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을 비방(나쁘게 말함) 하는 것이 아님을 알립니다. 관리자는 이 글을 지우려거든 게시물 제목에서 개독교라는 단어로 검색해서 그 글들을 먼저 지우고 이글을 지우기 바랍니다. 이 글은 가톨릭신자들을 위해 쓰여졌고 가톨릭신자들에게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습니다. 이글의 메세지는 가톨릭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주의 만찬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효력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글입니다. 적어도 관리자님이 이것을 꼭 지워야 되겠다고 생각드신다면 아래 글의 1페이지정도까지만이라도 읽어보시고 이글이 어떤글인지 생각해본다음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피
by 제임스 G. 멕카티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에 대한 문제점을 잘 지적하며, 바른 길을 알려 준 책이다." - 역자서문에서 -
"가톨릭 교회는 1500년대에 있었던 트리엔트 회의에서 종교개혁을 한 신교와 가톨릭 교회 사이의 다른 점을 분명히 기록했다." - Dr. 존 맥아더 Jr. 목사(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갤리포니아 주 선 밸리) -
오늘의 가톨릭 교회 - 변화되었는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대한 반응
최근에 출간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놀라운 성공은 현대 가톨릭 교회를 이해하려는 데 대해 가톨릭 신자들이나 기독교 신자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 최근 교단 사이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가톨릭 가르침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새로운 협력의 정신 속에서, 가톨릭과 기독교가 그대로 갈라져 있어야 할 이유는 어떤 것인가?
가톨릭 교회에 대해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조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공한다:
● 400년 만에 처음으로 출간된 세계적인 새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성경을 나란히 비교했다.
● 현대 가톨릭 교회가 은총과 선행 그리고 천국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요약했다.
● 가톨릭 교회의 구원 계획이 성경적 진리와 현재까지 상반되고 있음을 24가지로 나타냈다.
●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 체계가 신약 교회의 권위 체계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균형 있게 검토했다.
● 미사와 다른 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과 어떻게 모순되는지를 설명했다.
로마 가톨릭이 가르치는 복음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하고, 의미심장한 정보를 말하는 책.
전직 가톨릭 신부였거나 수녀였던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 책은 진리를 찾는 목회자,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절대적인 책이다! 성경의 진리와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명확하게 비교한 귀중한 책이다. - 윌마 설리반(자비의 성모 동정회, 전직 수녀)
이 책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록되었고, 성경적이며 세심하면서도 공평하다. 또 역사적으로 정확하다. 이 책은 가톨릭 신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바돌로매 F. 브루워(카르멜 남자 수도회, 전직 신부)
이 책을 20년 전에 읽었더라면 나는 삶의 진리의 근원인 성경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삶의 만족과 생명을 주지 못했던 교리와 관례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것이다. - 밥 부시(예수회, 전직 신부)
이 책은 가톨릭 교회를 공정하고 아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현재의 가톨릭 문서들을 다루고 있다. 왜곡도 없고, 냉소도 없이 조심스럽게 연구한 글을 읽는 것은 마음을 아주 신선하게 해준다. 이 책은 가톨릭 교회와 성경적인 기독교를 비교하는 데 관심을 갖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또 비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 마리아 크라우스(프란체스코 수녀회, 전직 수녀)
1983년 가톨릭 신부였던 나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책을 기독교 서점에서 찾았다. 가톨릭 교회에 대해 잘 알고, 또한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헛수고였다. 그 이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내가 기대하던 책이 이제 여러분의 손에 있다. 제임스 맥카티는 이 책에서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연민을 갖고 신중하고 명쾌하게 오랫동안 고대하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로마 가톨릭이 가르치는 복음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거 문헌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신은 이 책 안에서 가톨릭 교회의 핵심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 리처드 베넷(도미니코 수도회, 전직 신부)
이 책에 제시된 것과 같이 신중하게 연구되고 체계적으로 기록된 로마 가톨릭 교리들은, 내가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준비했고 그 이후 신부로서 20년 동안 배웠던 것과 정확히 일치할 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과 똑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교리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한 이 책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 조셉 트렘블리(동정 마리아회, 전직 신부)
이 책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파노라마와 그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수도원에서 수녀로 9년 간을 섬긴 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이 책의 내용에 특별히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책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간구한다. - 로시오 페스타나 세고비아(프란체스코 수녀회, 전직 수녀)
|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참고한 것에 대해 |
이 책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로부터 2,865개의 항목을 참고했다. 예를 들면, [26]이란 관련된 글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항에 있다는 말이다. 인용구로 기록한 글 중 각으로 된 괄호로 참고문헌이 표시된 것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직접 인용한 글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시작한다"[26].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직접 구하기 바란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때마다 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 서언 |
초점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우리 가족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에메랄드 섬 출신이었다. 두 분은 각각 종교적으로 경건한 가정의 팔 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우리 삼촌 중 세 분이 신부이고, 숙모 중 두 분이 수녀다.
부모님은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각자 미국으로 이민해 왔다. 두 분은 미국에서 만나 결혼했고, 여덟 명의 자녀를 키웠다. 자녀들은 세례를 받았고, 모두 견진 성사를 받았다.
일요일마다 우리 가족은 성당에 있는 좌석 한 줄을 완전히 차지했다. 주중에 우리는 지역 교구 학교에 다녔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가톨릭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모두가 가톨릭 의식에 따라 결혼식을 올렸으며, 대개 신부이신 삼촌 중에 한 분이 혼배 미사를 담당했다. 나의 결혼식은 네 명의 신부가 담당했다. 세 분의 삼촌과 우리 교구 신부 한 분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가족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있다. 또한 나를 진실로 정성껏 돌보았던 선생님들, 특히 성스런 이름을 지닌 수녀들, 이분들로부터 받은 교육에 감사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하나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영적인 중요성도 배웠다. 그러나 그들의 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다. 성경적인 구원의 길도 알지 못했다.
나의 전환점은 내 친구가 가정에서 하는 성경 공부에 초대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공부는 어느 작은 기독교 교회에서 주최한 것이었다. 거기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이루신 사역을 배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구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성경 공부를 한 후에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이것은 내가 내린 결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신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을 때, 나는 떠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빚을 졌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 나는 나의 가톨릭 가족들, 가톨릭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가톨릭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이다. 이 글을 쓴 동기는 바울 사도가 그의 친족들에게 가졌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 로마서 10:1, 2
가톨릭 독자들에게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이 책에는 가톨릭 교회에 관해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정보를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매주 드리는 미사에서 신부와 함께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811]. 가톨릭 신자로서 당신은 가톨릭 교회만이 하나님이 주신 이 네 가지 표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배웠을 것이다[811-870]. '하나'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신앙을 갖고,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에 순복하고, 똑같은 전례와 성례 의식에 참여하는 하나로 된 교회라는 의미다[813-822]. '거룩하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부름 받음과 목표와 성례 의식과 희생 제사와 열매가 거룩하다는 말이다[823-829]. '보편(적)'이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시간적으로는 그리스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공간적으로는 온 지구에 편만해 있다는 표현으로 보편적이라고 한다[830-856]. 마지막으로 '사도로부터 이어오는'이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가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졌고, 사도들이 가르쳤던 것을 가르치고, 사도들의 계승자들로서 주교들이 있고,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교황이 있기 때문에 사도적(apostolic) 교회라는 의미다[857-865]. 가톨릭 교회만이 이 네 가지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세운 진정한 교회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것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이 믿는 것같이 당신도 이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사실인가? 당신은 정말로 진지하게 가톨릭 교회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깊이 파고들어 연구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영원한 영혼을 가톨릭 교회에 맡기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확실히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 가톨릭 신앙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인가?
* 가톨릭 교회는 실제로 그리스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가?
* 가톨릭 교회가 베드로와 사도들의 가르침, 다스림, 성결의 권위에 대해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는가?
* 가톨릭 교회의 성사 의식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할 수 있는가?
* 가톨릭 교회의 구원의 길이 하늘나라로 인도하는가?
이 책은 이런 중요한 문제들, 즉 구원, 예배, 헌신, 권위 등의 문제에 관해 문서화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근거로 답변한 책이다. 이 책은 이런 가르침을 분석하고, 가톨릭 교회가 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아닌지에 대한 이유를 성경으로부터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당신이 이 책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주장과 가르침이 무엇인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또한 당신 자신이 당신 교회의 가르침을 바로 알아, 당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독자들에게
제2바티칸 회의 이래,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실행하는 신조와 관례의 폭이 아주 넓어져 가는 데 대해 점점 더 근심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로마에서 있었던 주교들의 교회 특별 회의는 단행본으로 된 교리 문답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본래 「가톨릭 보편 교리서」(Universal Catechism)라고 불렸고,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10]. 목표는 가톨릭 교회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요약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를 시작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표준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11]. 이 교리서는 추기경 요제프 라칭거(Ratzinger: 이 책의 출판을 준비하던 2005년에 그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었다-역자 주)를 필두로 하는 위원회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1992년에 이를 승인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책의 영어 번역본을 1994년에 출판했고, 이 책의 이름을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라 명명했다. (한국어 번역본: 라틴어 표준판에 근거한 한국어 번역본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2003년 3월에 발행되었다. 본 책에서 교리서의 인용구들은 이 번역본으로부터 직접 옮겨 적었다-역자 주.)
이제 현대사에 있어서 최초로 가톨릭 신자든지 가톨릭 신자가 아니든지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출간한, 이 단행본으로 된 교리서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교리서의 출판은 가톨릭을 이해하고, 가톨릭 신앙을 성경에 따른 기독교 신앙과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당신과 같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그리스도인이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을 돕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나는 이 책에서 가톨릭 신조와 관례를 체계적으로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 또한 내가 믿는 성경에 근거한 가르침을 당신과 같은 독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임을 강조하며 이 글을 썼다. 이 글의 자료들은 새로 나온 교리서와 이 교리서가 인용한 문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췌한 것이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 교리서에 많은 참고 문헌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당신이 로마 가톨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과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인 "교차점"에서 당신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읽게 될 것이다.
덧붙여서,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잠 14:12)라고 한 말씀은 여러 방면에서 가톨릭 교회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당신이 이 책을 통해서 우리 각자에게 가톨릭 믿음과 비슷한 믿음이 조금씩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그러한 당신의 비성경적인 사고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갖게 하는 근거에 대해서 좀더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거저 제공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감사가 더욱 커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전에 가톨릭 신자였다면, 당신이 교육받은 것에 대한 교리적인 뿌리를 성경에 비추어 연구하는 것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문헌의 출처
이 책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조사한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성경이다. 우리 앞에 있는 논제는 "누가 옳은가? 가톨릭인가, 아니면 프로테스탄트인가?"가 아니라, "가톨릭이 성경의 잣대로 볼 때 옳은가, 그른가?"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 제1부 : 구원
* 제2부 : 미사
* 제3부 : 마리아
* 제4부 : 권위
각 장의 서론은 가톨릭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당신이 느낄 수 있도록 기록했다. 이것들을 통해 당신은 여러 성례 의식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용히 관망하게 될 것이다. 이어서 교리 부분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이에 대한 어떤 비평이나 분석 없이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문헌 그 자체를 기록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가톨릭의 가르침 중 일부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근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가톨릭 교리들은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이것들에 대해서는 각 장의 후반부에 성경적인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 여기서는 성경을 왜곡했거나 성경과 상반된 가톨릭 교리의 면모를 살피고 성경적인 진리와 비교할 것이다. 네 부분 모두 마지막 부분에 이런 오류들을 요약해서 실었다.
가톨릭 신앙에 대한 신자들 각자의 이해와 표현은 다양하지만, 공식적인 가톨릭 신앙은 단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172-175]. 이미 잘 알려진 것같이 이것은 '전체적' 또는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가 고수하고 있는 신조와 관례이다[830]. 이것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의 지도 아래 가톨릭 주교들에 의해서 설명된 성경과 전통 안에 있는 신앙이다[76, 85-87, 182, 888-892, 2039].
그러므로 이 책의 초점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교회 문헌에 근거하고 있으며, 교황과 주교들이 가르치는 주요하고 전통적인 가톨릭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제2바티칸 문서, 현재의 예배 전례와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있는 신앙의 현대적 표현에 강조와 중점을 두고 있다. 주된 점과 인용구를 삽입하여 당신 자신이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것은 새로운 교리서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권위 있는 문서들로부터 직접 인용한 것들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The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이것은 4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출판된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것을 "모든 가톨릭 교리를 망라하는 교리서(compendium of all Catholic doctrine)"라며, 교훈적인 자료를 준비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문헌의 정수로 묘사하고 있다.(각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Pope Approves Universal Catechism," in L' Osservatore Romano, July 1, 1992, p. 1.) 교황은 "이 교리서야말로 오늘날 교회가 믿고, 찬미하고, 생활하고, 기도한 것을 종합한 것으로, 가톨릭 신앙과 도덕에 대해 근본적이고 가장 필수적인 내용을 한 번 더 보여주는 것이다"(각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Letter to Priests for Holy Thursday 1993, published in L' Osservatore Romano, March 31, 1993, p. 1.)라고 말하고 있다.
전 교회 회의의 교령(敎令)(The Decrees of the Ecumenical Councils)
가톨릭 교회는 21개의 회의를 인정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 회의들의 법령들을 가톨릭 신앙에 대한 권위적인 정의로 간주하고 있다[884, 891]. 가톨릭 신학에서 이 법령들의 지위는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교리서에서는 이 회의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다. 인용된 회의의 대부분은 마지막 세 번의 회의들이다. 이 회의들은 트리엔트 회의(1545-1563), 제1바티칸 회의(1869-1870) 그리고 제2바티칸 회의(1962-1965)다.(각주 - 이 책에서 참고한 제2바티칸 회의(1962-1965년)의 문헌 중 몇몇은 조정 후의 문헌이다. 이런 문헌들은 이 회의에서 이미 공인했지만 회의가 끝날 때까지는 가톨릭 교회 성직 체계에 의해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은 개선점들이 있음을 반영한다.)
교황 문헌(Papal Documents)
교황들은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공식 문서를 출간했다. 그 대부분이 교리와 관례를 명시한 것이고, 오랫동안 보유한 믿음을 다시 성명으로 낸 것이며, 가톨릭 교회 사목에 필요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다. 때때로 교황은 논쟁이 되는 문제를 판결했다. 이런 경우 그 문제에 관해서 "……신학자들 사이에 더 이상 의문을 가질 수 없다."(각주 - 교황 비오 12세, Humani Generis, no. 20.) 가톨릭 교회는 교황의 문헌이 권위가 있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교황이 공식적으로 가르침을 공표할 때는 그가 지구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말하기 때문이다.(각주 - 다음 문헌을 보라. 교황 비오 12세, Humani Generis, no. 20; 제2바티칸 회의,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o. 25.)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256개의 교황의 문헌을 참고하고 있다.
교회 법전(The Code of Canon law)
교회 법전에는 가톨릭 교회를 통치하는 규칙과 규범이 기록되어 있다. 1983년에 개정된 법전은 1,752개의 법으로 되어 있다. 교황과 주교들의 권위, 가톨릭 신자들의 의무와 권리, 성사의 지침, 판결에 대한 제정, 종교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무례한 행위에 관한 벌칙 등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톨릭 교회 법전을 197번 인용했다.
교회의 예배 전례(The Liturgy of the Church)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신앙의 공중 예배와 관례를 총괄하여 '예배 전례'라고 말한다[1069-1070].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는 신부와 신자들이 함께 모일 때 그들이 행하는 예배 전례를 통해서 보존되고 전해진다[1074-1075]. 그러므로 예배 전례는 가톨릭 교리의 권위있는 근거가 된다[1124-1125, 2663].(각주 - 교황 비오 12세는 "……또한 전례는 영원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교회의 최고의 가르치는 권위 같은 것에 종속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톨릭 교리의 특별한 점을 결정하는 데 증거와 간증을 주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48.) 이 책에서는 로마 의식에 따른 교회 전례가 사용될 것이다.) 새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가톨릭 신앙을 설명하는 데 이 교회의 예배 전례를 114번 인용했다.
로마 교리 문답(The Roman Catechism)
이것은 트리엔트 회의 교리 문답이라고도 한다. 교황 비오 5세는 1566년 가톨릭 신앙의 지침서로 이 교리 문답을 발간할 것을 명령했다[9]. 그 후 이것은 가톨릭 신앙의 가장 권위 있는 교리 문답으로 자리잡아 왔다.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 로마 교리 문답을 27번 인용하면서 로마 교리 문답을 대치하고 있다.
최우등의 신학(Summa Theologia)
도미니코회의 수도사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주후 1225-1274년)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발전된 논리 체계를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이 논리를 이용해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하나의 신학적 체계로 통합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알려진 이 「최우등의 신학」(「신학 대전」이라고도 부름)에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이 담겨 있다. 가톨릭 교회는 아퀴나스의 서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트리엔트 회의에서 주교들은 그들의 길잡이가 되는 세 가지 기록을 자신들 앞에 있는 제단 위에 두었는데, 그것들은 곧 성경과 교황들의 법령,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최우등의 신학」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20세기까지 가톨릭의 사고를 지배해 왔다. 오늘날까지 가톨릭 교회는 신학생들로 하여금 "특히 성 토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각주 - 교회 법전, 252조, 3항.) 교리 신학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 「최우등의 신학」을 18번 인용하고 있다.
다른 교리서와 신학 책
가톨릭 저자들이 기록한 책 중에는 가톨릭 신앙을 정확히 요약하고 잘 설명한 이름 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 여기 사용된 문헌들은 가톨릭 교회 공식 대표자에 의해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오류가 없는 것으로 선언된 것들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위배됨이 없음을 확인한다'는 의미로 니힐 옵스탓(Nibil Obstat)이라는 말이 찍히고, '출판을 허가한다'는 의미의 임프리마투르(Imprimatur)라는 말과 함께 봉인이 찍혀 인쇄된 문헌들이다. (임프리마투르: 아무런 교의적, 도덕적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주교가 그 출판을 허가한다는 표시다. 보통 저서의 앞면에 확인 일자와 확인관의 성명을 니힐 옵스탓과 나란히 인쇄한다 - 「가톨릭 대사전」으로부터 역자 주.)
제7장 그리스도의 피
주일 아침 미사
요셉이 죽은 후 첫 번째 기념일
"신앙의 신비여."(각주 - 본 장의 서문에서는 가톨릭 미사 전례를 축소하여 기록했다. 전체 전례는 다음을 보라: The Vatican II Sunday Missal(Boston: Daughters of St. Paul, 1974), pp. 583-627.) 산체스 신부가 목청을 높여 말했다.
예배 전례에 따라 신부와 신자들이 화답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산체스 신부는 제대 위에 놓인 축성으로 성변화된 제병과 포도주 위에 그의 두 손을 펼친 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고 엄숙하게 주의 죽으심을 받들어 기념했다.
아버지, 주님의 종인 저희들은 주님의 모든 백성들과 함께 당신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의 복되신 수난과, 죽음에서 부활하심과, 하늘로 영화롭게 승천하심을 기억합니다.
그때 신부는 하나님께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다.
주님의 지극히 높으신 전에 우리가 바치는 이 예물, 순수한 산 제물, 거룩한 산 제물, 순전한 산 제물, 거룩한 영생의 빵과 영원한 구원의 잔을 바치나이다.
두 손을 그대로 뻗친 채, 그는 계속했다.
주님께서 주님의 의로운 종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고,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의 희생물과 주님의 대 사제 멜기세덱이 바친 희생물을 받으셨던 것처럼, 이 거룩한 희생과 흠 없는 산 제물을 자비로이 돌아보사 받아 주소서.
그리고 산체스 신부는 두 손을 모으며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겸손히 비나니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의 거룩하신 천사들을 명하사 주님의 제대 위에 놓인 이 봉헌물을 주님의 거룩하신 전에 올리게 하소서. 당신 아들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를 모셔 모든 은혜와 하늘의 축복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그리스도를 바치는 의식이 끝난 뒤, 신부는 연옥에 있는 요셉 로렌트와 다른 영혼들에게 바칠 제물의 소산을 준비했다. 그는 바로 서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주님, 신앙의 표징을 가지고 우리보다 먼저 별세하여 평화로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소서. 특별히 요셉 로렌트를 기억하소서. 그리스도 안에 안식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선하심을 좇아 평안한 안식처를 허락하소서.
이후 회중을 주님의 기도로 인도한 후, 신부는 축성된 큰 조각의 제병을 조심스럽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그 중 가장 작은 것을 성작에 넣으면서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어우러지고 축성되어 이것을 받는 이들을 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주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이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그리고 신부는 큰 소리로 선포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는 분이시니."
이 말을 하면서 신부는 회중 앞에 제병을 높이 들며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고 덧붙였다.
회중들은 신부와 함께 기도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산체스 신부는 말했다.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이 말과 함께 그는 제병의 부스러진 나머지 조각들을 먹었다. 그리고 성작을 들고 기도했다.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고 성작에 있는 축성된 포도주인 성혈을 마셨다.
산체스 신부는 자신이 성찬을 받은 후 이를 회중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했다. 성찬을 받기 바라는 신자들은 조용히 두 줄로 제단 앞에 서기 시작했고, 신부는 그들 앞에 섰다. 그는 각 사람 앞에서 축성된 제병을 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다.
각 사람은 제병의 실체가 그리스도인 것을 믿는 확신으로 "아멘"으로 화답한 뒤 입이나 손으로 성체를 받았다.
성사를 마친 뒤 신부는 다시 제단으로 가서 청결케 하는 의식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제병으로부터 떨어진 부스러기를 모아 성작에 넣었다. 그리고 성작에 물을 붓고, 성작에 붙은 작은 조각들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런 후에 잔에 있는 것을 마신 후, 하얀 린넨 천으로 만들어진 성작 수건으로 깨끗이 닦았다. 모든 순서에서 산체스 신부는 축성된 성체와 포도주를 조금도 흘리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 그리고 나머지 축성된 제병을 교회 성체를 안치하는 성체 감실에 넣고 잠갔다.
"기도합시다."
산체스 신부는 말했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성모 마리아의 기도를 통해 하늘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각주 - 영성체 후 기도, 8월 15일, 성모 승천일.)
이어서 손을 회중을 향해 뻗치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덧붙였다.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회중들은 화답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라고 신부는 말하며 십자 성호를 그었다.
"아-멘."
"미사가 끝났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화답했다.
신부 산체스는 고개를 숙여 제대로 입 맞추고, 옆 문을 통해 성전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회중들은 조용히 줄을 지어 교회당을 떠나기 시작했다.
곧 모든 회중이 나갔고 둘만 남았다. 남편의 영혼을 위해 로사리오 묵주 기도를 올리는 로렌트 부인과 성체감실 안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만이 남은 것이다. 성전에는 빨간 램프가 타오르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불을 밝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현존하는 것을 침묵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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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연속[1323, 1330, 1362-1372]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축성한 후 "그의 몸과 피를 성부 하나님께 드렸다"고 가르친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 그리스도는 그때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하시며 그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먹으라고 주셨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이 말로써 그의 사도들을 "신약의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로 안수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제사장직 계승자들에게 명령하여"(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Decree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 성찬의 제물을 계속해서 드리도록 했다고 한다[1337]. (제사장과 사제: 가톨릭이 사용한 공동 번역은 구약이나 신약에 나오는 '제사장'을 모두 '사제'로 번역했다. 반면, 개역 한글은 모두 제사장으로 번역했다. 즉 '제사장'과 '사제'는 같은 말이다. 현재 가톨릭 교회의 사제인 주교나 신부는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 성체의 희생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다. 여기서는 통일을 기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가톨릭의 인용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제' 대신 '제사장'으로 표기한다. 그러나 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할 때는 앞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익숙한 '신부' 또는 '사제 신부'로 표기하기로 한다-역자 주.)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 그가 이 세상으로부터 성부께 건너가신 기념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교회에서 사제들을 통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유월절을 제정하셨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미사는 "진정하고 바른 희생 제사"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anon 1.) 이것은 단순한 상징적 의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성찬례의 희생 제사"다[1367].(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Instruction on the Worship of the Eucharistic Mystery," no. 9.) 미사에는 실제 살아 있는 희생 제물이 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다. 이것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신성하게 성변화(聖變化)된 떡을 '산 제물' 또는 '희생물(victim)'에 해당하는 라틴말에서 온 '제병(祭餠: host)'이라고 부른다. 제물을 드리는 것 또한 실제적이다. 제사장은 "…… 천주 성부에게 성령 안에서 흠 없는 산 제물을 드린다."(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General Instruction on the Roman Missal," chapter 2, section 55.)
성찬례가 지닌 제사적 성격은 성찬 제정 말씀, 곧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눅 22:19, 20) 하신 말씀에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바로 그 몸과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마 26:28)를 성찬례에서 주신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1365]
희생 제사가 미사의 주된 목적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체 성사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희생 제사다. 이것은 구속의 희생 제사요, 새로운 언약의 희생 제사다."(각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On the Mystery and Worship of the Eucharist, no. 9.)
가톨릭 교회는 십자가에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미사의 희생 제사는 "하나이고 동일한 희생 제사"(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General Instruction on the Roman Missal," no. 2.)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매번의 미사는 그리스도가 드리는 분이시고 그리스도가 바로 그 제물이시기 때문이다[1367, 1407-1410].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드렸다. 미사에서 그리스도는 제사장들의 손을 통해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다[108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는 아직도 앞장서서 제물을 드리시는 분이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는 제사장인 사제 신부를 "또 다른 그리스도"(각주 - 교황 비오 9세, "Ad Catholici Sacerdotii," December 20, 1935.)로 여기기 때문이다[1348, 1566].
사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의 성사의 표적인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로 변하고, 제대 위에 존재하며, 자신을 희생 제사로 드린다. 그리스도는 실제 사제이다. 떡을 성체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를 그의 성혈로 성변화하는 분이 그리스도요, 이 둘을 희생 제물로 하늘의 아버지께 드리는 분도 그리스도다.
- 「평신도를 위한 교리」(각주- Rev. Matthias Premm, Dogmatic Theology for the Laity (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77), p. 354. 364)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가 다시 올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시키기 위해"(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The 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 no. 47.) 미사를 제정했다고 한다[1323, 1382]. 각각의 미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으로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General Instruction on the Roman Missal," no. 2.)한다[1366].
……사랑하는 당신 신부인 교회에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눈에 보이는 제사를 남겨 주고자 하셨다. 그 제사에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적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
여기서 가톨릭 교회는 미사와 십자가 사이의 세 가지 관계를 묘사했다. 미사의 희생 제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이 관계들을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을 재현한다[1330, 1354, 1357]
가톨릭은 최후의 만찬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가 떡과 잔을 '따로 따로' 축성하셨다고 강조한다. 먼저 그리스도는 떡을 변화시키셨고, 그 후에 포도주를 변화시키셨다고 한다.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미사에서 이 순서를 지켜야 한다.(참고 - 마 26:17-29, 막 14:12-25, 눅 22:7-23, 고전 10장-11장. 주님의 만찬(고전 11:20)에서 빵을 취하고 잔을 취한 순서에 대한 성경 말씀 구절들을 차근히 살펴봄이 필요함. 특히, 누가복음 22:17, 19, 20을 살펴볼 것.)
왜냐하면 따로 축성된 성혈은 우리 주님의 수난, 그의 죽음과 그의 고난의 본질을 더 강력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로마 교리 문답」(각주 - John A. McHugh, O. P., and Charles J. Callan, O. P.의 번역, The Roman Catechism: The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82), p. 227.)
똑같은 이유로 떡과 포도주는 미사에서 '따로 두어야만 한다.'
…… 그가 현존하는 성체는 그의 몸과 피가 실제로 구분됨을 상징한다. 이런 식으로 희생 제물 상태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별된 상징물들(떡과 포도주)에 의해 상징적으로 보여지므로 실제 개나리리에서 있었던 그의 죽음을 기념하는 행위가 제단에서 드리는 모든 희생 제사에서 반복되고 있다.
- 「메디에이터 데이: 신의 중보자」(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70.)
결과적으로 떡과 포도주가 신성하게 성변화되는 것과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
왜냐하면 미사의 희생 제사에서 "주님이 떡과 포도주 안에 신자들의 영적 양식인 성체로 현존하기 시작한" 그 때에 우리 주님이 제물이 된 것이다.
- 제2바티칸 회의(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Instruction on the Worship of the Eucharistic Mystery," no. 3b; quoting Paul VI, Mysterium Fidei.)
제물이 됨(Immolation)이란 산 제물을 희생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미사에서 그리스도는 고통도 받지 않고, 피를 흘리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신다고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스도가 하나의 "가장 거룩한 희생물"(각주 - John A. McHugh, O. P., and Charles J. Cllan, O. P.의 번역, The Roman Catechism: The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82), p. 258.)로 떡과 포도주 안에 성체로 현존하게 됨으로써 그가 "피를 흘리지 않는 제물로 되는 것"(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68.)을 경험하신다고 한다[1085, 1353, 1362, 1364, 1367, 1383, 1409, 1545].
가톨릭은 일단 그리스도가 제단 위에 희생 제물의 상태가 되면, 그는 제사장의 손으로 교회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천주 성부께 드린다고 가르친다[1354, 1357].
성찬 거행은 주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집전으로 떡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본체적으로 현존하는 자기 자신을 천주 성부께 봉헌하고…….
- 교회 법전(각주 - 교회 법전, 899조.)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자신을 성부께 다시 봉헌하는 것은 미사에서 제사장인 사제 신부가 다음과 같이 기도할 때 일어난다.
아버지 …… 우리는 영광과 위엄의 천주께 이 거룩하고 완전한 희생 제사인 생명의 빵과 영원한 구원의 잔을 봉헌합니다. 이 제물을 은총으로 보시고 받으소서.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는 당신의 천사가 이 희생 제사를 하늘의 제단으로 가져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가 이 제단으로부터 당신 아들의 성체와 성혈을 받음으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은총과 강복을 충만케 하소서.
- 추도의 기도(각주 - 제1성찬 기도, The Memorial Prayer.)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는 미사를 실체적인 제사로 간주한다[1365].
제단의 존귀한 희생 제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단순히 공허하게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대 사제인 그리스도가 피 없는 제물이 됨으로 그가 십자가에서 했던 것같이 영원한 성부에게 가장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희생 제사를 바치는 진정하고 바른 행위다.
- 「메디에이터 데이: 신의 중보자」(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68.)
신자들이 십자가의 희생 제사와 미사의 희생 제사 사이의 관계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모든 미사에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십자가를 제단에 올려놓거나 제단 가까운 곳에 있게 했다."(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General Instruction on the Roman Missal," no. 270.)
각각의 미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의 기념이다[610-611, 1356-1358, 1362-1372]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각각의 미사는,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 자신이 이 희생 제사를 계속해서 거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 「메디에이터 데이: 신의 중보자」(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79.)
미사는 "특히 그의 거룩한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 그리고 승천을 생각하게 하며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각주 - 제2바티칸 회의, "Instruction on the Manner of Distributing Holy Communion," no. 55.) 이것은 미사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 한 예는 다음과 같은 '기억의 환호성(신앙의 신비여!)'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각주 - 성찬 기도, Memorial Acclamation.) (기념: 일반적으로 어느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행위를 의미하나, 특히 교회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나 어느 성인 또는 구세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을 전례적으로 재현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가톨릭 대사전」으로부터 역자 주.)
각각의 미사는 십자가 희생 제사의 구원의 능력이 적용된다[1366, 1407, 1416, 1566]
가톨릭은 그리스도가 성찬례를 다음과 같이 하도록 제정했다고 가르친다.
…… 교회가 영원한 희생 제사를 갖게 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대속되도록 했고, 우리의 죄로 인해 슬프게 침해당하시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그의 진노를 자비로, 그의 공의로운 중한 징계를 인자함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다.
- 「로마 교리 문답」(각주 - John A. McHugh, O. P., and Charles J. Callan, O. P.의 번역, The Roman Catechism: The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82), p. 255.)
가톨릭 신앙에 의하면, 제사장이 미사를 드릴 때면 언제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혀진다고 한다. 미사는 십자가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희생 제사이거나 화목의 희생 제사다.
미사에서 행해지는 이 신성한 제사에서, 모두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자신을 피의 제물로 드린 바로 그 그리스도가 피 없는 방법으로 드려진다. 따라서 거룩한 공회는 이것의 진정한 화목의 희생 제사인 것을 가르치고, 만약 우리가 진정한 마음과 올바른 믿음을 갖고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가면 이것이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총을 얻음"(히 4:16)을 가져온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 제사로 인해 진노가 진정되고, 그가 회개의 은총을 선물로 주시며, 아무리 거대한 죄라도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
진노를 진정시키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미사의 희생 제사의 효과다. 사람 편에서 얻는 효과는 죄인을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속죄다[1371, 1394, 1416].
영성체로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피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 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준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1393]
미사의 희생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준다[1371, 1414, 1689].
그러므로 이것은 살아 있는 신자들의 죄, 형벌, 대속과 다른 필요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도 사도들의 전통에 따라 아주 올바르게 드려져야 한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
새로운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희생 제사로서 성찬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도 바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적이거나 현세적인 은혜를 얻기 위해서도 바치는 것이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1414]
가톨릭 교회는 미사의 희생 제사를 통해 십자가의 희생 제사의 은총들을 "충만히 받는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고 가르친다.
그래서 교회는 보통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이 희생의 산 제물을 기념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역도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이 피흘림이 없는 제물을 통해 그 피의 산 제물의 가장 풍성한 열매들을 우리에게 흘러나오게 한다.
- 「로마 교리 문답」(각주 - John A. McHugh, O. P., and Charles J. Callan, O. P.의 번역, The Roman Catechism: The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82), p. 259; quoting the Secret Prayer of the Ninth Sunday after Pentecost.)
미사의 희생 제사에 십자가의 능력이 적용된다는 신앙은 성찬 전례에서 나타난다.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교회 제물을 자비로이 보시고, 우리가 당신과 화해하기 위한 화목 제물을 보시옵소서."(각주 - 제3성찬 기도, The Memorial Prayer.)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한다. "주여, 당신과 우리를 화평케 하는 이 희생 제사가 온 세상의 화평과 구원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소서."(각주 - 제3성찬 기도, The Prayer of Intercession for the Church.)
성경적인 문제점
죄를 위해 계속 제사를 드리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성경은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고 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골 1:20) 이루신 것이다. 가톨릭 교리와는 다르게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리스도는 '기념하라'고 하셨지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지 않았다.
*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완전히 다 이루어졌다.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를 제사장(priest)으로 세우셨다. 몇몇만 세우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기념하라고 하셨지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지시하셨다. 여기 '기념(remembrance)'으로 번역된 단어의 뜻은 '생각해 내다(calling to mind)'라는 의미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이룬 그의 구원 사역을 제자들이 생각하고 기억하기를 원하셨다. 제자들은 그들 앞에 있는 그의 몸과 피의 상징인 떡과 잔을 가지고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 11:26)을 해야만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떡을 떼며"(행 2:42) "주의 만찬"(고전 11:20)을 위해 만났던 모임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성경에는 최후의 만찬(그리스도가 배반당하시던 밤에 먹은 유월절 만찬)이나 주의 만찬(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만찬)을 희생 제사로 서술한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학자들은 최후의 만찬과 주의 만찬을 모두 실제 희생 제사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이 이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다음 여섯 가지 성경 구절을 살펴보자.
* 말라기의 예언
말라기는 각처에서 희생 제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말 1:11).
* 예수님의 예언
예수님은 각처에서 희생 제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요 4:21).
* 멜기세덱의 반차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으로서 떡과 포도주를 드렸다(시 110:4).
* 현재 시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현재 시제로 그의 희생 제사에 대해 말씀하셨다(눅 22:19, 20).
* 새 언약의 희생 제사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희생 제물이다(고전 5:7).
* 제단의 희생 제사
바울은 주님의 만찬을 제단의 희생 제사로 말씀하셨다(고전 10:21).
말라기의 예언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말라기 선지자가 어느 날 모든 나라가 희생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톨릭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나의 이름은 해뜨는 데서 해지는 데까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쳐,
그리고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내 이름에 제물을 바치고(sacrifice) 깨끗한 곡식 예물을 바치고 있다.
- 말라기 1:11(가톨릭 영어성경 NAB를 번역함)
(참고: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며 향기롭게 제물을 살라 바치고 깨끗한 곡식 예물을 바치고 있다…….
- 말라기 1:11(가톨릭이 사용하는 우리말 공동 번역으로부터 역자 첨가. 밑줄은 강조)
가톨릭 교회는 성체 성사가 말라기 예언의 성취라고 가르친다[1350, 2643]. 미사는,
…… 제물에 있는 어떤 가치 없는 것이나 악한 것으로 더럽혀질 수 없는 깨끗한 성체 봉헌이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크게 될 주님의 이름에 각처에서 깨끗한 제물로 바쳐질 것으로 주님이 말라기를 통해 예언하셨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 chapter 1.)
말라기 1장 11절에 대한 가톨릭의 번역과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이 구절은 제물을 드리는 데 흔히 사용하는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 가톨릭 성경에서 'sacrifice('제물을 바치다'라는 의미-공동 번역에는 '제물을 살라 바치고'로 되어 있음)'로 번역한 히브리 단어는 전 성경을 통해 말라기 1장 11절에만 한 번 나오는 단어다. 다른 희귀한 단어들과 같이 이 단어의 번역도 의문스럽다. 이 단어의 근본 의미는 '연기 속에서 솟아오르게 하다'로 알려져 있다.(각주 - Harris, Archer, and Waltke, editors, 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Chicago: Moody, 1980), vol. II, pp. 796.) 가톨릭이 아닌 권위 있는 성경 번역자들은 이 단어를 향 또는 분향(incense)으로 이해한다. "각처에서 ……분향하며"(말 1:11).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도 이 말을 '향(incense)'으로 번역했다.
또한 말라기에서 말하는 "깨끗한 ……예물"이 반드시 죄를 위해 드리는 희생 제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물'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 곡식으로 드리는 예물을 말하고 있고, 이것은 죄를 위한 희생 제사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예물을 말한다(레 6:14-23).
마지막으로 말라기가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말 1:11)고 한 시기에 관한 말이다. 이 때는 현재가 아님이 확실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이름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다. 말라기 예언의 전후 문맥은 말라기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오는 장래에 일어날 사건을 말하는 것임이 확실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미사를 "제물에 대해서는 가치 없는 것이나 악한 것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성체 봉헌"(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으로 말한 것은 또 하나의 잘못된 가톨릭 교회의 신앙임을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미사의 희생 제사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즉 사제 신부의 영적 상태와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1128].(각주 - 이 원칙은 모든 성사에 적용된다. 가톨릭 교회는 사제 신부가 의식의 모든 중요한 요소를 다 지키면 성사는 유효하다고 가르친다. 그 자신이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트리엔트 회의, 제7회기, "First Decree On the Sacraments," canon 12).) 바꿔 말하면, 만약 정식으로 안수 받은 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제물을 바친다면, 비록 그 신부가 개인적으로 아주 악한 죄를 짓고 있다 할지라도 그 제사가 거룩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잠 15:8)고 말한다.
예수님의 예언
가톨릭 학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할 때 미사의 희생 제사를 바치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고 주장한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요한복음 4:19-21
가톨릭 학자 마티아 프렘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그리심 산에서 또한 온 지구상에서(말라기가 말한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희생 제사를 드릴 것이다.
- 「평신도 교리 신학」(각주 - Rev. Matthias Premm, Dogmatic Theology for the Laity(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67), p. 355.)
그러나 이 말과는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에서 '희생 제사(sacrifice)'를 드릴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는 '예배(worship)'를 드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4:21). 이 구절 다음에 오는 구절에서 예수님은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다(요 4:23). 예수님은 대속의 희생 제사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멜기세덱의 반차
미사 동안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하나님이 성변화된 떡과 포도주를 호의로 보아주실 것과 "당신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드린 떡과 포도주를"(각주 - 성찬 전례, 제1성찬 기도.) 받으신 것과 같이 받아 주실 것을 간청한다. 가톨릭 교회는 창세기 14장 18절에서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가르친다. 가톨릭 교회는 이 제물이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333, 1350, 1544]. 가톨릭은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시 110:4)으로 불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제물로 드렸다'고 말한 적이 없다. 가톨릭 교회가 인용한 창세기 14장 13-24절은 아브라함과 그의 군사들이 큰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다다랐을 때 멜기세덱이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 창세기 14:18-20a
이 사건의 가장 자연스런 해석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승리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브라함에게 복 주시기를 구하러 나왔다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아브라함의 지친 군사들을 위한 음식이었다. 여기에서 희생 제사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주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시 110:4)으로 불렸을까? 성경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와 멜기세덱이 둘 다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멜기세덱은 결코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은 어떤 사람과 같다. 그는 창세기 14장에서 유대인의 관습적인 소개 절차 없이 등장하고 있다.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가족의 족보나 부모 이름조차 언급된 것이 없다. 이로 인해 그는 마치 항상 살아 있었던 사람처럼 보인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만나고 떠난다. 우리는 그의 죽음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마치 결코 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멜기세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히브리서 7:3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예수님과 멜기세덱의 성경적 연결 고리다. 둘 다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히 7:3) 없는 제사장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시 110:4; 히 5:6; 7:17)으로 불렸다. 예수님이나 멜기세덱이나 떡과 포도주를 제물로 드렸다는 언급은 찾을 수 없다.
현재 시제
가톨릭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이 있던 바로 그날 밤 희생 제사 드리는 것을 제정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주장한다[1365]. 주님은 단순히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 26:26), "이것은 ……나의 피"(마 26:28)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주는"(눅 22:19),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를 덧붙여 말씀하셨다고 한다. 탄퀘리 신부는 이 말이 어떻게 로마 가톨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단어들 자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진정한 희생 제사로 드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똑같은 말들은 "만찬 자체에서 실제 성체 봉헌"을 의미한다. 헬라어에서 현재 시제가 사용되었다. '주어진, 넘겨진, 부어진.' 그리스도의 피는 '성작에' 부어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즉 이 말은 성작에 쏟는 것을 말하지 십자가에서 쏟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교리 신학의 소책자」(각주 - A. Tanquerey, A Manual of Dogmatic Theology(New York: Desclee Company, 1959), vol. II, pp. 267-268.)
바꿔 말하면, 가톨릭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희생 제사에 관해 '현재' 동사로 말했기 때문에 희생 제사가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이 진정한 희생 제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이 바로 최초의 미사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사도 희생 제사라고 주장한다.
이런 해석은 "주는"(눅 22:19)과 "붓는 것이라"(눅 22:20)는 구절이 헬라어의 분사를 번역한 사실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말이다. 현재 시제의 분사는 반드시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사에 관계된 시간은 그 시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의 의미와 관계한다."(각주 - H. E. Dana and Julius R. Mantey, 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Toronto: Macmillan Company, 1955), p. 230.)
내용에서 예수님은 다음날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는 현재분사를 사용하여 '장래'에 일어날 사건을 확실히 생생하게 말씀하시고 있다. 헬라어에서는 현재 시제가 장래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각주 - Dana와 Mantey는 장래를 말하는 현재형 동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형 시제를 사용한 이러한 형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말한다. 이것은 사고 속에 이미 일어난 것같이 앞으로 확실히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건이다. (H. E. Dana and Julius R. Mantey, 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Toronto: Macmillan Comlpany, 1955], p. 185.) 이런 예로 마 26:2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주 예수는 현재 동사를 사용해 그가 앞으로 배반당할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글자 그대로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전후 문맥을 통해 그리스도가 '장래를 말하는'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시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고, 많은 성경 번역자들이 이 구절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마 26:2, 강조 첨가).) 가톨릭의 「새 미국어 성경」(New American Bible)의 번역자들조차도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비록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장래의 사건을 말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떡을 들어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
- 누가복음 22:19-20(가톨릭 성경 NAB- 강조 더함)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죄 용서를 위해 자신의 피를 '성작에 부었다'(각주 - A. Tanquerey, A Manual of Dogmatic Theology(New York: Desclee Company, 1959), vol. 11, p. 268.)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일 뿐이다.
새 언약의 희생 제사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과월절 혹은 파스카) 잔치에 있었다. 모세의 법을 따라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은 양을 죽여서 굽고 먹으면서 이 절기를 지켰다(출 12장).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가 구약의 유월절을 축하하면서 "…… 그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교회에서 사제들을 통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유월절을 제정하셨다……."[1339-1340](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고 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 새로운 유월절 희생 제사가 우리의 구원을 더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1068, 1364, 1405].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신"(고전 5:7)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제단에서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 제2바티칸 회의(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o. 3.)
가톨릭 교회는 또다시 성경의 말씀을 넘어서고 있다. 성경의 어디에도 새 언약의 희생 제사가 최후의 만찬이나 주의 만찬이나 미사라고 한 적이 없다. 새 언약의 유일한 대속의 희생 제사는 십자가뿐이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다 이룬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기록했을 때 과거의 사건으로 일어난 일을 표현하는 형태의 동사를 사용했다.(각주 - In I Corinthians 5:7 the verb "has been sacrificed" is in the indicative mood and the aorist tense.) 그리스도는 희생 '되고 있는 것'(is not being sacrificed: 현재 진행형 동사-역자 주)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희생 '되셨다'(has been sacrificed: 현재완료의 동사-역자 주)고 기록했다.
제단의 희생 제사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 고린도전서 10:21
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내세워 사도 바울이 주의 만찬을 희생 제사로 이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록한 말씀에 분명히 똑같은 지적을 했다. 이것은 귀신의 상에 참예함으로 더럽혀진 사람들이 주의 상에 참예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 '상(또는 식탁)'이라는 말은 둘 다 '제단(altar)'을 말하고 있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
가톨릭 교회는 여기서 '상(table)'이라는 말을 '제단(altar)'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싶어한다. 제단은 제물을 위한 것이고, 상은 식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치하는 것은 초대 교인들이 주의 만찬을 희생 제사로 이해했다는 가톨릭 교회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치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0장 21절에서 사도는 '상'이라는 말을 잘 분별해서 사용했다. "귀신의 상에 참예하는 것"(고전 10:21)은 헬라 종교 내에서 행하는 것으로 이 종교의 신봉자들이 우상 신의 식사에 참예하는 행동을 말한다. "참석자는 자신이 귀신의 상에 앉아 있다고 믿었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귀신과 교제한다고 믿었다."(각주 - Colin Brown, editor,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vol. 2, p. 520.) 사도는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의 우상 신의 식사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주의 상에 참여"(고전 10:21)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도는 '주의 상'(고전 10:21)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을 희생 제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교제의 오찬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구속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전히 다 이루셨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그는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다. 구속에 대한 그의 희생의 사역이 완료되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헬라어 동사는 '현재완료형'이다. "현재완료형은 하나의 과정을 암시하지만, 그 과정이 최정점에 이르러 다 이루어진 상태에 있는 의미를 갖는다."(각주 - H. E. Dana and Julius R. Mantey, 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0'. Testament(Toronto: Macmillan Company, 1955), p. 200.)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져 완료되었으며, 이제는 완전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다 이루어졌고 완전한 상태로 되어 있다."(요 19:30)(각주 - Kenneth S. Wuest, The New Testament, An Expanded Translation(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56), p. 262. I 217. Pope Pins XII, Mediator Dei, no. 79.)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십자가에서 '다 이룬' 그리스도의 사역을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미사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 하나님 자신이 희생의 제사가 계속되기를 원하고 계신다……"(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79.)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는 "……희생으로 자신을 바쳤고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즉 산 제물로 계속해서 자신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각주 - 교황 비오 9세, Quas Primas, December 11, 1925.) 가톨릭 신학에 따르면 매년 1억 2천만 번의 미사에서 네 가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각주 - 이 숫자는 세계의 404,031명의 사제들이 매해 300번의 미사의 희생 제사를 드린다고 보고 산출해 낸 것이다. 매해 12,120만 번의 미사를 드릴 것이다. (사제들의 숫자는 다음 문헌에 근거한 것이다: 1994년 「가톨릭 연감」[Huntington, IN: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1993], p. 367. 숫자는 1991년 12월 31일 현재에 근거한다.)
제물로 바침
우리가 본 것같이 가톨릭 교회는 각 미사에서 제사장의 말과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가 제물로 바쳐진다(Immolation)고 가르친다. 즉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단순히 공허하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희생 제사를 바치는 진정하고 바른 행동이다. ……피 없는 제물로…가장 받으실 만한 희생 제물이다……"(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68.)라고 말하고 있다. 이 교리는 현재 부활하시고 영광의 상태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잘못 표현하고 있는 교리다. 성경은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 6:9)고 한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계 1:18)라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는 "……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라고 말씀하신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신 살아 계신 분이 계속해서 그의 죽으심으로 바쳐질 수 있는가? 그를 바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이미 죽으셨는데 그 사람들에 의해서 바쳐질 수 있겠는가? 전혀 그럴 수 없다. 더욱이 성경은 피 없이 바치는 제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는 성경의 말씀들은 피가 없다면 거기에는 속죄가 있을 수 없다는 선포다.
제사를 재현
가톨릭 교회는 각각의 미사에서 그리스도가 "…… 그가 십자가에서 했던 것과 같이 그 자신을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받으실 만한 희생으로 자신을 드린다"(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68.)고 가르친다. 성찬례의 기도에서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당신의 교회 제물을 자비로이 보시고, 우리가 당신과 화해하기 위한 화목 제물을 보소서"(각주 - 제3성찬 기도.)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가톨릭 교회는 신부가 "……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받으실 만한 희생 제사"(각주 - 제2바티칸 회의, "Sacred Liturgy," "General Instruction on the Roman Missal, no. 2)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제사의 재현: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66항은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하고, 이를 기념하며, 그 결과를 실제로 적용시키기 때문에 희생 제사이다"라고 한다-역자 주.)
이렇게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제사를 재현하는 것은 미사를 통해 매해 수백만 번씩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이미 받아들여진'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못 표현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단 한 번 하나님 아버지께 대속물로 드렸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후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히 9:11) 가셨다. 그의 목적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히 9:24)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히 9:12). 그리스도의 목적은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히 2:17) 하신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 제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셨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이것은 하늘에서 불려지는 많은 천사들의 영원한 찬송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분리된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들 중의 하나를 극적으로 제거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역을 받아들이셨음을 알리셨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명령하신 대로 유대인 성전에는 아론의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내는 곳과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 사이에 두꺼운 휘장으로 된 벽이 있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영혼이 떠나면서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마 27:51)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이 벽이 없어짐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받아들여졌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받으신 증거가 가장 위대하게 나타난 것은 3일 후의 사건이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고 말하고 있다.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은 받아들여진 것이었다(고전 15:17, 20).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앉아 계신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을 끝마치셨기 때문이다. 거기서 장래의 그 날까지 계신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 13).
가톨릭의 미사는 그리스도를 위엄의 보좌에서 하루에 수만 번씩 끌어내려 성소에 다시 들어가시게 하므로 위와 같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재현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미사의 제단 위에 그리스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믿으며, 지구상의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 제물을 자비로이 보시고 받아 주소서……."(각주 - 제1성찬 기도, The Memorial Prayer.) 이같이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다시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다 이루셨고, 그 대속이 이미 받아들여진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노를 달램
가톨릭 교회는 미사의 희생 제사가 '무한한 가치'(각주 - A. Tanquerey, A Manual of Dogmatic Theology(New York: Desclee Company, 1959), vol. II, p. 279. Also compare Ludwig Ott, Fundamentals of Catholic Dogma(Rockford, IL: Tan Books and Publishers, 1960), p. 414.)가 있는 '진정한 화목 제사'(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Degree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라고 가르친다.
…… 이것은 살아 있는 믿는 자들의 죄, 형벌, 대속 또한 다른 필요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깨끗함을 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 사도들의 전통에 따라 올바르게 드려져야 한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
가톨릭 교회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각각의 미사를 통해 가라앉는다고 한다[1371, 1414].
……이것은 진정한 화목 제사이다. ……왜냐하면 이 제물로 주님의 진노가 가라앉고, 회개의 은혜로운 선물을 주시며, 아무리 큰 죄와 불법을 범했다 해도 용서하신다.
- 트리엔트 회의(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2.)
그러나 이런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미사의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주님은 오히려 진노하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희생으로 완전히 만족하셨다고 이미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5, 17). 이에 따른 당연한 결론은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는 말씀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십자가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once-for-all)' 드린 희생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히 7:27; 9:12, 26, 28; 10:10; 롬 6:10; 벧전 3:18).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적으로 희생 제사(미사)를 드리는 것은 믿음 없는 행위인 것이다.
적용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회는 각각의 미사에서 신자들에게 개나리리의 축복이 나누어진다고 가르친다.
제단의 존귀한 희생 제사는 본래같이, 십자가 위에서 하늘의 구속자에 의해 쟁취된 공로들이 신실한 신자들에게 나누어지는 가장 큰 수단이다…….
- 「메디에이터 데이: 신의 중보자」(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79.)
근본적으로 미사를 통해 십자가의 공로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가톨릭 교회는 사제 신부들에게 "구속의 성사인 성체 성사를"[1846] 자주, 가능하면 매일 드리게 한다. 신부들은 세상을 구원하는 관점에서 이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들은 그 자신과 신자들이 십자가의 희생 제사로부터 풍성히 넘쳐흐르는 결실들이 실효를 거두도록 매일 합당하게, 또 열심히 미사를 집전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류의 구원에 가장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다.
- 「미스테리움 피데이: 신앙의 신비」(각주 - 교황 바오로 6세, Mysterium Fidei, no. 33.)
그리고[1405],
사제들이 그 주요 임무를 수행하는 성찬의 희생 제사의 신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활동이 계속 이루어진다.
- 제2바티칸 회의(각주 - 제2바티칸 회의, "Life of Priests," no. 13. 또한 교회 법전, canon 904를 보라.)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을 위해 우리의 제단 위에서 자신을 매일 드리신다. 그것으로 우리는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되고, 선택된 자로 허락될 수 있다.
- 「메디에이터 데이: 신의 중보자」(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73.)
또한 구속의 사역과 미사의 관계는 성체 성사 의식에서 말로 표현된다. 신부는 예물들에 대해 기도한다.
우리가 이 성스러운 의식을 가치 있게 치르도록 하게 하옵소서. 오 주님! 왜냐하면 이 기념하는 각각의 희생 제사가 우리의 구속 사역을 계속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로마 미사」(각주 - 「로마 미사 전례서」, "Prayer Over the Offerings," 오순절 후 아홉 번째 일요일. 이 기도는 다음 문헌에 인용되었다. 제2바티칸 회의, "Life of Priests," no. 13, footnote 14. (사제들이 그 주요 임무를 수행하는 성찬의 희생 제사의 신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활동이 계속 이루어지므로- 역자가 각주 14를 찾아 기록함.)
이런 모든 것은 성경과 모순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믿는 자에게 거저 그리고 즉각적으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엡 1:3)을 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주신다(엡 1:7, 8).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복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제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미사의 희생 제사가 "십자가 위에서 하늘의 구속자가 쟁취한 공로들이 신실한 신자들에게 나누어지는 가장 큰 수단"(각주 - 교황 비오 12세, Mediator Dei, no. 79.)이라고 하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미사의 신비한 비밀
만약 당신이 미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더라도 당신만이 어렵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가톨릭 교회에 따르면, 미사는 하나의 '놀라운 신비'(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Decree on Things to Be Observed and Avoided in Celebrating Mass.")라고 한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조차 이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말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미사의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톨릭 친구에게 미사의 잘못된 점을 말하기 전에,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 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간단한 교리 문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사가 신비한 것이기 때문에 유식한 가톨릭 신자와 대화하는 것은 더 큰 좌절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만약 어떤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대화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것이 도움이 된다.
성체로서 그리스도를 말할 때,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실제적으로, 완전히, 계속'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면, 가톨릭 친구는 "당신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국부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그리스도는 국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각주 - 가톨릭 학자인 신부 A. Tanquerey는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하늘에 있고 동시에 축성된 떡과 포도주가 모든 제단들 위에 있다"는 것은 타당치 않은 것이 아니다. 국부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에 따르면 똑같은 몸이 여러 곳에 동시에 있다는 것이 모순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위치적으로 멀리 있고, 그 자체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한 곳에만 국부적으로 있고, 본질의 형태(mode of substance)로 다른 곳에 있을 때 이런 모순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 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 자체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은 국부적으로 분명히 하늘에 계시다. 그러나 이것은 국부적으로 성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의 형태에 따라 존재하고 있다(A Manual of Dogmatic Theology[New York: Desclee Company, 1959], vol. II, p. 262).)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비록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지만 그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주 독특해서 자연에서는 이것과 비교할 것이 없다고 가톨릭 교회는 말한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이든 성체를 이해하기 어렵게, 또는 비평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또 미사에서 그리스도가 '제물로 다시 희생된다'거나, 미사가 십자가의 희생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미사가 마지막 만찬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점은 말해도 좋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해서는 재현이라고 하지 말라. 가톨릭 교회는 미사가 십자가를 '다시 갱신(renews)'하는 것이고, '다시 바치는(re-presents)'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재현하는, 다시 말하면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사가 곧 십자가이기 때문이라고 가톨릭 교회는 말한다. 단지 희생으로 드려지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면 약 2000년의 시간차가 있다!). 또한 미사를 드리는 각 개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달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또 하나의' 희생 제사는 아니라고 가톨릭 교회는 강조한다. 각각의 미사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려지는 희생의 제사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유월절 신비는 "지나가 버리지 않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이라면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에 현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한다[1085].
한 가지 더 말하면, 그리스도가 미사에서 죽는다고 결코 말하지 말라.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죽지는 않는다. 그는 '희생으로 바쳐진다.' 성변화(聖變化)하면서,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 안에서' 또는 '희생의 상태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죽지 않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하튼 그리스도는 미사에서 죽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미사에서 고난당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미사는 '피 없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는 제사장인 사제 신부가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가르치지만, 어떻든 미사는 '피 없는' 제사다!당신의 용어를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흠만 잡으려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더 이상 당신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만약 당신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톨릭의 최우수 학자라도 미사가 '신비한 실체'(각주 - John A. Hardon, S. J., The Catholic Catechism(Garden City, NY: Double-day, 1975), p. 467.)라고 말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사가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에게도 그 의미가 분명치 않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가톨릭 교회가 세운 것 같은 희생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필요 없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해 계속해서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자산들을 위해 제사장으로 행할 다른 사람이 전혀, 아주 전혀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하면, 믿는 사람 각각이 모두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장 6절에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기록했다(또한 계 5:10; 20:6을 보라). 베드로는 진정으로 믿는 사람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고 말씀하고 있다. 이 제사들은 순종하는 생활(롬 12:1), 그리스도인의 사역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빌 4:18),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히 13:15) 등이다. 그러나 죄를 위해 계속되는 제사는 아닌 것이다.
가톨릭은 성경이 신자들을 '일반적' 혹은 '보편적' 제사장(사제)으로 말한다고 한다[941, 1141, 1546, 1591].(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ecree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no. 2.)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를 통해 일반 제사장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가르친다[784, 1268]. 이 일반 제사장직은 성체 성사에 참석하고, 종교 의식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선행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901-903, 1657].
일반 제사장 외에 가톨릭 교회는 '직무(성직의)' 또는 '교계" 제사장(사제)이 있다고 가르친다[1142, 1547, 1592].(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o. 10; 제2바티칸 회의, "Decree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no. 2.) 이 제사장직은 단지 남자에게만 주어진다[1577, 1598]. 보통 라틴 교회에서 이 직분 후보자는 결혼해서는 안 되고 독신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만 한다[1599]. 성직의 제사장직(사제직)은 서품식 또는 성품 성사로 주교에 의해 안수를 받아야 한다[1573, 1597]. 이런 방법으로 후보자들은 "……특별한 인호(印號)가 새겨지고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동화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행동할 수 있다"[1548].(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ecree on the Ministry and Life of Priests," no. 2.) 안수를 통해서 그들은 "신성화하는 또는 축성하는 능력과 주님의 진정한 몸과 피로 제사 드리는 능력, 그리고 죄를 사하고 보류하는 능력을 받는다"[1411, 1481, 1566].(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3회기, "Canons on the Sacrament of Order," canon 1.) (서품<敍品>: 안수에 의해 주교, 사제, 부제를 임명하는 것. 주교는 서품식을 통해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축성할 수 있는 은총과 영성적인 힘을 부여하며 이렇게 임명된 사람들만이 '성직자'로 간주된다-「가톨릭 대사전」으로부터 역자 주.)
성직의 제사장직에 임명되면 그것은 영구적이다. "……한 번 남자가 제사장으로 안수 받으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그리스도같이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다"(히 5, 6, 7장)[1582].(각주 - John A. Hardon, S. J., Pocket Catholic Dictionary(New York: Image Books, 1985), p. 256.) 가톨릭 교회는 이 제사장직은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이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라고 한다[611, 1337].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성경을 근거로 이런 것들을 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약성경에는 일반 제사장직과 성직의 제사장직을 구분하는 말씀이 전혀 없다. 가톨릭 교회의 제사장들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을 따른다는 말은 정당하지 못한 주장이다. 우리가 본 것같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히 7:16)에 근거한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신부들이 우리같이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것은 그들이 멜기세덱의 자격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안수 받은 제사장직에 대한 주된 성경 구절인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는 말씀은 안수나 제사장에 관한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성경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가톨릭 학자들은 신약의 '장로' 직분과 가톨릭 '제사장직'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가톨릭 교회에서 번역한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번역을 덧붙여 비교하고 밑줄을 첨가했음-역자 주).
그리고 각 교회에서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을 세워 그들에게 안수했다 …… 그들은 저희를 주께 부탁하고 …….
- 사도행전 14:22(듀에이 레임이 번역한 성경)
(참고. 그리고 각 교회에서 신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뽑아 세우고 ……그들이 믿는 주님께 원로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빌고 떠났다. 행 14:22-공동 번역을 역자가 덧붙임).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는 ……나의 명한 대로 각 도시에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디도서 1:5(듀에이 레임이 번역한 성경)
(참고. 내가 그대를 그레데 섬에 홀로 남겨 두고 온 것은 …내가 일러둔 대로 도시마다 교회의 원로들을 임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딛 1:5-공동 번역을 역자가 덧붙임)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을 청할 것이오…….
- 야고보서 5:14(듀에이 레임이 번역한 성경)
(참고: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약 5:14-공동 번역을 역자가 덧붙임)
위의 각 구절에서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이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베테로스(presbuteros)라는 단어이며 복수형이다. 이 단어의 뜻은 나이든 사람 또는 장로(older man or elder)라는 의미다. 성경은 사도가 "각 교회에서 …… 장로들(elders)을 택하여"(행 14:23)라고 말하고 있지, "제사장들(priests: 사제들 또는 주교나 신부들)"을 택하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디도서에서는 "각 도시(또는 성<省>)에서 장로들을" 택해 세워야 할 일이었지(딛 1:5), "제사장들을" 세우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야고보서에서 병든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약 5:14)고 했지, 교구의 제사장을 청하라고 하지 않았다. 신약에서 제사장이라는 단어는 '히에레우스(hiereus)'이다. 가톨릭의 듀에이 레임이 인용한 위의 세 구절에서는 이 단어를 전혀 찾을 수가 없다.(각주 -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제사장직의 사목을 지지하기 위해 또한 딛 1:5[1577, 1590]과 약 5:14[1510, 1516, 1519, 1526]을 인용했다.)
성경적 판단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고 싶어하는 마음은 신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매일 제사를 드려 왔으며 제사에 관계된 모든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즉 제단, 성전, 의식들, 절기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 그리고 대제사장 등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새로 믿는 사람들이 이런 유대교 규범을 떠나기는 매우 힘들었다. 그들이 유대교를 떠나면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들을 내쫓았고, 배교한 사람으로 그들을 박해했다.
유대 종교를 떠나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들어온 초기 유대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갈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성전으로 돌아가려 했고, 희생의 제사를 드리려 했다.
히브리인들을 위해 기록된 신약의 히브리서는 이렇게 약한 사람들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록되었다(히 12:12). 히브리서는 이 서신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의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신실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히 10:23)라고 격려하고 있다. 히브리서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히 10:35)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고, "인내를"(히 10:36) 가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고 말하고 있다. 이 서신서는 이 그리스도인들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히 10:39) 자라고 확신하고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하고 있다(히 11:1).
히브리서는 또한 엄숙히 경고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이 말씀을 읽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다(히 10:39). 왜냐하면 유대교로 돌아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로 믿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이요,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신 그의 구원 사역을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돌아갔다(히 6:4-6). 그들은 단번에 드린 제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단순한 떡과 포도주로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 모이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제시한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들로만 보였다.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히 3:1), 하늘의 성소(히 9:23, 24), 하늘의 대제사장(히 8:1, 2), 하늘의 본향(히 11:16),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다. 눈에 보이는 성전, 눈에 보이는 제사장직, 눈에 보이는 희생의 제사, 유대교가 그들에게 줄 것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런 이유로 유대교로 돌아갔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가 바로 이와 비슷한 모습이다. 종교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놓으신 일로 안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톨릭 교회는 눈에 보이는 종교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교회 자체를 "가시적인 구조"(각주 - 제2바티칸 회의, "The Church in the Modem World," no.44.)로 세워진, "가시적인 집단"(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o. 8.)이며, "가시적인 사회"(각주 - 제2바티칸 회의,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no. 8.)로 묘사하고 있다[771]. 이 교회의 머리는 교황으로 그는 "전 교회의 가시적으로 보이는 머리"(각주 - 제1바티칸 회의, 제4회기, "First Dogmatic Constitution of the Church of Christ," chapter 1.)로 간주된다. 각각의 성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은총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13회기, "Decree on the Most Holy Sacrament of the Eucharist:" chapter 3.) 이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제사장직"에 의해 집전된다.(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13회기, "The True and Catholic Doctrine of the Sacrament of Order," chapter 1.) 그들의 주된 의무는 죄를 용서하는 것이고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같이) 눈에 보이는 제사"(각주 - 트리엔트 회의, 제22회기, "Teaching and Canons on the Most Holy Sacrifice of the Mass:" chapter 1.)인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1366].
미사: 오류와 진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
1. 최후의 만찬은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의 피가 잔에 부어진 진정한 희생 제사다[610-611, 621, 1339].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의 식사였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려졌다(벧전 2:24).
2.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실제 몸이요 피다[1373-1377].
떡과 잔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이다(고전 11:23-25).
3.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 성변화된 떡과 포도주는 모든 조각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전적이고 완전하게 현존하고 있다[1374, 1377].
그리스도는 하늘에 신령한 몸으로 현존하고 계신다(히 10, 12, 13장).
4. 성변화된 떡과 포도주는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을 돕는 하늘 양식이다[1392, 1405, 1419].
떡과 잔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을 돕는 상징들이다(눅 22:19).
5. 하나님은 성변화된 떡과 포도주가 신성하게 숭배되기를 원하신다[1379-1381].
하나님은 어떤 것이라도 숭배를 금하신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어떤 것이라도 금지하신다(출 20:4, 5; 사 42:8).
6.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제사를 영속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을 제사장(사제)으로 사역하도록 안수하셨다[1142, 1547, 1577].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를 거룩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안수하셨다. 믿는 자들은 그들의 입술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영적 제사를 드린다(벧전 2:5-10; 히 13:15; 롬 12:1).
7. 미사의 제사는 십자가의 제사다[1085, 1365-1367]. 단지 봉헌의 방법이 다를 뿐이다[1367].
십자가의 희생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약 2000년 전에 예루살렘 밖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일이다(막 15:21-41).
8. 십자가의 희생은 미사의 희생 제사로 영속화되었다[1323, 1382]
십자가의 희생은 끝났다(요 19:30).
9. 미사는 그의 죽음과 희생의 제물로 그리스도를 재현한다[1353, 1362, 1364, 1367, 1409].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과 희생의 제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고 "영원히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계 1:17, 18; 롬 6:9, 10).
10. 각각의 미사에서 제사장인 사제 신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드리는 것(재현)이다[1354, 1357].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세상 끝에 단번에" 드리셨다(히 9:24-28).
11. 미사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죄를 속하는 피 없는 제사다[1367, 1371, 1414].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없다(레 17:11; 히 9:22).
12. 미사의 각 제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킨다[1371, 1414].
십자가의 단번에 드림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완전히 진정되셨다(히 10:12-18).
13. 신실한 신자들은 미사의 희생 제사를 통해 충만한 정도로 십자가의 은총을 받는다[1366, 1407].
믿는 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충만히 받는다(엡 1:3-14).
14. 구속에 대한 희생의 사역은 미사의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계속해서 거행되어야만 한다[1364, 1405, 1846].
구속에 대한 희생의 사역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그의 삶을 주셨을 때 완전히 끝났다(엡 1:7; 히 1:3).
15. 가톨릭 교회는 세계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계속해야 한다[1323, 1382, 1405, 1407].
교회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주님의 죽음을 선포해야 한다(고전 11:26).
| 차례 |
| 역자 서문
| 추천사
| 서언: 초점
제1부 | 구원
1장 | 유아의 의롭게 됨
2장 | 성년의 의롭게 됨
3장 | 의롭게 됨의 증가와 보존
4장 | 다시 의롭게 됨
5장 | 마지막 운명
제2부 | 미사
6장 | 그리스도의 몸
7장 | 그리스도의 피
제3부 | 마리아
8장 | 하나님의 어머니
9장 | 하늘과 땅의 여왕
제4부 | 권위
10장 | 교황과 주교들
11장 | 교도권
12장 | 성경과 전통
맺음말 | 교차점
부록
부록1 | 유아 세례로 의롭게 되는 것
부록2 | 가톨릭의 7대 성사
부록3 | 가톨릭 성서
부록4 | 전통에 대한 신약 성경의 말씀
부록5 | 오직 성경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