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내 34살여자인생
아빠와 배다른 오빠와 나와 남동생 엄마
아빠는 엄마에게 결혼유무와 오빠가 있다는 것도 속이고 엄마와
결혼을 하셨다 그렇다가 내가 태어났고 아빠는 안심을 했는지 엄마에게 오빠를 보여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알코올중독자 이었다.
보통 알코올중독자처럼 자식과 부인을 죽는 그날까지 괴롭혔다.
아파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술 먹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돌아가셨다.
엄마는 알코올중독 아빠를 피해 며 번의 가출을 하셨고 그럼 오빠는 우리랑 나이차이가 있어서 우리와 따로 살고 있었고 오빠는 이곳저곳에서 말 못할 고생을 하고산 것 같다.
난 상도동 달동네 단칸방에서 살았는데 집에 얇은 철판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여름이면 벽이 뜨거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겨울이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빠의 술주정으로 뒷산에서 겨울이면 불을 피워 놓고 몸을 녹이면서 아빠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으로 들어가 자곤 했다.
엄마를 나 5학년 때 가출을 하셨다 아빠가 학교도 가지 말라고 해서 남동생과 난 학교도 가지 않았고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없이 아빠의 술주정으로 집에서 잘 수가 없어서 뒷산의 둘이만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을 찾았다 거기에 이불과 돗자리를 가졌다놓고 아빠를 피해 잠도 자고 낮에는 남동생과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다시 오셨어 다시 학교를 가게 되었고 봉천동 달동네로 이사를 했다
방은 2칸이었지만 말뿐이 집이였다 일명 판자촌집 여름이면 씻을 수도 없었고 지붕은 내키보다도 낮아서 허리를 나추고 다려야만 했다.
여름이면 구더기 들이 벽을 타고 다녔고 여름 장마 때는 화장실에 물이 차서 큰 볼일을 볼때면 한덩어리 떨어뜨리고 얼렁 피하고 똥물들이 내엉덩이로 오기 때문에. ㅠㅠ
아빠의 술주정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고 엄마는 일을 하고 오셨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으닌깐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시곤 했다.
내가 6학년 때 엄마가 아침으로 라면을 주셨다. 라면을 가지고 상으로 놓으려는 순간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그 라면 내 발등으로 떨어졌고 엄마는 나를 미친 듯이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학교를 등하교 시킬 줄 사람이 없어서 난 2주일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다.
난 그래서 초등 학교 때는 개근상이 없다.
중학생이 되고도 아빠는 변화가 없었고 아빠와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도망쳐 나왔지만
아빠는 학교로 찾아왔다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고.
아빠 돌아가시기 전 내가 20살 7월까지 그 고생을 하면서 살았다.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난 아빠가 돌아가신 그날이외에는 운적이 없다
아빠를 위해서 그리워하지도 않았고 편하게 밤에 잘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워했다.
난 이제 남동생 나 엄마 이렇게 열심히 살면 잘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구질구질한 내 삶은 남동생한테 넘어갔다. 남동생은 요즘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본인나이 30살까지 일을 해본 적 없다. 엄마는 나에게는 강하기 바랐지만 남동생은 막내라는 이유로 그런 남동생을 둔 둔하면서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은둔 형들은 폭력적이다. 숨겨놓은 돈도 잘 찾고 인생의 책임감도 없다.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는 답답하셨던 것 같다.
남동생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해줄 것 다 해주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난 여기서 도망은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나이 29살에 남자와 만나 결혼을 했다.
이사람 집은 천주교 집안이다 난 무교이고 상견례자리에서 성당을 다니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난 성당을 다렸고 난 세례명도 있다 지금은 나의 세례명도 잊어버렸지만 반지와 목걸이(명칭을 모르겠다)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남자와 나는 사귀는 동안 성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친구 같은 남친 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아껴주는 것 같아 좋았고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꺼라 생각을 못하였다.
가끔 서로의 생각이 너무 틀려 숨이 막힐 만큼 답답했지만 이 정도는 어느 커플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혼날짜를 잡았다.
결혼날짜를 잡고 그 남자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난 참고로 남동생이 집에서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산사람이라 빨리 직장을 구하라고 했지만 결혼한 그날에도 헤어진 그날까지도 그 사람은 나에게 월급한번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혼하기 며칠 전 본인이 결핵이라고 한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님은 3층 우리는 그 건물 반지 하에서 살림을 시작하라고 하셨고.
그 사람은 무직 이였고 구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끔은 숨이 막힐 만큼 서로 대화도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결혼 깰 용기가 없어서 결혼을 했다.
지옥 같은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여행간 5박6일 동안 단한번의 성관계가 있었고 그렇게 신혼여행은 갔다 왔다.
이사람 저녁에는 게임을 했고 아침에는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난 출근을 했다
이사람 부모 나에게 아기를 가지라고 한다. 남편은 놀고 있고 막말로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데 성관계 없는 임신도 있는가. 앞에서는 말을 못했지만(시부모님께 둘사이에는 성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는) 요즘은 여자도 일을 해야 한다고 나보고 애만 낳으면 시부모님이 키워주신다고 일하라신다.
제 아들 일이라도 하라고 해야지. 푸하하하 노는 그럼은 일요일 날 피곤해서 성당안가도 되고 일요일 하루 쉬는 날은 어머님과 성당을 가야했다 그 딸도 안 갔는데 아버님도 안가고
종교에 취미도 없는 나는 억지로 다녀야만 했고 부부 관계없는 부부 (모멸감을 무지 많이 느꼈다 나에게 성적 매력이 없는 걸까 )내가 포르노라도 한번보자(이런말까지 하면서 부부관계를 유도 했는데. ㅠㅠ) 이런 식으로라도 해서 부부관계를 개선해보자고 했는데도 지저분한 짓거리로 나를 바보병신 만들던 그 사람.
나중에 알았다 우리엄마 정신병원에 입원 때문에 둘이서 메신저에서 애기하는 그 순간에도 포르노를 다운받고 혼자 자유행위를 한 것을. 푸하하하하
결혼후 엄마가 정신분열증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심각해서 강제 입원을 시켰다.
아마 그 순간에도 그 사람 포르노를 보면서 혼자 즐기고 있어겠지만...
엄마가 퇴원을 하셨다 예전처럼 폭력적이지도 않고 이상한 소리도 안하고 본인이 예전에는 환각과 망상에 빠진 것 같다고 하셔서 퇴원을 시켰다.
하지만 그건 퇴원을 위한 거짓말 이였고 나를 그렇게 또 괴롭혔다.
그 와중에 남편이 쓰러졌다. 뇌수막염이라고 한다 결핵의 합병증 약을 아침마다 잘 챙겨먹어야 하는데 단백질 섭취도 많이 하고 그런데 매일같이 단백질을 뽑아내고 하니 뇌에 문제가 생긴 거고 입원을 했다. 중환자실까지 가서 뇌수술도 받고 몸에 마비도 올수 있다고 했지만 수술도 잘되고 경과도 좋아 한 3달 만에 퇴원을 했다.
저녁에 퇴근해서 병원에서 간호하고 아침에는 출근하고 낮에는 어머님이 계시고 시집친척들이 문병을 오신다 그중에 한분이 관상과 점을 볼줄안다고 .........
난 무교여도 점과 관상 같은 것 안 믿는데 천주교 다니시는 어머님은 믿더라.
내얼굴이 울상이란다. 그래서 남편이 아푼거였고 평생 먹여 살려야 하고, 한마디로 나 때문에 그넘이 아푼거였고 너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면서 일 열심히 하고 남편은 퇴원하면 시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요양좀 해야 한다나.
그넘 아풀때는 그 말들이 서운하지 않았다 아니 그 사람 죽지 말고 마비도 오지 말고 정상으로 와야 한다. 그 생각만 했다.
허나 그 사람 퇴원후 그일들이 두고두고 서운하더라는 거다 달라진 것 없이 난 일을 하고 일요이면 성당을 가야했고 답답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난 못살겠다고 하고 나왔다 내빈 몸 하나만 빠져나왔다.
다시 난 집으로 들어왔고 남동생은 엄마의 분열증 때문에 집을 나가서 연락을 끊어버렸다.
엄마와 둘 나름 서로 이해하면서 살았다 병도 많이 호전되어서 잠도 잘 자고 말도 잘하고 밥도 잘 먹으면 다시 일도 시작하시고 그렇게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렸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서 …….
지금 친정엄마를 모시면서 행복해 하면서 살았다.
행복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런데 다시 엄마의 병을 의심하는 행동과 언행을 하신다.
어쩜 그 점쟁이 여자 말처럼 내 인생은 울상인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