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빛나는 쇠님께 수메르 신화에 관한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수메르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지역에 살고 있던 여러 도성국가를 말합니다. 기원전 오천년 경에 농경문화가 시작되었고 기원전 3500년 경에 역사시대로 접어든 인류 최초의 문명이자 당시 최고의 문명이었습니다.
또 수많은 신화를 남겼는데 학자들은 창세기 1장이 바빌로니아라는 강력한 제국의 그늘에서 해방된 유대인 사제 손에 지어졌을때 '에누마 엘리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보고 '바빌로니아 창세기'를 구약의 천지창조 신화의 원전으로 꼽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가 수메르 신화보다 먼저 지어졌는데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건 억지주장일 뿐입니다. 기록으로 남겨져야만이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을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수메르 신들에 의해서 천지창조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야훼는 결코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창세기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알아보겠습니다.
j출처의 연대는 기원전 약 950~800년경. 2~4장천지창조 ,에덴추방,카인의 아벨 살해..등)
p출처: 기원전 약 700~500년경으로 어림. 1장 (천지창조) 5장(첫 번째 조상들의 명단..등)
또 e출처가 있습니다. 이 세 문서를 후대에 편집해서 만든것이 지금의 창세기입니다.
참고로 수메르 신화는 창세기보다 대략 천여년전에 씌여졌다는 것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바이블 부분은 저의 생각이고 수메르 신화 부분은 김산해님과 조철수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메르 신화(에누마 엘리쉬 중심)와 창세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에 하늘이 이름지어지지 않았고 밑에 마른 땅이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았는데
(창세기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처음으로 그들(신들)의 아버지 앞수(지하수)와 그들 모두를 낳을 모체 티야마트(바다)는 자기네들의 물을 하나로 세고 있었다.
(창세기 1:2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느리라.)
야훼가 하늘에 있어야지 왜 수면에 운행할까요?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티야마트는 대양(바다)을 주관하는 신인데 그 위를 큰신(창조주)인 엔릴이나 엔키(후대의 마르둑)가 가 거닐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전 이 빛이 태양이나 달인줄 알았는데 태양과 달의 창조는 1장16절에 나옵니다. 그렇다면 똑같은 의미의 구절이 왜 두번씩이나 나올까요? 그건 아무 이유 없습니다. 창세기의 저자가 수메르 신화를 모방해서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 창세기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1: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절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대 그대로 되니라8절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창세기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궁창이라는 의미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물을 머금고 있는 하늘 정도로 이해됩니다. 즉 엄청난 물을 머금고 있는 하늘과, 아래(강이나 바다)에 있는 물로 나뉘어졌다는 의미 같습니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수메르 신화를 참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티야마트(물)의 괴이한 몸을 나누어 놀라운 것을 만들겠다고 하였다. 그(마르둑)는 그녀(티야마트)를 갈라 말린 물고기처럼 둘로 나누었다. 그 반을 세워서 창공으로 씌웠다.=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엄청난 물(대양)을 상징하는 티야마트 신을 반으로 갈라 하늘의 물과 바다의 물로 나누었다는 이 구절을 창세기 저자가 1장 6~8절 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다섯째 토판]
=큰 신들을 위하여 설 자리를 만들었다. 별들을 그들의 모습대로 세웠다. 해를 정하고 절기를 나누었다.(창세기 1:14절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창세기1장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야훼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들고 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2장 7절 이후부터의 내용을 보면 야훼는 아담을 먼저 만들고 나서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이 불쌍해서 하와를 만들게 됩니다. 또 둘은 남녀간의 사랑의 행위같은 것은 모르고 지내다가 선악과(이스라엘 인은 무화과로 서양인은 사과로 생각함)를 따먹고 죄를 범한 후 , 그 벌로 생육과 번성을 명령받게 됩니다. 같은 창세기에서 왜 이렇게 내용이 서로 다를까요? 아무 이유 없습니다. 편집자가 서로 다른 내용을 짜깁기했기 때문입니다.
갈대집이 엮어지지 않았고(집이 없었다는 것은 사람이 없었다는 듯)늪있는 땅도 보이지 않았다(황무지 라는 뜻)는 구절이 창세기 2장 5절에서는 ( 여호와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였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므로)로 바뀝니다.
티야마트의 기운을 한데로 모아 구름이 질주하게 하였고, 바람을 일으켜 비를 부리게 하였고 그녀의 독을 모아 짙은 안개가 소용돌이치게 하였다.(창세기2: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어때요.이제 창세기 2장 6절이 이해가 되시죠.
그리고 창세기 2장 8절의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창세기2장14절에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옛 수메르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는 왜 이스라엘의 요르단강(요단강)이나 갈릴리 호수 지역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하지 않고 수메르 지역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가 수메르 신화이기 때문입니다.
또 아담이라는 뜻에는 붉다, 만들어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담의 어원을 찾아들어가면 역시 수메르 신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큰 신을 배신한 작은 신을 죽여 그 피와 진흙을 섞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여기에서 아담이라는 인물이 유래되었다고 봅니다.
(창세기2:18, 그리고 여호와가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
여호와가 무슨 진흙 공예가도 아니고 , 흙으로 일일이 그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동물들을 만들었을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합니다(그런데 악어같은 파충류는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창세기3장으로 넘어가면 선악과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신화의 모티브는 수메르 엔키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엔키 신은 지혜를 나타내는 신이고 그의 상징은 snake입니다.
선악과 신화의 진정한 의미는 선악도 구분할줄 몰랐던 어리석은 인간이 비록 신의 명령을 어겨 벌을 받기는 하지만 ,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인간이 됐다는 것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신은 여자에게 잉태하는 벌을 주고 남자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게 하는 벌을 주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원죄가 있어 그들의 모든 후손들이 지옥에 가게하는 벌을 준 적은 결코 없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신학자들이 정치적 목적때문에 불순한 의도로 원죄론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여자의 잉태가 원죄의 증거라면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이 원죄가 있다는 웃지못할 논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그리고 모든 동물의 수컷들은 자기 짝과 새끼들을 위해 수고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인안나와 엔킴두의 사랑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카인과 아벨 신화입니다.
이제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길가메쉬 홍수이야기, 아트라 하시스의 태초 이야기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다 비교해 드리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중요 부분만 소개합니다.
((아트라 하시스의 태초 이야기))
=위층과 아래층이 있게 하여라.엮이는 곳이 튼튼해야 한다. 아스팔트가 끈끈해야 힘을 준다.(창세기6:14,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하늘에 나는 새들,가축, 들짐승, 그는 배에 실었다.
(창세기6:20,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전케 하라)
중략] =내가 도울 틈도 없이 내 자식들이 파리 떼처럼 되었다.
나는 통곡의 집에 앉아있기에 내 울부짖음이 가라앉았다. [중략]
=뗏목처럼 들판의 강둑에 널려있었다(홍수로 죽은 사람들이).나는 그들을 보았고 울었다. 그들을 위한 통곡으로 지쳤다 (신이 후회하는 모습) [중략]
칠 일 밤낮으로 폭우 폭풍 홍수가 일어났다 (창세기 7장12절,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길가메쉬의 홍수 이야기))
[앞 부분 생략] 아눈나키 신들은 그녀와 함께 울었다.신들은 겸손히 앉아서 울었다.
[중략] 배는 니무쉬 산에 이르렀다.(창세기8장4절,칠월 곧 그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중략] 나는 비둘기를 꺼내어 내보냈다. 비둘기는 나갔다가 돌아왔다 [중략]까마귀는 나가서 물이 빠진 걸 보았다~되돌아 오지 않았다(창세기의 까마귀와 비둘기가 밖으로 나간 순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글을 다 읽으신 분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두 수메르 신화를 교묘히 짜맞추기한 것임을 아시게 될 겁니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수메르 신들은 인간을 전멸시키고 난 후 매우 후회하지만 야훼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수메르 신화를 모방한 , 우리의 단군 신화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일 뿐입니다. 물론 믿고 싶은 분은 믿고, 믿기 싫은 분은 믿지 마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