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우울한 일이 있어서 홧김에 새벽 세 시에 게시판에 올렸다가 다시 읽어보고는 쪽팔려서
삭제했었는데 다시 올리라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_-; 다시 올린다
요즘 진지한 멜로소설을 연재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거 같다
머리도 식힐 겸 겸사겸사 망가지는 글 하나 올린다
[14년의 러브스토리]는 내일이나 모레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다
<1>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반편성 고사라는 걸 본다. 성적에 들어가는 건 아니고
단순히 반을 편성하기 위한 시험이라는 말을 한다. 당시 순진했던 나는 성적에 반
영되지 않는 시험이라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평생 꿈 꿔왔었던 소원풀이를 했는데
일부러 빵점을 맞기 위해 틀린 답안을 작성했던 것이다. 물론, 빵점을 받진 않았던
거 같은데 나의 이런 행동은 본의 아니게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되고야
말았으니... 개교 이래 최악의 점수로 입학했음은 물론이요 학교에서는 내가 다니
던 중학교로 문의전화를 하고 선생님들 자체 회의까지 했었다고 한다(나중에 이 얘
기를 선생님께 듣고 얼마나 쪽팔렸던지-_-...)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편성고사라는 건 아이들의 실력을 사전에 알아보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난 이것 때문에 입학하기 전부터 담임한테 찍혔었고(담임이
전교 일등과 내 이름을 외우고 있더라-_-;) 문학동아리에 우수한 실기성적으로 통
과되어 놓고도 문예반 담당 선생님이 결사반대하시는 바람에-_-; 개교 이래 최초로
동아리에서도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2>
고 1 때 우리집과 학교는 불과 십 분 거리였다. 원래, 집 가까운 놈들이 맨날 지각
한다고 나 역시 일학년 내내 제대로 학교 간 것이 두 번 정도밖에 없었을만큼 지각
을 밥 먹듯 했었다. 나의 지각은 학교 내에서도 상당히 유명했었는데, 그것은 당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선도부의 엄청난 기합 앞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지각을
지켜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난 거의 매일 아침마다 운동부 못지 않는 엄청난 훈련
을 했었다. 통상 팔굽혀 펴기 오십 회 정도의 체벌과 좀 상습범이다 싶으면 운동장
열 바뀌 정도가 기본이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쪼그려 앉아뛰기 백 회, 팔벌려 높
이 뛰기 이백 회, 팔굽혀 펴기 백 회에다가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열 바뀌를 돌았었
다. 어떨 때는 1교시가 시작될 때까지 기합만 받다가 1교시 담당 선생님께서 '야!
너 수업 들어오지 말고 계속 운동장 돌아!' 하셔서 2교시까지 기합 받은적도 있었
다-_-;
결국 난 1학년 생활기록부에 준법성을 '다' 맞았다 (내가 나중에 다 뒤져 봤는데
이거 '다' 맞은 놈은 나밖에 없더라)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선도부들 사이에서 요주의 1호 인물이었
던 내가 차기 선도부장으로 낙점을 받았다는 것인데-_-...
1학년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당연히 지각을 하였던 나는 한차례 얼차려를 받은
뒤에 선도부장(1학년들 사이에서 백색공포로 불렸다)이 따로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그 소신이 맘에 들었다. 그 소신을 2학년 때 마음껏 날개 펴라"
나도 싸이코였지만 백색공포 그 녀석도 싸이코였었던 거 같다. 여하튼, 난 그의 기
대에 부응해서 훗날 1학년들 사이에 '학생깡패'라는 (당시 유명했던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나온 신마적의 별명이었음) 닉네임으로 꽤나 악명을 떨치게 되었었다
<3>
당시엔 도학력고사라는 걸 봤다(지금도 보나?) 도학력고사는 타 고등학교와 비교가
되는 아주 중요한 시험으로써 도학력고사가 가까워오면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들들
볶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조건 잘 봐야 돼! 못 보는 새끼는 차라리 학교를 퇴학해!"
당시, 국영수 세 과목을 봤었는데 수학을 유난히 못했던 나는 당일 컨디션이 안 좋
았는지 평소 실력이었는지 여하튼 백점 만점에 8점을 맞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되었다-_-...
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졸라 쪽팔리는데...
"모두 시험지 꺼내놓고 자기가 맞은 점수를 위에다가 써 놔!"
1학년 학년주임 선생님이 우리반에 들어와서 점수확인을 하셨다. 당연히 8점 맞은
줄 알고 있었던 나는 너무 쪽팔려서 차마 점수를 적지 못하고 그냥 멀뚱히 앉아 있
었는데...
점수를 전부 확인한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 하시는 말씀이
"이 반에 8점짜리가 분명히 있었는데..."
하시면서 교무실로 점수확인하러 내려가시는 거였다. 난 잽싸게 선생님 뒤를 쫓아
가서 그 8점이 나였다고 자수했고-_-;
"이놈시키! 팔점이 뭐야!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십 점 밑으로 맞은 시키는 경기도
통틀어 다섯 명 나왔는데 그게 우리 학교에서 나왔어! 번호 하나만 찍어도 삼십
점은 넘겠다 이놈시키!"
하여튼, 가뜩하나 전교 꼴등으로 입학한 주제에 그거 팔 점까지 맞아서 난 선생님
들 사이에서 완전 꼴통으로 찍히게 되었다
<4>
문제는 그런 꼴통인 내가 2학년 올라가면서 덜컥 반장이 되어 버렸다는 것인데-_-...
당시, 통례적으로 반에서 공부 잘 하는 애들이 반장을 하였었는데 우리반은 담임도
약간 꼴통이라서-_- 인기투표 비슷하게 반장을 뽑았고 난 얼렁뚱땅 반장이 되어 버
려서 학교적으로 약간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으아 졸라 비참했다 이원영 ㅠ.ㅠ)
당시 우리 학교는 수원에서 딱 두 개밖에 없었던 남녀공학 중 하나였다(내가 고등
학교를 다니던 80년대말에는 남녀공학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남녀공학
이었지 학교의 반을 갈라서 남녀가 절대로 만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
었다. 우리 학교에서 남녀를 의식하게 만들 때라곤 오직 공부할 때 뿐이었는데, 전
교 삼십 등 까지 학교 신문에 명단이 올라갔고, 더불어 학년에서 가장 점수가 많이
올라간 사람도 명단에 올라갔었다
당시, 각 학급의 반장들은 전교 삼십등의 명단에 다 들어가 있던 애들이었고, 유독
나만 전교 오십 등(물론 밑에서-_-;)에서 놀았었기에, 난 고2 올라간 첫번째 시험
에서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존나게 공부를 하였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2학
년 올라간 첫 시험에서 전교 삼십등 안에 들었던 나는 학교 신문 명단에 이름을 올
리면서 아는 여자애들에게 이렇게 떠벌렸는데...
여자애들 : 어머 이원영! 너 이번에 삼십등 안에 들었더라
나 : 어 그거~~~ 나 맨날 전교 31등 32등 하다가 이번에 간신히 들어간 거야
이렇게 뻥 치고 다녔는데...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터졌으니...
여자애 1 : 야 이번에 아무개 있잖아. 걔 전교 이백등이나 성적 올라갔대
여자애 2 : 어머! 걔 맨날 꼴찌하던애가 웬일이냐! 컨닝했나 봐!
여자애 3 : 나쁜애네! 그 바람에 노력상 타게 생겼네
그렇다... 전교에서 가장 성적이 올라간 애한테 주는 그 노력상...
내가 전교 삼십등 안에 들던 그 때에 하필 전교 꼴등하던 생 양아치녀석이 컨닝한
번 잘 해서 전교등수를 이백등이나 올린 게 '전교에 쫘악!!!' 소문이 퍼졌었는데
그 노력상을 내가 타고야 말았으니... ㅠ.ㅠ
사실, 노력상으로 내정된 것을 안 다음 학년주임 선생님 찾아가서 졸라게 따졌다
"선생님! 전 노력상 싫습니다! 전 받고 싶지 않다구여어어우우아아악!!! -0-"
ps
우등상보다도 어렵다는 그놈의 노력상을 난 두 번이나 탔는데-_-; 그게 2학년 반장
될 때랑 3학년 반장 될 때였다고 기억된다...
<5>
고 3 때의 에피소드는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그걸로 대신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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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5월 초...
수원에 있는 창현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와 영수(가명 대역.18세)는 학교를 다니는
것에 회의가 생겨 가출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10년 동안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
육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학교에게 더이상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는 생각을 했
기 때문이다. 차라리 독학으로 공부를 해서 전근대적인 교육체제에서 교육받은 다
른 아이들보다 더 좋은 대학에 보란듯이 가고 싶었다. 진보주의 사고가 꼭 시대의
이단아는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었다...
물론 뻥이고-_-...
솔직히 말하면... 고 3이 되서 공부 쫌 해 보니까 대학에 갈 수 있을 가능성이 보
이는 거 같은데, 그 동안 너무 놀아서 바닥을 치고 있는 내신이 불리한 영향을 줄
까봐 검정고시를 보려고 했었다-_-;;;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현 교육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모
든 사람들에게 피력했고, 결국 친구들의 대대적인 환송회를 받으면서 '가출의 대정
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송별회를 해 주기로 했던 5월 초의 일요일 저녁...
성수(대역 가명.18세)가 회장으로 있던 동산교회 지하실에서 나와 영수는 간단한
청문회(?) 겸 환송회를 하게 되었다. 30여 명의 학교 친구, 후배들은 다과까지 준
비하는 치밀함으로 우리를 감동시켜 주었다. 특히, 우리집에 평소 자주 놀러오던
기훈이는 내가 가출한 후 우리 엄마가 받으실 충격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감동적
인 말을 해서 내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터지게 만들었다. 난 울먹이며 녀석에게 고
맙다고 말했고 녀석은 '자아식. 네 어머니만은 아니시자나'라는 든든한 말을 해 주
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장면들이지만 당시엔 모두 진지했었다. 가
는 우리들은 '역사의 한 획을 그을 듯한' 사명자의 의식을 가졌었고, 보내는 그들
은 순교자를 순교지로 보내는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보냈었다. 환송회를 마칠때 쯤
에는 다들 손 붙잡고 '통성기도'로 우리의 앞날을 '중보기도'해 주었고 찬송가 524
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르며 감격적인 환송회를 마치게 되었다-_-;;;
물론, 환송회에 온 모두가 우리를 영웅 취급하며 감격에 취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고 있었던 병훈이는 송별회가 끝나고 날 뒤쪽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갔었다. 그는 벽 쪽으로 나를 밀어붙이고는 거칠게 말했다.
"꼭 가야겠냐?"
"......"
난 침묵으로 모든 것을 말했다. 사실... 분위기가 삭막해서 아무 말 못 했다-_-;;;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직도 모르겠냐?"
"......" <-- 여전히 말 없음...
"정말 갈려면... 나한테 맞고 가라..."
"......"
사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대꾸했어야 했다.
"그래... 때릴 만큼 때려라..."
그러나, 그건 영화고 이건 현실이다. 난 이 녀석의 '파워'를 잘 알고 있었기에 도
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같이 축구부를 하며 친해지게 된 병훈은
졸업하며 관둔 나하고는 달리 축구선수 특기자로 중학교에 갔었고, 운동하는 녀석
답게 싸움도 무지 잘 하였었다. 이런 녀석에게 폼 잡는답시고 '그래... 때려라...'
라고 말 할 수는 없는 법... 난 그저 침만 꼴딱꼴딱 삼켜야 했다.
그러나... 녀석은 나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 들이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사랑하는 부모님 몫과 너를 좋아하는 내 몫, 그리고 우리 친구들의 몫, 또,
널 믿고 지키시는 목사님의 몫 등등... 중얼중얼..."
도대체... 몇 대를 때리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나열하는 건지 녀석의 뒤에 말
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퍼억!!! 퍼억!!!"
지금 생각해도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많이 맞아 본 날인 듯 하다. 분위기 자체가
아무 말 못 하고 맞기만 해야 하는 거라서 난 그가 소리치며 날리는 주먹을 고스란
히 맞아야 했다.
"이건 네 아버지 몫!!"
"퍼퍼퍽!!"
"이건 네 어머니 몫!!"
"퍼퍼퍽!!"
"이건 네 동생 몫!!"
"퍼퍼퍽!!"
맞으면서 생각했다. 녀석이 우리 가족 숫자대로 때렸는데 친구 몫으로 때릴 때도
친구 이름 한명한명 불러가며 때리면 어쩌나 하는 그런-_-;;;
한 십분을 맞았을까... 녀석이 주먹으로 때리다가 갑자기 발차기를 하기 시작했다.
"퍼퍼퍼어어억!!!"
녀석이 누군가...'여자 허벅지만한 종아리에 허리 두께만한 허벅지'를 가진 축구부
출신 아닌가. 이 넘이 발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당히 어이없는 상황인거다.
그런데... 더 어이 없었던 것은 그렇게 두들겨 맞는데도 '계속 맞을 수 있는 맷집'
을 갖고 있던 나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맞았는데도 더 맞을 수 있는 맷집을
가졌는지-_-;;;
하지만 계속 맞을 순 없었던 난 녀석의 발길질에 '우어억!!'이라는 비명소리와 함
께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리얼하게 쓰러진답시고 바닥에 '쿵!'소리가 나도록 쓰러
져 버렸다. 병훈이는 쓰러져 있는 내게 헉헉대며 말했다.
"헉헉... 아직 후배들 몫이 남았는데..."
가출소동이 있었긴 했지만 결국 우리 둘은 학교로 다시 돌아왔고, 학교를 발칵 뒤
집어 놓은 덕분에 더 이상 '주입식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의 진보적 성향에 다른 학생들이 동요될까봐 염려하신 선
생님께서 우리가 학교에 나오던 안 나오던 상관 안 하셨기에 나머지 고 3 기간에
학교는 가끔 놀러가고 매일 집에서 비됴 빌려보고 장기 두고 화투 치고, 인근 여자
중학교에 가서 농구하고 야구 하는 등 전형적인 백수의 생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방황은 상당히 오래 진행되었다.
방황하는 기간에 나는 처음 카바레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뒤로 각종 배달업에 종
사하다가 선배 형과 '카드 회사'를 차려 창업멤버로 '셀러리맨'생활을 하였고, 그
것이 망하는 바람에 다시 언더그라운드 연주자로 떠돌다 결국 군대에 갔고, 영수는
호프집에서 D.J로 일을 하다가 한 여자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 것까지 소식이 전해
지고 그 뒤로 연락이 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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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 받아서 계속 글 쓰고 싶지만 너무 이야기가 길어져서 다음에 쓰도록 해야겠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 되시면 코멘트를 날리시라
나 한놈 망가져서 독자들이 즐겁다면야 기꺼이 망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 ^^
출처 : www.210L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