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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의 사투

harang73 |2007.08.09 04:34
조회 1,381 |추천 0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서호 공원’은 장애인 아들을 운동 시키기 위해

 

아버지가 쇠줄로 아들을 묶어 산책시킨 사연이 방송에도 나왔던 제법 유명한

 

공원이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2km의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인근 아파트 단지만 수

 

십 개에 달해서 밤낮으로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하도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난 가끔 밤 열두 시 이후에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공원의 전등은 대략 새벽 한 시 반 정도에 일괄적으로 꺼지기 때

 

문에 그 때까지는 산책로를 도는 데 크게 무섭거나 그렇진 않다. 뭐 불이 꺼져

 

도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서두


 

 

문제의 그 날엔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 공원에 나가게 되었었다. 어지간하면 시간이 늦어서 산책을 안 나가려

 

고 했지만 하도 축구가 날 열받게 하는 바람에 폭식을 해 버려서 (폭식엔 언제

 

나 핑계가 있게 마련-_-) 공원 한 바퀴라도 돌고 잘 생각으로 서둘러 나갔었다

 

공원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새벽 한 시 십 분이었다. 2km를 20분 잡고 돌고 있

 

기에 빨리 걸으면 불 꺼지기 전에 돌 수 있겠다 싶어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

 

으로 출발지점부터 걷기 시작했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 내 뒤 쪽에서 누군가 걷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늦은

 

시간에 나 말고 또 누가 산책을 하나 싶어 힐끗 뒤돌아 보니 작고 날씬하게 보

 

이는 아가씨 한 명이 모자를 눌러 쓰고 여자들 대부분이 입는 그 검은색 스판같

 

이 보이는 츄리닝 바지 입고 귀에는 이어폰 꽂고 열심히 걷는게 보였다


 

 

속으로 이 늦은 시간에 여자가 겁도 없다 싶었지만 뭐 가끔 늦게까지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기에 신경 안 쓰고 나 역시 열심히 걸었다


 

 

근데 이 여자가 점점 나와의 간격을 좁혀 오면서 빠른 걸음으로 쫓아 오는 것이

 

아닌가


 

 

뭐 여느 때의 산책 같으면 날 추월해서 가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았

 

을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도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중이었고 날

 

쫓는 여자는 잘 봐 줘야 키가 160 될까말까한 여자인데 이 여자에게 추월 당한

 

다는 건... 도저히 납득이 될 수 없어서 나 역시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여서 걷

 

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속도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게 아닌가...


 

 

난 속으로 뛰어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내가 걸을 수 있는 최대의 걸음으

 

로 죽어라 걷기 시작했다. 이건 차라리 뛰는 게 낫겠다 싶을만큼 허벅지 팍팍

 

땡겨 가면서 죽도록 파워워킹을 하였다. 이래도 니가 날 쫓아올래 하는 심정으

 

로 죽을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믿기지 않게도 이 여자가 날 기어이 추월하는 게 아닌가...


 

 

내 옆으로 날 추월하는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날 전혀 의식하는 모습

 

이 아니었고 그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여자들 특유의 어퍼컷 스윙을

 

하면서 걷고 있을 뿐이었다


 

 

황당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키가 178인데 아무리 다리가 짧다고 해도 저

 

여자보다는 길텐데 왜 뭐가 문제길래 추월을 당한단 말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오기가 생긴 나는 그 여자와 똑같은 템포, 즉 발자국 수를 맞추되 다리는 찢어

 

질 듯 쭉쭉 뻗어서 보폭을 늘려 맞대응하며 뒤쫓았다. 발자국 수를 맞춘 이유는

 

내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쫓아 승리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순수

 

한 보폭 길이로 승부하겠다는 싸나이의 갑빠였다


 

 

이를 악 물은 덕분인지 그녀와의 거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

 

리 이를 악 물어도 그녀와의 거리 역시 좁혀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발자국 수를 똑같게 가져가고 있는데 왜 저 여자를 따라잡지 못하

 

는 것일까. 내가 태어나서 다리 짧다는 소리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160도 안

 

되어 보이는 저 여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걸까


 

 

어느 덧 공원을 한 바퀴 다 돌아가고 있었다. 골인지점이 다가올수록 난 미친듯

 

이 초조해졌다. 만약 그녀가 나보다 먼저 골인하면 난 부정할 수 없는 숏다리가

 

분명할 것이기에 아니 숏다리를 떠나 지고 싶지 않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난

 

급기야 스스로의 약속, 즉 그녀와의 발자국 수를 맞추겠다는 약속을 깨고 거의

 

경보 수준으로 미친듯한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든지 드디어 그녀와의 거리는 거의 한발자국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 그녀는 뒤쫓는 날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걷고

 

있었고 난 미친듯이 헐떡거리면서 춤이라도 추는 듯 허리를 흔들어 가며 히쁘

 

를 씰룩거려가며 바싹 뒤쫓아 가고 있었다. 근데도 그 한발자국 차이는 더 이상

 

좁혀지지 않았고 드디어 저 앞에 골인지점이 보이고 있었다


 

 

30미터...

 

20미터...

 

10미터...

 

5미터...


 

 

드디어 골인지점을 눈 앞에 두고 거의 반발자국까지 따라온 시점에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눈 앞에 벌어졌으니...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서 뒤로 확 댕겨버린 것이 아닌가-_-

 

갑자기 어깨를 잡힌 그녀는 정말 기겁을 하고 놀라면서 날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만 놀란 건 아니었다

 

나도 내 손이 한 짓을 보면서 놀라고 있었으니-_-


 

 

찰라의 시간 동안 우린 서로를 마주 보면서 그렇게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놀란

 

것은 당연하고 뭐 나도 놀란 것도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뭐라고 변명을 하

 

긴 해야 헸다. 아는 사람인줄 알고 착각했다는 말이라도 하든 아니면 너무 빨리

 

걸으셔서 뒤쫓다가 나도 모르게 잡았다고 하여튼 어떠한 변명이라도 했어야 했

 

다. 근데 막상 나도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잠시 멍하게 서 있어 버렸

 

던 것이다


 

 

그 때였다

 

갑자기 공원에 불이 나갔다

 

(새벽 한 시 반이 되었기에 불이 나간 거였다)


 

 

순간적으로 불이 나간 그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그 여자가 비명을 질러대는 게 아닌가-_-...

 

뭐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비명을 질렀는지 이해는 간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새벽 한 시 넘은 시간에 자기 어깨를 잡은 것도 놀랐을

 

테고 갑자기 불이 꺼지니 더 놀랐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여자만 놀란 게 아니라 나도 놀랬다는 것인데-_-...


 

 

“으악!!! 으악!!! 으악!!!”


 

 

나도 역시 놀라서 그 여자를 향해 비명을 질러댔고-_-...

 

결국 우리는 서로를 향해 비명을 지르면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뒤도 안 돌아보

 

고 도망치게 되었으니-_-......

 

도망치다 보니 더 무서워져서 계속 비명 지르고 진짜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

 

도 하는 것처럼 완전 공포였다는...


 

 

다행인 점은 그 날 이후 그녀를 더 이상 공원에서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그

 

게 다행이냐 이눔아!) 경찰에 신고는 안 했는지 나의 몽타쥬가 공원에 붙어 있

 

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_-

 

나도 그 날 이후로는 사람 많을 때만 골라서 공원에 가고 있다는...

 

쿨럭!;



 

- 오늘의 교훈 -

 

1. 키 크면 아무래도 다리도 길겠지 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

 

2. 남자놈들은 파워워킹에 익숙한 여자하고 걷기 승부하지 말 것

 

3. 미친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집착하는 그 순간 너도나도 미친놈년처럼 보

 

일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 것-_-...

 

 

 

* 출처 : 싸이월드/harang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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