어적 요소가 강한 대인마크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공은 맨유의중앙 수비수에게로 연결되어지고 예측적인 움직임으로 전방에 대한 열린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볼컨트롤에 능한 모습을 보이는 맨유의중앙 수비수로부터 나오는 첫번째 패스의 확률은 높아지게 된다.
이 첫번째 패스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발이 빠르고 볼 컨트롤에 능한 공격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맨유의 역습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상대에 의해 `좁게 닫힐'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공격에 있어서도 선수 전원이 볼 컨트롤에 능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좁게 닫는' 스타일이 그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올 시즌 맨유가 리그에서 잘나가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전통적인 영국적 색채의 강화가 아닌 이 `잡종스러움'이 올 시즌 맨유의 상승세를 이끈다는 것이다.
`수원, 불완전한 잡종스러움'
이제 K 리그로 돌아가 보자. 비록 55000명의 관중이 운집한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FC 서울을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이전 경기에서 3연패를 당하는 등 화려한 스쿼드에 비해 불안한 전력을 노출하고 있는 수원에 관한 얘기다. 특정팀의 부진의 원인을 딱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전술적인 문제,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 정신적인 문제 등 그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것은 수원의 전술적인 부분, 특히 수비전술에 관한 것이다.
올 시즌 맨유의 축구가 그러하듯이 수원의 축구 역시 잡종스럽다. 하지만 맨유의 축구가 균형적인 `잡종스러움'이라면수원의 축구는 불균형적이다. 올 시즌 수원의 경기를 보면 눈에 쉽게 띄는 장면이 있는데 하나는 2선에서 상대에게 너무 쉽게 패스를 허용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상대의 공격 숫자가 적음에도 이 2선에서의 패스 한방에 수비라인이 불안한모습을 너무 자주 노출한다는 점이다. 현대 축구에 있어서 상대에게 2선에서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는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구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원 수비진의 개개인의 높은 기량을 생각한다면 이런 수비 라인의 불안을 쉽게 수긍하기는 어렵다.
수원의 수비불안의 1차적인 원인은 2선에서의 압박의 실패, 즉 `좁게 닫는' 것의 실패에 원인이 있다.수원의 공격라인은 공격적이며 적극적이다. 공격 작업시에 상대에게 공을 빼앗기더라도 이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공을 빼앗긴 그 자리에서 상대 수비라인을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투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압박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중앙 미드필더, 사이드 백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에서 효율적인 압박을 펼쳐야 할 수원의 측면 미드필더들은 1선에서 공만을 쫓아 다니는 비효율적인 압박을 펼치는 일이 많으며 이는 사이드 백들의 적절하지 못한 위치선정과 더불어 2선에서의 압박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원이 김남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경기력에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런 부분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2선에서의 이런 비효율적인 압박의 전술적 실패를 뛰어난 홀딩 능력을 가진 김남일의 개인 역량으로 어느 정도 커버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다른 선수가 김남일을 대체하기에는 `좁게 닫는' 축구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김남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수원의 문제는 2선에서 `좁게 닫는' 것에 실패 했을 경우 수비라인의 대응방식에 관한 것이다. 현재 수원은 수비에 있어서 특정 지역에 볼이 투입될 경우 그 지역을 분담하는 수비수들이 볼에 접근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형태의 지역방어를 쓰고 있는데 문제는 `좁게 닫는' 것에 실패할 경우 2선과 3선 사이에 열려 있는 공간을 내주는 일이 잦은 수원의 현재의 문제점을 생각한다면 앞서 설명했듯이 이런 `넓게 닫는' 수원 수비라인의 대응방식은 그리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경기 중에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를 간파한 상대의 긴 방향전환 패스에 의해 비어있는 3선의 반대쪽 측면에 많은 공간을 내어 준다는 점은 수원의수비전술 상의 난맥을 잘 보여준다.
2선의 수비가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에서의 `넓게 닫는' 지역방어는 굉장히 효율적인 전술이지만 2선과 3선 사이에 열려 있는 공간을 상대에게 내어 줄 경우 이런 식의 수비 대응은 적절하지 못하며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파고드는 상대의 스피드가 뛰어난 적은 공격 숫자에도 수비라인이 흔들리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두 명의 중앙 수비수가 나란히 서서 위험지역만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수원을 상대하는 팀들의 공격 가담 숫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 명의 수비수는 적극성을 띨 필요가 있다. 한 명의 수비수가 상대 공격수를 적극적으로 마크하면서 앞에서 끊어 주는 역할을 하고 나머지 한 선수는 뒤의 공간을 커버하는 모습이 필요함에도 너무 정적인 움직임으로 2선과 3선 사이에 공간을 내어 주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 하나의 수원의 수비문제는 사이드 백의 위치 선정에 관한 것이다. 수원의 사이드 백들은 수비에 있어 그 컨셉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과감히 전진해서 미드필드에서의 숫자싸움에 가담함과 동시에 2선에서 볼을 미리 끊어 낼 것인지 이게 아니라면 가장 기본적인 수비 방법인 골문과 상대 선수를 연결하는 대각선상에 자리를 잡고 상대의 공격을 지연시키면서 동료와의 협력수비를 통해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갈 것인지를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올 시즌 수원의 경기를 살펴보면 사이드 백의 적절하지 못한 위치선정과 수비방법에 있어서의 판단 미스로 인해 측면에서 위기를 맞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상대방의 패스를 미리 끊어 내는게 가장 좋은 수비 방법이겠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위치를 확보하고 동료의 협력수비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을 빼앗기 위한 플레이를 펼치다 실패할 경우 최종 수비라인이라는 사이드 백의 특성상 상대에게 그 뒷공간을 쉽게 내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수원의 측면 미드필더들의 수비 가담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과 더불어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수원의 사이드 백, 특히 오른쪽에서의 조원희는 공을 소유한 상대로 부터 공을 빼앗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며 이것이 실패할 경우 오른쪽 측면에서 위기를 맞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송종국이 대전과의 개막전 이후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많이 해소되기는 했지만 컨셉을 확실히 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런 문제점들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수원의 `좁게 닫는'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수원의 사이드 백들은 과감히 전진해서 미드필드에서의 숫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필요가 있다. FC 서울과의 리그 경기에서의 첫번째 골 장면이 상대진영에서의 송종국의 가로채기로부터 나왔다는 점과 부산과의 리그 경기에서 미드필드 진영 가까이 올라와 상대의 왼쪽 측면 공격을 미리 차단하면서 조원희가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점은 수원의 사이드 백에 있어 필요한 컨셉이 무엇이지 보여준다.
수원의 축구는 전 포지션에서의 개개인의 기량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다. 수원의 베스트 11을 상대로 대등한 숫자싸움을 통해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구단은 K 리그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원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수비진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수원의 축구는 수비적이지만 공격적이며 공격적이지만 수비적이다. 공격라인의 수비가담이 적은것도 그 만큼 수비라인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며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격라인이 공격에 치중 할 수 있을 때 수원의 축구가 위력을 발휘 할 수 있다.
수원이 3연패를 당하는 등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였던 것은 주전 수비수들의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인한 공백이 가장 크다. 하지만 리그라는 긴 호흡의 일정 속에서 주전 선수들의 공백은 언제든지 발생 할 수 있으며 문제는 이런 공백을 어떻게 최소화 할 수 있느냐이다. 백업 요원들이 급속하게 기량이 성장해서 공백을 메꿀 수 있다면야 기존의 틀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겠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현재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2선과 3선 사이의 컨셉을 균형적으로 변화 시킬 필요가 있다.
화려한 스타 선수들과 최고 인기 구단 중에 하나인 수원의 부진은 K 리그 흥행에 있어 그리 바람직 하지 못하다.
과연 수원이 변화된 모습으로 연말에 받게 될 성적표에 웃을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