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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아줌마 공무원이다!

아줌마 |2007.06.18 11:40
조회 585 |추천 0
안녕하세요.

 이번 충북2회 세무직 필기를 합격했습니다. 아직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주제에...혹시, 도움되실 분 있으실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목에서와 같이, 저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아들,딸 두 명입니다.유치원에 다니는 6살 딸과 4살 아들, 그리고 도청에 다니는 자랑스런 남편...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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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 저는 상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욕구가 남달라서, 대학진학을 해서, 알바를 하고 장학금을 타며, 4년을 보잘 것 없는 대학으로 졸업했습니다만, 대학 성적이 단과대학 수석이라서, 나름대로 취업에 대한 높은 눈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오산이었죠.  보잘것 없는 지방대 단대 수석보단, 서울의 좋은 대학 꼴찌가 더 인기있는 법이니깐요.

 대학 졸업후엔 IMF가 터졌음에도, 공무원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오직 대기업이나 금융권만 목표로 두다가, 이차저차 해서, 창투사를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 다니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았고 다른 뭔가의 기회에 대해 준비하기 위해, 역시 모대학의 경영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같은 지역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지금쯤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할 때가 되었다 생각해서, 대리 직급으로 이직을 했고, 비슷한 중소기업으로 또다시 이직하면서 나름대로 승승장구하며...

 최연소 나이의 그것도 여성으로 기획실장까지 승진을 했습니다.

 

 공무원 남편보다 월급도 훨씬 많았고,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남편으로부터도 일종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아이 둘까지 낳는 동안, 육아와 가사는 모두 남편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권의 문제로 인해, 저도 일종의 실패를 겪으면서 퇴사를 했고...  사회생활에서의 자세한 얘기는 불필요할 것같아 더이상의 서술이 곤란합니다만, 상당한 좌절과 낙심을 겪었습니다.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세상이 날 내버려두지 않는단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국, 제 의욕을 충족하지 못하는, 지방의 조용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자신을 다시 되돌아봤습니다.

 

 가정에 소홀했던 저를 반성하며, 매일 밤 11시에 퇴근하며, 저를 기다렸을 남편에게 미안해하며...  공부란 걸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무원 공부 굉장히 쉽게 봤습니다.  까짓것 모...

 라고 생각하며, 직장 퇴근하고 하루 3시간씩 꼬박 공부를 했건만, 석달간의 정성 끝의 저의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05년 세무직 컷라인이 도일괄 69, 청주시82점이었는데, 저는 석달간 공부해 75점을 맞아놓고는, 도일괄을 쓰지 않은 탓만 했습니다.

 

 잠시 방황하다가, 05년 7월에 음성에서 살고 거기서 회사를 다니면서, 청주로 학원이란걸 다녀보았습니다.  일찍 퇴근해서 한달간 청주로 학원을 다니면서, 그제서야 저의 무지함을 깨달았습니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05년 8월부터 본격적인 공부란 걸 시작했습니다.

 

그간의 일정들 : 작년 8월부턴 7월 수업때 하지 못했던 밀렸던 복습까지 하면서, 주로 학원수업의 복습을 위주로 했습니다.  9월부턴 국어 지문특강과 문법특강, 기본수업을 3중으로 들으면서, 영어는 문법단과를 지속해서 들었죠.  11월부터는 영어스터디를 하면서, 그 중 같은 직렬 준비하는 사람들간에 토요일 오후마다 세무스터디를 만들어서 매일 모의고사 보고 각자 한 과목씩 맡아서 담주에 해설해주는 식으로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국어스터디도 했는데, 국어와 영어는 2~3달 정도만 했습니다.

 

 스터디의 이점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거죠, 한두명의 놀자주의자들이 들어와, 생일이니, 월드컵이니 등등 챙겨대기 시작한다면, 스터디는 동아리 처럼 바뀌어버립니다.

 가장 잘 운영되었던 세무직 스터디 같은 경우엔 시험전날까지 했고, 제가 나이가 많아서 공부분위기로 이끈만큼 팀원들이, 누나라고, 언니라고 잘 따라줘서 끝까지 술 한번 먹은 적 없이, 7개월이 운영된 상태에서, 시험본 후에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때 느꼈습니다.  이렇게 잘 노는 사람들이, 그간 어떻게 참고 공부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찡해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5명 중 2명이 합격했고 한명은 2문제차로 떨어졌지만... 모두들 붙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스터디를 하게 되면, 과제물이 주어지기 때문에, 한참 시험 없는 기간, 저를 빡빡한 생활로 채찍질했습니다.

 스터디를 하면서도 나머지 과목들은 틈틈이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통합한국사 강의를 듣고 통합한국사와 민주국사, 학원기본서 등등을 2회에서 4회독 했습니다.  국어는 수업을 위주로 하면서 2만 문제는 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공공부는 10년 이상 했던만큼, 기본서만 천천히 세법은 2회, 회계는 1회 정도 보고, 거의 스터디 때 푸는 문제 정도로만 겨울을 보냈습니다.

 올해 초부터 시험일까지 세법 기본서를 1회 정도 천천히 더 보고, 세법,회계 문제집을 각각 1권씩 사서 봤으며, 문풀을 두 과목 동강으로 해결했습니다.  국사는 7급 기본서를 하나더 사서 보면서, 문제는 공무원 남편이 자료 위주로 구해주는 것을 같이 꾸준히 풀고, 토요일 밤에 몇명이 모여 국사 문풀을 했습니다.

 문풀반은 국어만 학원에서 들었구요, 영어는 독해와 어휘 위주로 최대한의 문제집 등을 풀었습니다.

 그러면서, 시험이 임박할수록, 학원가의 모의고사를 구해서, 자주 풀고 맞춰봤죠.

 

공부스케줄

 잠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래서 초반엔 10시에 자고 7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했습니다.  작년후반기부터 서서히 줄이기 시작해서, 8시간으로 줄여서 정착하는데 몇달 걸리고, 올초에 7시간으로 줄여 몇달 정착... 3월경부턴 6시간전후로 잤습니다. 대신 시험 2주전부턴 다시 8시간 정도로 자는 시간을 늘였습니다.

 앉아있는 자세 때문인지 어깨통증이 심해서, 올해 초반부턴 꾸준히 1시간 정도 소요되는 한의원 치료를 일주일에 3번가량 받았습니다. 

 7시에 일어나서 딸아이 깨워 머리해주고 밥을 먹인 후에 남편과 함께 8시쯤 출근해서, 도서관가고(작은아이는 시댁에서 봐주셨습니다), 밤10시에 남편이 데리러 오면 집에 왔습니다.

공부 초반엔 살림은 음식위주로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밤7시즘와서, 10시까지 살림하고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 불평을 했더니만, '살림 해봤자 얼마나 한다고 그래?'하며 대들더라구요(?)  특단의 결정을 하고 선언했습니다.  다음 시험에 꼭 붙을테니, 내가 없다 생각하고, 재정적,시간적 지원을 모두 하라고, 대신 붙으면 그때부턴 내가 가정을 위해 헌신하겠노라구요^^

 

 그래서 올해 초부터 상기의 시간대별로 규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집에와서 씻고나면 11시 되는데, 그때부턴 가장 부족한 과목을 주로 문제위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가량 풀고 잤습니다.  그렇게 풀게 되는 양이 상당히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그리고 기본서를 사면, 1달동안 보겠다 2달동안 보겠다 하는 계획을 산 후엔, 예컨대 1달간 보겠다 싶으면, 4등분해서, 각각 끝나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놨습니다.  이런식으로 해당 과목을 모두 일주일에 해야 할 범위를 정해놓고, 기본서와 문제집을 각각 함께 주단위의 계획을 세워놓구요...

 그런 후엔 굳이 요일은 정하지 않고, 매일하루를 3등분해서(오전.오후.저녁)금요일까지 총15시간대가 나오는 중에, 과목별로 몇번씩 할 것인가를 정했습니다.

 

 대개, 매일오전엔 영어를 하고, 국사는 3번, 세법회계는 각각 1번, 국어는 2번, 스터디1번, 수업3번 정도씩 배정해서, 어떤요일에 무엇을 할지는 당일이나 전날 그때그때 정했습니다.

 그리고 언급했듯이 특별히 부족한 과목은 매일밤 한시간씩 더 했구요.

 주말은 비워두었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로 못하게 된 부분을 보충했구요, 토요일 오후부턴 모의고사 위주의 스터디를 하고, 일요일엔 약간의 휴식과 살림을 했습니다.

 

 잠을 많이 잔 대신, 술이나 친구나 영화감상 같은 것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모스터디에서 생일파티할때도 과감히 끊고 와버렸습니다.

 대신 10년지기 고딩친구들과의 모임만 지속했는데, 그것도 매달모임 참석은 못하고 2달에 한번정도 저녁만 먹고 오곤 했습니다.

 차타고 오가는 시간엔 단어장을 보며 영어단어를 외웠고 제가 다니는 집 구석마다 어려운 영어단어를 붙여놓고 수시로 외웠습니다.

 

공부방법 : 종합반을 작년8월까지 들은 후론, 국어는 문법,지문 등 단과를 들으며 기본반 수업을 별도로 2번 정도 더 반복했습니다.  영어는 지금까지 계속 단과를 들으며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스터디로 병행했습니다. 

국사는 종합반 끝난 후엔 혼자 기본서 위주로 공부하며, 최대한 인터넷에서의 자료든, 문제집이든 닥치는대로 풀었습니다.  나머지 전공과목도 마찬가지구요.

중요한 건 다섯과목을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냈다는 점입니다.  특정과목에 치우치지 않게 하되, 특별히 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집중적으로 그 과목은 매일 10시까지 공부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1,2시간 씩 더 하고 잤습니다.

특정책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얼만큼 소화했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과목별 바이블이라 할 만한 유명책을 하나를 모두 외워도 좋고, 보충할만한 책을 하나씩 더 봐도 좋고, 9급을 위주로 하되, 한단계 높은 7급책까지 봐도 좋다 생각합니다.

 특정책에 합격이 좌우된다기보다는, 그것을 소화해내는 방법이 좋겠지요.

 합격자 중에는 책 한권씩만 갖고 붙는 사람도 있지만, 다양한 최대한 여러 책을 사서 보고 붙는 사람도 있으니깐요...

 

실패경험 : 전공과목엔 정말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직장까지 때려쳤는데 하반기 시험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충북 농업직에 응시했습니다.  충북시험은 아직까지는 전공과목에서 변별력이 별로 없습니다.  책과 문제집 한권씩을 사서 1달여 죽어라고 외워서 들어갔는데, 컷라인은 89점이었고 전공도 80점대습니다.  영어70점에 국사가 90이었나? 잘 기억 안나는데... 자격증 하나도 없었구요... 국어가 55점인 겁니다.

그당시에 국어수업을 많이 듣고있던 와중이었던지라,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기없었던 농업직이 89점이란 소식에, 그때서야 공무원이 어렵단 걸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어를 그때부터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그때부턴 밤 1시간이상 문제를 풀었던 과목이 국어였고 한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시험이 빠르기만 기다렸습니다.

 참고로 전 국가직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국가직이 상당한 인원의 세무직을 뽑는반면, 작년4월에 시험을 치뤘던 지방직은 6월로 발표가 났습니다.

 또다시 원망스러웠습니다.

 국가직 못 보는 저로서는 행정직과 같은 4월에 시험을 봐야 행정직 먼저 보고 세무직을 응시하는 사람과 경쟁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국가직에 올인하는 나이어린 후배들보단 지방직에 목숨걸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지방세 등등을 준비해서, 이겨낼 수 있을테니깐요.

 그리고 체력이 딸려서 버텨낼지도 자신없었습니다.  심한 두통과 어깨통증 등으로 거의 매일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구토증세가 며칠씩 이어져 드러눕기도 하는 상태였거든요.

 

 또다시 과감한 결심을 했습니다.

 전공과목은 잠깐 손뗀다고 많이 흔들리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1달 반동안 행정과목 공부를 했습니다.

도일괄을 냈는데, 컷라인이 89점이었고 0.5점으로 떨어졌습니다.

 작년의 실패로 인해, 부랴부랴 워드1급을 땄건만, 그제서야 가산점을 위력을 깨달았고 OA필기를 접수해서 그 후에 붙어서, 지금도 실기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때도 놀라웠던 것이, 국어는 90점이었는데, 영어가 55점이었습니다.

 영어 수업도 딴선생님 것으로 바꾸고 그때부터 영어를 매일 오전에 독해와 어휘위주로 했습니다.

 

  대전시 원서접수가 있었는데, 고민했습니다.

 행정직은 50명, 세무직은 3명 모집이었는데, 행정과목을 좋아 했던만큼, 한달 더 하면 행정과목이 더욱 오를테고, 세무직 3명보단 행정직이 현실적으로가능하겠다 생각해서, 원서접수를 했습니다만...

 

 충북 행정직 발표 후에, 제가 또 다시 저의 무지함과 오만함을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세상을 그렇게 호락하지 않으며, 세상의 똑똑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요...

 

 고민한 끝에, 제 욕심을 버리기로 했고...

 과감히 5월 31일 대전 행정직과 6월 18일 충북 세무직 중 대전행정직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행정직을 좀더 올인하면 가능했었을런지도 모르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깨달은 후엔, 대전행정직을 올인하여 붙고 18일간 세무직을 다시 들여다봐서 충북 세무직을 붙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영어는 독해의 감각이 중요합니다.

 충북 행정직 때, 전 행정과목이 생소한만큼, 영어는 이미 점수가 정해졌다고 생각하고, 그 과목을 집중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행정과목 잘한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죠.  누구든 영어 안하고 암기과목을 시험 임박해서 집중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어를 유지하며 하려고 하니 단기간 고득점이 어려울 뿐인 거죠.

 

 그래서, 독해감각 유지를 위해, 영어를 매일 하며, 행정과목을 과감히 놓고, 다시 저의 전공위주로 공부하여 대전시험을 본 결과가, 국어90, 영어85, 국사100점이었습니다.

거기서 무너졌던 희망을 다시 회복하고, 붙을 수 있단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충북 세무직 컷이 도일괄92, 청주94점이었습니다.  거기서 합격을 했습니다.

 컷라인이 높으면, 시험이 쉬워서라고 하시는 분들 많습니다만...

 전공이 타지역만큼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작년에 비교하여 5과목 모두가 난이도가 많이 상승했습니다만, 컷라인은 훨씬 더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기술직종 자격증 5점이 더 있는 직렬보다도 세무직 컷라인이 훨씬 높습니다.

 

 시험이란건 쉬우면 누구나 쉽고 어려우면 누구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험이든, 떨어진 사람이 붙은 사람보다 실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요즘 수험생 실력이 하늘을 찌를듯 높아져있어서 고실력자층이 두텁게 형성이 되어 있는만큼, 시험운과 컨디션이 중요하고, 가산점의 위력 또한 상당합니다.

 가산점 꼭 따시고, 목표 달성 하십시오.

 자기 자신과 약속하시고...

 얼마간 공부하여 언제까지 공부하겠다 결단하신 후엔, 계획성 있게 공부하고 공부하는 기간 동안에도 그때그때 세운 목표를 달성하신다면, 최종 목표도 달성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간혹, 시험때마다, 공부시마다,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도 하면 잘할 수 있어.  저만큼 열심히 하면 누군 못붙어?'하는 식의 자기 합리화가 자기를 안주하게 만듭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고 관대하게 마냥 허용한다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가정에서의 생활은 빵점이었지만, 사회에서의 생활만큼은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가 저에 대한 엄격한 스승이며 감독자였습니다.

남한테 관대하되, 자신에게만큼은 무서워지시고...매번의 계획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땐 심하게 채찍질 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미루는 것을 허용하지 마시구요.

 

 마지막으로, 책값이든, 학원비든...

 아끼지 마십시오.  나는 붙을 수 있다고 내가 나 자신을 믿으며, 그 외의 다른 방안을 생각하지 않고 1년간 죽어라 매달린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조달을 못하겠습니까

 몇달 월급 땡겨쓴다 생각하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투자하면, 남들보다 몇년치 월급을 더 만져볼 수 있을겁니다.  어렵게 공부하여도 물론 의지만 있으면 된다지만, 대개의 경우엔 투자 또한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너무 길어졌네요. 암튼 열공하세요.

 

 이제부턴...가정에서의 100점 주부가 되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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