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으로 사랑할수없다는걸 알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세요..
긴 글을 두번째 썻다 지우고 있습니다..
많이 혼란스럽네요..
전 28살먹은 사내입니다.
제겐 두살어린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만난지는 일년정도 되었구요..
전 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사람은요..
절 만나러 오는길에 지하철에서..혹은 버스에서 항상 짧은 편지를 씁니다. 그리곤 집에가서 펴보라고 쪽지를 건내며 데이트를 시작하죠.
제가 시덥잖은 농담을 해도 박수쳐가며 활짝 웃어주고..
아이들 얘기를 할때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더 잘해줄꺼야. 나는 아이들의 거울이거든..' 이러면서 활짝 웃는 초등학교 선생님 입니다.
제가 택시타자고 해도, 택시는 노인이나 임산부가 타라고 만든거라며 버스정류장으로 손목을 끌고 갑니다.
자기보다 저를 더 생각해주고..
지난 어버이날엔 '오빠 바빠서 준비못했을거 같다'며.. 저희 어머니 카네이션이랑 케잌까지 들고 가게앞으로 찾아와 '오빠가 샀다고 해~' 라고 했던 그런 사람입니다.
168의 키에 50이 채 안되는 몸무게이고
같이 다니면 몇몇 사람은 꼭 뒤돌아볼정도로 눈에 띄는 외모입니다.
정말 티없이 자란..맑은 구슬같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저는 공고 출신입니다.
성적이 특출나진 못했지만 중학교 시절엔 반에서 다섯손가락 안에는 항상들었습니다.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마음은 정말 많았는데..
철이 일찍들었는지.. 어리석었는지..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는동안 등록금은 둘째치고.. 20대 중반 까지 돈을 못번다고 생각하니..너무 답답하더군요.
열 일곱살때 부터 무조건 졸업만 생각했습니다.
그당시에 '내가 어머니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센데..'
앉아서 밥만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치겠더군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선반기술이랑 용접기술로 자격증도 많이 취득했고..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기능대회에 학교대표로나가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학교끝나고 나서는 새벽에는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세시간씩 자고 등교했습니다.
미칠것 같이 힘들었지만..얼른 졸업해서 돈벌생각을 하며 참고 참았습니다.
취득한 자격증들로 학교에서 가장 먼저 취업해서 선반으로 건축자재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월급이 78만원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주변에 학교나오지 않던 친구들..
나쁜짓 하던 아이들..
모두 월급을 비웃었습니다. 기름밥먹고 그거받을라고 그렇게 열심히 했냐고..
자기 따라서 호스트빠나 나가자고..
친구녀석들이 쉽게 쉽게 버는 모습을 보며 '유흥업소에 나가볼까?' 많이 흔들렸지만..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저도 남들처럼 혈기왕성한 나이었지만 여자친구는 생각도 하지 않았구요.
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노점에서 닥치는대로 물건을 팔았습니다.
돈이 쉽게 모이진 않더군요..
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새벽시장에서 가방을 떼다 팔았고..
낮엔 생수 배달을 했구요..
저녁엔 핸드폰 껍질을 팔았습니다.
장사를 하다 우연히 그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만남은 가방을 사러온 손님으로 만났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장사를 해온지라 장사 수완엔 자신있었는데 그사람은 제가 하는 말들을 유독 즐거워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홍대 입구역 주변에서 핸드폰 껍질을 파는데 다시 그친구가 손님으로 왔습니다.
얼굴이 워낙 눈에 띄는지라 한눈에 알아봤죠.
굉장히 신기해하더군요. 가방도팔고 이것도 하냐며.. 생수배달까지 한다니 연신 대단하다는말만 계속하고..
제가 믿음직 스러웠나 봅니다. 돈 많이 모으기 전까지 여자친구사귈마음 조금도 없었는데..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구요. 가게로 자주 찾아오고..
임용고사를 준비중인 대학생이라고 하더군요.
제 평생..여대생과 사석에서 처음 밥을먹고 영화를 봤습니다..27살때였죠.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떨리네요.
이듬해 그사람은 임용고사에 합격했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조금도 숨길게 없었고 모든걸 알고 만났으니 너무 편하고 좋았습니다.
많이배우고 많이가진 다른남자들보다 한번더 배려하고, 비록 가진게 없어 몸은 불편해도 맘은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니요.. 지금도 많이 사랑합니다.
근데 이제 그만 사랑해야 할거 같습니다.
어제 그사람 어머니께서 가게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XX가 아직 어리다. 나이는 있어도 워낙 물정을 모르고 자라서 아직 어린아이다.
자네가 기분나쁘게 듣지 않았으면좋겠다. 괜히 열심히 사는 총각 힘빠지게 만든거같아서 정말 미안하다.
그런데 우리 xx좀 타일러줘라..
부탁한다..' 며 두손으로 제손을 한동안 잡고 계셨습니다.
정말 미인이고 교양이 넘치시는 분이더군요. 정말 정중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차라리 화라도 내고 제 귀싸대기라도 때리셨으면 오기가나서 놓지 않았을거 같은데..
젊은 사람들의 만남을 속세에 물든 늙은이가 껴서 방해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니 부디 이해해달라며..눈물흘리셨어요..
도저히 잡을수가 없습니다.
어린시절..저희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표정이셨습니다...
티비처럼 돈을 쥐어주거나 그런건 없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지킬수 있게 해주셔서 오히려 너무 감사했지요.
아직 그사람은 모릅니다.
아까부터 전화와 문자가 계속오는군요..
연락이 없으니 일하는데 와본모양입니다.
오늘 일나가지 않았습니다.
오빠 아프냐고 계속 문자가 오네요..
눈물이 계속납니다.
아침부터 지금껏 울고있는걸보니..
저 그사람 많이 좋아했던거 같습니다.
비는 왜이리 오는지..
대학가지 않은거..우리집사정..
정말 몸이 아스러질꺼 같을때도 그런생각은 안했는데..
처음으로 싫습니다..제가..절 둘러싼 환경이.
열심히 모아서 내년엔 작더라도 제 가게하나 열고 싶었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해 줄수있습니다.
난 세상에 더러운꼴 다 당하고 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해도 사랑하는 울애기는 가게일 손하나 까딱하지 않게 할껍니다.
안아달라고 할때마다 닳아 없어질까봐 함부로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오빤 남자아닌거 같애..라고 물어볼정도로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낮은 학력이 자랑스러워질정도로 성공할겁니다.
오늘까지만 이러겠습니다..
그사람이 줬던 쪽지들이 아직도 제방 상자에 가득합니다..
오늘까지만 읽어볼참입니다.
너무너무눈물이 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